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의 애국심과 김대중의 사리사욕
박정희는 순수했기 때문에 항상 귀가 열려 있었지만, 김대중은 엉큼했기 때문에 입으로 누구든 제압하려고 들었다.

최성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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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희는 죽어서 오늘도 꽉 다문 입으로 말없이 휴전선의 땅굴과 북방한계선(NLL) 바다 아래 참수리호의 녹슨 파편 사이를 오가며 차마 이승을 떠나가지 못하고 있고, 김대중은 살아서 오늘도 신장 투석하는 노구를 이끌고 이역만리 미국에 가서 가시 돋친 입으로 한반도의 평화를 역설한다.

 옛말에 마음이 순수하면 설령 목표를 이루지는 못하더라도 과히 그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는다(雖不中不遠)고 했다. 막강한 두 외세를 등에 업은 김일성의 공산침략으로 미증유의 동족상잔을 겪은 지 10년도 안 되어 국민학생마저 여차하면 데모에 나서는 등 혼란이 극에 달한 나라에서 구세주를 바라는 시대적 소명에 부응하여, 박정희는 날아오는 총알 사이로 당당히 고개를 치켜들고 북극성과 북망산을 동시에 쳐다보며 이 쪽이든 저 쪽이든 국군을 단 한 명 희생시키지 않고 뚜벅뚜벅 한강대교를 건너는 데는 성공했지만, 군사 전문가로서 안보에 관한 한 맥아더 못지않게 잘 알았을 뿐 정치도 몰랐고 경제도 몰랐다. 일개 국회의원이면 누구나 할 수 있었던 청산유수의 말로 군중을 들었다 놓았다 할 줄도 몰랐다. 국민들에게 당장 간도 쓸개도 빼 줄 것 같은 천연덕스러운 정치인의 표정 연기도 할 줄 몰랐다. 수줍음 많았던 구미 상모동 어린 시절의 촌티를 그제도 벗지 못하여 궂은 날에도 선글라스를 끼고 딱딱한 얼굴로 할 말만 직설적으로 카랑카랑하게 짧게 짧게 말하는 '썰렁 모드'로 일관할 만큼, 그는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을 어려워했다.    

 정치인이든 경제인이든 학자든 기자든 다들 박정희 소장을 우습게 봤다. 고려 중기의 무신 정중부처럼 잠시잠깐 기세등등 설치다가 또 다른 군인에 의해 쫓겨나거나 민심의 역풍을 맞아 가랑잎처럼 사라지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박정희가 성공하면 내 손에 장을 지지라!'--이렇게 호언장담하는 사람들이 어딜 가든 발부리에 채었다. 서울의 다방에서든 계룡산의 바위 아래서든 확신에 찬 예언자들이 박정희가 곧 거꾸러질 테니까 조금만 참으라고 어리석은 사람들을 다독였다. 

 참으로 이상한 일은 어설프기 짝이 없던 박정희가 약간의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안보든 정치든 경제든 외교든 교육이든 하나하나 놀랍게 변신시키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모택동이나 김일성이 인민복을 입고 서민인 척 황제 내지 신의 신분으로 평생을 군림하거나 카스트로나 카다피처럼 1년 365일 애국심으로 전전긍긍하는 척 군복을 입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평생을 통치하는 것처럼 박정희도 군복을 입고 평생을 통치해도 누구도 감히 대들지 못했을 텐데, 그는 군정도 불과 2년 만에 그만두고 민간인 신분으로 대통령에 입후보하여 1948년 건국 이후 가장 공명한 선거로 약간의 눈짓만으로 95% 지지표를 받을 수 있었던 군인의 표마저 상대 후보보다 더 적게 받았지만 당당히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대통령이 된 후에 박정희는 갑자기 근대화의 지도자로서 스스로 권위를 갖추기 시작했다. 더 이상 뭘 모르던 군인이 아니었다. 그는 경제에 관한 한 대한민국만이 아니라 세계의 기록을 모조리 갈아치우기 시작했다. 영국-미국-독일-일본으로 이어지는 세계적 경제 기적의 신화가 박정희에 의해 모조리 깨뜨려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무엇보다 그는 2차 대전 후 후진국이 선진국으로 올라서는 새로운 경제 모델을 만들었다. 서구 경제학자나 동구 공산이론가나 일본 경제학자나 한국 경제학자 그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박정희 경제 모델을 만들었다.

 올챙이 시절 모르는 서구 내지 일본의 경제학자나 유목민의 약탈경제와 농업의 시작과 더불어 1만 년 전에 절로 없어진 구석기시대의 공동생산 공동분배 방식을 무슨 대단한 경제이론인 양 유일무이한 궁극의 경제이론인 양 강변하고 강요한 소련과 중공과 동구의 공산 이론가나 원숭이 머리에 앵무새 입을 가진 한국의 경제학자가, 인구만 바글바글 거리고 땅이 좁은 나라에서 조상의 더러운 피를 이어받아 머리에 약간의 먹물만 들면 직접 생산활동에 종사할 생각은 추호도 않고 권모술수와 중상모략과 곡학아세로 권력을 잡아 국민을 상대로 가렴주구(苛斂誅求)하려고 환장한 나라에서, 자전거 한 대 만들 줄 모르고 연필 한 자루 제대로 만들 줄 모르고, 플라스틱 장난감 한 개 만들 줄 모르고,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세계제일의 제철소를 만들고, 세계제일의 조선소를 만들고, 세계 7번째로 미사일을 만들고, 세계 유수의 석유화학공장을 만들고, 세계를 누비는 자동차 공장을 만들고, 세계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 가전제품을 만들 수 있으리라고 상상할 수 없었던 것은 그들의 잘못이 아니다. 단지 박정희가 그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영웅이었기 때문이다. 박정희의 경제모델은 후일 UN에서도 개도국의 가장 이상적인 경제모델로 추천되었고, 그 이전에 이미 한국의 적성국가였던 중국과 러시아와 말레이시아와 베트남과 인도마저 거의 그대로 베낀 경제모델이 되었다.

 반신반의하던 한국의 국민들이 열렬히 박정희를 따르기 시작했다. 그가 죽은 지 20년이 다 되어 가는 지금도 아무리 민주와 평화를 독과점한 자들이 '사실은 그게 아니라'고 눈을 부라리며 고래고래 외쳐도 국민의 70% 내지 80%가 아랑곳없이 박정희를 흠모한다.

 어떻게 해서 이런 기적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나는 그것을 박정희의 애국심 때문이라고 본다. 그는 투철한 애국심이 있었기 때문에, 헤어진 가죽 혁대를 차고 파리채로 열린 창문으로 들어온 파리를 잡으면서 집무실에 거대한 대한민국 지도를 걸어놓고 거기에 빽빽하게 공장과 도로와 새마을을 표시하고 새로운 수치로 바꿔 적는 걸 가장 큰 낙으로 생각한 용광로보다 뜨거운 애국심이 있었기 때문에, 박정희의 귀는 항상 열려 있었고 그랬기 때문에 올바른 말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바로 알아듣고 즉시 실행할 수 있었다. 정치색을 띠지 않은 숨은 인재가 그의 주위로 하나둘 몰려 들었고, 그는 그들을 하나같이 중용해서 믿고 맡기고 수시로 점검하고 확인하고 격려하고 칭찬했다.

 박정희의 테크노크라트(technocrat)들은 진시황의 목을 노리고 떠나던 자객 형가(荊軻)처럼 비장한 심정으로 목숨을 다 바쳐 일하고 또 일했다. 박정희의 한 마디 칭찬이면 그들은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행복해 했다. 형가는 하늘보다 높은 진시황의 목을 베지 못하고 가볍게 목 베임을 당했지만, 박정희 시대의 저 위대한 명(名) 장관들은 진시황의 목을 베기보다 어렵다던 누천 년 가난의 귀신을 목베는 데 마침내 성공하고 가난을 숙명으로 알던 나라를 젖과 꿀이 흐르는 나라로 만들었다. 김정렴, 오원철, 박충훈, 남덕우, 장기영, 김학렬, 최형섭 등은 비서실장으로 경제수석으로 경제장관으로 과학기술장관으로 고3 수험생보다 더 열심히 공부하고 이순신 장군 휘하의 장수보다 더 열심히 경제전선에서 뛰었다. 그들은 너무도 행복한 마음으로 일하고 또 일했다. 정주영, 이병철, 박태준 등 경제 영웅들도 속속 등장했다. 알찬 중소기업도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다방이나 술집에 가면 온통 사장 천지가 되었다.

 박정희는 영혼은 차마 이승을 떠나지 못하고 오늘도 휴전선과 북방한계선에서 헤매고 있지만 시신은 이미 먼지와 흙으로 변했다. 그러나 박정희 휘하의 명 장관들은 아직도 대부분 살아서 햇빛 찬란하던 지난날을 곱씹으며 검은 구름이 나날이 짙어 가는 대한민국을 밤낮으로 걱정하고 있다. 이들은 하나같이 명 장관은커녕 박정희 시대의 가장 한심한 초기 몇몇 장관들보다 나은 장관조차 지난 15년 동안 단 한 명 배출되지 않는 현실을 안타까워 하고 있다.  

 김영삼이나 노무현은 김대중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김대중만 제대로 알면 이들은 절로 파악된다. 지금도 광팬들이 열렬히 숭배하는 김대중은 왜 경제든 안보든 교육이든 속 빈 강정으로 만들었을까. 단 한 명 명 장관을 배출하지 못했을까.

 김대중은 애국심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사리사욕으로 똘똘 뭉쳤기 때문이다. 무얼로 알 수 있느냐고? 행동으로 알 수 있고 정책으로 알 수 있고 결과로 알 수 있다. 민주와 정통성과 자주와 평화의 하얀 옷으로 김대중은 자신을 감쌌다. 자신을 순수 그 자체로 포장했다. 이를 한 마디로 일러 '행동하는 양심'이라고 자랑했다. 이게 바로 거짓의 반증이다. 아름다운 명분은 말로 하는 게 아니다. 행동으로 보여야 한다. 조선의 사대부도 자멸한 공산국가의 공산당원도 언제나 아름다운 명분의 오색 구름을 타고 다녔다. 그들은 날마다 민심의 천심을 말하고 노동자농민의 천국을 외쳤지만 막상 자신은 발에 흙 하나 묻히지 않았다. 행동은 늘 그와 정반대다. 다른 사람의 말은 절대 듣지 않는다. 특히 바른 말은 절대 듣지 않는다. 아첨과 절대복종을 요구할 뿐이다. 자신의 생각과 다르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해괴망측한 논리로 상대를 깔고 뭉개거나 정적을 사악한 인간으로 몰아 공공의 적으로 만들었다.

 김대중이 공천권을 흔들면서 그것을 민주요 독재와의 투쟁이라고 하면 구름같이 사람들이 몰려 들어 무릎을 꿇고 돈을 바쳤다. 소련군의 철두철미한 앞잡이로서 김일성이 무자비하게 정적을 축출한 것을 은은한 배경으로 깔고 '친일파 척결'을 외치면, 구름같이 사람들이 몰려 들어 그것이야말로 당신이 바로 세우려는 정통성이라고 뭇 입들이 찬양하면, 동지야말로 애국자라며 장관도 시켜 주고 공기업 사장도 시켜주고 국회의원도 시켜 주었다. 일제가 남긴 공장과 소련이 넘겨 준 무기와 중공이 대 준 물자에 기대어 주체의 깃발을 높이 치켜들고 있는 대로 뜯어먹고 끼리끼리 갈라 먹으며 하루도 빠짐없이 미 제국주의를 규탄하고, 어느 날 갑자기 제 앞가림도 못하게 되거나 돈맛을 알게 된 두 공산 종주국이 더 이상 공짜로 물자를 대 주지 않자 300만의 동족을 파리 죽이듯 굶겨 죽여 놓은 후에 날마다 욕하는 미제(米帝)와 이제 고분고분해진 '남조선 괴뢰'로부터 구걸해서 10년이 넘도록 공산당과 군대만 간신히 유지하는 김정일과 부둥켜안고 우는 것을 자주요 평화라고 학자와 언론인과 재야가 맞장구치면, 그는 버선발로 뛰어나가 동교동의 대문을 열어 주었다.

 지금도 김대중은 제2차 남북최고위급회담을 앞두고, 미국에 가서 마치 모든 책임은 미국에 있다는 듯이 씨도 안 먹힐 궤변을 천연덕스럽게 늘어놓고 있다.        

 노조의 귀족과 한총련의 간부와 친여 시민단체의 양반과 농촌의 좌식(坐食)계급과 방송의 성골(聖骨)은 김대중이 싫어하는 말은 자체 검열로 미리미리 삭제한다. 히틀러와 유인(裕仁 히로히토)과 모택동과 스탈린 시대보다 극악한 북한의 인권상황에 대해 이들은 절대 언급하지 않는다. 오로지! 김일성 시대의 인권보다는 수천 배 수만 배 나았고 근면성실한 국민들에게는 김대중 시대의 인권보다 훨씬 나았던 박정희 시대의 인권 상황에 대해서는 캐고 또 캔다. 시장환율로 계산해서 매년 북한의 1년 총예산보다 20배 정도 보내는 한국의 돈과 물자가 미사일과 핵무기 발사와 북방한계선 침략으로 돌아와도, 그것이 단 한 명 북한의 절대다수 하층 주민에게 쓰였는지 알아 보는 일이 없다. 독재자의 선의를 철석같이 믿는다. 북한의 공산귀족과 '남조선 해방군'을 사실상 먹여 살리면서도 이승만 식 또는 등소평 식 농지개혁하면 1년 안에 국제 사회에 더 이상 구걸할 필요 없다는 말도 김대중이 원하지 않고 김정일이 발끈할 게 뻔하니까, 절대 입 밖에 못 낸다.

 자주는 구걸이 아니라고 절대 말 못한다. 아무도 쳐들어갈 리 없으니까 인구 비율로 세계 최고로 많은 군대를 줄이라는 말도 절대 못한다. 그렇게 하면 김정일이 대노할 것이고 자연히 선생님의 80 평생 거짓이 다 들통나기 때문이다. 애국애족과 평화애호로 포장했던 노벨평화상 수상자의 사리사욕이 다 들통나기 때문이다.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세계 경제가 전대미문 최고의 호황을 맞이했지만, 어린이를 청소년을 거쳐 성인으로 키워 독립시키듯이 시장경제를 나날이 키워서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린다는 박정희의 큰 그림은 전혀 보지 못하고 외환위기를 빌미로 낡은 박정희 패러다임을 버린다며, 김대중이 국내 기업은 손발을 묶고 외국 기업은 청탁을 불문하고 한 번 날갯짓에 9만 리를 난다는 붕새의 날개를 달아 주어 마구 퍼 주는 신판 사대주의 정책을 뿌리내리면서, 대한민국은 새로이 도약하기는커녕 성장잠재력을 다 갉아 먹고 박정희가 노심초사 마련하고 전두환과 노태우가 덧보탠 이전의 동력으로 간신히 버티고 있다. 김대중의 충실한 후계자는 한 수 더 뜨고 있다. 가진 자 손 보기와 국가채무 기하급수적으로 늘리기와 전국적으로 부동산 부자들을 대거 만들기와 직접세 간접세 가리지 않고 세금이란 세금은 왕창 걷어 인심 팍팍 쓰기가 현재 한국의 가장 큰 경제 정책이다.   

 무엇보다 한 번 무너지면 모든 것이  그라운드 제로(ground zero)인 안보 상황이 월남 패망 직전을 방불하게 한다. 월맹은 핵무기가 없었고 월맹은 장거리 대포와 미사일도 없었고 월맹은 잠수함도 없었지만, 북한은 그 모든 것을 갖추었다. 월맹은 자국민을 상대로 한 강제수용소도 없었고 철통같은 경비를 뚫고 목숨을 걸고 조국을 탈출하여 중국으로 도망가는 사람도 없었지만, 북한에는 최소 20만 최대 100만 명을 말 한 마디 기분 나쁘게 하고 눈 한 번 공산당원에게 흘기고 한국의 방송 한 번 듣고 한국의 유행가 한 곡 부르고 수령님과 장군님 초상화가 구겨지거나 거기에 먼지 앉았다고 성경 한 줄 읽었다고 만주에서 한국 사람과 한 번 만났다고 간첩죄로 몰아 다짜고짜 3대의 가족을 끌어가서 평생토록 강제노동을 시킬 뿐 아니라 고문과 폭력과 감금과 굶주림으로 날마다 600여 명을 죽인다.

 그리하여 북한 땅 전체를 참혹한 감옥으로 만들어 누구나 기회만 있으면 탈출하려고 한다. 이에 거짓과 고발과 상호감시와 통제와 폭력과 굶주림으로 2천만 동족을 다스릴 뿐이다.

 월남은 학생과 지식인과 종교지도자는 날마다 민주를 내세우며 월맹 전면 침략의 구실을 제공했지만 최소한 대통령은 월맹의 흉계를 알았다. 그러나 한국은 청와대의 신구 주인이 빨간 넥타이를 매고 눈을 예쁘게 뜨고 주적(主敵)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들어 50년 평화의 주춧돌과 대들보인 주한미군과 국군이 어디로 총부리를 겨누어야 할지 모르게 양동(陽動)작전을 편다. 날마다 선군정치를 외치고 지금도 통일은 전쟁으로만 가능하다고 강변하며 휴가 없는 10년 장기 복무에 시달리며 명령이 떨어지기만 바라는 인민군에 맞서 태평양을 건너고 아메리카 대륙을 가로지르고 다시 바다를 한참 가야 닿을 수 있는 쿠바의 장난감 군대를 보듯 무심한 눈길로 보며, 주한미군의 작전권은 돌려 받고 국군의 2년 단기 복무는 1년 6개월로 화끈하게 단축한다. 김정일에게 무조건 항복, 그것이 평화인가 보다. 월맹이 월남에서 했듯이 남조선의 썩어 빠진 자들을 한 500만 명 학살해 주세요, 그것이 통일의 염원인가 보다.  

 임란 전에도 너나 없이 평화 외치기와 왜구 얕잡아 보기가 대세였고, 육이오 동란 전에도 소련군과 미군이 차례로 철수하는 등 평화 무드가 무르익었었다.
                          (2007. 9. 26.) 
        

[ 2007-09-27, 07:16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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