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의 강성민주와 노무현의 연성독재
박정희는 산업화만 일군 게 아니다. 민주화를 함께 키웠다. 단 그것은 서구 자유민주에는 감히 미치지 못했다. 그러나 그것은 비교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최성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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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개발지수 세계 26위의 수훈갑은 박정희]
 
  해방 후 남북한에서 가장 영향을 많이 끼친 사람은 박정희와 김대중 그리고 김일성이다. 나머지는 이들과 격이 다르다. 박정희는 정통우익을 대표한다. 그는 객관적인 삶의 질을 나타내는 인간개발지수에서 2006년 현재 177개국 중에서 26위를 기록한 한국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이승만, 전두환, 노태우가 이 계열이다. 김대중 계열은 장면, 김영삼, 노무현인데, 이들은 현재 민주세력이란 자부심으로 콧대가 하늘을 찌른다. 이들은 박정희 계열을 일언지하 독재자로 폄하한다.
 
  통계로 잡을 수 없을 정도로 북한은 지구상에서 인간개발지수가 가장 낮다. 세계식량계획(WFP)에 따르면, 전 세계 식량원조는 연간 8백만 톤인데 이 중에서 북한이 100만 톤이나 받아간다. 인구 대비 단연 세계 1위다. 북한은 이와 같이 생존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인 식량도 해결 못하는 거지 낙원이다. 거기다가 거주이전의 자유, 직업선택의 자유 등 가장 기본적인 자유도 없고 평등을 최고의 가치로 내세워 선전선동을 일삼지만 사실은 51개 계층으로 나눠진 철저한 계급 사회로 전 세계에서 가장 불평등한 땅, 폭정의 전초기지이다. 이런 북한의 알파와 오메가가 김일성이다. 김정일이 2세 황제로 군림하고 있지만, 김일성은 죽어서도 유훈통치를 계속하고 있다. 북한은 김일성의 노선에서 반 발짝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김정일은 유령인간이나 마찬가지다.
 
  김일성 부자에 대한 평가가 김대중이 대통령으로 당선된 후 한국에서 급격히 달라졌다. 민족의 공적에서 민족화해와 평화통일의 동반자로, 공산독재자에서 자주적인 지도자로, 식견 있는 지도자로 탈바꿈하고 있다. 남북정상회담 이후 정통우익의 신문도 그들에게 주석 또는 국방위원장이란 호칭을 꼬박꼬박 붙인다. 박정희는 대통령 대신 독재자로 불리는 일이 훨씬 잦다. 특히 친북좌파의 매체에선 거기에 욕의 왕관을 씌어 주어도 분이 안 풀린다. 그러나 그들은 김일성 부자는 여간 해선 호칭 없이 부르지 않는다. 김일성과 김정일을 공식 호칭 대신 독재자로 부르면, 시대의 도도한 흐름을 전혀 깨닫지 못한 수구꼴통이란 욕설과 더불어 곧바로 화염병이 사방에서 날아온다.
 
  박정희는 독재자이고 김대중은 민주주의자인가. 이승만은 친일 독재자이고 전두환과 노태우는 군사 독재자인가. 김영삼과 노무현이 민주주의자인가. 왜 김일성을 독재자라고 하면 안 되는가.
 
 [민주와 독재의 기준은?]
 
  도대체 민주와 독재의 기준이 무언가. 한국에선 대체로 민주와 독재의 기준을 보통선거의 유무로 삼는다. 그러나 이 기준도 애매하다. 왜냐하면 이승만도 보통선거로 선출된 국회의 간선이나 국민의 직접 투표로 대통령이 되었고, 박정희도 2년간의 군정 이후 민간인 신분으로 국민의 직접 투표로 대통령에 당선되었기 때문이다. 유신헌법 아래서 간선으로 뽑히긴 했지만, 유신헌법이 국민의 직접투표에 의해 확정된 것이기 때문에 법적인 하자는 없다. 간선이든 직선이든 공산국가나 왕조국가와는 판이하게 한국에서는 어떤 정권이든 국민의 의사가 상당히 많이 반영되었다. 군사쿠데타로 군정을 끝없이 연장시키는 수많은 개도국과도 전혀 다르다. 선거가 민주의 기준이라면 히틀러도 독재자가 될 수 없다. 그는 합법적으로 선거에 의해 의회에 진출했기 때문이다.
 
  부정선거라는 이유로 박정희를 독재자라고 부를 수 있을까. 현재까지 확인된 바로는 한국의 부정선거는 3․15 부정선거뿐이다. 그로 인해 이승만은 평화적으로 물러났고 장면 정권이 들어섰다. 그렇다면 이승만을 독재자로 부를 수 있는 시기는 부정선거 당시뿐이다.
 
  한국은 대통령 선거도 간선이든 직선이든 꾸준히 행해졌다. 이 점이 전 세계 개도국과 뚜렷이 구별된다. 개도국 중 한국과 비슷한 곳은 인도밖에 없다. 또한 한국은 국회의원 선거가 선진국 못지않게 공정했다. 유신시절에도 국회의원 선거는 꼬박꼬박 치러졌고 그 때마다 야당은 대통령과 여당에 대해 그 어떤 비판과 비난과 욕설과 무고와 위증도 서슴지 않았다. 유세의 자유가 완벽히 보장되었다. 선진국 대열에 진작 들어선 싱가포르는 아직도 야당 국회의원이 1명뿐이다. 유일초대강국 미국에 무역흑자를 한 해에 2천억 달러나 내고 있지만 중국은 아직 13억 인구 중에 야당 국회의원이 단 한 명도 없다. 한국과는 비교 자체가 안 된다.
 
 [박정희의 정치는 서구 선진국이 아닌 제2세계나 제3세계와 비교하는 것이 공정]
 
  1978년 총선에서 박정희의 공화당은 득표율에서 31.7% 대 32.5%로 김영삼의 신민당에 졌다. 그 당시 사실상 야당이었던 무소속 표도 28.1%나 차지했다. 여당의 완패였던 것이다. 그 여파인지 그 다음 해에 박정희는 암살당했다. 만약 박정희가 대만의 장개석이나 싱가포르의 이광요처럼 국회까지 완벽히 장악하고 야당 지도자를 원천봉쇄했다면 과연 김대중과 김영삼 같은 인물이 설 자리가 있었을까. 쿠바의 카스트로나 리비아의 카다피처럼 평생을 군복 입고 통치했다면, 한국에 과연 민주주의가 꽃필 수 있었을까. 그들처럼 통치했다면 90세의 나이로 박정희는 아직도 대통령으로 군림할지 모른다. 영국의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의 세계전망 2007년 판에 따르면, 조사대상 167개국 중 완전한 민주주의 28개국, 흠 있는 민주주의 54개국, 혼합된 민주주의 30개국, 권위주의 55개국이다. 한국은 이 중에서 31위를 차지했다. 북한은 167등 꼴찌다. 한국은 지금만이 아니라 박정희 때도 두 번째 분류에서 과히 벗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박정희는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추구함]
 
  세간의 상식과는 정반대로 박정희는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추구했던 것이다. 2차대전 후에 생겨난 100여개 개도국과 수십 개 공산국 중에 선진국에 진입했거나 근접한 나라는 한국과 대만, 싱가포르, 홍콩뿐인데, 그 중에서 한국은 산업화만이 아니라 민주화도 가장 괄목한 발전을 이룬 나라다.
 
  박정희를 독재자로 보는 것은 그 기준을 100년 200년 동안 혁명과 전쟁, 제국주의 등으로 피를 흘리고 자본을 축적하며 기나긴 민주주의 실험을 거친 선진국의 민주주의로 두기 때문이다. 그렇게 거의 절대적인 기준을 들이댄다면 영국이나 미국 프랑스 등도 1920년대 이전에는 모조리 독재 국가다. 그 때까지는 어떤 나라도 여성에게 참정권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은 1948년부터 바로 여성에게 참정권을 주었다. 미국 덕분이긴 하지만 세계 민주주의 역사에서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19세기만 해도 영국에서는 선거구의 의원보다 투표권을 가진 자가 더 많았다. 3명이 5명의 의원을 뽑곤 했다. 보통선거의 길은 그렇게 험난했던 것이다. 그러면 그 당시 영국이 민주국가가 아니었던가.
 
  비교는 어디까지나 상대적이다. 한 나라의 발전에 비추어 보고 이웃 나라와 비교해 보아야 한다. 그런 식으로 비교하면 영국은 19세기에도 심지어 18세기에도 민주국가였다. 한국만은 왜 예외인가. 박정희는 그 당시 한국보다 모든 여건에서 나았던 공산국가나 개도국보다 훨씬 민주적이었다. 따라서 그를 독재자라고 부르는 것은 여성에게 참정권을 주지 않았다고 링컨을 독재자라고 하는 것처럼 억울한 일이다.
 
 [박정희의 강성민주, 군사혁명]
 
  박정희는 민주이되 강성민주이다.
  박정희는 군복을 입고 한강을 건넜다. 다행히 무혈 군사혁명이었다. 이것은 선거에 의한 권력교체를 민주주의의 출발점으로 보는 관점에서는 민주에 대한 반역이다. 그러나 그것은 시대적 상황에 따른 결단이었다. 이미 그 당시는 민주주의가 이름만 남아 있었을 뿐 깊은 수렁에 빠져 있었고 북한공산당과 국내 친북좌파에 의해 자유민주가 여차하면 말살될 위기에 처해 있었다. 제2, 제3의 박정희는 얼마든지 있었다. 만약 그가 아프리카나 중남미의 대부분 나라들처럼 경제를 일으키지 못하고 국민을 착취하는 군사독재체제를 유지했다면, 그런 나라들처럼 군사쿠데타가 끝없이 되풀이되다가 한국은 김일성한테 먹혔을지 모른다.
 
 [민주의 근간인 법치를 확립한 박정희]
 
  박정희는 민주이되 강성민주다.
  박정희는 무엇보다 법치를 뿌리내렸다. 한국에는 그 당시만 해도 말만 민주주의지 달랑 헌법 하나만 있었지 그 헌법을 구현할 법률이 거의 제정되지 않았다. 국회는 권력투쟁만 했던 것이다. 그래서 법률은 일어로 된 조선총독부의 법령과 영어로 된 미군정청의 법령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박정희는 국가재건최고회의에서 불과 6개월 만에 법률을 완비했다. 그것이 오늘날까지 내려오는 대부분 법률의 모체다. 그 때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30년이 지나도 법률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을지 모른다. 한국의 국회는 이제나 저제나 권력 투쟁하는 곳일 따름이니까.
 
  박정희에 의해서 전 국민은 법 아래서 평등한 자유시민이 되었다. 법률에 의하지 않고는 어떤 사람도 구속할 수 없었고 구금할 수 없었고 벌금을 물릴 수 없었고 세금을 부과할 수 없었다. 국회의원의 전화 한 통, 장관의 눈짓 한 번, 공무원의 공갈 한 마디 등이 거의 통하지 않게 되었다. 민주주의가 비로소 형체를 갖추기 시작한 것이다. 이보다 한국의 민주주의에 혁혁한 공을 세운 사람이 또 어디 있을까. 그는 또한 3년에 무려 공무원의 월급을 120%나 인상하고 공무원연금제도를 도입하여 조선시대 이래 뿌리 깊던 부정부패를 거의 일소했다.
 
  김대중은 어떠하며 김영삼은 어떠하며 노무현은 어떠한가. 그들이 과연 법치를 한 단계 끌어올렸던가. 헌법을 수호하고 법을 권력보다 위에 두었던가. 법률 위에 떼법, 헌법 위에 국민정서법을 올려놓은 것이 지난 세 정권이다. 그래서 이제는 자유를 파괴하는 자유도 자유라고 우기는 세상이 되어, 정통우익만이 아니라 친북좌파도 포함된 4800만의 자유와 풍요를 파괴하려는 간첩도 간첩이라 하지 못하고 전쟁도발로 3백만을 죽인 김일성과 오로지 무소불위의 독재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300만을 굶겨 죽인 김정일을 독재자라 하지도 못한다. 특히 정연주의 어용방송은 절대 이런 소릴 못한다. 마침내 노무현 정권에 들어와 친북좌파는 정치권력에 이어 문화권력과 사회권력도 대부분 장악하여 국민의 생각과 말과 행동까지 지배하기에 이르렀다. 선거라는 절차를 통했다는 점에서 그들은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독재를 자행하고 있다. 독재이되 연성독재이다.
 
 [민주는 공장 제품이 아닌 유기적인 생명체]
 
  박정희는 민주이되 강성민주이다.
  박정희는 민주주의는 무생물이 아니라 생명체임을 알았다. 완제품이 아니라 유기체임을 알았다. 유기체는 태어나고 성장하고 적응하고 성숙한다. 병들기도 하고 늙기도 하고 죽기도 한다. 완성된 형태가 있을 수 없고 환경에 따라서 모양이 다를 수밖에 없다. 선진국의 민주주의가 서로 다른 제도를 갖춘 소이가 여기에 있다. 한국적 민주주의 용어 자체가 틀린 것은 아니란 말이다.
 
  민주주의는 공장에서 찍어내는 제품이 아니라 밀림에서 태어나는 새끼 사자나 전쟁터에서 태어나는 왕자이다. 사자나 왕자도 태어날 때는 무력하기 짝이 없다. 밀림의 새끼 사자나 전쟁터의 왕자는 언제 죽을지 모른다. 보호하고 잘 키우지 않으면 밀림의 왕이 될 사자도 한 나라의 왕이 될 왕자도 토끼나 거지보다 나을 게 없다. 우리에 갇힌 사자는 고양이보다 못하고 숲에 버려진 왕자는 살아남아도 늑대인간이 된다. 한국의 민주주의가 처한 상황이 바로 그러했다. 수천 년 봉건왕조시대와 35년간의 식민시대를 거쳐 어느 날 갑자기 태어난 한국의 민주 옥동자는 걸음마도 겨우 할 즈음에 자유민주를 말살하려는 6.25동란에 유린되었던 것이다. 그런 혹독한 시련에서 천우신조와 불굴의 투쟁으로 간신히 살아났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보호와 훈련과 교육이 절실했다.
 
 [민주는 교육]
 
  새끼 사자든 어린 왕자든 후에 왕이 되려면 반드시 교육을 받아야 한다. 교육은 사탕과 회초리가 모두 필요하다. 박정희는 때로 회초리도 들었다. 이것을 정적은 독재라고 했다. 이빨이야 썩든 말든 왜 사탕만 주지 야만인처럼 회초리를 들었느냐, 그들의 항의는 바로 그것이었다.
 
  민주주의는 교육이다. 국민의 평균 학력이 최소한 중졸은 넘어서야 한다. 박정희가 4.19의거를 계승하기 위해 군사혁명을 일으켰을 당시 한국인의 평균 학력은 이승만 덕분에 급격히 높아지긴 했지만, 국졸 수준도 안 됐다. 박정희는 교사 출신답게 국민을 계도했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중학교와 고등학교와 대학을 대대적으로 늘렸다. 70년대에 접어들면서 중학교는 누구나 가게 만들었다. 국졸 출신의 여공도 야간에는 작업복을 교복으로 갈아입고 산업체학교에서 무상으로 중고등과정을 이수하게 했다. 여공들은 너무나 기뻐서 명절에 고향에 내려갈 때는 꼭 교복을 입고 갔다. 박정희는 학교에서 자유민주와 반공과 시장경제를 가르쳤다. 대학생이 교문을 벗어나 거리에서 정치 데모하는 것은 단호하게 막았다. 반공을 가르친 것과 데모 막은 것을 일러 사람들은 독재라고 한다. 그러나 한국의 대학생은 북한을 비롯한 공산권과 100여개 개도국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자유와 낭만을 누리고 즐겼다.
 
  김대중과 노무현은 어떤가. 자유민주와 시장경제를 부인하고 김일성 만세를 공공연히 외치는 불법시위에 왜 그렇게 너그러운가. 그것이 민주인가. 그것은 민주의 가면을 쓴 독재다. 연성독재이다.
 
 [민주의 3대적]
 
  박정희는 민주이되 강성민주이다. 박정희는 자유민주의 주적은 현재의 빈곤과 과거의 유습인 봉건주의와 미래를 위협하는 공산주의임을 분명히 알았다. 그는 과감히 선두에 서서 이 세 주적과 싸웠다. 박정희가 나라살림을 맡아서 국고를 열어보니 텅 비어 있었다. 국가예산의 40%를 미국의 원조로 꾸려야 하는 한심한 나라였다. 그것을 대충자금이라 했다. 1971년에야 비로소 국가예산을 국민이 낸 세금만으로 꾸려갈 수 있었다. 이전의 두 정부가 밑그림으로 그려 둔 것을 발판으로 단숨에 경제개발5개년 계획을 짜서 곧바로 실천에 옮겼다. 경제개발에서 박정희의 위대한 점은 둘이다. 첫째는 ‘실천’했다는 것. 둘째는 3년간의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이전의 정권과는 정반대로 원래의 계획을 근본적으로 뜯어고쳐 대체산업이 아니라 수출산업을 일으킨 것이다. 이로써 국제경쟁력을 급격히 길러 일자리를 무려 천만 개나 창출했다.
 
 [빈곤과의 투쟁]
 
  빈곤과의 투쟁은 한강의 기적으로 나타났다. 성장과 분배를 동시에 달성한 경제기적이었다. 자유민주의 토대이자 거부할 수 없는 압력단체인 중산층을 인구의 70%로 끌어올렸다. 절대빈곤층을 거의 대부분 중산층으로 끌어올렸다. 상층 20%와 하층 80%로 철저히 양분된 오늘날의 중국과 비교해 보면, 박정희의 경제개발은 성장의 열매를 얼마나 골고루 나눴나를 알 수 있다. 70년대 이후에는 지니계수가 0.35를 넘긴 적이 없다. 오늘날 미국의 0.38보다 낮은 획기적인 분배였다. 중국에서는 농촌을 떠나 도시로 온 이주노동자들이 조직적으로 착취당한다. 이들은 시민들에게 주어지는 각종 사회복지 혜택을 전혀 못 받고 저임에 시달린다. 시민이 되려면 그 도시의 시민과 결혼해서 15년을 살아야 한다. 8억 인구가 아직도 농촌에서 토지를 한 뼘도 소유하지 못하고 경작권만을 갖고 평균 0.5ha도 안 되는 땅에서 이제 세금은 거의 없지만 갖은 명목으로 지방의 공산당원에게 생살이 뜯기듯 소출이 뜯기며 연명하고 있다. 연안지역의 도시로 나가 거지 생활하는 것이 훨씬 낫다. 중국의 신흥갑부는 90% 이상 공산당원이다. 태자당이라고 공산당 간부의 자제가 민영화된 기업을 대부분 차지한다. 중국의 지니계수는 이제 위험선인 0.40을 넘어 0.45마저 넘어섰다. 교육도 중국의 농촌은 철저히 소외된다. 농촌의 중등교사는 2주일 연수로 자격을 얻는다. 농촌 인구가 아직도 70% 이상 차지하지만 농촌 출신 대학생 비율은 20%도 안 된다. (이상 기 소르망의 [중국이라는 거짓말] 참조)
 
 [봉건주의와의 투쟁]
 
  봉건주의와의 투쟁은 산업화와 애국심 함양과 전통의 계승 및 재창조로 맞섰다. 민주주의 깃발을 내세우고 야당이 당내 민주화를 전혀 실천하지 않고 총재 중심으로 봉건주의의 유습을 온존시키는 것을 보고 경멸했지만, 박정희는 국회의원의 의석을 싱가포르나 대만처럼 원천 봉쇄하거나 여타 개도국의 군사쿠데타 세력처럼 야당으로부터 강제로 빼앗지 않았다. 국민이 뽑으면 그대로 인정했다. 관용의 정신을 최대한 발휘한 것이다. 이것을 사람들은 독재라 일컫는다.
 
  김영삼은 어떠했고 김대중은 어떠했으며 노무현은 어떠한가. 자신들을 평생 어르신으로 모신 자들을 능력과 도덕심 불문하고 회전문 인사로 코드 인사로 나라를 말아 먹고 있지 않은가. 그것이 어찌 민주주의인가. 봉건주의의 부활이지! 연성독재지! 전 세계가 감탄하고 부러워하는 한강의 기적을 욕하고 삶의 질이 선진국 수준으로 올라선 대한민국을 저주하고 다 망가진 문화재와 사라져가던 전통문화를 되살려 놓은 것을 시멘트 문화라고 군사 문화라고 허물어 버리고 뜯어 버리는 것이 어찌 민주주의인가. 봉건주의 부활이지! 연성독재지!
 
 [공산주의와의 투쟁]
 
  공산주의와의 투쟁은 투철한 반공으로 맞섰다. 공산주의의 거짓에 넘어가지 않도록 학교나 사회나 직장이나 어디서든 반공교육을 철저히 실시하여 전 국민이 일치단결하게 만들었다. 정신만이 아니라 무력침략을 능히 물리칠 수 있는 군사력도 길렀다. 한미동맹을 더욱 강화하는 한편, 월남파병, 예비군창설, 방위산업육성 등으로 북한의 인민군과 1:1로 맞서도 능히 이길 수 있는 힘을 길렀다. 월남패망과 닉슨과 카터의 주한미군 철수를 무력적화통일의 호기로 보고 전후방에서 게릴라전을 펼치는 김일성에 대해 박정희는 한 발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러는 한편 대화의 문을 열어놓고 폐쇄된 북한을 국제교류와 대외개방으로 이끌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채찍만 휘두른 게 아니라 당근도 제시했던 것이다. 이것을 사람들은 독재라고 손가락질한다.
 
 [자칭 민주파는 연성독재]
 
  김대중과 노무현은 어떠한가. 오로지 당근만을 주지 않았던가. 채찍은 전쟁난다며 다 걷어서 불태우고 투명성을 전혀 확보하지 않은 상태에서 300만의 동족을 굶겨 죽인 김정일에게 퍼 주기만 하지 않았던가. 공산간부의 나온 배를 더욱 나오게 하고 재래식 무기의 불균형에 더하여 핵무기의 비대칭까지 갖추도록 퍼 주기만 하지 않았던가. NATO급이든 한미군사동맹을, 북한 따위는 말할 것도 없고 아시아의 패권을 호시탐탐 노리는 중국과 러시아도 감히 넘보지 못하던 한미연합사령부를 이제 형체만 남게 만들어 김정일으로 하여금 언제든지 한국을 접수할 수 있다는 망상이 절로 들게 만들지 않았던가. 어제의 반공을 고스란히 이어받은 북한인권을 철저히 무시하거나 아예 나 몰라라 하지 않는가. 이것이 어찌 민주주의인가. 연방제란 이름으로 일단 통일정부를 세우면 공산군사독재밖에 모르는 김정일이 남북의 무력을 모두 장악한 후 바로 자유민주와 시장경제를 뒤엎어 버릴 게 명약관화한데, 그것을 일러 자주평화통일이라고 강변하는 것이 어찌 민주주의인가. 독재지! 민주의 가면을 쓴 연성독재이지!
 
 [박정희는 강성민주]
 
  친북좌익만이 아니라 정통우익도 박정희는 독재자란 말에 동의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이미 저들에게 지고 들어간다. 박정희는 산업화만 일군 게 아니다. 민주화를 함께 키웠다. 단 그것은 서구 자유민주에는 감히 미치지 못했다. 그러나 그것은 비교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한국은 박정희 시절에 민주주의는 사춘기에도 이르지 못한 상태였다. 이제 겨우 국민학교를 졸업하거나 자퇴한 아이에게, 세 끼 밥도 못 얻어먹던 열서너 살에게 대학을 졸업한 사회인에게 주듯이 자유와 자율을 준다는 것은 무책임하기 짝이 없는 짓이다. 거지나 깡패의 길로 인도하는 파렴치한 짓이다. 그것은 무정부 상태를 조장하여 결국 공산주의에게 통치권을 넘기자는 수작에 지나지 않는다. 박정희 당시의 대한민국은 공산권과 개도국에 비교하는 것이 공평하다. 그런 상황에서 박정희는 어떤 나라보다 민주적이었다. 민주주의를 말살한 게 아니라 그는 자유민주를 계속 신장시켰다.
 
 [백척간두에 선 한국의 자유민주]
 
  그런 토대가 있었기 때문에 훗날 6.29 선언이 가능했고 지금까지 계속되는 6공화국이 탄생할 수 있었다. 민주화는 오히려 노태우 때가 절정이었다. 언론의 자유도 노조의 자유도 대한민국은 선진국 수준으로 단번에 올라섰다. 제도는, 하드웨어는 완벽히 갖춰졌다. 그 다음부터는 민주주의의 운영이, 그 소프트웨어가 계속 후퇴했다. 민주를 가장한 연성독재가 정권이 바뀔 때마다 강화되었다. 노태우 시절의 자유민주 방송은 더 이상 없다. 노태우 시절의 자유민주 언론은 더 이상 없다. 자유민주의 3대 적인 공산주의와 어깨동무하고 ‘우리의 소원은 통일!’ 하면서 눈물을 글썽이는 친북좌파 코드가 아니면, 아무리 능력 있는 사람도 발탁되지 못하고 어떤 공정한 보도나 날카로운 논평도 친북좌파 코드가 아니면 수구꼴통이라고 매도된다. 이게 무슨 민주인가. 독재지! 연성독재지!
 
  (2006. 11. 22.)
 
[ 2007-06-08, 19:54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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