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이 곧 국가니라--무이1세
헌법 위에 군림하는 무이 1세지만, 그도 두려워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떼법이고 국민정서법이고 불법폭력 시위다.

최성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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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짐이 곧 국가니라(L'État, c'est moi).' --전설처럼 전해 오는 이 말은 프랑스의 루이 14세(재위 1643~1715)의 반대파가 지어낸 것이라는 설이 유력하지만, 장장 72년 동안 지상의 신으로 군림하던 절대군주를 한 마디로 잘 표현한 문장이다. 다섯 살에 재위에 오른 후 이태리 출신의 재상 마자랭이 1661년 죽으면서 섭정하던 모후(母后) 안 도트리슈도 물러나자, 23살의 루이 14세는 아예 재상을 두지 않고 홀로 절대권력을 휘둘렀다. 그 무렵부터 50년에 걸쳐서 짓기 시작한 베르사이유 궁전에는 완공되기 훨씬 전인 1682년에 들어가 유럽의 유행을 주도하며 호사의 극치를 누렸다. 한때 왕권을 위협하던 성직자와 귀족은 태양왕의 옥체를 비추려 시동처럼 꼿꼿이 서서 촛불을 받드는 것을 무상의 영광으로 알았고, 그가 변기에 걸터앉아서 큰일을 볼 때는 똥강아지처럼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구수한 향기에 코를 벌름거리면서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려는 영광을 누리기 위해 치열한 암투를 벌였다.
 
 영국에선 1688년에 명예혁명이 일어나 군주는 통치는 못하고 단지 군림할 뿐이었지만, 루이 14세는 왕의 칙령을 심사하던 파리고등법원도 허수아비로 만들고, 신이 알프스와 피레네와 라인을 프랑스의 영토로 선물했다며 대대적인 정복전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프랑스의 승리는 곧 루이 14세의 승리였고, 프랑스의 영광은 곧 루이 14세의 영광이었고, 재무상 콜베르의 중상주의 정책에 의해 산더미처럼 쌓인 금은보화는 곧 루이 14세의 재산이었다. 1685년 신교와 구교의 화합을 상징하던 낭트칙령을 폐기하여 산업화를 싹 틔우던 위그노(신교도)를 탄압한 것은 루이 14세의 결정적인 실정(失政)이었다. 프랑스의 산하는 다시 피로 물들기 시작했고, 기독교 윤리와 자본주의를 청부(淸富) 사상으로 멋지게 결합한 위그노는 당시 유럽 최고의 기술과 상술을 들고 영국으로 대거 건너가 향후 150년간 영국이 프랑스를 앞서는 초석을 놓았다. 루이 14세의 전쟁과 사치는 결국 프랑스의 영광을 속빈 강정으로 만들었다. 루이 14세 후기의 프랑스 국민들은 오늘날 르완다보다 못 살았다. 그러나 '짐이 곧 국가'였으므로 누구도 바른 소리를 못했다. 태양왕은 무조건 옳았다.  

 21세기에 접어들자마자 세계가 하나로 연결되면서, 국가 지도자가 법 위에 군림하는 나라는 이제 지구상에서 거의 사라졌다. '짐이 곧 국가니라!' 이를 행동으로 보여 주는 국가 지도자는 후진국에서도 거의 사라졌다. 전세계에서 가장 못 사는 땅의 태양신 2세는 그렇다 치자! 그러나 거의 모든 방면에서 세계 10대 강국으로 도약한 한국에 날마다 폭포수같이 쏟아내는 말과 누구도 못 말리는 행동으로 '짐이 곧 국가니라'를 강요하는 무이 1세가 등장하여 전국민을 갈등의 소용돌이에 빠트리는 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무이 1세의 역린을 건드리는 자, 누구도 그 앞에서 고개를 들 수 없다. 잉크도 채 안 마른 명예박사 학위증 한 장의 위엄으로 일일이 출석을 체크하면서 박사의 박사인 전국의 총장들을 한 자리에 불러 모아 일장 훈시를 하면, 다소곳이 듣고 대표로 딱 한 명 질문할 수 있을 뿐이다. 그것을 일러 무이 1세가 토론이라면 그런 줄 알고 국어사전을 바꿔야 한다. 

 무이 1세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 자, 누구도 그 앞에서 고개를 들 수 없다. 세계 어딜 가든 국가 원수가 버선발로 달려 나와 환대하는 한국의 대기업 총수도 무이 1세가 부르면 득달같이 달려가서 경제윤리 특강을 고개를 푹 숙이고 들어야 하고, 무이 1세의 뜻을 잘 받든 자들의 빗발치는 고소고발에 의해 감옥에 가기 직전에 천문학적인 돈을 사회에 아무 조건 없이 환원해야 한다. 그렇다고 법인세와 그보다 훨씬 많은 각종 준조세와 여당용 정치자금을 한 푼이라도 깎아 주는 건 아니다.    

 무이 1세의 말에 작은 토라도 다는 자, 누구도 그 앞에서 고개를 들 수 없다. 그런 자는 모조리 친일파 후손에 과거 군사독재 권력의 주구로서 안방극장에서 여론재판을 받아야 한다. 깐죽거리는 언론에 세무사찰은 당연지사고, 설치는 야당에 국정파탄의 죄를 뒤집어씌우기는 기본 전술이다.   

 무이 1세의 철학에 어긋나는 헌법은 '그 놈'의 헌법이고 당장 고쳐야 할 악법이고 고치기 전이라도 무이 1세는 하등 지킬 필요도 없는 헌법소원의 대상이다. 

 대신, 무이 1세의 마음에 드는 이는 무식과 무능과 독선으로 똘똘 뭉쳐 있음이 만천하에 드러나서 여론의 화살이 빗발쳐도 잠시잠깐 회전문에 들어갔다가 번쩍번쩍 빛나는 다른 문으로 나온다.

 무이 1세의 옥음과 칙어는 임기의 제한도 받지 않는다. 구중궁궐의 측근 외에는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고 눈여겨보지 않아도 신문과 방송은 날마다 쏟아지는 무이 1세의 역발상과 역주행에 화들짝 놀라 특집과 중계방송으로 가득 채워야 한다. 무이 1세는 항상 무대의 중앙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야 한다.

 무이 1세 앞에서는 누구든 무조건 열심히 받아쓰고 정성껏 녹음할 의무밖에 없다. 토론한답시고 말대꾸하고 애국한답시고 직언하면, 그 날로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생매장된다. 무이 1세에 따르면, 4년 평균 경제성장률 세계 106위도 참 잘한 것이고 이태백 삼태백을 노래하는 청년 실업률도 별 것 아니고 수치상으로 최근 20년간 가장 악화된 분배도 '몰라서 그렇지 제대로 알고 보면' 해방 이후 최고로 잘한 것이다. 무이 1세에 따르면, 옛날에는 당신처럼 개천에서 어쩌다 용이 났지만 앞으로는 당신이 뿌린 선심 정책 덕분에 무더기로 날 것이다. 무이 1세에 따르면, 북핵과 무관하게 남북은 평화의 탄탄대로에 올라서서 자주평화통일을 눈앞에 바라보고 있다. 평화번영 대북 정책 덕분에 전쟁은 절대 없다! 주변 4강이 막강 균형자 무이 1세의 준엄한 한 마디 말에 일제히 꼬리를 내리고 남북평화통일의 대세를 향해 한 목소리로 짖지 않을 수 없다. 북한은 개혁개방의 길로 들어선 지 오래고 이미 엄청 변했다. 북핵은 절대 용납 못하지만, 인도적 지원은 태양신 2세가 약간의 화해 제스처만 써도 득달같이 올려 보내야 한다.

 무이 1세를 탄생시킨 헌법 위에 군림하는 무이 1세지만, 그도 두려워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떼법이고 국민정서법이고 불법폭력 시위다. 각종 시위를 주도했거나 주도하는 한총련과 민주노총은 무이 1세도 한 수 접고 들어가는 통일의 성골이요 민주의 진골이다. 그들을 향한 '느낌이 참 좋다.' 법원의 최종 판결에 따르면 한 마리도 죽을 리 없는 도롱뇽을 지키는 여승은 정의의 관음보살이고, 미군기지 중 4천805만 평을 돌려 받고 그 10분의 1도 안 되는 349만 평을 평택에 새로 조성하는 것은 전쟁의 지름길이라며 경찰과 군인을 패는 시위대는 민족 정기의 화신이다. 핵폐기물을 야적장에 언제까지나 그냥 쌓아두는 것은 괜찮지만 최첨단 설비로 외딴섬의 땅속 깊숙이 감추는 것은 절대 안 된다며 해골 가면을 덮어쓰고 길바닥에 드러눕는 시위 전문가들은 미래의 비전을 제시하는 선구자다. 쓰레기 소각장, 특수학교, 장례식장, 노인복지시설, 도로, 공장 등 어느 곳이든 시위대는 열 배 스무 배를 우려 내지 않고는 반 발짝도 물러서지 않는다. 시위로 법을 무시하고 폭력으로 헌법을 조롱하면, 무이 1세는 한두 마디 볼멘 소리를 하고는 가만 내버려 둔다.  

 루이 14세는 어쨌거나 프랑스를 유럽의 최강국으로 일으켜 세웠다. 불멸의 작가와 작곡가도 키웠다. 결국 전쟁과 사치로 탕진했지만, 자신의 치세에서 번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무이 1세는 스스로 번 국부도 없고 대한민국을 세계에 우뚝 세운 치적도 없다. 루이 14세가 유럽을 벌벌 떨게 한 것처럼 주변 4강을 벌벌 떨게 한 게 아니라 그들에게 하나같이 밉보였고 사사건건 무시당한다. 오직 한 군데, 아프리카의 가장 가난한 나라도 두려워 하지 않고 태평양의 가장 힘없는 작은 섬도 부러워 하지 않는 북한한테만 잘 보였다. 북한 앞에만 서면 감상적 민족주의가 물밀 듯이 밀려와 눈물이 앞을 가린다. 오로지 생각나는 건 퍼주기뿐이다. '산 자여 따르라, 우리의 소원은 통일!' 비장하게 노래 부르다 보면 금방 목이 메인다.    

                          (2007. 6. 28.)    

 

[ 2007-06-30, 07:20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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