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17)-평준화의 기득권: 교육부, 전교조, 3류 사학, 8학군
평준화라는 공익의 방패 뒤에는 교육부과 전교조와 3류 사학이 있다. 8학군은 어부지리를 취한다.

최성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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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17)-평준화의 기득권: 교육부, 전교조, 3류 사학, 8학군
 
   평준화는 사회적 약자에게는 평등한 교육 기회를 제공하고 사회적 강자에게는 일부 기득권의 희생을 강요한다는 취지로, 중앙정부가 평등강제권을 독점한 제도이다. 무릇 어떤 제도든 일단 생겨나면, 그 자체가 살아있는 유기체로서 계속 커지게 마련이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정부 조직은 공익을 내세워 이런 경향을 점점 심화시킨다. 자본주의 사회든 공산주의 사회든, 관료의 비대화는 그렇게 해서 생겨난다.
  
   공익은 대단히 애매모호한 말이다. 국민은 이해관계가 저마다 다르기 때문에 국방, 외교, 치안 등을 제외하고는 공익을 앞세워 어느 한 쪽이 이익을 보면 반드시 다른 한 쪽이 더 큰 손해를 보게 된다. 그래서 위에 든 세 분야를 제외하고는 중앙정부가 커지면 커질수록 권력이 그만큼 커지게 되고 권력은 항상 공익을 앞세우기 때문에 권력과 그 권력에 가까운 소수가 공익의 방패 뒤에서 알토란 이익을 독과점한다. 다수가 손해를 보고 소수가 이익을 보는 구조가 고착화된다. 이런 모순이 쌓이고 또 쌓이면, 국가는 효율성과 생산성을 잃어 불황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젊은이들은 희망을 잃고 거리를 헤매거나 랩을 중얼거리고 거친 행동을 일삼는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이 때쯤 비전의 지도자가 나타나, 합법적인 절차에 의해 이런 구조적 모순을 타파한다. 당연히 그는 제일 먼저 정부의 비대한 몸에 외과 수술용 예리한 칼을 갖다 댄다. 거대한 비계를 싹 도려내어 큰 정부를 날씬한 작은 정부로 만든다. 그렇게 소수의 이익을 대표하는 공익의 방패를 깨뜨린다. 가장 좋은 재화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개인이나 집단에게 산산조각 난 공익의 방패를 흩뿌린다.
  
   공익의 방패 뒤에 제일 숨기 좋은 분야가 교육과 의료와 금융이다. 외환위기 이후 어쩔 수 없이 금융은 구조조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기도 거룩한 애국심을 내세운 공익파에 의해 역차별의 심각한 문제가 남아 결국 가장 큰 이득은 오히려 외국인 투자자가 차지한다.
  
   아마추어 좌파정부가 애국심과 공익을 내세워 전권을 휘둘러 대대적으로 메스를 가한 의료분야도 심각하다. 의료서비스는 더 형편없어졌는데, 의료비는 해마다 경제성장률의 2배, 3배로 뛴다. 중간에서 공익(公益)을 앞세운 자들이 대대적으로 사익(私益)을 취한다는 말이다. 따라서 이들은 의료개방에 필사적으로 저항할 수밖에 없다. 의료도 금융처럼 무조건 개방하는 게 상책이 아니다. 먼저 국내 의료 시장을 정부의 손아귀에서 풀어 주어야 한다.
  IT 산업이나 조선산업, 철강업, 자동차산업처럼 국내 시장의 국제 경쟁력을 먼저 길러 놓으면 의료 시장도 개방할수록 좋다. 모름지기 최대의 방해꾼은 공익을 앞세운 정부와 정치권과 시민단체와 학계와 방송이다.
  
   평준화는 교육개혁 대상의 영순위다. 그러나 친북좌익이 대세를 장악한 한국에서 이것은 신성불가침의 영역이다. 나날이 확대된다. 공익의 방패 뒤에 기득권 세력이 방패 진형을 갖춘 무적의 로마군처럼 철옹성을 구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평준화의 기득권 세력은 교육부와 전교조와 3류 사학과 8학군이다. 재미있는 것은 8학군은 기득권이지만, 기득권인 줄도 모르고 평준화를 전혀 달가워 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이들은 개혁저항 세력이 아니라, 개혁지지 세력이다.
  
   교육부는 평준화 덕분에 할 일이 태산처럼 많다. 조직이 점점 커질 수밖에 없고 예산이 점점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 자체가 권력이고 이 자체가 이익이다. 1,000만 학생과 40만 공사립 교사가 교육부한테 꼼짝 못한다. 더불어 교육부는 그보다 한 단계 아래의 거대한 조직을 거느리고 있다. 전국의 교육청이 바로 그것이다. 평준화를 해체하는 순간, 교육부와 교육청은 인력이 현재 인원의 4분의 1도 필요 없다. 이 많은 인원을 유지하는 게 예산 낭비다. 공익의 이름으로 혈세를 걷어 아무 쓸데없는 일을 하는 자들을 먹여 살리는 것이다.
  
   전교조는 평준화 사수대다. 왜 그럴까? 공익의 방패 뒤에서 이들은 9만이라는 거대한 조직을 구축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산업계로 말하면 일종의 산업별 노조를 구축한 것이다. 평준화가 해체되면 단위 사업장 별로, 다시 말해서 단위 학교 별로 이해 관계가 달라지기 때문에 설령 9만의 노조원을 거느리더라도 지금처럼 시대착오적인 친북좌파의 이념으로 무장한 20명 안팎의 핵심 요원이 중앙에서 아래로 일사불란하게 명령을 하달할 수가 없다. 교육부와 교육청을 그대로 흉내내어 '공문'을 내려보낼 수 없다. 평준화가 해체되는 순간, 그 명령을 그대로 따를 노조원은 아무리 많이 잡아도 1만 명이 안 된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전교조도 분권화되지 않을 수 없고 '민주화'되지 않을 수 없다.
  
   3류 사학은 평준화의 최대 수혜자다. 자유경쟁 상황이라면, 학생 모집에 급급할 이들에게, 언제 학교 문을 닫아야 할지 모를 이들에게, 평준화 덕분에 항상 우수한 학생을 다수 포함하여 학생 정원을 꽉꽉 채울 수 있다. 손 좀 쓰면 우수한 학생들을 더 잘 배정 받을 수도 있다. 뿐이랴, 예산의 80% 내지 90%를 차지하는 교사 월급도 국가가 100% 대 준다. 우수한 학생이 다른 학교에 조금도 뒤지지 않은 만큼, 교육부의 지침을 살짝살짝 어기고 좀 무리하게 보충수업과 자율학습을 시키면 성적도 공립보다 나을 수밖에 없다. 그러면 졸지에 명문 소리를 듣는다. 특히 부자 동네로 학교 부지를 옮기면, 속에 보물이 가득 든 호박이 넝쿨째 굴러온다.
  
   서울의 8학군을 비롯하여 평준화 도시의 부자 동네도 평준화 혜택을 짭짤하게 받는다. 첫째, 학비가 거의 공짜다. 평준화는 잘사는 사람이나 못 사는 사람이나 학비가 똑같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쌀 수밖에 없다. 중학교는 이제 아예 없어졌고. 학비가 애들 휴대폰 사용료밖에 안 되고 학원 수강료의 10분의 1밖에 안 된다. 학교에 비싼 학비를 안 내는 대신에 그 돈을 전부 사교육비로 쓰면 된다. 학비는 내 봐야 평준화 상태에서는 '내 자식'에게 돌아오는지 안 오는지 모르지만, 사교육비는 100% '내 자식'에게 되돌아온다. 아니, 대개 그 10배로 돌아온다.
  
   둘째, 돈만 있으면 얼마든지 부자 동네에 살 수 있기 때문에 설령 '내 자식'이 공부를 못하더라도 '좋은' 친구를 사귈 수 있다. 하나의 사회 계층을 미리부터 형성할 수 있다. 시험을 쳐서 들어간다면 죽어도 못 사귈 인재들을 사귈 수 있다. 8학군에서 가난하고 공부도 못하는 아이들은 열등감과 좌절감과 분노로 사회의 낙오자가 되기 딱 좋다.
  
   공익을 앞세우는 자들, 그런 조직을 항상 경계해야 한다. 그들 중에 순진한 사람은 거의 없다. 그들 대부분은 사리사욕을 공익으로 포장할 줄 아는 사악한 자들이다.
  
   (2006. 8. 5.)
  
  
[ 2006-08-05, 13:07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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