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군통수권과 전시작전통제권, 어디에 쓰려고?
반공도, 국군도 진작 무력화되었다. 이제 남은 것은 주한미군뿐.

최성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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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은 월남 모델을 원한다. 무력적화통일 전략이다. 대외적으로는 자주평화통일이라고 내건다. 한국은 독일 모델을 원'했'다. 자유평화통일 전략이다. 북한은 이를 흡수통일이라 부르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6공2기부터 한국의 국군통수권자들도 이를 단호히 거부했다. 통일비용이 천문학적으로 들고 혼란이 극심하다는 이유를 내세운다. 지금도 대다수의 국민은 독일 모델을 원할 것이다. 제2의 동족상잔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허점은 바로 이 둘에 있다. 자유평화통일에 따른 천문학적인 비용은 세금폭탄으로 이어질 것이고, 그것은 현실의 안락함이 사라지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또한 전쟁이 발발하면, 6.25 못지않은 피 흘림이 따를 것이다. 북한과 친북세력은 이 둘을 집중적으로 공략했다. 노골적인 협박이다.
  --현실이냐, 이상이냐?
  --전쟁이냐, 평화냐?
  
   한국의 국군통수권자들은 두 협박을 내세워 흡수통일은 목숨을 걸고 반대한다고 천재일우의 자유평화통일 기회를 스스로 버렸다. 대신 자주평화통일의 깃발을 남북이 동시에 흔들기 시작했다. 얼핏 보면 이것은 자유평화통일과 무력적화통일의 타협으로 보인다. 이에 가장 큰 걸림돌은 주한미군과 국군과 반공정신이다.
  
   집요하게 조금씩 조금씩 이 셋을 무력화시키는 것이 북한과 친북세력의 최대 목표다. 이에 동원된 용어가 '자주와 평화와 냉전종식'이다. 자주와 평화의 연결고리는 민족공조다. 민족공조는 남북이 한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반공은 북한인권으로 바꿔야 하는데 냉전종식이란 말과 남북정상회담으로 아주 쉽게 쓰레기통에 버렸고, 북한인권은 햇볕정책으로 덮어씌우기 해 버렸다. 이제 민족공조를 내세워 북한이 주장하는 바와 똑같은 말을 한국정부와 국회와 방송과 시민단체와 법원이 따라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나온 말이 자주국방과 남북평화다. 일제식민지배와 동족상잔의 쓰라린 경험은 이 둘의 뜻을 왜곡하기에 기름진 토양이다.
  
   주한미군을 조선총독부에 대비시키고, 외국 주둔군이 없는 평양을 미군기지가 있는 서울과 대비시킨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자주와 독립은 북한의 것이 되고 사대와 식민은 한국의 것이 된다. 한국이 이 수치에서 벗어나려면, 미군을 철수시켜야 하는데, 이것은 외교안보상 정부 차원에서는 주장할 수가 없다. 대신, 자주와 주권을 내세워 미군으로부터 작전통제권은 빼앗을 수는 있다. 그러면 세계 어디 가든 작전통제권을 50% 이상 갖고 있는 미군이 철수하는 것은 시간 문제다. 따라서 50% 갖고 있는 전시작전통제권을 마치 0% 갖고 있는 것처럼 환수라는 말을 써서 국민들의 이목을 속이고 미국의 신경을 계속 긁어 100% 몽땅 갖게 되면, 북한에 대해서 자주국방을 당당히 내세울 수가 있다.
  
   주한미군, 국군, 반공--이 셋을 무력화시키면 무력적화통일 또는 평화적 적화통일은 며칠 굶고 이밥에 소고기국 먹는 것보다 맛있게 먹을 수 있다. 국군은 어떻게 되었을까. 이미 이것도 반공처럼 쉽게 무력화되었다. 국군통수권자는 한국의 대통령인데, 그는 민족공조에 누구보다 협조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험도 없이 바로 믿을 수는 없다. 그래서 북한은 거듭된 서해도발과 미사일 발사로 확인했다. 동해의 무장잠수함 침투와 남해의 상선 통과는 한두 번 실험으로 쉽게 확인했다. 제일 미심쩍은 곳이 북한 안보의 비수인 서해5도다. 1999년 6월 15일에 총격전을 벌였다. 그런데 국군이 압승해 버렸다. 김정일은 대경실색했다. 김대중 대통령도 깜짝 놀랐다. 그는 즉시 기존의 교전수칙을 무력화시키는 4대 교전지침을 하달했다.
  
   1. 북방한계선을 지켜라.
   2. 선제공격하지 마라.
   3. 상대가 발사하면 교전규칙에 따라 격퇴하라.
   4. 전쟁을 확대하지 마라.
  
   한 마디로 시위대를 막는 경찰이나 군인처럼 일단 먼저 얻어터지라는 명령이었다. 국군통수권을 북한의 인민군을 향해서는 쓰지 않겠다는 뜻이다.
  
   말만으로는 안 되었다. 남북정상회담으로 자주평화통일(적화통일) 방침을 못 박은 다음, 2002년 6월 29일 북한은 유유히 북방한계선을 넘어 복수혈전을 벌였다. 역시 4대 교전지침은 거짓이 아니었다. 참수리호는 그렇게 격침되었다. 국군통수권자는 빨간 넥타이를 매고 유유히 현해탄을 건너가 월드컵을 관전했다. 이어 참수리들의 쓸쓸한 영결식이 있었다.
  
   2004년 7월 14일에도 한 번 더 실험했다. 바뀐 국군통수권자를 시험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이번에는 상당히 신뢰했던지, 그냥 잠시 넘어 왔다가 두 방의 위협 사격만 받고 되돌아갔다. 그리고는 따졌다.
  '우리가 전화를 서너 번이나 해도 귀측이 받지 않고 대포를 쏘았으니, 사과하고 문책하라!'
  해군은 거짓 보고의 누명을 쓰게 되자 상황일지를 공개했다.
  '우리가 먼저 핫 라인을 가동했지만 귀측이 받지 않고 NLL을 침범하면서 중국 어선이라고 거짓말하고, 암구호도 대지 않았다.'
   그러나 조영길 전 국방장관은 윤광웅 현 국방장관으로 경질되었고 장군들은 옷을 벗었다. 북한의 한국 국군통수권자에 대한 1차 시험 결과는 이렇게 성공적이었다.
  
   2006년 7월 5일 이번에는 동해였다. 북한은 기어코 미사일을 발사했다. 무려 7발! 한국의 군통수권자는 새벽잠을 곤히 잤다. 일본과 미국은 야단이었다. 그것이 일본과 미국을 겨냥한 것이라며, 일본의 군통수권자는 새벽잠에서 깨어나고 미국의 군통수권자는 생일 파티를 취소했다. 이 정도면 북한의 군통수권자는 한국의 군통수권자를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다. 슬며시 미사일의 방향만 90도 정도 틀면 될 테니까.
  
   반공도, 국군도 진작 무력화되었다. 이제 남은 것은 주한미군뿐인데, 배신감에 치를 떨며 미국도 자주독립정신이 투철한 한국의 대통령에게 전시작전통제권을 넘겨 주겠다니, 1975년의 인도지나 신화가 머잖아 한반도에서 고고의 성을 터뜨릴 참이다.
   (2007. 8. 4.)
  
[ 2006-08-04, 17:20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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