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은 위장우파의 숙주(宿主)
'2 + 1 = 3'이지만, '2 - 1 = 1'이다.

최성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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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삼 정부의 출범과 더불어, 약 반세기 동안 한국인의 심금을 울렸던 야당의 천둥소리  '독재 타도'는 더 이상 설 자리를 잃었다. 실은 5년 단임제에 의해 육사 출신의 대통령은 '영원히' 물러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이른바 재야 세력은 노태우 정부의 출범 무렵에 이미 김영삼 또는 김대중 두 편으로 갈라섰다. 사실상 그 때부터 재야 세력은 사라졌다. 김영삼은 민주라는 말밖에 몰랐기 때문에 누구든 반독재 이력서 한 장만 들고 가면 파안대소하며 요직에 기용했다. 이렇게 하여 좌파 또는 친북좌파가 대거 장관, 국회의원, 또는 지방자치제의 알토란 선출직을 노리고 희희낙락 민주 호루라기를 불면서 김영삼 봉건 영주 휘하에 들어갔다.

 한완상, 이부영, 김문수, 이재오, 손학규 등이 바로 그들이다. 이 중에서 김문수는 공개적으로 우파로 전향하고 김정일의 명치끝을 망치로 내려치는 북한인권 운동에 누구보다 앞장섰지만, 나머지는 권력과 부와 명예의 단물을 쏙쏙 빼 먹으며 위장우파의 신분을 십분 활용하여 개혁과 민족공조의 기관단총으로 중무장한 후 수시로 드르륵 갈겨 한국의 정통우파를 콩가루 집안으로 만드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한완상은 통일부장관으로서 누구도 지울 수 없는 민족공조의 밑그림을 그리고 '머리가 텅 빈 자'를 마음껏 조롱하면서 표표히 떠나갔지만, 이부영은 김대중 정부가 끝날 때까지, 손학규는 한나라당의 대선 주자로서 더 이상 가망성이 없을 때까지 버티고 있다가, 세상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화려하게 탈당하여 유감없이 친북좌파의 본색을 드러냈다. 이재오는 아직도 한나라당에서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자신과는 천 리 밖에서도 통하는 이명박이 대선주자로서 가장 유력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1992년에서 1994년까지 6.3동지회 회장을 지낸 이명박은 그의 동지들과 경력이 판이하다. 그는 대한민국 샐러리맨의 우상으로 산업현장에서 그 이름을 크게 떨쳤기 때문이다. 친북좌파 일색인 6.3동지회는 하나같이 경제 문외한인데, 그는 정치인으로서보다는 성공한 경제인으로 더 유명하다. 그렇게 그는 자신을 거의 완벽하게, 스스로도 속을 만큼 경제로 폭폭 삶아서 눈이 부실 정도로 하얗게 세탁했다. 따라서 그를 좌파로 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시장경제의 한복판에서 국내외를 넘나들며 눈부시게 성공했기 때문에, 볼 것도 없이 그는 우파로 여겨진다. 조선과 동아가, 원수인 KBS가 암묵적으로 미는 그를 동상이몽으로 노골적으로  미는 소이(所以)가 바로 여기에 있다. 거기에 더하여 서울시장으로서 환경보전을 경제성장에 우선하는 정책을 펼쳐 서울 한복판에 전두환이 살린 한강에 비하면 너무도 작은 개울 하나를 살려 놓고는 거기에 한국 노조의 영원한 사표인 전태일을 불멸의 영웅으로 부조(浮彫)함으로써, 환경의 중요성과 노동자의 피눈물까지 아는 21세기형 지도자라는 이미지도 얻었다.

 김영삼 황제의 역린을 잡아당긴 정주영 왕이 가장 총애한 세자가 이명박인데, 그가 친아버지 이상의 주군인 정주영 왕과 결별하고 김영삼 황제의 정치 천막으로 둥지를 틀자 다들 의아해 했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구나, 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는 6.3동지회의 대장이었다. 귀하디 귀한 천년 묵은 산삼을 잘 먹고 트림을 하다가도 바람결에 박정희 이름 석 자만 들리면 목구멍에 손을 넣어 토해 내는 6.3동지회는 아직도 대한민국의 대부분 지식인들에게는 민주우파로 자리 매겨 있기 때문에, 이명박이 6.3동지회의 대장이었다는 것은 오히려 그에게 빛나는 훈장으로 여겨진다.

 김대중 정부에서는 재야에도 공개적으로는 감히 끼지 못하던 친북세력인 삼민투, 전대협, 한총련 출신도 정계로 우르르 뛰어들었다. 이른바 386운동권이 바로 그들이다. 이들은 죄의식의 양심 찔림도 공개전향의 통과의례도 필요 없었다. 6.15남북공동선언이 그들에게 면죄부를 주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도리어 죽창을 높이 들고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짓부수는 돌격대가 되었다. 2000년 6월 중순부터 대한민국의 헌법이 잎이 다 떨어진 겨울나무처럼 앙상해졌다. 자유민주와 반공은 극우수구 세력의 시대착오적인 이념으로 몰리기 시작했고, 시장경제와 신자유주의는 천민 자본주의의 구태를 벗어나지 못한 한국 재벌과 신제국주의의 야욕을 거침없이 드러내는 미국 다국적 기업 사이의 짝짜꿍으로 몰려 쉬임 없는 화염병 세례를 받기 시작했다. 김대중 정부에만 아니라 386세력은 한나라당에도 떼를 지어 들어갔다. 원희룡, 고진화, 정태근 등이 바로 그들이다. 개혁과 진보의 시대정신을 앞세워 이들은 한나라당을 갈가리 찢어놓으며 점차 그 세력을 확대했다.

 '2 + 1 = 3'이지만, '2 - 1 = 1'이다. 김영삼은 바로 '2 + 1 = 3'의 효과를 노리고 민주의 깃발만 치켜들면 아무나 다 받아들였지만, '머리 텅 빈 자'보다 몇 수 위인 친북좌익은 그게 아니었다. 이들은 바로 '2 - 1 = 1'의 효과를 노렸던 것이다. 그가 떠난 후 한나라당은 계속 그런 상황이었다. 그러다가 '2 + 1 = 3'의 공식을 만든 지도자가 나타났다. 그가 바로 박근혜다. 박근혜 전 대표에 의해 '40 : 0'으로 일패도지하면서 여당이 대장을 여덟 번이나 바꾸며 우왕좌왕하다가 끝내 뿔뿔이 흩어져 버렸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이들이 오히려 겉보기에 화려한 한나라당보다 훨씬 낫다. 이들은 언제든지 '1 + 1 + 1 = 3'을 만들 수 있지만, 한나라당은 현재 '2 + 1 = 3'이 아니라 '2 - 1 = 1'이기 때문에 언제든지 와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위장우파가 상승 여장군의 화려한 전과에 짓눌려 숨을 죽이고 때만 노리던 때와는 전혀 다르다. 상승 여장군이 물러난 사이 이들이 주도권을 쥐다시피 했다. '감'밖에 모르는 김영삼은 아직도 뭐가 뭔지 모르고 오로지 김대중을 엿 먹이려는 앙심을 품고 한나라당의 위장우파를 적극 밀어, 의도와는 정반대로 6.15남북공동선언의 두 주역 김대중과 김정일을 열심히 돕고 있다. 위장우파의 숙주로서 끝까지 책임을 다할 모양이다.

                               (2007. 5. 14.)  


 

[ 2007-05-14, 23:50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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