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이 김대중보다 잘한 일
비전향 장기수 전원 생환으로 북한 주민의 가슴에는 뜨거운 피가 화산처럼 용솟음치고 눈에는 시원한 눈물이 강처럼 흘러내릴 것이다.

최성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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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가 고 조창호 중위의 명복을 빕니다.
  (2006. 11. 20)
  
  북한에는 빨치산 줄기와 낙동강 줄기가 있다. 이것은 일종의 성분으로 여기에 드는 사람들은 자손 대대로 정말 잘 먹고 잘 살 수가 있다. 빨치산 줄기는 김일성과 빨치산 운동을 같이 한 사람과 그 후손을 이르고 낙동강 줄기는 6·25동란 시(북한식으로 하면 민족해방전쟁) 칠곡군 다부동을 중심으로 하는 낙동강 전선에서 치열한 공방전에 참여한 자나 그 후손을 가리키는 말이다.
  
  지주 계급, 상공인 계급, 월남자 가족, 월북 가족의 후손은 적대 계층 내지 동요 계층이 되어 조상의 업보를 평생 짊어지고 살아야 하지만, 이 두 줄기의 자손은 철저하게 돌봐 준다. 일시적으로 정신 개화 대상이 되는 수는 있어도 대개 다시 불러 올려진다.
  
  북한 최고의 엘리트 코스인 만경대 학원에서 그 유자녀들은 당당히 수령님의 아드님, 지도자 동지의 아드님, 부장(장관)의 아드님과 같이 공부를 할 수 있다. 전액 공짜이다. 이들은 핵심 계층으로서 모든 사람이 다 김일성 부자를 저버려도 끝까지 충성을 다할 사람들이다. 대학도 김일성 종합대학, 김책 공대, 평양 외국어 학원, 평성 이과대 등에 특채된다. 이들은 설령 머리가 조금 부족해 학업 성적이 떨어져도 이를 문제 삼지 않는다. 졸업 후의 출세는 두 말해 잠꼬대.
  
  남북 정상회담의 후속 조치로 8월 15일을 즈음하여 이산 가족 100명이 상봉을 하게 되었다. 더불어 북한의 <대폭적 양보>에 의해 9월초에 비전향 장기수 50여명 전원이 꿈에도 그리던 북한으로 가게 되었다. 이들이 친애하는 김정일 지도자 동지에게 보낼 충성심은 포은 정몽주가 기울어가는 고려 왕조에게 바친 단심(丹心) 못지 않을 것이다.
  
  55년이 지나도 잊지 않고 한 명도 남김없이 조국으로 불러 들인다는 것! 얼마나 장한 일인가! 모름지기 국가 원수는 이렇게 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 남한은 어떠한가!
  
  통일부 장관이란 작자가 국제법에 의해 국군 포로가 없다고 했다가 국방부 장관에게 힐책을 받는 형편이다. 심지어 454명이나 되는 휴전협정 이후의 어부를 중심으로 하는 납북자에 대해서도 한 마디 말을 못하는 정부이다. 약 5만명으로 추정되는 우리 국군 포로를 송환하겠다는 말은 입도 벙긋하지 못한다. 무엇이 그렇게 두려운가.
  
  이렇게 하고도 어찌 군에 가지 않았다고 욕할 수 있겠는가. 정권창출에 유리하다는 판단이 서자, 군에 갔다 오지 않은 사람, 자녀를 군에 보내지 않은 후보자들을 연일 대서특필하여 동네방네 터뜨려, 마치 자기들이 국가안보에 가장 앞장서는 척해 놓고는 막상 국가를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다가 포로가 된 사람들, 고기 잡다가 끌려 가서 돌아오지 못하는 '서민 중의 서민 중의 서민 중의 서민'은 이리 못 본 척할 수 있는가. 표가 몇 표 안 돼서 그런가.
  
  북한은 전쟁을 도발해서 동족을 학살하고도 끝까지 뉘우치지 않고 공산주의를 신처럼 받드는 사람들을 몇 마디 말로써 다 데려간다. 그러나 남한은 새벽에 곤한 잠을 자다가 일방적으로 부모 형제가 학살되는 걸 보고 의분에 불타서 '못된 놈' 혼을 내 주려다가 세 불리하여 포로가 되어, 죽기보다 못한 삶을 살면서 오로지 조국이 찾아 줄 희망의 반딧불 하나 보고 악에 받쳐 사는 '피해자 중의 피해자 중의 피해자 중의 피해자'에 대해서는 왜 한 마디도 못하는가.
  
  위정자들은 그 때도 잘도 도망을 가서 그 가족 중에는 억울하게 포로된 자가 하나도 없었을 것이다. 지금 잘 나가는 분들의 가족 중에도 아마 여야를 막론하고 포로나 납북 어부가 없을 것이다. 아마 위정자들의 자녀가 앞장서 전투에 나섰다가 대부분 포로가 되었다면, 저렇게 태연자약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김정일 국방장의 '반의 반의 반의 반'이라도 따라가야 되지 않겠는가. 오로지 침략자에게 맞서 싸운 죄, 가족을 먹여 살리려고 고기 잡은 죄밖에 없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무심할 수 있는가.
  
  비전향 장기수 전원 생환으로 북한 주민의 가슴에는 뜨거운 피가 화산처럼 용솟음치고 눈에는 시원한 눈물이 강처럼 흘러내릴 것이다. 올림픽에서 하루에 금메달을 50개 딴 것보다 더한 감격을 맛볼 것이다. 기꺼이 조국 해방을 위해서 <총폭탄>이 되려고 할 것이다. 반면에 남한에는 전쟁도 없다는데, 군에는 왜 가냐면서 군 기피하는 것을, 60년대 미국 젊은이들이 월남전에 징병 기피하는 것을 양심의 양심처럼 생각하던 것처럼 오히려 자랑스럽게 생각할지 모른다.
  
  정말 평화가 왔다면 무엇보다 전쟁 포로부터 제 부모 형제에게 돌아가게 해 주어야 한다. 모든 전쟁의 끝은, 평화의 시작은 포로 교환이다. 이걸 상호 인정하지 않고 실행하지 않고 평화를 운운하는 것은, 한쪽에서만 포로를 돌려 받는 것은 저쪽의 속임수에 눈 뻔히 뜨고 이쪽이 일부러 당해 주는 일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무엇이 두려운가. (2000. 6. 30.)
  
  
  
[ 2006-11-20, 18:14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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