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와 호금도의 타협책, 장성택
미사일 불장난의 주목적은 장성택 견제일지도 모른다. 개혁개방에 찬물을 끼얹고, 선군정치를 밀어붙이려는 듯.

최성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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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2년 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될 때만 해도 북한의 권력이양은 '부자상속'보다는 '형제상속'의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비정한 권력구축 과정에서 김일성은 민족우파, 남로당, 소련파, 연안파, 갑산파를 차례로 제거하고 88여단의 만주파마저 단상(壇上)의 동지에서 단하(壇下)의 부하로 끌어내렸기 때문에, 피붙이인 형제나 아들 외에는 그 누구에게도 권력을 넘겨 줄 가능성이 없었다. 그 때 당시 제2인자가 김일성의 동생 김영주였다. 그 둘 사이는 절대군주와 왕세제(王世弟) 사이와 비슷했다. 인지상정으로 동생보다는 아들인데, 김정일은 그 당시 만 30세로 권력상속을 거론하기에는 너무 어렸다. 또한 김일성은 후처인 김성애의 입김도 있고 자신을 쏙 빼 닮기도 해서 그녀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김평일을 은근히 후계자로 점찍은 듯하다. 김성애의 초상화가 김일성의 초상화 옆에 나란히 등장했으니까.
  
   어쨌거나 김일성의 건강으로 보아 최소 10년 후의 일로 여겨져서 권력승계는 섣불리 예단할 수 없었다. 까딱 잘못하면 대역죄로 '뒤주 속에 갇힐' 수 있었기 때문에 김영주, 김정일, 김성애는 치밀한 물밑공작에 들어갔다. 드러나기로는 김영주가 제일 유리했고 그 다음으로는 김평일, 마지막으로 '엄마 없는' 김정일이었다. 제일 먼저 치고 나간 사람은 베갯머리 송사가 가능한 김성애였다.
  
   이 때 막후에서, 물론 김일성의 이중 포석도 있었지만, 눈부시게 활약한 야심가가 김정일이다. 절대권력자인 아버지의 배려로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당의 핵심인 인사 담당의 조직지도부와 세뇌 담당의 선전선동부에서, 그리고 '왕의 눈' 3대혁명소조의 우두머리로서 경력을 쌓고 인맥을 구축했다. 김일성은 동지들을 원로나 반역자로 몰아내는 과정에서 오진우를 군의 실세로 발탁하여 현재의 권력뿐만 아니라 미래의 권력도 공고히 다졌는데, 은밀히 그의 손을 김정일의 손에 얹어 주었다(1969).
  
   김정일은 권력에 대한 동물적 감각이 있다. 그는 권력은, 특히 독재권력은 조직과 사상과 폭력에 달려 있다는 것을 정확히 판단하고 조직지도부와 선전선동부, 3대혁명소조 그리고 군대를 차례로 수중에 넣는다. 김정일이 김영주와 김성애에게 이길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은 견제를 받지 않기 위해서 잘 드러나지 않게 공작한 데 있다. 그것은 바로 조직과 사상과 폭력 이 셋 중에 사상을 가장 중시한 것이다. 가극과 영화에 가장 치중한 것이다. 아마 이를 보고 김영주와 김성애는 김정일을 우습게 봤을 가능성이 높다. 한량으로 주색잡기에 몰두하는 듯이 보였을 테니까. 아니었다! 그게 바로 김정일의 노림수였다. 허허실실!
  
   김정일은 가극 [피바다], [꽃 파는 처녀], [밀림아 이야기하라] 등을 통해 또 무수한 영화를 통해 대대적으로 김일성 우상화에 앞장선 것이다. 김일성 동상도 통크게 건립했다. 이건 누구도 거부할 수 없었다. 박수치지 않을 수 없었다. 김일성도 흐뭇할 수밖에! 김일성의 손에 묻은 피를 학습과 총화와 숙청으로 씻어내는 데는 한계가 있다. 눈과 귀를 동시에 사로잡는 가극과 영화는 이성을 마비시키고 영혼 깊숙한 곳으로부터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데에 안성맞춤이었던 것이다. 사람은 감동하면 의식만이 아니라 무의식도 지배당한다. 자연스럽게 세뇌된다. 김일성을 우상화한 '수준 높은' 가극과 영화를 보며 인민들이 흘린 눈물에 김일성의 손에 묻은 피는 거짓말같이 씻겨 내려갔다.
  
   김정일은 건달의 흉내를 내면서 뒤로는 군부와 손을 잡고 앞으로는 당의 핵심 인물과 미래 일꾼들을 차례차례 파티에 초대했다. 측근정치를 시작한 것이다. 어느 날 보니, 그는 세자로 책봉되어 있었다. 그가 마침내 '가위 손'을 번쩍 치켜들자, 곁가지는 순식간에 싹둑 잘려 땅에 떨어졌다. 김영주, 김성애, 김평일이 차례로 힘도 한 번 못 쓰고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졌던 것이다. 김일성이 기특히 여겨 권력의 일부를 나누어 주자(1985년 무렵), 김정일은 어느새 2인자가 아닌 공동 통치자가 되었고, 그가 만 50세가 되던 1992년에는 1인자임을 김일성이 헌시를 바쳐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생명의 위협을 느꼈던 듯하다. 아마 1987년경에 이미 김정일이 1인자로 올라선 듯하다. 군부와 대남부서를 거의 장악하여 아웅산테러(1983)와 KAL기폭파(1987) 등을 명령하고, 나라살림이야 결딴나거나 말거나 자유대한의 위상을 세계에 떨친 88서울올림픽을 깎아 내리려고 무지막지하게 전쟁을 치르듯이 평양세계청년축전을 밀어붙였으니까(1989). 아웅산테러 무렵에 이미 그는 공동통치자가 되었을 가능성도 크다.
  
   이제 김정일도 환갑을 넘기면서 권력이양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지만, 국내외적으로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그 자신이 절대권력자인 아버지를 소쿠리 비행기에 태워 권력을 빼앗은 경험이 있기 때문에, 그는 그 누구도 믿지 않는다. 자식도 못 믿는다. 그래서 김정남이든 김정철이든 김일성이 그에게 20대 초반부터 황제수업을 시켰던 것과는 달리 조직지도부나 선전선동부, 3대혁명소조 등에 중용하지 않는다. 아무래도 권력 상속자는 어느 아들이든 아들이 적격이겠지만, 임종시에야 권력을 물려 줄 생각인 듯하다. 아직은 누구라고 딱히 정하진 않은 듯하지만, 다른 사람에겐 결코 주지 않으려 할 것이다.
  
   현재 북한에는 1970년대의 2인자보다 훨씬 센 2인자가 있다. 그가 바로 장성택이다. 김정일이 세상에서 제일 이뻐하는 여동생 김경희의 남편이다. 그는 노동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조직지도부장은 김정일이 겸직하는 듯)이자 3대혁명소조사업부장이었다. 3대혁명소조는 북한판 홍위병으로 공식 조직인 노동당이 보고도 못 본 척할 정도로 막강한 청년 조직이다. 장성택은 이것을 수십 년간 맡았고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은 90년대 중반에 맡았다. 그는 선전선동부만 안 맡았을 뿐, 김정일이 왕년에 권력의 디딤돌로 삼았던 두 조직을 맡았던 것이다.
  
   2인자가 너무 컸다. 마침내 김정일은 '곁나무' 장성택을 뿌리째 뽑아 버렸다(2002). 그와 친했던 자들, 심지어 결혼식에 함께 참석했던 자들도 모조리 숙청했다. 일인 절대자가 통치하는 북한에선 그러면 영원히 끝! 그런데, 아니었다. 2005년 12월말 장성택이 다시 절대자를 알현했다. 2년 만이다. 2006년 3월 장성택은 북경으로 날아가서 약 10일간 머물렀다. 경제시찰의 이름으로! 그는 돌아와서 북한의 경제정책을 총괄한다고 한다. 공식직함은 근로단체 및 수도건설부 제1부부장. 김일성대 재학 시절 그 대학의 최고 멋쟁이였던 장성택을 가슴을 콩닥거리며 졸졸 따라다녔던 김경희는 실지로 활동은 하지 않는 만년 경공업부장(장관)이다.
  
   이건 어디까지나 나의 개인적 추측에 지나지 않지만, 장성택을 살린 '보이지 않는 손'은 김정일의 목줄을 쥐고 있는 호금도라고 본다. 호금도도 스스로 그렇게 하진 않았을 것이다. 마카오의 39호실 계좌를 동결시키면서 위폐 유통, 마약 거래, 미사일 판매 등 반박할 수 없는 범죄 물증을 내밀며, 부시가 중국의 아킬레스건 금융에 파리스의 화살을 날릴 수 있다고 강하게 암시하고 2008년 북경올림픽을 썰렁하게 만들 수도 있다고 협박하자(인권문제는 티베트를 무력으로 평정한 호금도에게 통하지 않았을 듯), 절충안 내지 타협책으로 호금도가 장성택을 내세웠을지 모른다. 더군다나 장성택은 군부의 빛나는 별인 두 형제가 있다. 형 장성우는 차수(원수와 대장 사이)로서 평양을 방어하는 3군단장이다. 한국으로 치면 수도경비사령관이다. 잠시 장성택을 쉬게 할 때도 장성우와 그 동생 인민군 중장 장성길은 손대지 못한 걸로 봐서 그들의 군대 내 입지는 상상 이상으로 클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부시와 호금도는 북한의 체제를 변경하는 것(regime change)으로 타협을 봤을 공산이 크다.
  
   김정일이 원하는 것은 오직 하나 권력이다. 그것만 있으면 모든 걸 가질 수 있으니까! 권력만 유지할 수 있다면, 그는 어떤 일도 서슴지 않는다. 이 말은 권력만 유지할 수 있다면, 어떤 모험도 감행하지 않는다는 말도 된다. 그럴 수만 있다면, 절대 전쟁을 도발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대신에 권력을 더 이상 유지할 수 없을 상황에 처하면, 중국과 미국이 공동으로 밀어 주는 장성택이 두 형제와 손을 잡고 '폭정의 전초기지'를 폭파할 낌새를 뻔히 두 눈으로 보고도 도저히 그것을 막을 수 없는 상황에 처하면, 미국의 선제공격을 받기 전에 밑져야 본전이라는 심리로 도둑같이 기습남침할 것이다. 그의 마지막 보루는 핵무기 앞에 사시나무 떨 듯 떨며 자주평화통일의 깃발 아래로 언제든지 낮은 포복으로 기어들어 올 자세를 취하고 있는 한국이니까.
  
   그 시기는 길게 잡으면 미국이 전시작전권을 한국에 넘길 무렵이겠지만, 그것은 미국이 그 전에 선제공격하겠다는 뜻일 수도 있으니까, 그러면 김정일은 사담 후세인 꼴이 될 테니까, 현재와 앞으로 남은 4년의 중간 무렵이 될 듯하다. 그 시기를 정확히 알려면 장성택을 중심으로 북한 내부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워야 할 것이다. 미국이든 중국이든 '명예혁명'을 가장 선호할 테니까. 어쩌면 이번 미사일 불장난의 주목적은 장성택 견제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함으로써 중국과 미국이 장성택을 내세워 추진하고자 하는 중국식 개혁개방정책에 찬물을 끼얹고, 2천만의 심장에 꿴 공포와 충성의 고삐를 바싹 잡아당겨 선군정치를 계속 밀어붙이려고 '타산'하는지도 모른다. 어느 쪽이든 한국은 김정일의 봉 노릇만 하게 생겼다. 한국과는 이제 어느 나라도 깊숙한 대화를 나누지 않는다. 심지어 북한도!
   (2006. 7. 22.)
  
  
  
  
  
[ 2006-07-24, 07:15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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