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인권을 외면한 죄
일본이 사죄하지 않는다고 부르르 떠는 마음의 100분의 1, 아니 1000분의 1만 북한인권에 대해 쏟으면

최성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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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과 일본은 과거사에 대한 사죄 문제로 곧잘 거론된다. 무명의 유태인 무덤 앞에 무릎 꿇고 오열하는 독일의 수상과, 악어의 눈물조차 흘리길 데면데면 거절하고 뻣뻣이 서서 고개만 살짝 숙이고 입술만 달싹달싹 신중하게 선택한 어휘를 우물거린 후 실눈을 뜨고 주위를 한 번 휘둘러보고는 온몸에 경건함을 가득 담고 부사(후지)산이 무너져도 흔들리지 않을 걸음걸이로 전범(戰犯)들의 무덤에 찾아가 엄숙하게 참배하는 일본 수상은 사죄의 진정성 없음과 그 마지못함이 삼척동자에게도 훤히 보인다. 반일 감정을 자극하는 데 이보다 좋은 소재는 없다.

 독일이 사죄한 것과 일본이 사죄하지 않은 것은 날카롭게 대조되는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가 않다. 독일은 제국주의 침략에 대해 사죄한 적도 없고 사죄의 흉내조차 낼 생각이 없다. 독일이 사죄한 것은 어디까지나 인권침해에 관한 것이다. 그것은 영국, 프랑스, 이태리, 스페인, 포르투갈, 네덜란드, 미국 등도 마찬가지다. 식민지를 해방시켜 준 것으로 그들은 책임을 다했다고 본다. 아프리카의 어떤 나라도, 인도를 비롯한 아시아의 어떤 나라도, 제국주의의 침략에 대한 사죄를 요구하지 않는다. 그것은 역사의 한 장일 따름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오히려 제국주의 침략에 대해 형식적으로나마 여러 번 사죄한 일본이 훨씬 양심적이다.

 독일의 사죄 대상은 600만 유태인 학살이다. 이에 대해서는 백 번이고 천 번이고 유태인이 요구하기도 전에 거듭거듭 사죄한다. 낯을 들 수가 없다. 모름지기 게르만은 적극적 가담자거나 소극적 명령 수행자 또는 묵시적 동조자 셋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게르만은 유태인 학살 당시 양심이 일제히 마비되었다. 극소수의 적극적 가담자와 소수의 소극적 명령 수행자는 '애국'했고, 나머지 절대다수는 돼지고기 쇠고기를 먹으며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듯이 눈에 보이지 않고 귀에 들리지 않는다고 아무런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고, 사실상 대부분 아무 것도 모르고 전쟁에 총동원되었다. 심지어 '유럽통일' 전쟁에 반대한 사람들도 유태인 학살의 소문에 '설마' 소리 한 번도 내지르지 않았다. 게르만의 양심이 깨어난 것은 패전 이후였다. 하루에 식사 한 끼 제대로 해결하기 힘든 상황에서도 그들은 유태인 학살 이야기만 나오면 양심이 찔려 입맛이 다 달아났다.

 독일의 사죄는 일본과 굳이 비교하자면 강제징용과 위안부 동원, 관동대지진 때의 조선인 학살, 737부대의 생체실험, 중국 남경에서의 인종청소 등의 인권침해에 대한 것으로 구체화해야 한다. 만약 한국이 일본에 앞서 근대화했다면, 틀림없이 세종대왕이 대마도를 정벌했듯이 일본의 심장부로 쳐들어갔을 것이고 만주를 되찾는다며 광개토왕을 떠올리며 신나게 중국도 대대적으로 유린했을 것이다. 그 당시는 강대국이 약소국을 원료 공급지와 소비시장의 대상으로 여기고 다짜고짜 침략하는 것이 오늘날 강대국이 후진국을 상대로 무역을 하는 것처럼 당연하게 생각되었던 것이다. 그렇게 못한 나라가 바보였다. 2차대전이 끝나고 60년도 더 지난 2007년에 제삼자인 미국이 의회에서 위안부에 대해 시효가 없는 법을 제정하려고 하는 것은 그것이 인권침해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이 정치적 목적으로 부글부글 반일감정만 부추겼을 뿐 강제징용과 위안부 강제동원에 관해 아무런 법도 제정하지 않은 것을 부끄러워해야 한다.    

 독일의 사죄는 일본의 사죄보다 북한과 중국의 사죄와 연결해야 한다. 일제(日帝)의 인권침해도 가증한 것이지만, 그것은 지난 일이어서 시급하지는 않다. 시급했다면 60년이 지나도록 법 하나 제정하지 않았을 리가 없다. 북한인권은 시급하다 못해 미치고 환장할 지경이다. 독일의 유태인 학살은 반세기도 이전의 일이지만, 오늘도 끊임없이 게르만은 사죄하고 유태인은 문학과 영화와 연극으로 현재화시키고 있다. 그런 나치의 인권침해도 북한에 비하면 전혀 과장하지 않고 말해서 '너무나 인간적'이다. 그토록 북한인권 문제는 심각하다. 그럼에도 이 정보화 시대에, 세계 최고수준의 정보화를 자랑하는 한국에, 북한인권에 대한 정보는 거르고 또 거르고 또 거르고 걸러져서 눈에 보이지 않고 귀에 들리지 않는다는 핑계로 5천만의 양심이 거의 대부분 마비가 되었다. 전무후무한 인질범이 2천만 인질 중 단 한 명도 풀어 주지 않고 당당히 천문학적인 돈과 물자를 챙기는 동쪽과 서쪽의 두 개구멍에 눈과 귀를 고정시키고 민족과 평화와 통일을 합창한다. 코미디도 이런 미치고 환장할 코미디가 없다.  

  게르만은 전쟁이라는 특수 상황 때문에 제 한 목숨 언제 죽을지 몰랐고 정보마저 철저히 차단되어 유태인 학살에 대해 절대다수가 사실상 아무 것도 몰랐다. 그럼에도 그들은 패전 후에 단 한 사람 독일의 사죄에 대해 딴지를 걸지 않았다. 한없이 부끄러워 했을 따름이다.

 남북한은 현재 총 들고 싸우지는 않는다. 따라서 아무리 김정일 집단과 한국의 친북좌파가 정보와 사실을 통제하고 축소하고 왜곡하더라도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북한인권에 대한 실상을 알 수 있다. UN에서도 그렇게 걱정하고 미국에서도 법을 제정하는 등 적극적으로 나서는데, 알려고만 하면 어떻게 모를 수 있을까.

 일본이 사죄하지 않는다고 부르르 떠는 마음의 100분의 1, 아니 1000분의 1만 북한인권에 대해 쏟으면, 양심이 찔려 낮에는 밥이 넘어가지 않고 밤에는 잠이 오지 않을 것이다. 북한인권을 애써 외면한 죄, 그에 대한 대가는 혹독할 것이다. 그 후에 한국인은 독일이 민망해 할 정도로 천 번이고 만 번이고 거듭거듭 사죄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양심이 찔려 살 수 없을 테니까.

 2천만을 노예로 부리고 3백만을 굶겨 죽인 김정일과 오로지 배가 고파 국경을 탈출하는 북한주민을 임금 한 푼 없는 노예로 부려먹거나 위안부보다 비참한 성 노예로 삼거나 잡아서 사지(死地)로 되돌려보내는 호금도에게, 보고도 못 본 척하는 한국의 정부에게 사죄하라고 다그치고 당장 못된 짓을 그만두라고 준엄하게 나무라야 한다. 일본에게 사죄하라고 하려면 하라. 그러나 김정일과 호금도에 대해서는 왜 아무 말도 않는가. 북한주민은 민족이기는커녕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나 돼지만도 못하다는 생각이 없다면, 인간의 양심으로선 차마 그러지 못할 것이다. 불원간 큰 고통 후에 통일되고 나면, 김정일을 적극 비호하고 호금도에게 비굴한 웃음을 지은 자들은 양심에 찔려 어떻게 살려는가.

                      (2007. 6. 9.)
  
 

 

 

[ 2007-06-09, 14:09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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