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운동장’ 누비는 YS의 자식들
이인제, 노무현, 손학규 등등. ‘DJ의, DJ에 의한, DJ를 위한 정치’는 DJ 대통령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포스트 DJ 세대’의 자생력은 거세(去勢)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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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부 차장 ck-kim@chosun.com
  
  
  김창균 정치부 차장 2002년 초 집권 민주당의 대선후보 경선전이 시작될 무렵이었다. 선두주자는 이인제 후보였다. 민주당의 한 부대변인이 이 후보에 대한 ‘이질감’을 털어놓던 기억이 난다. “이 후보는 ‘역사적인 3당 합당’이라는 표현을 쓰곤 한다. 3당 합당은 YS(김영삼 전 대통령), JP(김종필 전 총리)가 민정당과 합쳐 DJ(김대중 전 대통령)를 고립시킨 사건이다. 우리 민주당 사람들에겐 쓰라린 추억이다. 그런데 이 후보에겐 3당 합당이 ‘역사적’이라니… 남의 식구 같은 기분이다.”
  
  2002년 민주당 경선에서 격돌한 노무현, 이인제의 정치적 생부(生父)는 YS다. 두 사람 모두 1988년 총선 때 YS의 공천을 받아 금배지를 달았다. 노무현은 ‘5공 청문회’에서, 이인제는 ‘광주 청문회’에서 돋보이는 활약을 해 YS의 총애를 받았다.
  
  1990년 3당 합당 때 이인제는 YS를 따라갔고, 노무현은 야권(野圈)에 남았다. 노무현은 1991년 통합민주당 대변인을 맡으면서 DJ와 첫 호흡을 맞춘다. 이인제는 1997년 대선 때 신한국당(한나라당의 전신)을 탈당, 독자 출마했다. 이것이 DJ 당선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그리고 다음해 김대중 대통령의 국민회의에 입당했다. 두 사람 다 DJ의 양자가 됐지만, 한솥밥을 먹은 기간은 노무현 쪽이 훨씬 길었다. 2002년 경선에서 앞서가던 이 후보는 노 후보에게 ‘뒤집기’를 당했다. 민주당 사람들이 두 후보에 대해 느끼는 거리감 차이가 한 원인이었을 것이다.
  
  2002년 4월 27일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노무현 후보가 선출됐다. 노 후보는 사흘 만인 4월 30일, YS의 상도동 자택을 방문했다. 노 후보는 자신의 손목시계를 YS에게 보이며 말했다. “총재님(YS)이 1989년 일본에 다녀오시면서 사다 주셨던 겁니다.”
  
  일주일 뒤인 5월 7일, 김대중 대통령은 아들들의 비리를 사과하며 민주당을 탈당했다. 상당수 민주당원들이 울었다. 노 후보는 어리둥절했던 모양이다. 민주당 밥을 오래 먹은 참모에게 물었다. “DJ 탈당이 눈물 날 정도로 슬픈 일이냐”고. 노 후보 역시 민주당과 ‘핏줄이 당기는’ 사이는 아니었다.
  
  2007년 대선판에서 범여권(汎與圈)의 선두주자는 손학규 전 경기지사다. 손 전 지사도 정치적 혈통을 따지자면 YS의 자식이다. 손 전 지사는 김영삼 대통령이 취임한 지 2개월 만인 1993년 4월, 김 대통령의 민자당 공천을 받아 경기 광명 보궐선거에서 당선됐다. 그리고 14년 만인 지난 3월, 손 전 지사는 민자당의 후신인 한나라당을 탈당했다. 그는 아직 ‘제3지대’에 서 있지만, DJ의 그라운드인 범여권으로 이동할 운명이다. DJ진영도 손 전 지사에게 각별한 관심과 애정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2002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그리고 2007년 범여권 후보 경쟁은 모두 DJ 후계자 결정전의 성격을 띤다. 그런데 두 싸움 모두 YS의 자식들이 주도하는 셈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YS도 DJ도 정치적 고비마다 젊은 재목들을 수혈했다. YS는 자식들을 방목(放牧)했다. 적자생존의 투쟁을 거친 몇몇은 차세대 주자로 성장했다. DJ의 자식들에겐 ‘DJ의 영광’을 찬양하는 역할만 주어졌다. 그렇게 길들여진 정치인에게 자기만의 독자 브랜드가 있을 리 없다.
  
  汎與 주자들은 요즘 DJ의 동교동 집을 문턱이 닳도록 들락거리고 있다. DJ 유산을 상속받기 위해서다. 그러나 DJ 상속인으로 점지받는 것만으론 대통령이 될 수 없다. 大選 무대에서 아류(亞流)는 통하지 않는 법이다.
  
  ‘DJ의, DJ에 의한, DJ를 위한 정치’는 DJ 대통령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포스트 DJ 세대’의 자생력은 거세(去勢)해 버렸다. 汎與 주자들의 1%대 몽당 지지율이 바로 그 증거다.
  
[ 2007-06-20, 07:38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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