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볕정책은 북한 개혁개방의 주적(主敵)
개혁은 오늘의 가치보다 내일의 가치가 더 크다는 확신이 설 때만, 개방은 진실을 직면할 용기가 있을 때만 단행할 수가 있다.

최성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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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소평과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차례로 1978년과 1985년 각각 중공과 소련에서 최고지도자로 올라서면서, 유라시아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 거짓의 동토에 마침내 진실의 봄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진실의 봄바람은 이내 중소의 국경을 넘어 메콩강의 삼각주와 그다니스크의 조선소에도 불어 닥쳤다. 소련과 중공의 강력한 지원을 받아 세계최강 미국을 물리치고 적화통일에 성공한 베트남은 11년 동안 두 악마 스탈린과 모택동을 흉내 내어 광란의 숙청 파티를 즐기다가, 마침내 1986년 구엔 반 린이 당서기로 선출되면서 거짓의 장막을 걷고 중국과 소련에서 거침없이 불어오는 진실의 봄바람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종교를 아편으로 몰아세웠던 마교의 교주 마르크스가 끝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을 수 없었던 폴란드에서는 바웬사가 1989년 공산국가에서는 처음으로 노조의 단체행동권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진실의 봄바람은 그렇게 동구에도 어김없이 찾아왔다.  

 진실의 봄바람이 브란덴부르크의 성벽에서 환희의 꽃을 피우는 쾌거가 일어났다. 1990년 독일의 자유통일이 바로 그것이다. 헬무트 콜이 건네는 두둑한 마르크를 받고 고르바초프가 붉은 군대를 '열중쉬어!'함에 맞추어 동독 주민들이 폭풍이 몰아치는 만장일치로 서독의 기본법(헌법)을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다. 두 차례나 세계대전을 일으켰다가 타민족과 동족의 피를 라인강과 엘베강을 합친 것보다 많이 흘린 게르만족은 마침내 철이 들고 슬기를 얻어, 통일의 호기가 오자 재빨리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자유통일의 꽃을 피운 것이다. 이 때부터 그 인근의 동구는 붉은 군대의 마수에서 완전히 벗어나서 저마다 주권을 되찾아 문이란 문은 모조리 열어 제치고 진실의 봄바람을 다투어 맞아들였다. 한때 꽃샘바람이 거셌지만, 이내 적응하고 동구는 진실의 봄바람이 도시의 골목골목에서 시골의 구석구석까지 스며들게 했다. 그렇게 하길 약 20년 이제 그들은 풍요와 자유를 한껏 누리며 저마다 어떤 서구 선진국보다 푸른 희망과 어떤 개도국보다 붉은 야망을 품고 산다.

 순망치한(脣亡齒寒)이라 진실의 봄바람은 소련의 이웃인 자유민주주의 국가 핀란드에도 불어 닥쳤다. 소련과의 교역이 갑자기 곤두박질치자, 핀란드는 홀로 서기에 나서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세계최초의 21세기형 교육혁명을 통해 핀란드는 교육과 산업과 연구를 한 덩어리(cluster)로 묶었다. 사회주의적 요소를 여기저기서 몰아내고 시장경제를 대대적으로 받아들였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편안한 삶을 보장하던 스웨덴과 덴마크도 바이킹의 야성을 되찾았다. 

  인구 10억의 거대한 사회주의 국가 인도도 어쩔 수 없이 진실의 봄바람을 맞아들였다. 1991년 나라시마 라오가 총리로 당선되면서 인도는 애절하게 소련을 바라보던 눈을 서슴없이 미국으로 향한 것이다. 그 결과가 왕년의 미소(美蘇)를 능가할 것이라는 친디아(Chindia)! 

 유라시아에서는 오직 한 곳, 북한만이 진실의 봄바람을 맞아들이지 않았다. 등소평과 고르바초프가 등장한 지 29년이 흐르고 22년이 지나고 소련군 대위가 9억 달러의 피라미드에 갇힌 지 13년이 지났건만, 오늘도 북한 전역에는 칼보다 무서운 겨울바람이 사시사철 하루도 빠짐없이 그 강도를 날로 더해 가면서 쌩쌩 불고 있다. 이제 김정일과 그의 운명공동체인 2만여 명의 귀족 외에는 북한의 2천만 주민 전원이 대탈출을 꿈꾸고 있다. 편지 한 통 전화 한 통 들어가지 못하고, 보따리장사 한 명 마음대로 드나들 수 없는 지옥에서 3백만의 가족친지 그리고 기업소 동료가 굶어 죽는 와중에 기적적으로 살아나 아직도 생활총화에 시달리며 목숨만 간신히 붙이고 사는 2천만 전원이 탈출할 날만 기다린다. 회담 쇼, 상봉 쇼, 관광 쇼, 집단체조 쇼, 공단 쇼, 철마 쇼 등 어디로 흘러가는지 아무도 알 수 없고 누구도 조사할 수도 없는 돈과 물자를 바치기 위한 쇼를 구경하기 위해서만 스스로 광대인 줄도 모르는 광대들이 신파조의 감탄사를 연발하며 잠깐 들어갔다가 재빨리 나올 뿐이다. 그러나 그들도 거기 살라고 하면 만사를 제치고 달아난다. 거기는 사람과 짐승만이 아니라 곡물과 나무와 풀도 살 수 없는 지옥임을 그들도 알기는 안다는 말이다.    

 진실의 봄바람이 분 곳은 마교가 횡행하던 동토(凍土)만이 아니다. 시장경제의 원조인 영국은 철의 여인이 1979년 다우닝가로 이사 가면서, 시장경제의 총본산인 미국은 할리우드에서 어슬렁거리던 그저 그렇던 배우가 1980년 백악관으로 이사 가면서, 노조의 위선에 철퇴를 가하고 복지의 게으름에 채찍을 휘둘렀다.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세계의 찬탄을 받던 한국이 끼리끼리 아지트에서 마신 폭탄주에 취했는지 세계의 흐름과는 정반대로 왼쪽으로 왼쪽으로 게걸음치기 시작했다. 마침내 새천년의 해가 떠오르자, 19세기의 유령들을 잇달아 지도자로 받들어 모신 한국은 개혁개방의 대양에 외로이 떠 있는 섬 북한과 얼싸안고 민족공조의 찢어진 천막에 들어가 눈물콧물을 흘리고 있다. 전세계에서 가해지는 시장경제의 무차별 공격에 자주의 창을 빼어 들고 평화의 방패를 치켜들고 미사일과 핵무기로 5천만을 위협하는 인질범에게 밑도 끝도 없이 달러와 식량을 싸들고 가서 공손히 바침으로 허구한 날 대탈출만 꿈꾸는 2천만 동포의 가슴에 대못을 박고 있다.

 일찍이 1961년부터 시장경제를 대대적으로 도입하고 미국과 일본을 비롯한 자유진영의 전폭적인 도움을 받아 젖과 꿀이 흐르는 나라로 탈바꿈한 한국이 시대의 도도한 흐름에 맞춰 반공정책을 북방정책으로 바꾸어 돈맛을 단단히 알게 된 중국과 러시아를 우리 편으로 만듦으로써, 사면초가가 된 북한은 남북이 함께 잘 살게 되는 남북기본합의서에 서명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이 그 정책을 5년만 더 지속했더라도, 김정일은 지하궁전에서 지상의 집무실로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개혁하고 개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설령 자유통일은 되지 않았더라도 지금쯤 북한 주민은 최소한 베트남보다 못해도 중국보다 웬만하면 동구보다 잘 살게 되었을 것이다. 가슴의 휘장을 떼고 자유의 공기를 마음껏 숨쉬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2천만 동포가 아니라 절대권력자 김정일과 그 운명공동체에게 찬란한 햇빛이 비치기 시작했다. 햇볕정책으로 김정일은 자칫했으면 다 잃을 뻔했던 것을 하나도 놓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보다 더한 것도 얻었다. 기도 안 막히게, 그는 약 절반에 가까운 한국인에게 정통성과 자주와 진보와 평화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게다가 세계 10위권의 한국을 통째로 집어삼킬 가능성이 아주 높아졌다.
--금강산도 열렸다, 개성도 열렸다, 휴전선도 열렸다! 보라, 평화의 비둘기가 날아가는 것을! 보라, 자주통일의 무지개가 떠오르는 것을! 
 장차 그 죄업을 어찌 갚으려는지, 방송과 신문과 인터넷에서는 온통 축제 분위기다.

 개혁은 오늘의 가치보다 내일의 가치가 더 크다는 확신이 설 때만 단행할 수가 있다. 이것을 깨닫는 데 소련은 두 세대가 걸렸고 중공은 한 세대가 걸렸다. 햇볕정책으로 오늘의 가치가 내일의 가치보다 압도적으로 크다는 것이 너무도 뻔히 보이는데, 국가 전체의 부를 한 손에 쥔 절대권력자가 개혁할 리가 없다. 등소평과 구엔 반 린이 제일 먼저 착수한 개혁을 받아들일 리가 없다. 협동농장을 폐지할 리가 없다. 가만있으면 공짜로 한국이 주고 미국이 주고 일본이 주고 중국이 주는데, 왜 권력의 고삐가 급격히 느슨해질 수 있는 농지개혁을 단행할까. 구 공산권에서 한 세대 전에 도입한 거주이전의 자유를 왜 도입할까. 통행증의 족쇄로 2천만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는데, 왜 그런 모험을 감행할까.

 개방은 진실을 직면할 용기가 있을 때만 단행할 수가 있다. 진실보다 거짓을 사랑할 때는 절대로 개방을 단행할 수 없다.
--그래, 우린 못 산다. 그래, 우린 지금까지 잘못했다. 그러나! 이제부터 잘하겠다. 이제부터 거짓을 버리고 진실을 받아들이겠다. 누구든지 마음대로 와서 보고 무엇이든 구경하고 싶은 걸 구경하라. 푼돈이라도 떨궈 달라. 투자할 가치가 있으면 투자하라. 우리가 모르는 것을 가르쳐 달라. 열심히 배우겠다. 언젠가는 앞선 당신을 따라가겠다.
 이게 바로 개방이다.

 그런데 김정일은 아가페적 상납 정책인 햇볕정책 덕분에 아무리 거짓을 진실에 앞세워도 감히 누가 뭐라고 할 자가 없다. 단지 상봉 쇼, 관광 쇼, 공단 쇼, 집단체조 쇼, 철마 쇼, 발사 쇼, 폭발 쇼 등 쇼만 시시때때로 벌이면 된다. 그러면 민족화해의 도깨비 방망이에서 독재권력을 유지하기에 필요충분한 돈과 식량과 물자가 마구 쏟아진다. 편지 한 통, 전화 한 통, 절대 허가하지 않고 거짓을 진실로 기꺼이 믿어주는 자들에게 그저 이런저런 깜짝쇼만 보여 주면 된다. 이리 좋은 걸 두고 왜 중국식, 러시아식, 베트남식, 동구식, 개혁개방을 해! 어림 반 푼 어치도 없는 소리다.

 한 마디로 햇볕정책은 북한 개혁개방의 최대걸림돌이다. 북한 개혁개방의 주적(主敵)이다. 2천만 동포의 원수다. 7천만 한민족의 악몽이다.
                      (2007. 5. 18.)

[ 2007-05-18, 22:56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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