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울 땐 싸워야
싸우라, 치열하게 싸우라. 싸우되, 정정당당하게 싸우라. 싸운 후엔 결과에 승복하고 더 큰 싸움에 대비하라.

최성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 스크랩하기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운명 경기할 때 한국인들은 곧잘 파이팅(fighting)이라는 구호를 외친다. 이 말은 선수나 관중이나 같이 쓴다. 열심히 싸우자, 열심히 싸워라, 최선을 다하자, 최선을 다해라, 라는 의미다. 복싱이나 유도, 태권도 등 격투기에서 선수가 승부에만 집착해서 소극적인 경기로 일관하면 심판은 즉시 주의나 경고를 주고 “파이트!(Fight!)" 곧 싸우라고 외친다. 화려한 공격과 멋진 수비의 피 튀기는 용호상박(龍虎相搏)에서 되풀이할 수 없는 즉흥적인 짜릿한 아름다움을 느끼고 그 맛을 즐기기 위해 때로는 비싼 돈을 들여서 경기장을 찾는 관중에게 시간만 질질 끄는 경기만큼 재미없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싸움이든 운동 경기든 구경하는 사람은 즐겁다. 치열할수록 즐겁다. 그래서 싸워라, 싸워라, 외친다. 당사자도 서로 실력이 엇비슷하면 입안이 바싹바싹 타면서 온몸이 짜릿짜릿해진다. 너무 차이나면 당사자나 구경꾼이나 아무 재미가 없다. 그런 경기는 아예 성사가 되지 않는다. 승부를 가리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실력 차이가 현격한 경우에도 경기를 하는 수가 있는데, 이 때는 관중이 아예 없다. 그런데 대체로 외국인들은 아예 대놓고 싸워라, 가라, 기름을 부어라, 등으로 싸움을 부추기지만, 한국인은 예로부터 편을 갈라 이겨라, 이겨라, 라고 외친다. 승부에 관중이 선수 이상으로 집착한다. 그래서 자기편이면 격투기에서 치사한 방법으로 점수를 관리하거나 구기 경기에서 이겼다고 공을 빙빙 돌리거나 해도 나무라지 않는다. 흐뭇해 한다. 어서 끝나길 기다리며 시계를 보고 또 본다.  


 이렇게 승부에 지나치게 집착하다 보니까, 한국인은 대체로 싸울 줄 모른다. 싸워도 정정당당하게 싸울 줄 모른다. 걸핏하면 심판에 대들고 여차하면 깽판을 놓는다. 치사하게 싸우고 지고도 승복하지 않는다. 문제는 싸움 자체가 아니다. 정해진 규칙을 준수하느냐,  심판의 판정에 복종하느냐, 그것이 문제다. 또한 문제는 이기고 지는 것이 아니다. 이긴 자가 독식하지 않고 아량을 베푸느냐, 진 자가 패배에 승복하느냐, 그것이 문제다. 이제 급속도로 국제화된 스포츠는 많이 개선되었으나 해외로 나갈 일도 수입할 일도 없는 정치는 형편없이 뒤떨어져 있다. 심하게 말하면 조폭 세계와 다를 바 없다.


 한국인은 공개된 장소에서의 정정당당한 싸움은 가능한 한 피하려고 하고, 당사자가 싸우려는 모양만 취해도 주위에서 우르르 평화와 화합과 대동단결을 내세우며 양비론(兩非論)을 내세워 싸잡아 양쪽을 비난하고, 유리한 쪽을 응원하는 사람들일수록 싸움 자체를 국가를 위태롭게 하는 분열과 국민을 수렁에 빠트리려는 음모로 몰아붙인다. 모든 사람이 보는 데서 선수 자격부터 검증하자고, 부정 선수의 여부를 가리려는 기본의 기본인 시도도 같은 편끼리 왜 싸우냐며 노발대발한다. 그러면서 겉으로는 그럴 듯한 명분을 내걸지만, 보이지 않는 데서 들리지 않는 데서 암투에 목숨을 건다. 자기편의 대들보 약점은 두루 인정되는 관행이요 고의성이 전혀 없는 실수라며 스스로 면죄부를 발부하고, 상대의 티끌 약점은 도드라진 불법이요 고의성이 짙은 악행이라며 진돗개처럼 물고 늘어진다. 승부는 사실상 이 암투에서 결정된다. 일단 승부 후에는 천당과 지옥이다. 이긴 자는 아무리 치사한 방법으로 이겨도 심지어 불법으로 이겨도 일단 이기기만 하면 기고만장하여 권력이든 명예든 부든 독식하고, 진 자는 아무리 정정당당하고 공개적인 싸움이었더라도 절대 승복하지 않고 온갖 핑계를 갖다 붙이며 이빨을 뽀드득 갈며 자리를 박차고 뛰쳐나간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싸움을 보고 걱정하는 소리가 높다. 싸움을 부추겨야 할 판인데, 왜들 그러는지 모르겠다. 싸우는 이유도 깡그리 밝히고 상대방의 장점과 약점도 국민 누구나 알도록 다 드러내라. 싸우되 공개된 장소에서 싸우고, 싸우되 정정당당하게 싸워라. 정 치사하게 싸우려면 치사하게 싸우되 그것도 공개된 장소에서 싸워라. 그래서 국민의 심판을 받도록 하라. 일단 싸운 후에는 결과에 승복하라. 승자는 겸손하게 아량을 베풀고 패자는 기꺼이 승자의 오른손을 들어 주라.--이렇게 훈수해야 마땅하다. 


 한국이 세계 1등인 분야는 별로 없지만 자타가 공인하는 분야가 둘 있다. 바둑과 양궁, 이 분야는 세계 1등이 아니면 이상하다. 얼마나 상향평준화되었는지, 오늘의 1등이 바로 내일이면 오늘의 꼴찌한테 질 수 있다. 왜 그럴까. 치열한 경쟁과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정정당당한 싸움 덕분이다. 반면에 한국에서 가장 뒤떨어진 분야는 교육과 정치다. 여기선 철저한 하향평준화가 이루어졌다. 왜 그럴까. 이 두 분야는 평등과 화합이라는 허울로 경쟁 자체를, 싸움 자체를 금기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민의 관심은 가장 높은 분야다. 그 결과 죽기 살기 식의 치열한 암투가 벌어진다. 밝은 데서 싸우지 않고 어두운 데서 싸운다. 막무가내 사교육 바람과 ‘묻지 마’ 해외 유학 바람은 지극히 당연한 결과다. 정치판의 이전투구와 정치의 당쟁화도 지극히 당연한 결과다. 교육은 사교육이라도 받고 유학이라도 가지만, 정치는 정치인이든 국민이든 수준이 비슷비슷하여 따로 배울 데도 없고 철저한 국내용이라 해외에서 수입할 수도 없다.  


 싸우라, 치열하게 싸우라. 싸우되 정정당당하게 싸우라. 싸우되 밝은 데서 싸우라. 정 치사하게 싸우려면 그렇게 싸우라. 단, 그 때도 밝은 데서 싸우라. 그래서 국민의 심판을 받으라. 싸운 후에는 결과에 진 맹수가 이긴 맹수에게, 또는 진 무사가 이긴 무사에게 승복하듯이 깨끗이 승복하라. 승자는 패자에게 아량을 베풀고 패자는 다음을 기약하며 승자에게 손뼉을 치라. 그리고는 다 같이 힘을 모아 더 큰 싸움에 대비하라. 마지막 승부에서 기필코 승리하여 자유민주와 시장경제를 되찾고 단단히 뿌리내려 자유통일을 쟁취하라.


                  (2007. 5. 11.)


   

[ 2007-05-11, 16:01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맨위로

댓글 글쓰기 주의사항


맨위로월간조선  |  조선일보  |  통일일보  |  미래한국  |  올인코리아  |  뉴데일리  |  리버티헤럴드  |  뉴스파인더  |  이승만TV  |  장군의 소리  |  천영우TV
  개인정보취급방침
이메일
모바일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