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사위의 기준은 인민민주
정치권력에 환장한 자들이나 간첩이 아닌 한, 일반 국민은 그 때보다 희망이 넘쳤던 때가 없었다.

최성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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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사위의 기준은 인민민주
  노무현 정부는 '참여'정부답게 시민단체를 뒤세우고 위원회를 앞세워 초헌법적 정부로 군림하고 있다. 이 정권에 따르면, 좌파정부가 들어서기 이전의 대한민국 역사는 온통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한' 오욕과 수치의 역사다. 친일파와 친미사대주의자와 독재자와 그 주구(走狗)들이 한통속이 되어 기득권의 철옹성을 구축하여 독립운동가와 민주인사와 민중을 탄압하고 착취하며, 가증스럽게 민주인사를 빨갱이로 몰아 감옥에 가두거나 고문으로 거짓 자백을 끌어내어 사형시키고 자기들끼리 잘 먹고 잘살았다는 것이 이 정권의 결론이다. 이 결론을 뒷받침하는 증거를 찾아내기 위해 만든 위원회가 헌재와 대법원을 능가하는 초헌법적인 기구인 인권위와 과거사위 등이다.
  
   인권위든 과거사위든 불문율이 있다. 그것은 김일성의 남침과 김정일의 공산군사독재(선군정치)로 300만이 총 맞아 죽고 300만이 굶어 죽은 것과, 지금 이 시각에도 매일 광주사태에서 죽은 사람들보다 더 많은 동족이 휴전선 이북과 만리장성 사이에서 맞아 죽고 굶어 죽는 것에 대해서는 한 마디는커녕 반 마디도 벙긋하지 않는 것이다.
  
   한국의 평범한 노동자가 북한의 군당 책임비서보다 잘살 뿐 아니라 수십 배 자유롭게 산다는 것도 이들은 절대 거론하지 않는다. 북한 주민은 한국의 단파 방송을 한 번 들어도 간첩죄로 강제수용소에 갇혀서 고문과 강제노동에 시달리는 것도 수십 년 또는 평생 죽음보다 더한 고통에 시달리는 것도 이들은 철저히 외면한다. 예전에 소련의 인권유린을 부정했던 좌파가 득실거리는 EU가 보다 못해, 인권보다는 핵무기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는 미국에 앞장서서 UN인권위와 UN총회에 정식으로 북한인권 문제를 상정하여 대북한인권결의를 해도 '달은 보지 않고 손가락을 쳐다보며' 엉뚱한 말을 구시렁거린다.
  
   이들의 기준은 자유민주가 아니다. 인민민주다. 따라서 김일성의 학정과 김정일의 폭정에는 침묵으로 일관하거나 증거 부족을 들어 뻔뻔하게 부정하고 역으로 독립운동과 자주, 정통성과 평등의 이름으로 은근히 김씨조선을 옹호하거나 노골적으로 찬양한다.
  
   지난 9년간 '김대중 만세, 노무현 만세' 프로로 도배된 안방극장을 보노라면, 이승만과 박정희와 전두환 시절은 암흑의 시대였다. 마치 선거란 것은 아예 없었고, 말 한 마디 잘못하면 언제 어디서든 끌려가서 물 고문을 당하고, 노동자는 하나같이 벌집이나 판잣집에서 살고, 농민들은 초근목피로 연명하고, 학생들은 폭력교사한테 수시로 얻어터지고, 청계천 다리 밑에는 거지가 들끓고, 미군 기지촌에는 껌팔이 소년과 성냥팔이 소녀가 미군과 양공주를 졸졸 따라다니고 ... 90%가 대한민국의 노숙자보다 비참하게 사는 북한주민한테 김씨왕조가 한국에 대해 거짓으로 세뇌 교육을 하는 것과 어찌 그리 닮았는지 모르겠다. 아니라고? 언제 그런 말 했느냐고?
  
   미안하지만, 대한민국은 풍요만이 아니라 자유도 갈수록 늘어나고 커졌다. 유신시대에도 야당이 국회의 절반을 장악했고 언론은 국가보안법에 저촉되지 않는 한 어떤 비판도 다할 수 있었다. 민주의 상징 김대중과 김영삼은 정보부도 함부로 다루지 못했다. 김일성과 김정일과 김경희 외에는 그 누구든 언제든지 노동과 고문으로 정신을 개조시킬 수 있는 북한과는 하늘과 땅의 차이가 있었다. 일반 국민들은 유신시대라고 지금보다 못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 단지 시대적 상황에 따라 국가보안법은 강화되었다.
  
   모택동의 지령(월남의 베트콩식 무력해방을 남조선에서 실시하라! --1965. 9. 3. 인민일보)에 따라 한국을 제2의 월남을 만들기 위해 김일성이 수시로 전후방에서 무력 도발을 일으켜 1965년부터 1969년 사이에만 무려 710회의 교전이 있었고 한국군과 미군 전사 364명, 민간인 사망 99명, 북한군 사망 651명(박정희는 어떻게 경제강국 만들었나, 오원철)의 희생이 발생하는 상황에서 국가보안법을 보다 엄격히 적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 당시는 준전시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반정부 시위에 가담하지 않는 한, 민간인에게는 서구 수준의 자유를 허용하고 생업에 매진하게 하여 세계 최고의 경제성장률을 달성했다.
  
   성장의 과실이 북한과 좌파가 주장하는 바와 정반대로 극소수 최상층에 부가 집중된 적도 없었다. 지니계수가 0.35를 넘어선 적이 없다. 거의 서구 선진국 수준이었다. 사실상 공산당이 부를 독과점한 공산국가보다 그 당시 한국이 월등히 평등했다. 정치권력에 환장한 자들이나 간첩이 아닌 한, 일반 국민은 그 때보다 희망이 넘쳤던 때가 없었다. 지금보다 훨씬 자유로웠고 지금보다 훨씬 풍요로웠다. 실업자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주관적으로는 지금보다 더 풍요로웠고 인심도 훈훈했다. 60년대만 해도 그 많던 거지가 싹 없어졌다.
  
   친북좌파가 전가의 보도로 쓰는 용어가 매카시즘이다. 매카시에 의해 억울하게 로젠버그 부부와 히스와 홉킨스 등이 소련 간첩으로 몰려서 사형 당하거나 감옥에 갇혔다는 게 그 골자다. 이로써 대한민국의 간첩은 하나같이 민주인사라고 주장하고 싶은 것이다. 소련이 붕괴되고 미국과 소련의 비밀문서 특히 미국에서 1995년 베노나 문서(Venona Project)가 공개되면서 매카시의 말이 대부분 옳았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매카시가 인격적인 문제는 있었지만, 오히려 그가 좌파에 의해 억울하게 당했다는 것이 밝혀졌다. 매카시의 덕을 가장 많이 본 나라가 대한민국일지도 모른다고 이상돈 교수는 말한다. 그 덕분에 미국의 소련 간첩이 일망타진되고 6.25 남침에 미국이 즉각 대응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씨조선이 내세우는 인민민주의 기준에 따른 과거사위의 초헌법적 월권행위는 자유통일이 되는 날, 만천하에 드러날 것이다.
  
   (2007. 2. 1.)
  
  
[ 2007-02-01, 13:50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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