소비 경제와 저축 경제
소비할 여력이 넉넉한 사람은 소비를 해야 한다. 사치해야 한다. 그래야 가난한 사람이 그들 덕에 돈 벌 수 있다.

최성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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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 경제와 저축 경제
 
  [소비자 경제와 생산자 경제]
  
  '제로 섬'의 저자로 유명한 레스터 써로는 미국 경제를 소비자 경제, 일본 경제를 생산자 경제라고 했다. 굳이 분류하자면 한국은 일본형에 가깝다고 송병락 교수는 말한다.
  
   '생산 경제와 약탈 경제'란 글에서 나는 생산 경제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러면 생산 경제 의 대표주자라고 할 수 있는 일본의 경제가 90년대에 장기 침체가 빠져서 아직도 허우적거리는 현상을 설명을 할 수가 없다. 이 글에서는 그 이유를 설명하려고 한다.
  
  [경제란 무엇인가]
  
   경제학에 대한 정의는 무수히 많지만, 폴 사무엘슨의 경제원론에 나오는 말이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지 않나 한다. 좀 복잡하지만, 이를 간추려 표현하면, '제한된 자원을 활용하여 더 나은 가치를 지닌 상품으로 만드는 생산과 그 생산품의 분배 방법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Economics is the study of how people and society end up choosing, with or without the use of money, to employ scarce productive resources that could have alternative uses-to produce various commodities and distribute them for consumption, now or in the future, among various persons and groups in society.
  
   이렇게 하면 경제행위에서 빠지는 것이 너무 많다. 자원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 수많은 서비스 산업이나 기술 개발, 인터넷 경제 행위도 애매하다. 새로운 자원을 만들어 내거나 무한한 태양열을 사용하는 것도 이에 맞지 않다. 넓은 의미에서 보면, 강도나 도둑의 활동도 경제행위라고 할 수 있다. 노조가 조직의 힘으로 협박하여 일한 것 이상으로 가져가는 것도 경제행위이다. 뇌물을 받는 것도 경제행위이다. 나는 이를 모두 약탈 경제라고 본다.
  
  [부가가치 늘리거나 빼앗기, 쓰거나 모으기]
  
   나는 좀 간단하면서도 포괄적인 정의를 내려보았다. '경제학은 경제행위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경제행위란 부가가치를 만들거나 빼앗는 행위와 부가가치를 쓰거나 모으는 일체의 행위를 일컫는다.' 부가가치를 만드는 행위가 생산 경제, 빼앗는 행위가 약탈 경제, 부가가치를 쓰는 행위가 소비 경제, 모으는 행위가 저축 경제이다. 유통을 비롯한 서비스업은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행위니까 역시 생산경제에 들어간다.
  
   본격적인 경제행위는 농업의 시작과 더불어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 인간은 짐승을 몰고 다니며 유목생활을 하거나 한 곳에 정착하여 농사를 지으면서 가축을 길렀다. 유목민은 끊임없이 이동해야 했기 때문에 저장할 것이 거의 없었다. 살아있는 가축이 저장된 식량과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그 때 그 때 필요한 만큼 소비했다. 그들은 농경민이 식량을 저장하는 것을 알고 신나게 약탈했지만, 농경민을 아주 미련스럽게 보았을지도 모른다.
  
  [유목민은 소비 경제, 농경민은 저축 경제]
  
   성경에 보면 이스라엘족이 이집트에서 탈출하여 가나안으로 가는 과정에서, 하나님이 매일 만나를 하늘에서 내려 주는데, 믿음이 약한 인간들이 다음 날을 위하여 이를 숨겨 두면, 하나님이 몹시 화를 내면서 이를 다 썩혀 버린다. 여기서 우리는 유목민의 지혜와 농경민의 지혜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스라엘 족속은 이집트에 정착해서 오랫동안 노예 생활을 했다. 그들은 먹을 것을 저장해 두지 않으면 머잖아 굶주린다는 것을 잘 알았다. 또한 노예들은 먹을 게 늘 부족했다. 따라서 먹을 게 생겼을 때 그 자리서 실컷 먹고 어떻게든 일부를 몰래 숨겨서 자식에게 갖다 주거나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감춰 두는 것이 굶지 않고 생존하는 최고의 지혜임을 처절하게 깨달았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들이 수백 년에 걸쳐서 깨달은 이 지혜를 어리석다고, 믿음이 약하다고 꾸짖는다. 붙박이 삶의 지혜는 미래에 대한 저축이요, 떠돌이 삶의 지혜는 현재를 위한 소비임을 그들은 몰랐던 것이다. 또한 그들은 이제 노예가 아니라 주인임을 몰랐다. 노예는 내 것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몰래 감추어야 하지만, 주인은 모든 게 내 것이니까 감출 필요가 없었다.
  
  [삶이냐 소유냐]
  
   또한 미래가 불안해서 저축에 온갖 신경을 다 쓰다 보면, 삶(to live/ to be)이 소유(to have)의 주인이 되는 게 아니라, 소유가 삶의 주인이 된다는 것을 그들은 깨우치기가 무척 힘들었다. 후에 가나안에 도착한 후, 수천 년이 지나도 이를 제대로 깨닫지 못하자, 예수님은 사람들의 어리석음을 이렇게 아름다운 말로 깨우쳐 준다.
  --하늘을 나는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않아도, 하나님께서 기르시지 않는가. 너희가 이들보다 귀하지 아니한가? 들에 핀 백합화를 보라. 길쌈하지 않아도 솔로몬의 모든 영광보다 아름다운 옷으로 입히시느니라.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주시며 이렇게 일러 주기도 했다.
  --오늘날 우리가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
  한 달, 한 해, 열 해 먹을 양식을 달라고 기도하지 말고 단 하루 먹을 양식을 달라고 기도하라고 한 것이다.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는 게 새로운 경제 행위]
  
   농경민은 저장술을 나날이 발전시켰다. 힘센 자는 약탈자의 입장에 서서 일은 않고 약한 자들이 생산해 놓은 것을 거의 독차지했다. 시간이 갈수록 이 생산품을 쌓아 두었다가 썩혀 버리는 수가 많았다. 부정부패가 심할수록 이런 일이 그만큼 많아졌다. 약한 자가 굶어 죽어도 아랑곳하지 않는 경우가 점점 늘어났다. 생존과 직접 관계없는 것도 모았다. 보석이라고 하여 이것을 더 귀하게 여겼다. 옷과 집도 생존과 관계없이 갈수록 화려해졌다.
  
  [징기스칸은 왕궁보다 천막을 사랑하다]
  
   징기스칸이 중원의 금 나라를 멸망시키자마자 화려한 왕궁을 불태우려고 했다. 좀스러워 보였던 것이다. 답답해 보였던 것이다. 온갖 사치를 다 부린 궁궐이 그에게는 미친 자의 감옥으로밖에 안 보였던 것이다. 주위의 만류로 불태우지는 않았지만, 그는 끝내 왕궁에서 자지 않았다. 하늘의 별이 보이는 곳에, 풀벌레 소리 들리는 곳에, 사랑하는 말이 숨쉬는 소리가 느껴지는 곳에 큰 천막을 치고 거기서 코를 드르릉 드르릉 골면서 편안하게 잤던 것이다. 자연 속에 묻혀 지내는 삶이야말로 참 삶임을 그는 잘 알았던 것이다. 오늘날 여름이면 사람들이 그 좋은 집을 버리고 산으로 바다로 도망가서 보잘것없는 텐트를 치고 마냥 즐거워하는 것을 보면, 징기스칸이 어리석은 자가 아니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농경민의 인구압]
  
   인간은 자연 속에서 적당히 다른 동물처럼 죽어야 하는데, 농업 기술이 발달하고 특히 저장술이 발달하고 의학까지 발달하여 갈수록 생존율이 높아지자 인구압이 계속 생기게 되었다. 유목민들은 수천 년이 지나도록 거의 늘지 않았으나, 농경민은 날이 갈수록 그 숫자가 늘어나기만 했던 것이다. 경쟁이 치열해지고 그만큼 착취도 전쟁도 갈수록 교묘해지고 잔인해졌다. 저장술도 갈수록 발달했다. 이어 먹고사는 것과 별 관계없는 것 중에서 희귀한 것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것은 썩지 않아서 수백 년을 갈 수 있는 게 많았다. 인간이 경제에 눈을 뜨기 시작한 것이다. 이전에는 그냥 무심히 보아 오던 것도 어떤 자가 그것에 가치를 부여하고 이를 다른 사람이 인정하면 그것은 부가가치가 생겼다.
  
  [날로 늘어나는 경제 행위]
  
   인류역사는 끊임없이 새로운 부가가치를 발견하는 과정이고 이것은 그 때마다 새로운 경제행위가 되었다. 원시인들이 그림을 그릴 때 그것은 종교 행위였고 예술 행위였다. 그러나 오늘날 그런 그림을 발견하면, 그것은 경제행위가 된다. 시대를 앞서간 천재 예술가들은 단지 예술을 하였을 뿐이지만, 후에 이를 알아본 비평가가 나오고 이를 돈 많은 보통 사람들이 인정하면, 그가 남긴 예술품은 엄청난 값어치를 지닌 재화가 된다.
  
  [지적 소유권에 가치를 제일 먼저 부여한 미국]
  
   20세기 후반이 되면서 지적소유권이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게 되었다. 옛날에는 이런 것이 경제와는 무관했다. 그저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정도에 불과했던 게 많았다. 빌 게이츠가 고향 시애틀 사람이 만든 DOS를 한 눈에 그 가치를 알아보고 단돈 50달러에 통째로 산 것이 좋은 예이다. 이전의 기준으로 보면 그는 사기꾼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은 그저 그것을 재미있는 장난감으로 알았고 그것을 만든 사람도 그것의 가치를 거의 몰랐다. 이것을 알아본 안목, 그것이 바로 경제행위이다. 수백억 달러의 부가가치를 그가 단숨에 만들어낸 것이다. 그는 금방 세계 최고의 경영자이자 세계 최고 부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서비스 업종은 대체로 이렇게 가치가 새로 부여된 것이다. 따라서 경제 발전 정도가 더딘 나라에서는 그 가치를 알아보지도 못하거니와 이를 미리 안 사람이 있다고 해도 시장에서 값을 쳐주지 않는다.
  
  [한국 제조업의 생산성은 세계적인 수준]
  
   한국의 제조업 생산성을 100으로 할 때, 일본은 103.5, 영국은 104.6, 독일은 101.4이다. 거의 비슷하다. 미국만이 143.8로 홀로 높다. 그 이유는 90년대의 정보기술(IT) 때문이다. 다른 나라는 이 신기술을 대단찮게 보았던 것이다. 결정적인 차이는 서비스업종에서 난다. 한국의 서비스 생산성을 100으로 할 때, 미국은 무려 232.3, 벨기에 223.5, 독일 186.4, 일본 163.7이다.
  
  [서비스의 가치를 모르는 한국]
  
   한국 경제가 생산자 경제라고 하더라도 아직 그 생산이란 것을 제조업과 거의 동일시한다는 말이다. 따라서 한국에서는 지적소유권을 제대로 인정할 리 없다. 컴퓨터 소프트웨어는 마구 베껴 먹는 게 당연하다. 대학생이 책 사기 아까워 마구잡이로 복사하면서도 조금도 양심에 거리낌이 없다. 소프트웨어와 책은 생산이 아니라고 보거나 보더라도 대단찮은 생산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2500원 짜리 짜장면 하나 달랑 시키고도 배달료를 100원도 안 쳐주는 것을 조금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서비스는 공짜로 보기 때문이다. 서비스업종의 생산성이 늘어날 리가 없다.
  
   어리석기는 일본도 마찬가지이다. 미국에 비해 엄청나게 뒤떨어지고 있다. 제조업을 중시하는 독일도 일본보다는 낫지만 다른 선진국에 대해 많이 뒤떨어진다. 미국은 경제 발전 단계가 제일 앞서서 새로운 부가가치를 알아내는 데 단연 세계 최선두에 서 있다. 이것이 이른바 신경제의 정체이다.
  
  [금융업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
  
   한국과 일본이 제일 낙후된 영역은 금융업이다. 그 가치를 인정할 줄 모른다. 제조업의 시녀로만 본다. 제조업으로 무역흑자 만들어 봤자 아무 소용없다. 금융도 똑같은, 아니 더 높은 부가가치 창출 산업임을 국민들이, 무엇보다 먼저 위정자들이 깨닫지 못하는 한, 한국과 일본은 계속 고전하게 되어 있다. 외환위기를 맞이하여 그나마 국제경쟁력이 있는 대기업을 오로지 미국의 잣대에 맞추어 혼내기 위해 정부가 시중은행을 70%나 사실상 국유화한 것은 나라 말아 먹으려고 작정하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어리석은 아마추어의 애국심이 나라를 결단내는 일이다.
  
  [공자와 맹자도 공업과 상업을 천시]
  
   옛날 농업 시대에는 공업과 상업을 천시했다. 공자와 맹자가 바로 그러했다. 그 값어치를 인정하지 않았다. 공업은 사치를 조장하고 상업은 불로소득을 차지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구가 계속 늘어나면서 이 두 영역은 발달할 수밖에 없었는데, 동양의 위정자들은 이를 끝까지 인정할 수 없었다. 도덕적인 관점에서 사악하게 보았기 때문이다. 경제 문제를 윤리 문제로 접근한 것이다. 이 사고방식 때문에 1750년대 이래로 동양이 서양에 역전 당하고 이루 말할 수 없는 고초와 수모를 당하게 된다. 일본만이 재빨리 그 값어치를 깨닫고 바로 산업화에 들어가 상공업을 함께 진행시킨 결과 동양에서 유일하게 선진국이 되었던 것이다. 그 이유는 졸작 '한중일--달라도 너무 다른'에서 자세히 밝힌 적이 있다.
  
  [마르크스는 상업에 무지]
  
   마르크스는 영향력 면에서 단연 20세기 최고의 인물인데, 긍정적인 면보다는 부정적인 면이 월등하다는 점에서 인류의 악몽이다. 그는 농업에 이은 공업의 가치는 알았지만, 상업을 몰랐다. 거의 바보 수준이었다. 그런데, 그의 이론에 탄복한 공산주의자들은 나라를 건설하면서 교주의 말씀에 따라 이 상업을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산업이 아니라 불로소득을 갈취하는 사악한 인간 행위로 보아, 원천적으로 철두철미하게 봉쇄했다. 오로지 국가 권력에 의한 분배만이 있을 뿐이었다. 결과는 전인민의 거지화, 전공산당원의 날강도화, 전국가의 지옥화.
  
  [일본의 저축 경제]
  
   일본은 농업 시대의 지혜인 검소한 소비, 알뜰한 저축이 생활화된 나라이다. 저축 경제가 고도로 발달했다. 은행 이자가 1%가 안 되어도 저축을 한다. 은행에 무려 1200조엔이 묶여 있다. 그런데 이것이 생산에 재투자되어 양과 질 양쪽에서 뛰어난 생산을 가져오고, 국내에서는 부동산과 주식이 올라서 부가가치가 계속 더해지고, 상품이 여전히 외국에서 잘 팔릴 때(소비되어 줄 때)는 괜찮았다. 그러나 외국 것은 사 주지 않고 자기 것을 팔기만 하는 일본이 얄미워서 환율 정책으로 서구 선진국들이 일본의 목을 조이기 시작하면서, 일본은 사경을 헤매기 시작한다.
  
   그런 상황에서 허리띠를 더욱더 졸라매면서 부동산과 주식의 거품이 꺼지고, 여전히 무역흑자는 신기록을 경신한다. 부동산과 주식이 곤두박질쳐서 이른바 부의 효과(wealth effect)가 없어지자, 더욱더 허리띠를 졸라맨다. 허리띠를 풀어서 밥을 먹고 반찬을 먹고 과일을 먹어야 하는데, 밥도 줄이고 반찬가짓수도 줄이고 과일은 아예 구경만 하니, 쌓아놓은 식량이 다 썩어 버리거나 엉뚱한 놈이 다 먹어 버린 것이다.
  
  [국민성은 바꾸기 힘들다]
  
   그 옛날에 한국과 중국이 산업화의 의미를 모르고 말세 타령이나 하던 것과 비슷한 상황이 1990년대에 일본에서 벌어진 것이다. 유목민처럼 호쾌하게 먹고 마실 줄을 알아야 하는데, 적당히 소비할 줄 알아야 하는데, 삶을 즐길 줄 알아야 하는데, 그걸 그만 잊어버린 것이다. 생산은 좋은 것, 저축도 좋은 것, 소비는 나쁜 것, 무역 흑자는 좋은 것, 무역 적자는 나쁜 것--이 사고방식을 벗어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건 국민성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몇 십 년 아니 몇 백 년 더 갈지도 모른다. 미국이 청교도 정신으로 저축과 생산을 선하게 소비와 사치를 악하게 보았다가, 소비와 적당한 사치가 나쁜 것이 아님을 받아들이는 데에 약 200년이 걸렸으니까.
  
   또한 일본은 곧 죽어도 무역흑자를 고수하는 면에서는 변형된 약탈 경제를 지향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건 절대주의 국가 시절에 중상주의로 나타난 것인데, 함께 살려는 것이 아니라 '너는 죽고 나만 살자'는 전형적인 유목민의 약탈 경제이다. 그러니까 일본은 두 가지가 기형적으로 합쳐진 나라이다. 농경민의 저축 경제에다 유목민의 약탈 경제가 결합된 나라이다. 약탈 경제가 살려면 빼앗은 것은 호쾌하게 똑같이 갈라서 내일은 내일 생각하고 실컷 먹고 마시고 춤추고 노래해야 한다. 그런데 일본은 무역흑자란 형태로 빼앗아서 그걸 아까워서 차곡차곡 쌓아 두었다가 썩혀 버리거나 빚 얻어서 먹고 마시는 미국이란 건달한테 갖다 바친 것이다.
  
  [미국의 소비 경제]
  
   일본이 과저축이 문제라면 미국은 과소비가 문제다. 먹고 마시고 춤추고 노래하는 대가로 전세계에 달러를 퍼 준다. 그리고는 나중에 달러이자 쳐서 갚아 준다면서 그 돈을 다시 빌려 간다. 마침내 저축이 마이너스가 되게 되었다. 흥청망청 먹고도 모자라서 빚을 얻어 또 먹고 마시는 것이다. 이것이 전부 GDP 상승에 일등 공신이 된다. 소비가 GDP에 기여하는 몫이 60%나 된다. 일본보다 약 10% 높다.
  
   미국은 유목 국가가 아니다. 떠돌이들이 많지만, 정착 생활자가 월등히 많다. 따라서 일정한 저축이 꼭 필요하다. IT 산업이다. BT 산업이다, 자랑스럽게 떠벌리지만, 다른 나라들이 바짝 따라왔다. 계속 잘 팔릴 리가 없다. 수익이 떨어진다. 주가가 떨어진다. 주식이 저축인데, 그게 떨어지니, 마이너스 부의 효과가 와서 소비를 줄일 수밖에 없다. 미국의 과소비에 의존하던 수출 중심의 아시아 전체가 휘청한다.
  
  [한국의 나아갈 길]
  
   한국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무엇보다 생산을 더 늘려야 한다. 한국은 인구압이 높아서 생산을 줄일 수가 없다. 품질 좋고 디자인 좋은 생산품을 잔뜩 만들어 외국에 내다 팔아서 필요한 양식을 사와야 한다. 그래야 다같이 먹고 살 수 있다.
  
   소비할 여력이 넉넉한 사람은 소비를 해야 한다. 이들은 가능하면 많이 써야 한다. 사치해야 한다. 그래야 가난한 사람이 그들에게 비싸게 팔아서 자식들 먹이고 공부시킬 수 있다. 배 아파하면 안 된다. 고픈 배를 부르게 해주는 은인으로 생각해야 한다. 부자들이 외국 상품을 수입도 해 주어 무역흑자가 지나치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 남들이 우리 걸 계속 사 준다.
  
   서비스의 부가가치를 인정해야 한다. 짜장면 배달시키면 단돈 100원이라도 줘야 한다. 노랑머리에 오토바이 탄 젊은이가 서비스를 잘한 만큼 당당히 부자가 될 수 있어야 한다. 대학생은 책을 사야 한다. 술값을 아까워하고 책값을 송구스러워해야 한다. 지적재산권이 제대로 보호받아야만 고학력자들이 잘 살 수 있다. 일자리가 많이 생긴다. 이들이 머리에 물들일 시간이 없이 온갖 아이디어를 다 짜내어 머리가 저절로 하얗게 되면, 한국의 빌 게이츠, 한국의 스티브 케이스가 될 수 있다. 이찬진이 미국에 태어났더라면 세계적인 부호가 되었을 것이다.
  
   금융업을 정부의 손아귀에서 떼어놓아야 한다. 대기업도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이동통신보다 더 중요한 산업임을 알아야 한다. 이동통신에는 대기업을 참여시킬 줄 알면서 왜 그보다 중요한 금융업에는 동네 새마을 금고 하나 경영할 능력도 없는 정부가 다 장악하고 있는가. 아니면 외국에게 팔아 넘기려고 늙은 기생 같은 눈웃음을 치는가. 스위스는 경기도 만한 땅인데도 은행이 600개나 된다. 하나같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었다. 우리라고 못할 게 없다. 우린 그만한 것을 1,000개도 만들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놀아야 한다. 문화를 즐겨야 한다. 삶을 즐겨야 한다. 호쾌한 동이족의 얼을 오늘에 되살려 놀 줄도 알아야 한다. 이제 문화가 제일 큰 경제가 된다. 한국의 시대가 나무에 가득 노란 손수건을 달고서 반갑게 손짓하고 있는 셈이다.
  
   (2001.2.28.)
  
[ 2006-07-14, 22:00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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