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가 본 "이해할 수 없는 한국"
웃음이 많고, 관리가 인사받고, 태극기 많이 걸리고, 주차를 안심하고 하고, 그리고 친북무식자들이 큰 소리치고.

장진성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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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가 본 “이해할 수 없는 한국”




폐쇄국가인 북한에서 살다가 보지도 듣지도 못했던 자유민주주의 현실에 탈북자들은 작은 것까지도 크게 놀라군 한다. 그래서 탈북자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모든 놀라움도 자기가 이제부턴 한국 국민이란 자긍심을 가지면서부터는 점차 안정된다. 혹은 정착 생활이 고단해서 새롭고도 놀라웠던 것들이 빨리 잊혀질지도 모른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가슴속에 너무도 오랫동안 남아있는 것이 있다. 그것은 탈북자가 본 이해할 수 없는 한국이다.




가장 먼저 이해하기 힘들었던 것은 탈북자들이 공항에서 한국 땅에 첫발을 짚을 때 많은 사람들, 특히 공항직원들이 정중히 머리 숙여 인사하는 모습이었다. 북한은 계층사회이다. 살아있는 사람, 김정일이 나라의 첫 번째이기 때문에 특권층, 권력층의 순서대로 사람의 순서가 정해져 백성은 마땅히 마지막이다. 그래서 아무리 나이 많은 노인도 젊은 간부 앞에선 반드시 먼저 머리 숙여 인사 한다.




인사를 누가 먼저 하고 누가 먼저 받는가가 곧 신분을 규정하기 때문에 백성들은 예의에 대한 부담감이 크다. 즉 순종과 복종의 의미로만 알고 있던 먼저 인사가 한국에선 인간평등의 소유물로 공유되고 있다는데 대해 처음에는 어리둥절해 한다, 그래서 탈북자들은 공항에서 직원들로부터 인사를 받을 때 어색한 표정과 눈물겨운 감동을 받는다. 그러면서도 정작 인사 받은 자기들은 그들에게 인사할줄 모른다. 태어나 처음으로 사람대접 받은 순간이 황송하기도 하고 또한 야릇한 행복으로 자꾸 웃음이 나기 때문이다.




웃음이란 말이 나온 김에 한마디 더 한다면 탈북자들은 미소에 습관돼지 못했기 때문에 타인의 미소에 약하다. 이중삼중의 조직적 통제와 감시 속에서 생활해야 하는 북한 사람들에게 있어서 대인관계란 곧 명령과 복종의 관계이며 경계심과 갈등의 연속이다. 더욱이 북한은 권위주의 국가여서 사회생활에서의 웃음이란 아랫사람의 것, 윗사람의 것은 존엄이다. 이런 대인관계가 지속되는 체제여서 남이 자기에게 미소를 지으면 그것은 진심이던가, 아니면 배신이다. 남한은 서비스사회여서 누구나 미소를 쉽게 주고받을 수 있지만 북한은 이렇게 개인적인 관계에서만 웃을 수 있기 때문에 탈북자들은 남한 사람들이 자기를 향해 미소 지으며 다가서면 날 좋아하는가? 날 사랑하는가? 하고 심하게 착각하기도 한다.




다음으로 한국에서 이해하기 힘들었던 것은 집집마다, 혹은 가게마다에 태국기가 걸려있다는 것이다. 국가주의로 충만 된 북한이라도 스스로 인공기를 집마다, 가게마다에 거는 사람은 절대로 없다. 명절이나 행사 때마다 당, 행정 지시에 의해서만 걸려진다. 국기는 곧 국가이다. 북한 사람들은 김부자 신격화에 세뇌되어 초상화는 응당하다고 생각할진 몰라도 국기, 즉 국가까지 숭배할 여유까진 없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국가우월주의가 없다. 가장 빈곤한 나라의 국민만이 가질 수 있는 일종의 국기 무관심인 것이다.




다음으로 이해될 수 없었던 것은 거리에 차가 많은 것보다 그 많은 차들을 밖에 태평스럽게 주차시킨 다는 것이다. 북한에는 차가 많지 않다. 그 귀한 보물을 밖에 버리다시피 주차시킨다는 것은 도둑에게 그냥 가져가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차가 부족하다나니 부속품들도 부족해서 차 있는 사람들은 자기 차를 수리하기 위해서, 차 없는 사람들은 시장에 내다팔기 위해 밖에 주인 없이 주차된 차들을 무차별적으로 사냥한다.




그래서 북한에선 개인은 물론 국가기관까지도 전용 주차장이 있으며 두툼한 쇠문에는 자물쇠들을 두개, 세 개씩 채워놓는다. 십분 동안 밖에 주차를 하는 경우에도 반드시 돈 주고 사서라도 인간 자물쇠를 세워둔다. 그렇게 해도 국가 중앙기관까지 경비 몰래 침입하여 멀쩡한 차들을 뜯어내는 판이다. 때문에 북한 차들은 순종 품 차종이 별루 없다. 외형은 도요다이지만 엔진은 벤츠이고 타이어도 제각각, 심지어는 백미러나 차 LOGO 까지 남의 것을 훔쳐 붙인다.




다음은 한국 사람들의 양비문화이다. 한 끼 밥을 먹었으면 됐지 1차, 2차로 계속 이어진다. 북한에선 한 끼 식사가 곧 생존이다. 북한 사람들에게 삶의 목적이란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아남는 것이다. 저녁 한 끼는 곧 그 하루의 평안과 안녕, 건강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렇게 큰 한 끼지만 한국 사람들은 그것도 부족해서 2차, 3차로 탐식한다. 북한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서 먹는데 한국 사람들은 먹기 위해 사는 것 같다.




그래선지 한국의 밤도 이해하기 힘들다. 북한에선 저녁 한 끼를 먹고 나면 다음날 걱정으로 그 밤이 더 어둡다. 볼거리도 놀거리도 없는 나라인데다 전기까지 부족해서 음침한 거리는 벌써 10시만 돼도 인적이 드물다. 같은 밤이지만 한국의 밤은 이렇게 북한 밤보다 더 길다. 시인들은 새벽을 희망으로 표현하지만 사실 희망은 밤에 있다. 밤의 어둠에 짓눌린 사람들에게 새벽이야말로 얼마나 더 큰 고통의 시작일까, 삶의 낙과 오락의 자유마저 상실당한 북한 사람들은 10시면 자는 시간으로 알고 있지만 한국의 10시는 많은 즐거움의 시작이다. 결국 한국 사람들은 그 밤으로 하여 북한 사람들보다 인생을 두배로 더 길게 산다고 봐야 할 것이다.




탈북자가 본 “이해할 수 없는 한국”, 그것을 말하기엔 너무도 끝이 없다. 그러나 그 모든 요지경들도 한국에서 살다나면 동화되고 현지화 되어 옛말처럼 될 수 있다. 그러나 단 한가지, 정말로! 정말로! 이해할 수 없는 단 하나는 남한의 친북 좌익세력들이다. 북한은 사회주의 체제가 인류역사에 다시는 반복 되선 안 된다는 것을 보여준 산 모델이며 생생한 동영상이다.




그 어떤 현상도 반드시 이유가 있다. 그러나 그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고 설명될 수 없는 전무후무한 반인간국가인 북한 체제를 동경한다는 것은 사상병이라기보다 인간적으로 정신병자이다. 그들은 평화수호, 인도주의, 전략적 접근 등 요란한 말들로 자기들의 정신병을 변명하고 포장하려고 하지만 자기들이야말로 평화, 인도, 전략 착각과 오해를 하고 있는 것조차 모른다. 한국은 너무도 다양한 사회이다. 그래서 이런 친북 무식도 통하는 것일까

[ 2007-07-29, 21:10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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