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은 절대선이고 분단은 절대악일까
이대로 가면, 남북 통일은커녕 대한민국부터 먼저 분단될 것이다.

최성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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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열된 유럽과 통일된 중국]
  
  이태리 제노아 출신의 콜럼부스는 고향에서 몽상가 또는 미치광이 취급을 받았다. 그는 후에 프랑스 앙주공의 신하가 되었다. 그 후 다시 포르투갈의 신하가 되었다. 기회를 엿보아 서쪽으로 가서 인도에 도달해 보겠다고 포르투갈 왕한테 설을 풀었지만, 한 마디로 거절당했다. 거의 가능성이 없는 일에 그 엄청난 돈을 누가 대랴. 다시 메디나의 세도니아공에게 가서 꿈을 펼쳐 보였지만, 여전히 미치광이 취급을 받았다. 이왕 미친 놈 취급 받는 것 굴하지 않고 메디나의 첼리공에게 매달렸다. 첼리공도 아래위로 그를 훑어보며 단호히 뿌리쳤다.
  
  의기소침해서 포기할 만도 하건만, 마지막으로 스페인의 이사벨라 여왕에게 가서 머리를 조아렸다. 우아하게 거절당했다. 며칠 후 또 다시 찾아갔다. 겨우 승낙을 받았다. 이렇게 하여 겨우 120톤짜리 배 세 척으로 1492년 아메리카의 동해안에 도달했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유럽 전체보다 훨씬 큰 중남미는 대부분 스페인의 식민지가 되었다. 애가 단 영국과 프랑스는 재빨리 북미를 차지했다.
  
  그보다 약 1세기 전인 1405년, 명의 정화는 영락제의 명을 받들어 27,800명을 62척의 거선에 태우고 인도양을 항해하기 시작했다. 큰 배는 무려 길이 150미터에 너비 62미터로 무게가 8,000톤이나 나갔다. 나침반, 화약, 종이, 다 갖췄다. 1433년 7차 원정에서는 아프리카 동해안까지 도달하여 가는 곳마다 대제국 명의 조공국을 만들었다. 그걸로 끝이었다. 국내에서 정쟁이 일어나서 중국의 대외팽창은 종말을 고했다. 400년 후 중국은 중국의 한 성(省)만한 유럽의 여러 나라들한테 '병든 사자'란 조롱을 받고도 꼼짝 못했다. 심지어 왜국에게도 이루 말할 수 없는 고초를 당했다.
  
  [통일의 단점과 분열의 장점]
  
  1500년 만해도 유럽은 500개의 나라로 분열되어 있었다. 유럽의 3배가 넘는 거대한 중국은 한 나라로 통일되어 있었고.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유럽과 근대화와 중국의 전근대성을 분열과 통일에서 그 답을 찾고 있다. 분열된 곳에서는 괴상망측한 생각이 어디선가는 받아들여지게 마련이고 그것이 시대를 앞선 것일 때는 엄청난 발전의 원동력이 된다. 그 이웃 국가에서는 '미친' 생각을 받아들인 나라가 급속도로 강성해지는 것을 보면 따라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반면에 통일된 나라에서는 아무리 좋은 생각도 위에서 거절하면 그 날로 매장된다.
  
  중앙집권의 통일 국가에서는 폭군(暴君)이 광기에 휩싸이거나 암군(暗君)이 간신배에 둘러싸이게 되면, 해괴망측한 이론과 정책이 충신의 입에 재갈을 물리고 백성의 눈에 띠를 두르고 그 귀에 솜을 넣고는, 전국을 유령처럼 배회하며 전국토를 쑥대밭으로 만든다. 지옥이 따로 없다. 생생한 지옥이 도래한다. 그러다가 마침내 나라가 망하기 직전에 우습게 보았던 한 줌밖에 안 되는 오랑캐한테, 실은 자연의 활기와 생명이 넘치는 이민족의 총칼에 만신창이가 되고 나서야 비로소 정신을 차리게 된다.
  
  동양에 이 이론을 도입하면 일본의 근대화가 빨랐던 원인을 하나 찾을 수 있다. 일본은 비록 덕천 막부로 무력에 의해 통일되어 있었지만, 각 성은 인질을 보내고 일년에 한 차례 허리가 휘도록 물품을 갖다 바치는 것 외에는 독립국이나 마찬가지였다. 조선처럼 사병혁파란 것은 꿈도 못 꾸었다. 여전히 모든 영주는 무장을 풀지 않고 있었다. 페리가 1853년 대포를 몇 방 쏘자, 그 의미를 깨달은 영주와 그렇지 않은 영주 사이에 전쟁이 벌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설령 막부측이 이겼다고 해도 신문명에 압도된 영주가 어디선가 다시 나오게 되어 있었다. 반면에 조선과 중국은 중앙의 생각이 곧 전백성의 생각이었다. 무의식이었다.
  
  [사상의 통일도 정체성의 원인]
  
  그러면 왜 분열이 더 심했던 중세 시대는 동양보다, 이슬람보다 서양이 훨씬 낙후되었을까.
  내가 보기에, 그것은 사상 때문이었다. 기독교가 전유럽을 하나로 묶어 버렸던 것이다. 이건 오로지 유교밖에 몰랐던 조선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후에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았던 공산주의 국가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결국 정치 또는 문화에 의해 하나의 정책, 하나의 사상이 어떤 사회를 지배하게 되면, 그 사회는 일시적으로는 크게 발전하지만, 머잖아 정책과 사상을 독점한 정부나 교회 내지 사원에 의해 지배층과 피지배층으로 확실하게 나누어지고, 원래의 정책과 사상의 취지는 없어지고 오로지 통일된 사상을 미끼로 지배층의 이전투구 속에서 그들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사회가 되어 자정(自淨)의 기능을 잃고 썩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 나라도 통일되었을 때, 그 나라가 고인 물처럼 썩지 않고 흐르는 물처럼 맑게 되려면, 중앙집권과 지방분권이 조화와 견제의 관계에 있어야 하고, 사상은 어느 하나가 절대적인 위치에 올라가지 않게 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보수주의 일색도 안 되고 진보주의 일색도 안 된다.
  
  [남북 분단이 만악의 근원일까]
  
  북한에는 무조건 통일을 되뇌는 사람이 99.99%가 된다. 한국에도 무조건 통일을 외치는 사람이 만만찮다. 남북의 모든 문제는 분단에서 비롯되었다고 확신하는 사람이 만만찮다. 이들은 그래서 어떤 형태가 되었든 통일이 되는 것이 분단된 상태보다 백 번 낫다고 본다.
  
  과연 분단이 한국의 갖은 병폐의 원인일까. 그렇다면 통일이 되어 있었던 구소련과 동구의 여러 나라는 왜 몰락의 길을 가게 되었을까. 조선은 518년 동안 확실하게 통일되어 있었는데, 왜 전쟁 한 번 못해 보고 나라를 빼앗겼을까. 독일 통일에서 동독의 차별을 많이 얘기하지만, 헝가리나 폴란드, 체코, 슬로바키아, 루마니아, 알바니아와 비교해 보면 어떤가. 과연 그들 나라보다 못한가. 서독이 분단되어서 다른 유럽의 여러 나라보다 못한 적이 있었던가.
  
  중국도 많은 것을 시사한다고 본다. 오늘날 중국의 욱일승천하는 기세를 보고 세계가 놀라고 있지만, 만약 중국이 대만, 홍콩, 마카오마저 공산화했었다면, 과연 오늘의 발전이 가능할까. 화교자본이 없는 중국의 발전을 과연 생각이나 할 수 있을까. 다 합해야 중국의 일개 성도 안 되지만, 대만과 홍콩의 존재는 아직도 중국 전체와 맞먹는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돈만이 아니다. 사상적으로 홍콩과 대만은 중국에게 너무도 많은 것을 가르쳐 주고 있다.
  
  
  [역사 가정 -- 한반도가 분단되지 않았다면]
  
  만약 한반도가 소련의 날랜 침략으로 전체가 공산화되었다면, 한국이 크게 발전했을까.
  6·25는 당연히 없었으리라. 그러나 이북에선 전쟁 않고도 6·25때 죽은 사람과 비슷하게 1995년 이래 3백만 명이 굶어죽었다고 한다. 공식 발표로도 22만 굶어 죽었으니까, 이 숫자는 상당히 신빙성이 있다고 본다. 중국은 문화혁명 10년간 3천만 명이 굶어 죽고 맞아 죽었다고 한다. 무엇보다 공산화된 나라에서는 오로지 공산주의만이 유일한 진리였다. 정치만이 아니라 경제, 사회, 문화, 종교도 하나같이 공산주의만이 유일한 진리였다. 설령 그것이 진리였다고 해도 그런 사회는 질식한다. 썩을 수밖에 없다. 새로운 지배층이 그것을 무기로 이익을 독점하기 때문이다.
  
  거꾸로 미국이 한반도를 재빨리 접수하여 전체가 자본주의 국가가 되었다면, 한국이 크게 발전했을까. 아마 미국은 그랬다면 한국을 거의 식민지 삼았을지도 모른다. 역사는 예측하기 힘든 것이 만약 한국이 미국의 식민지가 되었다면, 당연히 6·25는 없었을 것이고 일본은 부흥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한국도 실은 6·25 겪고서야 잿더미 위에서 비로소 산업화하게 되었다. 공산주의의 허상을 알게 되었다. 자본주의의 냉혹함을 알게 되었다.
  
  상해임시정부의 김구 주석이 무력으로 물러나는 일본군과 상징적인 전쟁을 벌이고 한반도를 접수했더라면 제일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기에는 너무도 그 힘이 미약했다. 결국 미군정에 의해 김구 주석은 권총 한 자루 들고 들어올 수 없었다. 만약 미국과 소련이 한반도를 점령하지 않았으면, 오히려 중국의 한인 공산독립군이 한반도를 접수했을 가능성이 컸다. 중국 공산당에 속한 그들의 무리가 월등한 무장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권은 냉혹한 것, 만약 우리끼리 있었으면, 내란이 일어났을 가능성이 아주 컸다고 본다. 국내의 좌우파와 해외의 좌우파가 갈려서 외국을 서로 끌어 들여 치열한 전쟁을 벌였을지도 모른다.
  
  이처럼 역사 가정이라는 것은 거의 성립하기 힘드는 것이 당시의 힘의 균형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이다. 역사의 진행 과정은 차갑기 그지없다.
  
  [북한이 바라는 통일은 어떤 것일까]
  
  북한이 과연 그들 말대로 미군이 철수한 상태에서 무조건 통일하길 바랄까. 절대 아니라고 본다. 주체사상에 의한 통일이 아니면, 그들은 통일을 바라지 않는다고 본다. 한국 주도에 의해 통일이 될 바에야 차라리 분단을 택할 것이다. 연방제로 1국가 2체제를 굳힌 다음에 궁극적으로 주체사상에 의한 통일을 바랄 것이다. 그 마음을 어떻게 아느냐, 하고 반문할 것이다. 그 행동을 보면 알 수 있고 그 사상을 보면 알 수 있다.
  
  첫째, 북한의 행동. 통일은 무엇보다 민간인의 자유왕래이다. 보통 사람으로서는 가고 싶은 곳으로 마음대로 가고 만나고 싶은 사람 마음대로 만나는 것이 통일이다. 누차 강조한 대로 중국과 대만은 이미 통일된 거나 마찬가지이다. 민간인이, 노동자 농민이 마음껏 드나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은 TV로 쇼 몇 번 허용하고는 감감 무소식이다. 서신왕래도 못하게 한다. 관광도 철저히 민간인과 접촉을 차단한 상태에서 가능하다.
  
  북한은 반쪽 국내에서조차 서민들에게는 통일이 아무 의미가 없다. 북한은 노동자 농민의 나라라고 말만 그럴 뿐이지, 노동자 농민에게는 나라가 수천 개로 갈라진 분단 국가나 마찬가지이다. 통행증이 없으면 어디에도 못 가기 때문이다. 마음대로 다른 지방에 이사간다는 것은 상상도 못한다. 5천년 역사상 한 번도 없었던 해괴한 일이다. 그러니만큼 설령 연방제로 통일이 된다고 해도 철저히 노동자 농민은 자유의사로 최소한 북에서는 그 출신이 남이든 북이든 돌아다니지 못하게 할 것이다. 북한 입장에서 통일은 어디까지나 지배층을 위한 통일일 뿐이다.
  
  [주체사상은 다양성을 인정하지 못한다]
  
  둘째, 북한의 사상. 북한은 철저히 주체사상의 나라이다. 이건 북한에 따르면 유일무이한 진리이다. 따라서 주체사상은 어떤 다른 사상도 용납할 수가 없다. 그 안에서는 어떤 사상이든 철학이든 종교이든 모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려야 한다. 만약 남북이 통일된다면, 주체사상도 아무리 잘해야 여러 사상 중의 하나요, 여러 정당의 정강 중 하나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북한 입장에선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주체사상은 다양성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다.
  통일이 되려면, 사상적인 면에서 두 가지가 가능하다. 하나의 사상만이 존재하는 통일과 여러 사상이 공존하는 통일이 바로 그것이다. 북은 독일의 통일을 보고 흡수통일을 반대한다고 시시때때로 강조하니까, 한국의 자본주의에 의한, 자유민주주의에 의한 통일은 바라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밝힌 셈이다. 그러면, 주체사상에 의한 통일이나 다양성을 존중하는 통일인데, 주체사상은 다양성을 전혀 인정하지 않으니까, 당연히 북한은 주체사상에 의한 통일을 원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과연 그렇게 된 통일이 분단보다 나을까. 날조된 김일성 가문의 역사를 한민족 역사의 반으로 세뇌되어야 하는 통일이 분단보다 나을까.
  
  [자중지란이 없어야 통일된다]
  
  통일은 힘든 일이다. 한반도만한 영국이 통일된 것은 1707년, 우리보다 1,000년이 더 걸렸다. 로마가 476년에 망하고 로마제국의 극히 일부인 이태리 반도가 재통일한 것은 그 1,400년 후인 1861년이었다. 전세계에서 가장 오랜 통일 국가를 유지했던 우리 나라가 분단된 것은 너무도 오랫동안 통일 국가를 유지하다 보니까, 다양성을 전혀 인정하지 않고, 지배층이 철저히 피지배층 위에 군림하면서 국력을 전혀 키우지 않고, 나라와 백성은 아랑곳 않고 오로지 제 가문만 위할 뿐, 썩을 대로 썩었기 때문이었다.
  
  한국은 현재 어렵게 얻은 민주주의 체제 안에서도 여야가 총만 안 들었을 뿐, 이보다 격렬하게 싸울 수가 없다. 통일을 이룩하는 나라는 공통점이 있는데, 우선 자중지란이 없다는 것이다. 통일을 주도하는 쪽이 상하좌우 한결같이 강압이 아닌, 신뢰로 똘똘 뭉쳐있다는 것이다. 서로가 서로를 불신하여 자기들끼리 싸우면, 남이 어부지리를 취하기 마련이다. 한국처럼 이렇게 국론이 갈기갈기 찢어져 있으면, 통일을 주도하기 힘들다. 통일되더라도 엄청난 고통이 따른다.
  
  지금 남의 일부와 북의 전체가 무조건 통일을 소리 높여 외치지만, 과연 그들
  뜻대로 통일되었을 때 그들이 정권에 연연하지 않고 서로 뜨겁게 끌어안을까. 동상이몽이 아닐까. 이미 전혀 다른 체제에서 56년을 살았다. 사고방식이 전혀 달라졌다. 같은 낱말을 써도 그 뜻이 정반대인 경우가 숱하다(예를 들면, 북한에서 '자유'라는 말은 '이기주의'와 거의 동의어로 쓰인다). 이렇게 전혀 다른 사고방식을 가진 두 체제의 정치권력이 어느 날 종이 한 장에 서명함으로써 그 날로 통일을 이룩할 수 있을까. 남북 예멘처럼 그렇게 되면 틀림없이 머잖아 총을 들고 남북이 맞서 싸우게 될 것이다.
  
  [작은 것부터 신뢰를 쌓아 가야]
  
  통일이 되려면, 외세의 힘을 빌지 않으려면, 무엇보다 민간인의 자유왕래가 보장되어야 한다. 우리끼리 가족끼리 왔다갔다하는 걸, 세상에 어떤 나라가 가로막나. 통일되기 전의 동서독처럼, 현재 중국과 대만처럼 무엇보다 먼저 사람끼리 나다닐 수 있어야 하고 살고 싶은 곳에 살 수 있어야 한다. 여권과 사증만 있으면 세상 그 어떤 나라도 갈 수 있는데, 왜 입만 열면 통일을 외치면서 서신왕래도 못하게 하는가. 겉과 속이 어떻게 그렇게 다를 수 있는가.
  
  흩어진 가족 상봉도 허용 않으면서 어떻게 통일되어 전민족이 마음대로 이동하는 것을 용납할 수 있을까. 10년, 20년 동안 단돈 천 원도 불우 이웃 돕기에 보태지 않는 사람이 나중에 돈 벌면, 1억을 쾌척하겠다고 동네방네 떠들고 다니는 것만큼, 가소로운 일은 없는 법이다.
  
  여러 정황으로 보아 통일은 코앞에 다가온 듯하다. 이럴 때일수록 침착하고 냉정해야 된다고 본다. 어떻게 하면 독일처럼, 아니 독일보다 더 멋있게, 고통이 적게 단숨에 통일할 수 있을까, 통일의 후유증을 최대한 줄일 수 있을까, 머리를 맞대고 다 함께 최선의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 이렇게 격렬히 싸우면, 한 나라 안에서 단지 여야로 갈라섰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서로가 서로를 악마로 보면, 통일은커녕 남쪽부터 먼저 분단될 것이다.
  
  (2001. 8. 18.)
  
  
  
[ 2007-01-24, 23:21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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