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의 해체: 1988년~2008년
2008년 이후에는 북한도 미국의 표준시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최성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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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의 해체: 1988년~2008년
  20세기는 1901년에서 2000년까지다. 편의상 사람들은 1900년부터 1999년까지로 본다. 하여간 태양이 뱅글뱅글 도는 지구를 비추는 것은 똑같지만, 세계의 조류에 편입되는 실질적인 시간은 나라마다 지역마다 다르다. 앞선 나라와 뒤선 나라의 차이가 점점 좁혀지는 세계화의 시대에 현재 전세계의 시계는 일제히 미국의 표준시에 맞추고 있다. 19세기는 영국의 그리니치가 표준시였지만, 20세기는 대서양을 건너뛰어 미국의 뉴욕이 표준시로 급부상했다. 그 결정적인 계기는 세계의 표준시를 런던에서 베를린으로 옮기려던 제1차대전이다. 실질적으로 20세기는 1914년에 시작된 셈이다. 미국은 제1차대전 후 국제연맹을 내세워 전세계가 미국의 표준시를 따르도록 은근히 종용했고 제2차대전 후에는 국제연합의 정면에 미국의 거대한 표준시를 달아놓았다. 21세기에 접어들면서 미 대륙을 횡단하여 태평양 연안의 LA가 표준시로 떠올랐다.
  
   21세기 후반에는 태평양을 훌쩍 날아 중국의 북경이 세계의 표준시가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중국의 장안과 북경은 2천년간 유라시아의 동쪽에서 천자가 해마다 내리는 책력을 통해 표준시로 군림한 바 있다. 인도의 뭄바이, 중동의 두바이가 100년 후를 내다보고 북경 다음 주자로 나서려고 몸을 풀고 있다. 중동의 메카는 헤지라(622) 이후 500여년 간 유라시아의 서쪽에서 표준시가 된 적이 있다. 이슬람의 저력은 무섭다. 정교분리와 진화론의 이름으로 자신의 뿌리인 기독교를 수치스러워하고 조롱하는 유럽에서 이미 이슬람은 가슴에 보름달을 품고 메카의 초승달을 향해 꼬박꼬박 절하면서 유럽의 골목을 거의 장악했다. 거세게 유럽의 대문을 두드리고 있다. 미국의 중동 정책에 대해 유럽이 사사건건 물고 늘어지는 것은 인구의 10%로서 몰표를 행사하는 이들 이슬람력(曆) 사용자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교황의 서력(西曆)과 칼리프의 이슬람력과 천자의 책력은 늘 반쪽의 표준시였다. 몽골 칸의 수시력(授時曆)이 그리니치 표준시 이전에 세계 표준시에 가장 근접했지만, 그 기간도 짧았거니와 빛이 바랬다곤 하지만 여전히 중동과 유럽에선 표준시로 흔들림 없었던 이슬람력과 서력과 공존했다.
  
   전세계적으로 보아, 실질적으로는 20세기가 1988년부터 해체되기 시작했다고 본다. 아마 2008년에 20세기는 전세계에서 종말을 고할 듯하다. 1988년에 서울올림픽이 동서 양 진영의 만국기를 휘날리며 개최되었고 2008년에는 중국의 북경에서 올림픽이 휘황찬란한 막을 올린다.
  
   1988년 서울올림픽은 전세계가 미국의 표준시를 두 말 없이 받아들인 해이다. 마지못해 모스크바의 붉게 녹슨 표준시에 시계를 맞추던 나라들이 당당히 1세기를 건너뛰어 미국의 표준시에 시계를 맞추기 시작한 것이다. 미국의 코딱지 만한 일개 식민지로 알고 있었던 한국이 세계 10위 공업국이라고 허풍 떨던 동독보다 사실은 월등히 잘살고 자유도 햇빛처럼 찬란한 것을 보고 동구의 민심이 일제히 돌아서 버린 것이다. 그 날로 그들은 바로 타임 머신을 타고 1세기를 훌쩍 날아 20세기 후반으로 뛰어든 것이다. 거짓과 공포로 사이비 진리를 강요하던 소련은 굶주린 붉은 군대를 동원할 수가 없었다. 앞장서서 미국의 표준시를 받아들이기에 급급했다. 중국은 이미 1978년부터 슬그머니 미국의 표준시를 받아들였었다. 그로써 공산권에서도 가장 후진적이었던 중국이 1989년부터 미국의 표준시를 받아들인 동구와 소련을 압도하게 이르렀다.
  
   정말 웃기는 집단이 있다. 찰리 채플린보다 더 웃기는데 우습다고 웃는 사람은 그 날로 쥐도 새도 모르게 이승과 작별을 고해야 한다. 진지하게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손바닥이 얼얼하도록 손뼉을 쳐야 한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소련이 동구의 여러 나라나 몽골처럼 말 잘 듣는 꼭두각시를 앞세워 세운 나라 아닌 나라다. 이 어둠과 얼음의 땅은 모스크바의 표준시를 받아들이다가 소련이 사라지자, 스스로 표준시를 만들었다. 그걸 주체연호라 한다. 전력이 의심스러운 한 소련군 대위가 태어난 해를 그 기원으로 삼는다. 정말 웃기게도 거지와 깡패의 집단은 구닥다리 핵무기와 피시식 미사일로 미국의 표준시를 박살내겠다고 큰소리 뻥뻥 치고 있다.
  
   더 웃기는 나라가 있다. 서울올림픽으로 미국의 20세기를 화려하게 대리 선전했던 나라가 미국의 새로운 표준시를 받아들여 단숨에 21세기로 나아가는 게 아니라, 그리하여 일본을 추월하고 중국을 까마득히 따돌리는 게 아니라, 뒤로 힐끔힐끔 평양의 돌아가지 않는 19세기 표준시를 바라보며 오른손 왼손에 각각 시계를 하나씩 차고 갈팡질팡하고 있다. 1700만의 이몽룡 닮은 거지는 악어의 눈물을 흘리면서 동정하고 300만의 변학도 빼 닮은 깡패와의 짝짜꿍은 민족공조라 이름짓고, 동족을 노예로 삼아 그 노동력을 마지막 기름 한 방울까지 착취하며 무려 300만을 굶겨 죽이고 100만을 때려죽인, 스탈린과 모택동과 히틀러와 히리히토를 범벅해 놓은 듯한 그 우두머리를 두둔하기에 여념이 없다. 미국의 표준시에 연안지대만이 아니라 이제 내륙지방까지 시계를 맞추기에 여념이 없는 중국이 유독 고구려의 아랫동네를 향해서는 옛 천자의 책력을 꺼내들고 잔뜩 어깨에 힘 주고 조공무역을 하는 것을 보고 자신도 거기 끼워달라고 추파를 던지고 있다. 여기서도 웃으면 안 된다. 그 코미디를 개혁이라 하고 자주평화통일운동이라 하는데, 이를 보고 야유하거나 웃으면 날벼락이 떨어진다. 세무조사다, 과거사 조사다, 규탄대회다, 하여 알거지로 만들고 파렴치범으로 만들어 버린다.
  
   1988년 서울올림픽은 미국의 표준시가 명실공히 세계의 표준시로 자리잡은 인류의 축제였다. 서울올림픽은 1980년의 모스크바 올림픽과 1984년 LA 올림픽의 반쪽 올림픽을 다시 하나로 뭉치게 한 인류의 제전이었다. 공산주의의 침략으로 자본주의가 검불 위에 검불 하나 남아 있지 않을 만큼 잿더미로 변했던 아시아의 작은 나라가 불과 반세기만에 세계 2대강국으로 미국과 맞서던 소련의 부를 능가하게 이르렀던 것이다. 푼돈 30억 달러로 그 무시무시하던 소련을 고분고분한 친구로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미국의 표준시를 받아들인 것이 그토록 강한 힘이 될 줄은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었다. 직접 와서 보거나 TV로 보고서는 믿지 않을 수 없었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와 기독교와 과학기술--미국 표준시의 핵심인 이 넷을 가장 충실하게 받아들인 나라가 한국이었다. 이런 모범국이 전세계의 흐름과는 정반대의 길을 걷게 될 줄도 짐작한 사람이 거의 없었다.
  
   자유민주주의의 깃발이 문제였다. 1987년 선거는 이 깃발로 치러졌다. 그 후에도 여전히 대선과 총선의 깃발은 자유민주주의의 깃발이었다. 그러나 얼마 전에 탈북자 임천용이 북한의 특수부대가 개입했다고 증언한 광주사태부터 한국의 대학은 자유민주주의를 버렸다. 이들이 자라면서 20대, 30대, 40대가 차례로 인민민주주의 또는 주체사상에 영혼을 팔면서 대한민국은 경제도 시장경제를 한 단계 끌어올리는 게 아니라 노조와 시민단체의 입맛과 장단에 맞추게 되었다. 무능력하고 부패한 정부는 점점 커졌고 유능하고 투명한 시장은 점점 작아졌다. 과학기술도 뒷걸음쳤고 기독교도 개인적으로 복을 받으려는 저속한 무속신앙과 손잡거나 노동자농민이 주인 되는 허황한 사회변혁을 꿈꾸는 공산주의와 어깨동무하는 자들이 급격히 늘어났다.
  
   자유민주주의의 깃발을 꽂고 교두보를 확보한 친북좌파는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에 이르러 정치권력만이 아니라 문화권력과 사회권력도 대부분 장악했다. 경제권력에서 조금 밀릴 따름이다.
  
   미국의 표준시가 21세기에도 계속 세계의 표준시가 되려면, 자유민주의와 시장경제만으로는 안 된다. 베스트팔렌조약의 절대주권과 내정불간섭을 넘어 상대주권과 내정간섭의 사상을 확산시켜야 하는데, 그 중에 핵심은 인권 사상이다. 인도주의다. 인권은 인류보편의 문제로 얼마든지 국경을 넘을 수 있다는 것을 누구나 받아들이게 할 사상이 필요한데, 그 사상의 기본을 기독교가 제공한다. 단, 이 기독교는 다른 종교를 배제하는 배타적인 종교가 아니라 열린 기독교를 의미한다. 유럽보다는 낫지만 오늘날 미국의 기독교는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카터 같은 사이비 기독교도는 인권을 입에 달고 살지만 공산권의 인권유린에는 철저히 입을 다문다. 제일 먼저 지옥에 떨어질 인간이다. 클린턴 같은 가짜 기독교인은 비서를 후궁처럼 데리고 노느라고 인권문제는 아예 관심도 기울이지 않았다. 부시는 그들보다 월등하지만 아직 열린 기독교가 뭔지 모른다. 그래서 잘하고도 욕을 얻어먹는다.
  
   중국의 북경이 세계의 표준시가 되려면 요원하다. 어쩌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세계 표준시의 핵심인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와 기독교와 과학기술 중에서 중국은 시장경제와 과학기술만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자유민주주의와 기독교는 둘 다 중국의 공산당일당독재에게 트로이 목마와 그 안에 탄 용사라는 것을 알고 중국은 한사코 거부한다. 유교마저 공산주의로 빨갛게 물들였다. 유교의 원형은 오히려 한국에 잘 보존되어 있다. 시장경제를 받아들이지 않았을 때보다는 인권이 많이 개선되었으나 중국은 아직도 웬만한 인권유린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한다. 특히 탈북자에 대한 그들의 작태는 제대로 된 한국이라면 올림픽 거부와 국교 단절을 불사해야 할 만큼 가증스럽다.
  
   현재 전세계에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와 기독교와 과학기술을 동시에 구현할 수 있는 나라는 한국뿐이다. 한국이 오히려 미국을 제치고 21세기에 세계의 표준시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단, 그것은 자유통일 이후의 문제다. 지금은 남북한이 함께 평양의 정지된 표준시에 시계를 맞추느라 민족의 존망조차 장담할 수 없다. 아시아에서 세 번째로 열리는 올림픽, 처음에는 일본이 선진국으로 올라섰고 두 번째는 한국이 선진국으로 올라서다가 주춤거리고 있고 세 번째는 1978년 공산권에서는 처음으로 미국의 표준시를 받아들인 중국이 불과 30년 만에 세계 2대 강국으로 올라선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20년 30년 후에는 중국도 자유민주주의와 기독교를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일 것이다. 이를 한반도에 적용하면 2008년 이후에는 북한도 미국의 표준시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란 말이다. 그 때까지 북한을 저대로 둔다면 북경올림픽은 서울올림픽보다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와 기독교와 과학기술, 그 어느 것도 받아들일 수 없는 김정일은 내적으로는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외적으로는 미국의 표준시를 거부하는 한국의 친북좌파에 희망을 걸고 기습적인 불장난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그 시기는 2008년 북경올림픽 이전이 아닐까 생각한다. 미국의 표준시가 돌아가는 UN이 핵무기와 인권문제로 북한의 절대주권과 내정불간섭 강변에 귀 기울이지 않고 서서히 압박을 가하기 때문에, 김정일은 때만 기다리다가, 명분을 쌓을 대로 쌓은 미국이 평양의 정지된 표준시를 표적으로 삼아 외과수술 작전에 돌입하기 직전에 한국을 접수하러 손가락을 까딱할지 모른다.
  
   (2006. 1. 4.)
  
  
   *서석영님, 아도님, lyndalim님, 그리고 네티즌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2007-01-05, 09:20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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