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휴가, 화려한 평양행, 시큰둥한 민심
<화려한 휴가>에는 <디워>가 있고, <화려한 평양 나들이>에는 북한 인권과 북핵과 아프가니스탄의 아픔과 야당의 민주 잔치가 있다.

최성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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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분오열된 범여권이 신났다. DJ의 거듭된 훈수와 노빠의 노골적인 편들기에도 불구하고 대통합은커녕 수십 명이 나도 나도, 좀더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말뚝이나 장승이나 참새나 닭이나 뜻이나 제대로 아는지 제갈공명의 출사표를 비장한 목소리로 흉내내며 지리멸렬하던 범여권이 아연 활기를 띠고 있다. 그들은 때맞춰 기획 출시된 영화 <화려한 휴가>가 나오자마자 표를 싹쓸이하여 눈물 보따리를 짊어지고 다투어 몰려가더니, 사실상 임기를 3개월 남겨 둔 대한민국 대통령이 기어코 <화려한 평양 나들이> 계획을 발표하자마자 12월의 대회전(大會戰)은 따 놓은 당상인 양 감격의 폭죽을 터뜨리며 똑같은 코드에 맞춰 환영일색이다. 도심지의 늦여름 매미들이 갖은 소음과 동료들의 괴성을 뚫고 뾰족하게 튀어 오르는 소리를 내어 기어이 암컷을 차지하는 영광을 누리려고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다투듯이, 여론 지지율 한 자릿수의 고만고만한 수십 명 중 과연 각하가 누구를 평양으로 데려갈 것인지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일제히 무조건 충성의 굳은 맹세를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더 화려하게 멋있게 기발하게 할 것인가에 목숨을 걸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우스꽝스러운 평양의 영화를 나날이 닮아 가는 서울의 코드 영화가 한통속 방송과 짜고 쓰는 평론과 제작비를 능가하는 홍보비와 스크린 사수의 탁발승 행렬과 하나같이 뻔한 이야기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어설픈 흉내내기에 속고 식상하고 지친 관객들이 수십 편의 국산 영화를 싸늘하게 외면하자, 충무로는 벤츠와 렉서스와 BMW의 연식(年式)이 테헤란로의 그것보다 눈에 띄게 뒤떨어지기 시작했다. 북한에서 김일성 장군의 만주항일투쟁이 대를 이은 공산봉건독재의 초석으로서 신성불가침의 영역이 된 것처럼, 한국에서 지난 20여년 사이에 압도적인 외세를 끌어들인 김일성의 남침으로 6백만이 희생된 6·25사변을 제치고 햇볕정책의 초석으로서 신성불가침의 영역이 되어 버린 광주민주항쟁은 드라마와 소설과 영화에서 다루기만 하면 신화도 역사가 되고 전설도 사실이 되고 픽션도 다큐멘터리가 되면서 박수와 한숨과 눈물과 돈과 표가 절로 따라온다. 

 난데없이 '영구가 나타났다!' 우르르 사람들이 그리로 몰려간다. 애가 단 영화 도사들이 아무리 그건 엉터리라고 탄탄한 논리와 화려한 글발로 알려 줘도 <화려한 휴가>야말로 진짜라고 날마다 띄워도, 바보 영구가 만든 <디워>는 국민의 20%가 의무적으로 볼 <화려한 휴가>의 기록을 하루가 다르게 깨뜨리고 있다. 역전은 눈에 보듯 뻔하다. 반미 코드와 엄청난 홍보로 크게 재미 본 <괴물>의 컴퓨터 그래픽보다 그 허접스러운 스토리보다 500년 만에 여의주를 얻어 용으로 승천한 착한 이무기의 CG와 전설이 수십 배 낫다며 어린애에서 노인에 이르기까지 영구 아트로 몰려 들고 있다.

 연이은 좌파정부의 공허한 추상명사와 북한 주민에 대한 악어 눈물을 이제는 최소한 50% 이상의 국민이 훤히 꿰뚫고 말이 아닌 행동으로 글이 아닌 생각으로 슬슬 범여권과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화려한 평양 나들이>도 마찬가지다. 2000년과 같은 맹목적이고 거국적인 환영은 이제 어디에도 없다. 어질고 착한 국민답게 여전히 찬성이 다수이지만 조건부 찬성이 많고 기대보다 염려가 많다. 속고 속고 또 속았기 때문이다. 편지 한 통 주고받지 못하고 전화 한 통 주고받지 못하고 천만 이산 가족이 각자 집으로 단 한 명 찾아가지 못하는 남북교류란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인권 대신 핵무기로 승리의 찬가를 부르고 개방 대신 미사일로 선군정치의 축포를 쏘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굳게 믿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훤히 꿰뚫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의 23명 인질 가운데 이미 2명이 희생된 것에 국민들은 더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정부의 무능함과 시민단체의 얼토당토않은 반미 놀음에 정통 언론과 국민들이 함께 분노하고 있다. 인질 소식은 연일 방송과 신문의 톱뉴스와 특집을 장식하다가 <화려한 평양 나들이> 계획이 발표되자마자 방송과 신문이 일제히 카메라와 마이크를 그 쪽으로 돌려 대고 있다. 인질 23명이 2300만 북한 주민과 자연스럽게 오버랩된다. 300만이 굶어 죽었으니, 100만 명에 1명 꼴이라면 인질도 1명 더 죽지 않을까 공연히 걱정된다. 

 <화려한 평양 나들이>에 요란한 방송과 신문과는 달리 시큰둥한 국민들이 더 많은 듯하다. 신문에도 감히 비판적인 논설과 적대적인 광고가 실리기도 한다.  2000년과는 사뭇 다르다. 6·25사변을 겪은 후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자명한 진리로 믿게 된 국민들은 오히려 범여권을 압도하는 야당의 대표선수 선발전에 귀와 눈을 더 기울이고 모은다. 세한도의 소나무처럼 탄핵 역풍 속에서 어제의 차떼기당이 오늘의 천막당으로 거듭 나서 푸릇푸릇 살아남아 연일 벌이는 민주적 경선 잔치에 국민적 관심이 더 쏠린다. 1등과 2등의 차이가 점점 좁혀지고 가짜와 진짜가 서서히 가려지는 듯하여, 아무런 다툼 없이 일방적으로 1등이 결정되고도 2번이나 패전한 지난번과는 달리 이번에는 치열한 자체 선발전으로 내성과 맷집과 논리가 생길 대로 생기고 늘 대로 늘고 개발될 대로 개발되어 권력과 방송과 각종 문화적 정치적 이벤트에도 불구하고 한 번 해 볼 만하다는 기대가 점점 커지고 있다.

 일방적 홍보로 코드 관객을 모으는 <화려한 휴가>에는 입 소문으로 구름 관객이 몰려드는 <디워>가 있고, 제2의 남북공동선언을 꿈꾸는 <화려한 평양 나들이>에는 <북한 인권과 북핵>과 <아프가니스탄의 아픔>과 <야당의 민주 잔치>가 있다. 급변 사태가 없는 한, 돌발 상황인 없는 한,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와 시장경제가 다시 살아날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높다.   

                        (2007. 8. 10.)  


        

[ 2007-08-10, 20:58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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