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대화는 없다--단절된 지 14년
남북대화는 오히려 '별' 대통령 때 잘 이루어졌다. 특히 노태우 정부 때는 눈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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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대화는 없다--단절된 지 14년
 
  SBS: 국민의 정부에 비해 대북 채널이 약화된 게 아니냐?
  이종석: 그 때에 비하면 여러 가지로 늘어나 있다. 그러나 남북간에 굉장히 서로 이해하고 신뢰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는데, 이는 착시현상이다. 남북간에는 미사일이건, 핵이건 제대로 대화해서 설득할 수 있는 상황이 안 된다.
  
   아무리 머리 좋은 거짓말쟁이도 말이 많다 보면 거짓의 거대한 몸체를 살짝 드러내는 머리카락 한 올쯤 보이게 마련이다. 아주 사소한 것 같지만 일단 머리카락 한 올만 드러나면, 진실과 거짓의 숨바꼭질에서 거짓을 찾아내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니다. 그래서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라고 어른의 아버지인 어린이가 그 지혜를 노래로 부르는 것이다. 위의 말이 좋은 예다. 통일부 장관의 취지는, '국민들이 노무현 정부를 친북좌파로 보는 경향이 있지만,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큰 문제에서는 그들을 설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설득할 수 없다는 것은 한 패가 아니라는 반증이 아닌가.' --대충 이런 것이리라.
  
   중요한 문제를 설득할 수 없다는 것은 아예 대화 상대가 아니라는 말이다. 사소한 문제야 지나가는 거지한테도 양보할 수 있고 몰래 찾아온 밤손님에게도 인심 쓸 수 있지만, 중요한 문제는 대등한 관계나 서로가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존중할 만한 신뢰가 쌓인 사이가 아니면 양보나 교환은커녕 논의 자체가 불가능하다.
  
   대화에 해당하는 영어 'dialog'는 원래 그리스어에서 유래된 것인데, 그 뜻은 '둘(di)이 주고받는 말(logos)'이다. 혼자서 웅얼거리는 말은 독백 곧 'monolog'이다. 한쪽이 잔뜩 주눅이 들어 뭐라고 중얼거리면, 다른 한쪽이 호통치고 협박하고 명령하고 질타한다면, 그것은 애시당초 대화가 아니다. 상하 관계가 엄연한 사이에선 이런 일이 걸핏하면 일어난다. 그러면 아랫것은 눈치를 살살 살피며 아첨하고 위로하고 다소곳이 한 켠에 서 있다가 아무 말이 없으면 조용히 물러나 하명(下命)을 기다린다. 그러다가 애꿎은 강아지 배를 차거나 공중에 대고 팔자를 탓하고 아무 잘못이 없는 이웃을 욕하고 같이 놀자고 보채는 동생을 이게 어디서 맞먹으려고 대드느냐, 하며 인정도 사정도 없이 때리고 어르신의 심기를 어지럽힌 자에게 저주를 퍼붓는다.
  
   가부장의 권위가 추상같았던 때에 거의 날마다 보아 왔던 일이다. 집밖에서는 숨도 크게 못 쉬고 돈도 못 벌어오는 무능한 '폭군' 가장일수록 술 냄새를 확 풍기며 벌컥 화를 내면서 '다 때려죽인다'고 칼 들고 설치면, 온 식구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전전긍긍했던 것이다. 거기서 대화라는 건 있을 수 없었다. 지시하고 명령하면 무조건 따랐을 따름이다. 그런 아버지도 원수가 있으면, 설령 아버지가 잘못했더라도 아들은 목숨을 걸고 대신 싸웠다. 아예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도 싸웠다. 3대를 이어 싸우기도 했다. 그게 바로 당쟁이었다. 요새도 신성한 국회에서 오로지 어르신에게 잘 보이려고 격투기를 벌이는 '금배지'들이 있다. 그런 자들은 모조리 '독도 지킴이'로 보내야 할 것이다.
  
   오늘날도 우리 사회에는 이런 일이 더러 남아 있다. 대기업보다는 사장이 전권을 움켜쥐고 있는 중소기업이나 서열 의식이 뚜렷한 의사나 판검사 세계, 관료조직이 발달한 정부, 계급이 중요할 수밖에 없는 군대, 노동귀족으로 확실하게 신분 상승한 전임노조원이 군림하는 노조 등에서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난다. 요샌 정부의 보조금을 받는 시민단체가 아무 데나 불쑥 나타나서 일방적으로 호통치고 자리를 깔고 드러누워 난장판을 만든다. 아마 불법단체 한총련이 제일 심할 것이다. '의장님'의 밀지(密旨)가 하달되면, 일제히 복창하고 전국의 모든 대학이 일사불란하게 실행에 들어간다. --이라크 파병 반대, FTA 반대, 미군 철수!
  
   가끔 어디서 대화라는 말을 듣고 와서, 아랫것을 보고 만면에 웃음을 띠고 대화하자고, 문이 활짝 열려 있으니까 언제든지 말할 게 있으면 기탄 없이 말하라고 어르신이 선심을 쓰는 경우가 있다. 이 때 눈치 없이 할 말을 다하면, 그 날로 끝이다. 재떨이가 날아가고 손바닥이 날아가고 침이 날아간다.
  
   남북대화는 오히려 꿇릴 게 전혀 없어 당당하던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정부 때 잘 이루어졌다. 노태우 정부가 가장 잘했다. 이후락이 청산가리를 몸에 품고 김일성을 만나러 간 이후 남북조절위원회가 생겨서 남북대화는 꾸준히 이어졌다. 북한이 생떼를 쓰면 바로 끊어 버렸다. 그게 대화의 기본이다. 북한이 제 정신을 차리고 나오면 즉시 대등한 관계에서 할 말을 다했다. 이렇게 하여 쌍방간에 대화 전문가가 키워졌다. (이들이 김대중 정부에서 모조리 정리해고되었다. 북한의 대남 전문가는 그대로 있으니, 상대가 될 리 없었다. 북한이 어떻게 나올지는 항상 오리무중이다. 언제나 돌팔이 사후약방문이다.) 마침내 이산가족도 만났고 산업시설도 시찰했고 남북을 오가며 공연도 했다. 핵사찰도 받아들였다. UN에도 동시에 가입하고 남북비핵화선언에도 서명했다. 8차에 걸친 남북고위급 회담으로 서로에게 유익한 (win-win) 남북기본합의서도 도출했다. 세계가 박수를 쳤다.
  
   남북대화가 단절된 것은 '대도무문(大道無門: 아무 통제가 없는 큰길에는 개나 소나 다 다님 또는 大盜無門: 김정일같이 큰 도둑에겐 문이 따로 없음)'밖에 쓸 줄 모르는 강화도령 아니 거제도령이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다. 간첩사건과 팀 스피리트 훈련을 빌미로 9차 남북고위급회담을 북한이 일방적으로 취소해 버린 것이다. 1993년 3월 12일에는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하고 핵사찰을 거부했지만, 김영삼 정부는 예정대로 3월 19일에 뉘우칠 줄 모르는 간첩 이인모를 인도적 차원에서 북으로 돌려보냈다. 북한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면서 대대적으로 '공화국 영웅'을 체제 선전에 악용했다.
  
   김영삼 정부 이후는 일방적인 북한의 설교요, 웅변이요, 명령이었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는 남북관계의 개선을 최고의 정치적 성과로 내세우는데, 주석궁에서 12년간 잠자고 있는 김일성이 너무 우스워서 벌떡 일어날 일이다. 김정일이 백두산 밀영에서 외치면, 그 목소리를 그대로 흉내내는 메아리만 임진강에서 한라산까지 가득 찼을 뿐, 4800만의 속마음을 드러내는 말은 YBC(용비어천)방송과 반박성명과 반론보도에 의해 철저히 무시되었던 것이다. 대화는 모름지기 상생이요, 상호공존이요, 상호존중인데, 특히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에서는 이런 것이 모조리 실종되었다. 그 결과는 한국의 굴욕이요, 국제 외톨이다. 4800만의 분노요, 2000만의 신음이다. 한미동맹의 균열이요, 한일공조의 파탄이다. 중국의 오만이요, 러시아의 냉소다. 김정일의 기고만장이다.
  
   이러니, 빌어 먹이지도 못해 300만을 굶겨 죽인 김정일이 '한국의 옆구리를 비스듬히 겨냥해서' 미사일을 난사하자 세계가 깜짝 놀라 반세기 전의 악몽을 너무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세계 5대강국을 포함한 15개국이 만장일치로 한국을 심히 걱정하여, 아무래도 무슨 향정신성 약물에 중독된 듯한 한국을 수렁에서 건져내려고 도무지 대화할 줄 모르는 한국을 끼어 넣어 10여 년간 줄기차게 대 주던 당근을 잠시 치우고 일부러 채찍을 휘둘러 공중에 딱 소리를 내면서 대신 대화의 장을 마련해 주려는데, 천하태평 남의 일인 듯 도리어 역정을 내는 한국 땅으로 겁도 없이 유유히 북한의 일개 조무래기가 찾아와서 사실상 총리보다 높은 분한테 설교하고 호통치고 꾸짖고 협박한다. 큰 코 다치기 전에 '세금'이나 내라고 다그친다. 알고 보니, 날강도가 아닌가! 그러자, '지금은 남의 이목도 있고 하니 조금만 기다리시라. 그러면 세상 그 누가 말려도 섭섭지 않게 세금을 바치겠다.'고 달래며, 역시 남의 이목을 의식하고 짐짓 화난 척한다. 이게 무슨 대화인가!
  
   남북대화는 없다. 남북대화가 단절된 지 어언 13년하고도 7개월이다.
  
   (2007. 7. 24.)
  
  
  
[ 2006-07-25, 07:52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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