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18)--교육과정, 아직도 일제시대
교육과정이 안팎곱사등이가 된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의 전제가 근본적으로 잘못되어 있기 때문이다.

최성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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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8차 교육과정 개편안이 교사, 학부모, 학생의 거센 반발에 부딪혀 일단 '없던 일'로 하는 것처럼 연막을 치고 '그렇고 그런' 재검토에 들어간 모양이다. 고등학교 과정에서 기존의 필수과목 6개를 8개로 늘리려고 하는데, 과학.실업군을 둘로 나누어 과학과 실업.가정군으로 예체능을 둘로 나누어 체육과 음악.미술군으로 한다는 게 핵심이다. 예체능의 비중은 늘리고 수학.과학의 비중을 낮추려는 시도가 특히 비난을 받고 있다. 수학, 과학, 기술.가정을 자연공학 교과군으로 묶어, 20 과목 가운데 10 과목만 선택하도록 하려는 시안은 즉각 언론과 과학기술계로부터 충심 어린 우려의 목소리를 샀다.
  
   7차에서 이미 수능의 자유로운 선택권을 십분 활용하여 과학과 수Ⅱ를 전혀 이수하지 않은 이공계생이 속출하고 있는데, 학생의 흥미와 적성을 존중한다는 미명하에 아예 교과과정을 느슨하게 운명하면 학생들이 골치 아픈 수학과 과학을 당당하게 기피할 게 뻔하기 때문이다. 이미 미국에서는 자칭 진보주의자들의 아름다운 말만 듣고 수십 년간 그런 식으로 운영하다가, 백인들이 이공계 대학과 과학 연구소에서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동양계 특히 중국과 인도에 급격히 밀려나고 있다.
  
   교육과정이 안팎곱사등이가 된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의 전제가 근본적으로 잘못되어 있기 때문이다.
  
   첫째, 대한민국이 전세계에서 북한 다음으로 주체적인 교육과정을 운영하기 때문이다. 한국은 아직도 교육과정의 기본 틀이 일제시대와 거의 같다. 한 학년에 평균 10과목, 3년 평균 30개 과목을 이수해야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게 바로 일제시대의 유산이다. 해방된 지 60년이 지났는데, 일제시대의 제도를 5천년 전통인 양 금과옥조로 지키고 있다. 그걸 고수하는 자들일수록 일제청산 문제만 나오면 위에서 절로 신물이 나온다. 스스로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는 뜻이다. 관념의 노예임을, 바보임을, 골수 친일파의 후손임을 스스로 폭로하고 있다.
  
   고등학교에서는 한 학기에 6과목 한 학년에 7과목 이내로 줄여야 한다. 그러면 6(과목) 곱하기 5(시간)는 30(시간)이니까, 현재 주당 34시간보다 4시간 적게 하고도 이수하는 과목은 하나같이 매주 5시간씩 매우 깊이 있게 공부할 수 있다. 일제시대부터 지금까지 주당 2시간, 3시간, 많아야 4시간 수박 겉 핥기 식으로 배우는 걸로는 고도 전문화 시대에 다른 나라 학생들과 경쟁이 될 수 없다. 이런 제도 아래서는 여러 과목의 교사가 '이 과목은 꼭 배워야 한다'며 한 시간이라도 더 확보하여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려고 눈에 불을 켤 수밖에 없다.
  
   1학년은 공통과정이라 하여 똑같은 과목을 10여 개 이수하도록 강제하고, 2학년부터는 심화과정이라 하여 문과와 이과로 나누어 각기 10여 과목씩 사실상 거의 똑같은 과목을 전국의 모든 고등학교가 이수하지 않을 수 없도록 되어 있다. 앞으로도 교육부는 이를 바꿀 생각이 전혀 없다. 과목을 쪼개어 학생들이 쉬운 과목을 선택할 가능성을 높일 의도는 확고부동하다. 세상에! 학생이나 학부모나 공부하려고 환장한 국민들에게 어떡하든 공부 안 시키려고 국가 권력의 쇠몽둥이를 휘두르는 참 이상한 나라다.
  
   아예 1학년부터 한 학년에 필수과목 3과목 내지 4과목 포함 6개 내지 7개로 줄이면, 필수과목은 누구나 이수하게 만들어 학력이 세계수준에 뒤떨어지지 않게 하고, 선택과목은 숫자는 적은 대신 확실하게 배울 수 있게 된다. 7개일 경우는 한 과목을 1학기와 2학기에 다른 과목을 이수할 수도 있는 장점이 있다. 이렇게 글로벌 스탠더드를 받아들이면, 심도 있게 배울 뿐만 아니라, 과목 이기주의도 자연스럽게 해소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한문이나 컴퓨터를 선택과목으로 택한다고 하면, 전교생이 아니라 한 학년에 3반만 나와도 3(반) 곱하기 5(시간)는 15(시간) 즉 교사가 한 명 필요하다. 대신 교사는 주당 5시간인 만큼 교재연구를 정신없이 하지 않을 수 없다. 교과서도 당연히 현재 주당 3시간 4시간용으로 만든 것을 전면적으로 개편해야 한다. 과목에 따라 3년간 선택과목도 그렇게 배우면, 현재 대학 교양과정까지 끝낼 수 있다. 또한 재량 학습이나 기술가정 등은 인문계에선 과감히 폐지해야 한다. 그런 과목은 중학교로 끝내야 한다.
  
   둘째, 입시와의 연관성에 대한 거룩한 편견이다. 고교교육과 대학입시는 관계 짓지 않을수록 좋다는 얼핏 들으면 참 지당할 것 같은 생각을 교육부 나으리와 교수 양반과 전교조 귀족은 만고의 진리처럼 애지중지한다. 정반대다. 반드시 관련시켜야 한다. 그래야만 수업도 제대로 되고 공교육도 정상화되고 교사평가도 공정하게 할 수 있다.
  
   고등학교 수업이 대학입시에 종살이하지 않고 '독립만세'를 외치게 만들고, 학생들을 학습부담에서 '해방'시켜 준다는 시대적 소명 의식을 뜨거운 가슴에 품고 수능에서 선택의 폭을 획기적으로 높여 주자, 일선교사들이 우려하던 현상이 바로 나타났다. 오로지 '중요한' 과목만 공부하고 나머지 '억지 춘향' 과목은 온갖 요령을 다 피운다. 수능과 관련 없는 과목일 경우 학생이나 교사나 고역이다. 시험은 쳐야 하니까, 서로 좋은 게 좋은 식으로 한다. 이건 교육부와 교육청으로서는 언제든지 감사의 대상으로 삼아서 '암행어사 출도'할 수 있는 기막힌 빌미다.
  
   과목이 지겹도록 많고 한 과목은 한 학년에 끝내도록 되어 있으니까, 3학년 때는 정작 꼭 필요한 과목도 들을 수가 없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문과에서는 아무도 수능에서 선택하지 않을 미분과 적분, 확률과 통계, 이산수학 등에서 하나를 선택하여 시험 칠 만큼 조금 배우고 그 시간을 활용해서 2학년 때 배운 수1을 부지런히 다시 배운다. 아니면 특기적성수업으로 보충한다. 또는 아예 2류, 3류 대학에서는 문과일 경우 수학을 요구하지 않은 경우가 많아 대부분의 학생들이 수학 시간에 온갖 융통성을 다 발휘한다.
  
   이과에서도 마찬가지다. 수학은 심화선택 과목에서 두 과목을 선택하여 하나는 제대로 배우고 하나는 대충 배우며 수1과 수2를 집중적으로 배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과생들의 경우 수능 공부 전체에서 절반의 시간을 차지하는 수1과 수2를 불세출의 천재 뉴턴처럼 혼자서 공부해야 한다. 과학은 더 심각하다. 수능에서 4과목을 선택할 경우 두 과목 정도는 학교에서 배우지만 나머지 두 과목은 20세기 최고의 천재 아인슈타인처럼 각자 알아서 공부해야 한다. 어느 경우든 학원이나 과외가 필수라는 말이다. 이처럼 구조적으로 사교육이 갈수록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걸 '이상'과 '망상'을 구별할 줄도 모르는 교육부가 우격다짐으로 만들어 놓고 일선학교를 내려다보며 밤낮으로 개탄하고 있다.
  
   학교 수업 중 약 절반이 수능과 관련 없는 과목이다. 수능에 매진해도 시간이 너무너무 부족한데, 학교에서 수업시간의 절반을 그렇게 허송한다. 오로지 내신 때문에 대충 배우고 피 터지게 시험 친다. 학생도 못할 짓이고 교사도 못할 짓이다. 학부모는 더 못할 짓이다. 재수생은 수능 과목만 하면 되는데, 고3은 시험 치고 돌아서면 잊어 버리는 공부를 하는 데에 시간을 마구 빼앗긴다.
  
   과거에 학생들의 학력이 과외를 지금보다 훨씬 적게 하고도 지금보다 실력이 훨씬 나았던 이유는(서울대 학생들의 기초학력도 대략난감하여 수학과 영어는 반드시 '진단'평가를 받아야 함), 학교 수업과 대입을 연관시켰기 때문이다. 문이과 가릴 것 없이 배운 것은 예체능과 기술가정 등 몇 과목을 빼고는 다 시험과목에 들어 있었다. 그래서 매 시간 열심히 듣지 않을 수 없었다. 교사도 열심이었고 학생도 열심이었다. 학생들은 고마워 했고 교사들은 뿌듯해 했다. 학부모는 교사의 그림자만 보아도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한 학년 당 과목 수를 6개 내지 7개로 줄이고 배운 것은 모두 심지어 예체능도 수능 또는 본고사에서 시험을 보아야 한다. 그러면 내신도 대입도 함께 충실해진다. 매 학년 과목이 적은 만큼 실력도 영국처럼 현재 대학 1학년까지 올라갈 수 있다. 선택이 다양한 만큼 학생도 다양한 개성을 지닌 학생이 쏟아져 나온다. 어떤 학생은 선택에서 한문과 음악을 대학 1학년 과정까지 배우고 어떤 학생은 체육과 중국어를 대학 1학년과정까지 배운다. 이런 학생은 당연히 서로 개성이 화끈하게 다를 수밖에 없다. 지금처럼 오로지 내신 때문에 거의 똑같은 과목을 돌아서면 잊어 버릴 만큼 배우면, 다같이 무식하니까 다같이 개성 없는 인간이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대학선택도 '명문대 인기학과' 외에는 아는 게 없다. '명문대 인기학과'에 못 들어간 학생은 평생 풀이 죽어 지낼 수밖에 없다. 교육부가 자랑스럽게 외치는 '흥미와 적성에 따른 선택'은 면접과 논술을 위한 모범답안일 뿐이다.
  
   획일적 교육에서 다양한 인재가 쏟아지기를 기대하는 것은 누런 바닷물만이 출렁이는 서해 인당수에서 백두산 호랑이와 인도코끼리와 아프리카 사자가 다투어 나타나길 기대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2007. 1. 28.)
  
  
[ 2007-01-29, 08:43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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