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체비판이 없는 집단은 반드시 망한다
자체비판을 해당행위로 몰고 가서, 민주와 평화의 이름으로 은근슬쩍 친북하고 진보와 정의의 이름으로 당당하게 좌익하는 자들이 당권을 장악하게 도와 주면

최성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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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에는 정부와 여당이 자체비판을 허용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정권교체가 다 익은 감처럼 눈에 아른거리는 듯하자 압도적인 여론의 지지를 받고 있는 거대 야당의 수뇌부와 심판진 그리고 숱한 우국지사들이 오히려 자체비판을 해당(害黨) 행위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노무현 정부는 아직도 국가원수에 대한 자체비판이야 전혀 허용하지 않지만, 여러 차례 선거로 국민의 심판을 받은 여당은 암묵적 동의가 이뤄진 이념 문제 외에는 자체비판을 무한대로 허용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저들은 겉보기에는 지리멸렬하고 있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섬뜩한 자체비판을 통해 핵 폭탄급 에너지를 축적하고 있습니다. 범여권은 암묵적으로 자유민주를 물 먹이는 친북과 시장경제를 목 조르는 좌익으로 하나가 되어 있기 때문에, 언제든지 이산(離散)에 이은 집합(集合)이 가능합니다. 권력의 꿀맛을 10년간이나 본 데다가 벼랑 끝에 선 위기의식을 갖고 있기 때문에 머잖아 그 실체를 드러낼 친북좌익의 뭉침은 이전보다 훨씬 단단할 것입니다.

 강철대오를 갖추고 전선으로 나아갈 저들에게 이기려면, 성역 없는 자체비판 곧 이념 검증을 최우선으로 하는 투명한 검증이 필수입니다. 거대 야당은 현재 자체비판이 활발한 범여권에서 불가침의 성역으로 남아 있는 친북좌익 노선에 대한 자체비판도 허용함으로써, 여야의 차별성을 전국적으로 부각시키고 국민에게 희망을 줄 수 있습니다. 그것만이 국가를 살리는 길입니다. 만약 지금처럼 거대 야당의 수뇌부와 심판진 그리고 정통우익 언론이 중립을 가장하고 눈감고 아옹 식으로 어느 한 쪽을 편들면서 자체비판을 해당행위로 몰고 가서, 민주와 평화의 이름으로 은근슬쩍 친북하고 진보와 정의의 이름으로 당당하게 좌익하는 자들이 당권을 장악하게 도와 주면, 야당이 최후의 결전에서 이기기도 힘들겠지만 설령 형식상의 정권교체를 이루더라도 대한민국으로서는 실질적으로 달라지는 것이 아무 것도 없을 것입니다.  
                  (2007. 7.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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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체비판이 없는 집단은 반드시 망한다

 

 어느 집단이 발전하느냐, 정체하느냐, 퇴보하느냐하는 것은 그 집단이 소멸된 후에는 누구나 쉽게 분석하고 종합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집단이 건재할 때, 그 권력이 다른 집단을 압도할 때, 그 집단에 대해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그 집단 내부의 사람들은 더더욱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대부분 집단 무의식에 빠져 판단력이 흐려지기 때문이다. 아는 방법은 있다.
 그것은 내부 비판의 허용 여부와 그 정도이다.
 
 소련이 미국과 더불어 세계를 양분했을 때, 소련만이 아니라 공산권 국가들은 하나같이 소련이 영원하고 미국이 곧 망할 거라고 생각했다. 이에 반대 의견을 가진 자는 별종으로 여겨지거나 현실을 너무 모르는 자로 업신여겨지거나 기껏 동정의 대상이 되었다.
 
 한 때 동구는 우리 나라 대학가의 이상형으로 받아들여졌었다. 특히 유고는 그 독자성과 거의 완벽에 가까운 법률 체계,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이상적 결합으로 한국의 대학생들로 하여금 밤잠을 설치게 했다. 헝가리, 동독도 찬탄에 가까운 칭송을 받았다. 1인당 GNP도 동독은 12,000 달러까지 얘기되었었다.
 헝가리, 유고는 우리 나라가 3,000 달러 남짓하던 80년대 말에 7,000 달러라는 말이 있었다. 이들은 3차 산업을 GNP에 넣지 않았기 때문에 실지로는 10,000달러가 훨씬 상회할 것이라는 말이 상당히 설득력을 가졌다.
 더군다나 자본주의의 병폐인 공해도 거의 없다고 알려졌다.
 
 뚜껑을 열고 보니 그 말들이 말짱 거짓말임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3차 산업을 죄악시함으로써 양으로만 부풀린 경제는 실지로는 투입한 것(input)보다 더 형편없는 것을 생산(output)하고도 그것을 모두 GNP에 집어넣었던 것이다. 마이너스 성장을 플러스 성장으로 둔갑시켰던 것이다. GNP는 부가가치의 합인데, 그들은 투입은 고려하지 않고 단지 생산총합을 GNP라고 선전한 것이다. 선진국의 객관적인 기준 중 하나가 통계의 신뢰성인데, 그들의 통계는 전혀 객관성이 없었다.
 
 공해도 엄청났다. 심지어 동독은 서독의 산업 쓰레기를 돈 받고 받아서는 그냥 산처럼 쌓아놓기만 했다. 서독은 값싸게 쓰레기를 처리하려다가 통일 후 수십 배가 넘는 돈을 추가로 투입해야 하는 웃지 못할 촌극까지 벌였다.
 저 유명한 말: '공산주의는 공해가 있을 수 없다. 고로 하수도에 흘러가는 저 오물은 오물이 아니다.'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곧바로 자본주의의 썩어 빠진 정신을 가진 자가 되어 반국가 사범으로 끌려갔다. 모두가 정신병자가 되었으되, 주위 사람들이 모두 그러하므로 자기들이 정신병자라는 것을 몰랐다. 설령 알았더라도 '정신병동'에 끌려가지 않으려 찍 소리도 못했다.
 
 조선도 비극의 나라였다. 병자호란 후 전쟁이 전혀 없는 평화의 세월 250년을 보내면서, 온갖 지당한 말을 골라 하면서 양반들은 꿈같이 달콤한 시절을 보냈다. 천국이 따로 없었다.
 그러나 정다산의 목민심서를 보라. 얼마나 조선이 위선으로 가득 찬 나라였던가. 서민들은 호랑이보다 더한 가렴주구에 목숨만 겨우 연명했고 국고는 텅텅 비었다. 국방은 아예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대청(大淸)의 안보 우산에 들어가 자주국방의 필요성은 전혀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일본은 재빨리 근대화하여 무엇보다 국방을 서양식으로 쇄신하여, 조선 병탄에 걸림돌이 되는, 허울뿐인 청과 러시아에게 차례로 싸움을 걸어 이를 당당히 굴복시키고 조선은 총 한방 안 쏘고 그냥 '주웠다'. 국왕이라는 분이 일개 외국 공관에 일신의 안전을 도모하여 피신한(아관파천) 그런 정도의 국방력밖에 없는 조선이라는 나라는 이미 이름뿐이었던 것이다.
 
 북한도 문제는 많았지만 일제가 남긴 당시로선 최첨단 공장과 발전소, 풍부한 지하자원 그리고 소련과 중공의 원조로 한 때는 한국보다 잘 살았다. 그러나 70년대 중반 이후 한국에 완전히 역전되어 토끼털이니 고철이니 송이버섯이니 양귀비니 미사일이니 별의별 걸 다 팔아봐야 1년 총 수출이 삼성전자의 반도체 한 개 라인 정도밖에 안 된다. 겨우 우리 나라의 탄탄한 중견 기업 정도의 수출액 정도밖에 안 되는 5억 달러 남짓하다. 그 결과 인간 중심의 주체사상과는 너무도 동떨어지게 극소수의 '양반' 외에는 물질에, 먹거리에 완전 노예가 되어 버렸다. 너무도 배가 고파 옥수수 밭에서 옥수수 한 대 꺾다가 실탄을 장전하고 지키는 인민군한테 그 자리서 총살당할 정도이다. 쌀 한 됫박이면 치마를 걷어 올릴 숫처녀가 이 골목 저 골목에서 까치발하고 기다리고 있을 정도이다.
 
 도대체 왜 이런 거대한 비극이 끝없이 이어지는가. 왜 그 많은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멸망의 문을 향해 낭떠러지로 몰려가는 쥐 떼처럼 꾸역꾸역, 때로는 씩씩하게 줄 맞춰 가는가.
 
 가장 큰 이유는 비판 세력의 압살이다. 권력 집단이 멋진 명분을 개발하여 그것이 일개 '이론'이 아니라 '진리'로 받들어 모실 때, 거대한 멸망의 길이 활짝 개통된다. 시간의 문제만 남을 뿐이다. 비판 세력이 모조리 '진리'를 거역하는 '악질'로 몰려 타도되고 나면, 자체 비판마저 밝은 태양 아래 안개 걷히듯 사라진다.
 견제할 세력이 전혀 없어서 그 집단의 생명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그 집단이 마침내 자체 모순으로 또는 외부 세력에 의해 무너질 때, 그 굉음은 천하를 뒤덮는다. 땅이 꺼지고 하늘이 무너지고 태양이 얼굴을 가리고 달이 흐느끼고 별이 울부짖는다.
 
 자체 비판이 활성화되어 있을 때는 언제든지 잘못된 길에서 돌아설 수 있다. 그런 상황에서는 반대 세력의 비판도 '비난'과 '욕'이 아닌 따끔한 '경고'와 우정어린 '충고'로 받아들여진다. 반대 세력의 숨통을 끊을 생각을 절대 안 한다. 내부 비판이 살아 있는 한 설령 반대 집단에게 패배하더라도 언제든지 그 집단은 전열을 정비하여 다시 승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박정희 대통령이 김일성을 이긴 이유 중 가장 큰 것은 상대적으로 비판 세력을 대폭 허용한 점이었다. 야당의 세력이 한국에는 만만찮았던 것이다. 국회의 거의 반을 차지했다. 이른바 개발독재국가 중에 이런 나라는 전세계적으로 한국 외에는 단 한 나라도 존재한 적이 없다. 공산독재국가인 북한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야당은 존재할 수가 없었으니까. 항상 100% 찬성이었다. 인간 사회인 이상 생겨날 수밖에 없는 비판 세력은 그 싹과 씨앗까지 하나하나 철저히 제거되었다. 그들은 죽이거나 아우슈비츠보다 가혹한 수용소에 평생 가두었다.
 
 지금도 북한에서는 신년 공동사설이 발표되면 말할 줄 아는 전 인민이 그 긴 말씀을 줄줄 외운다. 전국이 일제히 학습총화에 들어간다. 외우기는 단연 북한이 세계 1등이다. 아무리 뒤돌아보아도 2등이 가물가물 보일 듯 말 듯 하는 압도적인 세계 1등이다.
 
 야당을 거의 허용하지 않았거나 전혀 허용하지 않았던 장개석이나 이광요 또는 등소평에 비해 상대적으로 월등히 관대했던 박정희 대통령도 교만해지고 야당과 민주화 세력을 폭압적으로 내리누르려 하자, 자체 비판도 거의 허용하지 않게 되자, 운명의 여신이 그 생명 줄을 끊어 버렸다. 마지막 5년, 이미 그는 영혼이 떠난 허깨비였다. 누구보다 큰 내부 비판자였던 육영수 여사가 베개머리에서 사라지자 그의 균형 감각은 급격히 무너졌다. 천하의 아첨꾼이자 희대의 정신병자였던 차지철조차 투철한 애국자로 착각할 정도였다. 유능한 관료와 자립 단계에 이른 민간 기업에 의해 겉보기에는 멀쩡하게 경제가 활기차게 돌아갔을 뿐이다.
 
 진통은 틀림없이 따르겠지만, 대한민국은 반드시 북한에 이기게 되어 있다. 통일은 한국 주도로 이뤄지게 되어 있다. 한국의 국민은 집권자에게 감히 비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에 심히 우려할 만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어 장담할 수가 없다. 정부와 여당에 자체 비판이 거의 사라졌기 때문이다. 오로지 대통령의 심기와 대통령의 의중과 대통령의 말씀과 대통령의 논리와 대통령의 '밥상머리 교육'에 경건하게 옷을 여미고 공손히 받자와 듣고 또박또박 받아쓰고 글자 한 자 틀리지 않게 외워서 전국 방방곡곡에 널리 알려야 한다. 사석에서도 말 한 마디 잘못하면 '올해의 공무원'으로 뽑힌 공무원도 하루아침에 전보발령이 나거나 대기발령이 난다. 야당과 언론과 시중에서야 무슨 소리를 하든 여당과 청와대와 정부는 오로지 대통령의 개혁 정치와 평화번영 정책을 적극 홍보해야 한다.
 
 대통령을 비판하는 야당과 언론은 청와대로부터 반민주, 반통일, 반개혁, 부정부패의 오명을 뒤집어쓴다. 경제인들이 모여 시장이 불확실하다고 조심스레 운을 떼면, 무엇이 불확실한지 구체적으로 말씀해 보라고 되묻는다. 불법대선자금을 야당에 압도적으로 많이(?) 준 죄인으로서 재계가 찔끔하여 눈치를 살피면, 딱 꼬집어 말도 못한다며, 얼굴의 주름살을 활짝 펴며 대통령을 믿고 열심히 투자하라고 격려하고는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운다.
 
 400여명의 교수들이 제발 민생에 전념하라고 시국선언문을 발표하는 것과 때맞춰 '공공 일자리를 늘리겠다, 민간기업의 정년을 늘리겠다, 복지예산을 늘리겠다' 등등 뿌리가 같은 국민의 정부가 원도 한도 없이 발행하고 투입한 국채와 공적자금을 다 합치면 경제개발 이후 모아 놓은 국부를 몽땅 쓰고도 모자란 걸로 알고 있는데, 어디에 또 그렇게 참여 정부가 몰래 황금이라도 산더미같이 쌓아 놓았는지, 아니면 총선 전에 서해 앞 바다에서 이라크의 유전 만한 유전이 터지기로 되어 있는지, 인심을 팍팍 쓴다. 정부의 이런 발표에 대해 야당과 언론은 즉각 삿대질을 하지만, 여당과 청와대는 일제히 삼삼칠 박수를 친다. 친여 언론과 방송은 대서특필하고 특별 프로를 편성한다. 전에는 '미스터 바른 소리' 한 명이라도 있었는데, 이제는 당이 갈라졌으니, 그마저도 내부 비판이 아니다. 남남끼리의 험담이요, 비방이요, 저주다. 비판을 평생 직업으로 삼은 줄 알았던 열린우리당의 의원들은 어찌된 셈인지, 대통령의 말씀은 어찌나 잘 외우고 이해하는지 그 놀라운 변신에 절로 입이 벌어진다.
 
 잘 되는 나라일수록, 잘 되는 기업일수록 자체 비판이 활발하다. 동서고금 어떤 위대한 지도자든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완벽에 가까운 인간이 아니라 오히려 결점과 실수가 누구보다 많지만, 위대한 지도자는 마음의 귀가 커서 상대가 누구든 특히 측근으로부터 거슬린 소리를 귀담아 듣고 거기서 지혜를 얻어, 멋진 지시를 하달하여 아랫사람들이 신나게 일하게 하고 그들이 빛나는 업적을 쌓으면 그것을 슬그머니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인간은 그 누구도 신이 될 수 없다. 이 점에서 인간은 누구나 평등하다. 인간의 생각은 그 어떤 것도 '이론'의 범주를 벗어날 수 없다. 어떤 인간도 '진리'를 알 수는 없다. 이론을 희미한 등불로 삼아 진리에 다가갈 뿐이다. 어떤 집단이 진리에 이르는 길을 독차지하고 다른 이론의 접근을 원천 봉쇄하면, 그 순간 그 집단은 진리에서 멀어진다.
 
 다른 집단이 비판하면 그것은 반대를 위한 반대일 수도 있다. 그러나 집단 내부에서 비판하면 그것은 하나같이 그 집단을 살리기 위한 '보약'이다. 이마저 허용하지 않으면 그 집단은 이미 더 이상 볼 것이 없다. 긴긴 인류 역사가 이를 너무도 생생하게 잘 보여 준다.
 
 정권은 유한하나 국가는 영원하다.
 
 (2004. 1. 20.)
 
 

[ 2007-07-01, 15:33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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