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개혁(15)-본고사가 왜 나쁜가?
본고사가 폐지되면서 과외는 필수가 되었고 대학은 대거 국화빵 종합대학으로 변신, 서울대 뒤에 학력/수능점수 순으로 늘어섰다.

최성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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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개혁(15)-본고사가 왜 나쁜가?
 
   대학 본고사는 5공화국의 등장과 더불어 사라졌다가 6공화국에서 잠시 몇몇 대학에서 부활되는 듯했다가 다시 사라졌다.
   대학 본고사를 부활할 때는 대학의 자율화를 내세우고 이를 폐지할 때는 과외를 염려한다. 어느 쪽이든 일리가 있다. 어느 것이 맞다고 단정하기는 힘들다.
  
   잠시 옳고 그름을 논하기 전에 그 결과를 보자.
   지난 20년간 교육부가 가장 신경을 많이 쓴 부분은 아마 과외 대책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과연 과외가 줄어들었나? 과외에 관한 모든 통계가 1998년 IMF로부터 구제금융을 받던 첫해에 약간 주춤했을 뿐 과외는 지속적으로 늘어났음을 보여 준다.
  
   한 때 우리 나라 축구가 월드컵과 올림픽 예선에서 말레이시아, 호주, 이스라엘, 이란, 쿠웨이트, 사우디 아라비아 등에게 덜미를 잡혀 마지막 순간에 분루를 삼킨 적이 있었다. 무려 한 세대 동안 땅을 쳤다. 이 때 매번 전문가와 언론이 떠드는 소리가 체력이 부족하다는 것과 키가 작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지속적으로 선수의 연령을 낮추고 키 큰 선수를 계속 뽑았다. 아무리 그래도 소용없었다. 투지는 좋은데, 골문 앞에만 가면 허둥대었고 후반에만 가면 다리가 땅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던 한국 축구가 1986년 멕시코 월드컵부터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아시아 대표로 당당히 축구 강국과 겨루었다. 선수의 평균연령은 훨씬 높아졌고 키는 그저 그 전과 비슷했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이런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는가? (본선 성적은 여기서 논할 일이 아니다.)
  
   1984년 프로리그의 출범 때문이었다. 연령이나 키도 중요했지만, 그것은 결정적인 요인이 아니었다.
  선수들이 자기 능력에 따라 인생이 달라지게 되면서 축구만 열심히 하면 얼마든지 평생을 잘 살 수 있게 되면서, 자기 관리를 철저히 하여 잠재 능력을 최대한 계발하되 혼자 잘난 척하지 않고 팀워크를 최대한 살렸기 때문이다.
  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25살만 되면 노장이라고 했지만, 프로 축구가 출범하자 25살은 어린아이가 되었다.
  
   20년 동안 과외 대책에 실패했다면 분명히 진단이 잘못된 것이다. 시험을 쉽게 내면 된다고 생각하고 지속적으로 문제를 쉽게 냈지만, 과외는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저변이 더욱 넓어졌을 뿐이다.
  다시 말해서 본고사가 절대 과외의 원흉이 아니라는 말이다.
  대통령 한 말씀에 고액 과외 단속한다고 교육부만이 아니라 여당과 국세청까지 총동원되는 현상은 한 편의 장대한 코미디라고 할 수밖에 없다.
  
   대학은 어떻게 되었는가. 본고사가 없어지면서 대학의 자율권은 극도로 억제되었고 그 결과 특성 있는 대학이 거의 없어졌다. 반반한 대학 못난 대학 할 것 없이 모조리 종합대학으로 바뀌었다. 똑같은 시험으로 똑같은 잣대로 학생을 선발하면서 전국의 대학은 서울대를 정점으로 거대한 피라미드를 만들 수밖에 없었다.
  
   대학 이름만 내세우면 학생이 우르르 몰려들었기 때문에 학과 열 개 스무 개 만드는 것은 전혀 문제가 안 되었다. 학과를 많이 개설할수록 유리했다. 교육부는 대학문을 넓히면, 대학 들어가기 쉬우면 과외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종합대 승격을 시대적 사명감을 갖고 요건만 갖추면 모두 승인해 주었다.
  
   학생은 어떻게 되었는가.
   무엇보다 법이란 것을 우습게 여기게 되었다. 과외금지법을 무서워 하는 학생은 아무도 없게 되었다. 부모의 능력만이 문제되었다. 현실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명문대에 합격하는 것이 최고임을 이들은 누구보다 잘 알았다. 입시 제도에 맞추어 어떤 난관도 부모와 한 마음이 되어 대학에 들어갔다.
  교육부 장관의 말씀에 감동하는 학생은 초등학생도 없게 되었다. 왜? 구름 잡는 소리만 하기 때문이었다. 그 정도 말은 자기들도 얼마든지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또한 학생들은 교육부 의도와는 반대로 철저히 입시 기계가 되었다. 교육은 인간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바꾸는 일, 미래 사회에 잘 적응할 인간을 기르는 일이라는 원론은 전혀 이들과 무관한 일이었다. 입시가 아무리 쉬워졌다고 하지만, 학생 편에서는 다 그게 그것이었다.
  입시 문제가 쉬워진다고 했지만, 여전히 거의 전과목이 망라되어 있고, 내신이 있어서 3년 동안 단 한 번도 소홀히 할 수 없었고, 명문대 유혹은 어떤 것보다 강렬했기 때문이다.
  
   '엄포로 고액과외 단속할 수 있을까'에서 말했듯이 대학은 신분이 운명을 결정하는 봉건제도이기 때문에 대학 합격만 하면 평생 그 신분으로 살아갈 수 있었기 때문에 명문대는 돈이나 권력보다 더한 유혹이었다. 심지어는 대학에 합격한 학생도 재수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되었다.
  
   대학이 시장경제를 받아들여 들어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들어가서 공부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대학에서 닦은 능력에 따라서 사람을 대접하지 않는 한 학생들은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철저히 서열화된 명문대를 목표로 공부하지 않을 수 없다.
  
   사회 곧 회사가 학벌을 따지지 않으면 되지 않느냐고 하지만, 이것은 너무 순진한 생각이다. 첫째, 전국의 모든 대학생이 대학에 들어가는 순간 죽어도 공부를 하지 않기 때문에 그나마 고등학교까지 열심히 한 학생이 능력이 대체로 낫다.
  둘째, 선배들이 거미줄처럼 인맥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에 좀 달갑지 않아도 명문대 학생을 뽑아 오면 회사에 상당히 득이 된다. 이익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회사에게 일제히 성토해 봐야 무슨 소용이 있을 리 없다.
  
   모든 게 악순환이었다. 전에는 그래도 공주사대, 경북대 사대, 경북대 전자학과, 부산대 기계학과, 인하공대, 한양대 공대, 연세대 상대, 고대 법대, 동국대 국문학과, 성균관대 법대, 영남대 약대, 이대 영문학과, 아주공대, 전남대 의대, 전북대 국문학과 등 쟁쟁한 특성화 대학이 있었지만, 대학 본고사가 폐지되는 시점과 거의 동일한 시기에 이런 대학이 모조리 서울대를 정점으로 하는 종합대의 거대한 피라미드 속에 들어가게 되었다.
  
   과외라는 사회 현상을 정치 문제로 환원해서 교육부가 풀려고 나섰다가 결국 깊숙한 수렁에 빠지게 되었던 것이다. 대학을 나무랄 수가 없다. 그들은 교육부가 만든 새로운 환경에 적응했을 따름이다. 교육부의 지엄한 말씀을 잘 들었을 따름이다.
  
   이제는 교육부도 바뀌고 대학도 바뀌어야 한다. 교육부는 대학을 믿어 주고 도와 주어야 한다. 본고사를 보겠다면 보게 해 주어야 한다. 잘 되든 못 되든 그것은 그 대학의 책임이다.
  
   각 대학의 교수들은 지금은 대학이 모조리 아마추어 팀이라서 그렇지 자율권을 주어 대학이 프로팀이 되는 순간, 대학 교수들은 잠재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게 되어 있다. 미국 대학에서도 날리던 교수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들을 이제 믿어 줄 때가 되었다.
  
   이제는 여건이 많이 바뀌어 대학도 문만 열어 놓고 학생을 기다릴 수 없다. 한 학과만이라도 서울대를 능가하는 게 있어야 산다는 것을 잘 안다.
  
   본고사 부활하면 처음에는 일부 부작용이 있겠지만, 대학 교수들이 바보가 아닌 한 자기 학교 망할 일, 자기들 돈벌이에 혈안이 되고 고액 과외나 부추길 짓을 할 수가 없다.
  누구나 원하면 대학 들어갈 수 있는 상황에서 그렇게 하다가는 그 대학이 아예 문을 닫아서 자기들도 길거리에 나앉게 된다.
  
   대학을 프로팀으로 만드는 게 제일 중요하다. 나머지는 대학이 알아서 하게 되어 있다. 더러 망하는 대학도 나와야 한다. 축구에 소질도 없는 선수가 인맥으로 학맥으로 돈으로 아마추어 팀에야 남아 있을 수 있지만, 프로팀에서는 하루아침에 쫓겨나게 되어 있다. 이런 자를 동정할 필요는 전혀 없다. 그는 딴 일을 찾으면 된다. 엉터리 교수는 대학이 프로팀이 되는 순간 당연히 쫓겨나게 되어 있다.
  
   또한 교육부는 어떤 학생을 길러 내느냐에 신경을 써야지 오로지 입시에만 모든 정력을 쏟아서는 안 된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과외는 사회 현상이다.
   이를 막는 것은 정치이지 교육이 아니다. 자기 할 일을 망각하지 말아야 한다. 왜 교육부가 정치를 하려고 하는가. 말로만 학생 입장을 대변하지 말고 실지로 학생 입장을 대변하기 바란다.
  
   이미 특기 적성으로 들어간 학생들의 학력이 뒤떨어져서 대학에서 골치를 썩힌다고 하지 않은가. 건국대에서 특기 적성으로 들어온 학생의 상급 학년 진입률이 불과 48%라고 발표하지 않았는가. 수능으로 들어간 일반 학생은 그 비율이 75%라고 하지 않는가.
  
   입시 과열이면 어떤가. 유능한 인재만 길러낼 수 있다면 한창 성장기에 공부 죽어라 하면 어떤가.
   고액 과외는 왜 안 되는가. 헌법 재판소에서 고액 과외가 위헌이라고 했던가. 고액 과외 금지법이 위헌이 아니라고 했을 따름이다. 그 법을 폐지한다고 해서 문제가 될 게 없다는 말이다.
   만약 고액 과외해서 지금과 같이 오로지 명문대 들어가서 평생을 보장받는 영광을 누리는 게 아니라 미래 사회에서 세계를 주름잡을 사람을 만들 수만 있다면, 학생과 교사 그리고 학부모에게 오히려 엎드려 절을 해야 할 것이다.
  
   사회 위화감을 논하는 것은 교육 문제가 아니다. 사회 문제요 정치 문제이다. 만약 고액과외가 그렇게 위화감을 조성한다면, 우리 나라는 고급 아파트, 고급 차, 백화점 등등 모조리 없애야 한다.
  벤처기업으로 매출액 고작 10억 원에 하루아침에 1천억 원을 번 사람은 모조리 감옥에 가두어야 한다. 이것보다 서민들을 허탈하게 하는 게 어디 있는가. 대통령, 장관, 국회의원 등도 모조리 폐지해야 한다. 이런 지위보다 위화감을 조성하는 게 어디 있는가. 고액 과외가 좋다는 말이 아니다. 해결 방법, 태도, 발상이 잘못되었다는 말이다.
  
   교육부가 정말 신경 쓸 일은 대학생이 공부하게 하는 일이다. 우리 나라는 절대 고등학생이 공부 열심히 하는 게 문제가 아니다. 대학생이 공부 안 하는 게 제일 큰 문제다.
   이 문제는 다음 기회에 다시 다루겠다.
   ---계속--- (2000. 5. 7.)
  
[ 2006-07-15, 16:41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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