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백만 굶어죽는 평화, 1명 생포하는 전쟁
인도적 지원이 도리어 선량한 2천만에게 전쟁보다 더 괴로운 상황을 연장시킬 뿐임을 알아야

최성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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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백만 굶어죽는 평화, 1명 생포하는 전쟁
  2006년 12월 30일 사담 후세인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2003년 12월 13일 두더지 집에서 잡힌 지 3년 만이다. 그는 중동의 히틀러로서 무력으로 아랍족 수니파 중심의 중동 대통합을 이루겠다는 망상에 젖어 있었다. 그는 두 번이나 전쟁을 일으켰다. 미국이나 소련 또는 영국이 아니라 이란과 쿠웨이트에 선제공격을 감행했던 것이다. 사담은 중동의 유일한 인도유럽계 나라인 이란과는 1980년부터 1988년까지 중동의 패권을 두고 상처뿐인 전쟁을 치렀고, 1990년에는 한 때 쿠웨이트를 점령하여 전성기를 구가하다가 1991년 걸프전으로 다국적군에 의해 쫓겨났다. 그 후에도 그는 석유에 군침을 흘리며 도와주는 척하던 프랑스와 독일과 중국과 러시아를 믿고 기고만장 아무 힘없는 자국민을 향해 철권을 휘둘렀다.
  
   사담은 이라크 전체에서 약 35% 차지하는 소수 수니파다. 수니파는 다시 쿠르드족(이라크 전체의 16~20%)과 아랍족이 각기 약 절반을 차지한다. 아랍계 수니파는 20% 정도 되는 셈이다. 그는 이 수니파 아랍계 20%로 나머지 80% 위에 군림했다. 쿠르드족은 종교의 계파는 같지만 인종이 다르다는 점에서 히틀러가 유태인을 싫어하듯 싫어하여 3등 국민 취급했고, 전체의 55~60%를 차지하는 시아파 아랍계는 적대국인 이란과 종교적 신앙을 공유한다는 데서 2등 국민 취급했다. 그 외 5%를 차지하는 여러 종족들은 아예 상대가 안 되니까,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1980년 이후 그는 줄곧 전시체제를 유지했다. 처음에는 아랍대통일국가 건설이 명분이었고 다음에는 세계 최강국 미국의 기독교 패권주의에 맞서 이슬람을 지킨다는 것이 명분이었다. 그는 소련의 해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다. 전세계가 도도한 경제전에 돌입했다는 것을 몰랐다. 북대서양기구(NATO)와 바르샤바 기구의 군사동맹에서 세계무역기구와 자유무역협정의 경제동맹으로 어지럽게 개편된다는 것을 몰랐다. 냉전체제 아래서는 미국이 이라크를 밀어 주고 소련이 이란을 밀어주었지만, 쿠웨이트 점령은 어제의 이라크 후원자인 미국이 절대 용납하지 않고 '내 코가 석 자'인 러시아도 강 건너 불구경하리라는 걸 몰랐다. 이미 미국은 처음에는 이란을 밀었다가 이란의 팔레비 왕조 붕괴 후에는 이라크를 밀어준 전력이 있었다. 국익 앞에 어제의 친구도 언제든지 오늘의 적이 되는 건 만고의 진리인 것이다.
  
   사담 후세인이 걸어가야 했던 길은 경제발전과 민주화와 사회통합의 길이었다. 그러나 그는 알라의 축복인 무진장의 석유를 그런 방향으로 쓰지 않고 전쟁 도발과 독재체제 구축과 그 유지에 썼다. 카다피의 길을 따라만 갔어도 그는 아랍의 영웅으로 건재하고, 셰이크 모하메드의 길을 따라갔으면 세계의 영웅으로 떠올랐을 것이다. 애국심 대신 사리사욕을 가슴 깊이 간직하고, 외교 대신 전쟁에 희열을 느끼고, 지혜 대신 어리석음에 운명을 맡겨, 이웃 나라든 국민이든 그는 과대망상에 방해되면 서슴없이 대포를 쏘고 몽둥이를 휘둘렀다.
  
   사담 후세인이 부러워했을 독재자가 대를 이어 수십 년간 한반도에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맨손으로 캐어내야 할 석탄이 좀 남아 있고 되놈의 손으로 하나둘 넘어가는 지하자원이 일부 남아 있을 뿐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땅에서, 그 자는 아비의 무덤을 치장한답시고 배급 중단이라는 아주 간단한 조치로 300만의 동족을 학살했다. 히로시마에서 단숨에 희생된 사람의 15배나 되는 동족을 서.서.히 학살했다. 강제수용소에 갇힌 20만이 아니더라도 사실상 전 국토를 수용소로 만들어 놓고 살아남은 2천만을 전쟁보다 비참한 상황에 몰아넣고 있다. 영양실조가 대부분인 2천만 인구에서 양성한 무려 110만의 군대를 더욱 더 강하게 만들어, 아주 간단한 거짓 약속에도 식량 2백만 톤과 중유 4백만 톤을 무료제공할 만큼 너그럽기 그지없는 미국을 악마로 몰아붙이며 기어코 한판 전쟁을 벌이고야 말겠다며 마침내 핵실험까지 단행하고 스스로도 믿지 않는 과대망상을 2천만에게 세뇌시키고 남쪽의 4800만에게도 지속적으로 선전선동하며 2천만 노예 위에 공포의 두더지 신으로 군림하고 있다.
  
   무엇이 그리 두려운지 지상에 좀처럼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이 두더지 신의 국제 안목은 두더지 집에서 잡혀 죽은 자보다 더 한심하다. 중국과 러시아가 결정적인 순간에는 도와주는 척, 미국보다 먼저 생포 특공대를 보낸다는 것을 모른다. 19세기의 쳇바퀴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철없던 젊은 시절부터 섬기던 두더지 신을 아직도 민족의 영웅으로 떠받드는 한국의 '민족공조'파도 국제정세에 대해 한말의 위정척사파처럼 어두워 기껏 한다는 게 수준 이하의 무당처럼 미운 사람의 초상을 향해 저주의 화살이나 쏘고 반찬 투정하며 밥상 둘러엎는 것밖에 못하는 졸장부에 지나지 않음도 모른다.
  
   홍위병 믿고 설치던 4인방의 강청 흉내를 그만 내고 한 손에 검은 고양이 또 한 손에 흰 고양이를 들고 쥐잡기에 나섰던 5척 단구의 노인 뒤를 지금이라도 따라가면, 최소한 목숨은 부지할 수 있다는 것은 이 두더지 신은 상상도 못한다. 가진 게 너무 많고 동아시아 특수 상황에 따른 지금까지의 독재 성공 신화가 너무 화려하기 때문이다.
  
   햇빛을 제일 두려워하는 두더지 신 아래에서 지금 이 시각에도 굶어 죽고 맞아 죽는 사람이 부지기수다. 이제 많은 나라들이 그의 거짓에 더 이상 속지 않는다. 인도적 지원이 도리어 선량한 2천만에게 전쟁보다 더 괴로운 상황을 연장시킬 뿐임을 알고, 중국과 한국 외에는 대부분 지원을 끊고 마카오와 제네바와 니가타 등에서 그물을 치고 서서히 조여들기 시작했다. 그 그물에 이미 인권유린과 미사일발사와 핵실험이 고래보다 큰 대어로 걸려들었다. 마약거래, 위조지폐유통, 무기판매도 다랑어나 상어급 대어로 일찌감치 걸려들었고.
  
   미국의 약을 바싹 올려 그들이 한국에서 발을 빼게 만드는 것이 '민족공조'파의 속 빤한 잔꾀지만, 거대한 그물은 한 치의 어긋남이 없이 조여들고 있다. 누구의 희생도 없이 1명이 생포되는 전쟁으로 끝나면 제일 좋지만, 그가 먼저 불장난을 저지르거나 끝내 WTO와 FTA의 길로 들어서지 않으면 핵무기로도 뚫을 수 없는 그 그물에 남북의 '민족공조'파는 몽땅 사로잡힐 것이다. 그들은 바로 혈도가 찍혀 눈을 멀뚱멀뚱 뜬 채 말은커녕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하게 될 것이다. 60억의 손가락질을 받게 될 것이다.
  
   이미 눈치를 채고 '민족공조'파에서 발을 빼는 사람들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지금도 늦지 않다. 두더지 신과 그와 운명을 같이 할 수밖에 없는 자들은 어쩔 수 없다고 쳐도, 세계10위 경제대국의 배부른 자들 중에 목소리 크고 시위 드세면 만사형통한다고 믿는 자들은 제발 불량국가의 깡패장군이 구축해 놓은 악의 소굴에서 하루라도 빨리 발을 빼기 바란다.
   (2007. 1. 1.)
  
  
[ 2007-01-01, 09:34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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