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없이 김정일을 파멸시키는 초인플레
지난 5년 사이에 쌀 가격이 2,300% 올랐다. 놀라지 마시라, 월급은 전혀 오르지 않았다!

최성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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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인플레, 바이마르공화국와 남미와 신생 러시아와 옛 유고를 초토화시키다]

 역사상 가장 유명한 초(超)인플레이션(hyperinflation)은 제1차 세계대전 후에 독일의 바이마르공화국이 겪은 것이다. 1922년에서 1923년 사이에 제일 심했는데, 1년이 아닌 1달에 물가가 32,400%나 치솟았다. 한 예를 들면, 1921년 1월에 독일 일간신문 1부의 가격은 0.3마르크였는데, 1922년 11월에 7,000만 마르크나 되었다. 오죽 했으면 돈 가방을 훔친 도둑이 돈은 버리고 가방만 갖고 튀었을까. 바이마르 공화국은 이 초인플레로 자멸했다. 이를 교훈 삼아 제2차 세계대전 후 도이체 방크(Deutche Bank)는 물가안정을 최우선 정책으로 삼았다.  

 살인적 만성 인플레이션은 70년대와 80년대의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이 악명 높았다. 연간 5,000%는 기본이었다. 오죽 했으면 세계에서 가장 바쁜 사람은 아르헨티나 백화점의 가격표 붙이는 사람이라는 우스개가 나왔을까. 아래층에서 위층으로 가격표를 다 붙이고 나면, 그 순간 또 가격이 올랐기 때문에 처음부터 새로 다 붙여야 했다고 한다. 냉수 한 모금 마실 시간이 없었다.

 미국과 반세기 동안 패권을 다퉜던 소련이 무너진 후에도 러시아에 초인플레이션의 거대한 운석이 떨어졌다. 1992년에서 1996년 사이에 물가가 17,500%나 올랐다. 옛 소련에서 가장 지위가 높았던 고르바초프도 연금을 받아서 닷새를 살기 어려울 정도였다. 탱크에 맨몸으로 올라가는 임전무퇴의 용기로 러시아의 대통령이 된 옐친도 속수무책이었다. 보드카나 퍼 마실 수밖에 없었다. 신생 러시아에 엄습한 초인플레는 저 무시무시한 나폴레옹과 히틀러마저 파멸시킨 시베리아의 동장군보다 무서웠다. 

 영원히 깨질 것 같지 않았던 바이마르 공화국의 초인플레 기록을 깬 나라가 나왔다. 1994년 1월 유고슬라비아는 1달 동안 3억 1,300만%의 초초인플레이션을 기록했다. NATO가 유고슬라비아를 공습하기 전 이미 밀로셰비치는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는 그로기 상태였다. 
 
[초인플레, 북한을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몰아넣다]

 북한도 만만치 않다. 완전붕괴 상태다. 공장 가동률이 20%를 넘지 못하고 그나마 그런 공장에서 월급이라고 2,000원 받아봤자 쌀 2kg밖에 못 산다. 의사 월급은 조금 많은 편이라 3,000원 정도 되는데, 기껏 쌀 3kg 사고 나면 아무 것도 남는 게 없다. 환자한테 손을 벌릴 수밖에 없다. 하여, 북한보다 부정부패가 심한 곳이 이 지구상에는 없다. 개성공단의 근로자도 김정일에게 거의 다 빼앗기고 '평등의 원칙'에 따라 일반 노동자의 월급밖에 못 받는다. 한국이 주는 약 60달러 중 달랑 1달러만 받는다! 이러니, 일하는 데 무슨 신명이 날까. 개성공단 외에 여러 개 공단을 조성하여 대대적인 투자를 하겠다! 보라, 한국의 재벌을 모조리 데려가노라! 웃겨도 보통 웃기는 소리가 아니다.

 어떤 탈북자가 한국 여자와 결혼하여 처가에 쌀과 배추를 사 들고 가면서 한없이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씩씩하게 현관문에 들어섰다는 얘기가 전설처럼 전해지고 있거니와, 북한 사정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들은 그게 조금도 우습지 않고 조금도 황당하지 않다. 절로 눈물이 날 뿐이다.

[경제개선조치는 초인플레에 대한 무조건 항복 선언]

 2002년 6월 29일 서해 침략으로 월드컵에 찬물을 끼얹은 지 불과 이틀 후인 7월 1일, 김정일은 이름도 거창하게 경제개선조치란 걸 내놓았는데, 이 때 한국의 방송과 신문은 국가의 운명을 좌우할지 모르는 전쟁 도발을 즉시 1단 기사로 처리하고 북한 발 희소식을 대대적으로 보도한 적이 있다. 드디어 김정일이 시장개혁의 길로 들어섰도다!  
 
 이 때 경제도 명령과 지시로 제까닥 해결할 수 있다는 신념으로 김정일은 한꺼번에 모든 물가를 장마당의 물가와 비슷하게 맞췄다. 예를 들면, 1kg 당 8전에 팔던 쌀을 44원에 팔겠다고 공고했다. 550배, 곧 55,000% 인상이었다. 옥수수는 1kg 당 6전에서 24원으로 400배 올랐다. 대신 일반 노동자의 월급은 110원에서 2,000원으로 18배, 대학 교수는 270원에서 4,000 원으로 15배 올려 주었다.

 환율은 1달러에 2.2원 하던 것을 1달러에 150원, 곧 약 70배 평가절하했다. 이미 시중환율은 1달러 당 200원에 거래되고 있었으니까, 애국심을 발휘하여 숨겨둔 달러를 당국에 신고하면 그 자리서 50원 손해 보게 되었다.

 종전의 공시가격이 정확히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르나, 1985년 무렵 김정일이 김일성과 공동통치하기 시작한 시점으로 보아 무방할 듯하다. 그 이전에는 강제수용소가 아닌 한 굶어 죽었다는 말이 새어나오진 않았으니까, 국영상점의 물건 가격이나 암시장의 물건 가격이나 그렇게 크게 차이가 나진 않았을 것이다. 차이가 나더라도 그런 대로 배급이 이뤄졌으니까, 큰 문제가 없었다. 암시장도 거의 없었고.

 역산하면 1985년에서 2002년 사이에 1달러 2.2원에서 200원이 되었으니까, 물가가 평균 약 10,000% 올랐다는 말이다. 쌀을 기준으로 하면 55,000%다. 달러 기준 매년 약 500%, 쌀 기준매년 약 3,000%의 초인플레를 기록했다.

[그 후 5년]

 배급 대상을 인구 20% 정도(이들을 북한의 60% '버러지' 계급은 배급계급이라고 함)로 한정한 2002년 이후는 더욱 참담하다. 1달러 150원 하던 것이 시중환율이 3,000원을 돌파했다. 불과 5년 사이에 환율이 20배 곧 2,000% 오른 것이다. 쌀은 킬로그램 당 44원에서 1,000원으로 올랐다. 23배 곧 2,300% 상승이다. 놀라지 마시라, 월급은 전혀 오르지 않았다! 2002년 7월에 한 달 월급으로 일반 노동자가 이론적으로는 쌀을 45kg 살 수 있었지만, 불과 5년 만에 쌀을 겨우 2kg밖에 못 산다. 전에는 애오라지 배급의 희망은 있었고, 김일성과 김정일 생일 같은 날이면 간과 쓸개에 안부 인사할 만큼의 배급도 나왔지만 이제는 그런 횡재조차 없다. 

 [초인플레는 부자와 가난뱅이를 불구대천의 원수로 만든다]

 초인플레이션은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극단적으로 심화시켜 극소수의 가진 자와 절대 다수 못 가진 자 사이에 영원히 건너지 못할 계급의 다리를 놓는다. 동물과 인간 사이보다 부자와 가난뱅이의 사이가 더 벌어지게 만든다.
 
 공산국가는 시장을 악마보다 증오하여 발본색원하고 마르크스가 일러 준 대로 곧 죽어도 '절대 평등'을 내세우며 경제를 명령과 지시로 멋지게 해결하려고 용쓰다가, 핵심 공산당원과 절대 다수 노동자농민의 간격을 봉건국가의 귀족과 농노, 자본주의 국가의 재벌과 노동자 사이보다 더 벌어지게 만들었다. 공시가격과 시중가격은 전혀 별개인데, 핵심 공산당원은 국영상점에서 말도 안 되게 싼 가격으로 싹쓸이할 수 있지만, 일반인은 돈이 있어도 텅 빈 상점을 기웃거릴 수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북한의 핵심 공산당원은 시중에서 1kg에 44원하는 쌀을 그보다 550배 싼 단돈 8전으로 살 수 있었던 것이다. 이보다 더 큰 특권이 어디 있을까. 그런 특권은 봉건국가의 귀족도 상상 못했고 자본주의의 재벌도 감히 상상 못했다. 그래서 공산국가의 절대다수 '버러지' 계급은 어쩌다 물건이 나왔다 싶으면 무조건 줄을 서고 보는 희극을 연출했던 것이다.

 공산체제가 무너지는 순간 국영 상점의 터무니없이 싼 가격은 일제히 사라지고 어디나 시중 가격이 적용되니까, 너도나도 일확천금을 꿈꾸며 장사의 길에 나선다. 그러나 갑자기 생산이 따를 리 없다. 물건이 없다. 부르는 게 값이다. 돈이 있어 봐야 소용도 없다. 이럴 때 인플레 적용을 받지 않는, 외부에서 흘러 들어온 달러가 있으면 최고다. 당 책임 비서가 안 부럽다. 또한 아무리 싸구려라도 외국에서 밀수입한 것은 황금 덩어리나 마찬가지다. 당 세포 비서가 눈웃음을 살살 친다.

[극에 달한 상대적 박탈감은 핵심 계층에게만 혜택을 준 햇볕정책 때문]

 북한은 이미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육이오사변 때보다 더 처참하게 초토화되었다. 아무리 사상 교육을 강화하고 아무리 생활총화를 빡세게 하고 아무리 위대한 수령과 경애하는 지도자를 높이 받들어도 권력의 끄나풀이 없으면, 돌아오는 건 배고픔과 절망과 악뿐이다. 한민족이 5천 년 동안 굶어 죽은 사람을 다 합친 것보다 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고 나서, 한국과 미국과 일본과 중국이 북한 체제를 연명시켜 주었다.

 북한 주민은 이 때부터 상대적 박탈감이 이전보다 수십 배 커졌다. 달러와 식량과 에너지와 물품은 전체 수요에 비하면, 다시 말해서 살인적 인플레이션을 유발하지 않을 정도가 되기에는, 너무도 그 양이 적었기 때문에 권력의 크기가 모든 것을 말하는 북한에서는 외부에서 들어오는 것은 핵심 당원과 군인들에게 집중되었고 덕분에 그들은 공짜로 받은 식량과 물품 중 쓰고 남은 것은 원가 한 푼 안 들이고 초인플레를 만끽하면서 룰룰랄랄 시장에 내다 팔아 한국의 강남 부자 부럽지 않는 천문학적인 부를 축적했기 때문이다. 이런 자들이 북한에는 대략 2만 명 정도 되는 걸로 추산된다.    

[증오심과 악밖에 안 남은 북한 주민]

 북한의 민심은 용암보다 더 뜨겁게 달구어졌다. 어느 순간 임계점에 도달하면 백두산을 일시에 날려 버리고도 남을 폭발력을 보일 것이다. 예전의 루마니아는 아무 것도 아닐 것이다. 눈치가 비상하게 빠른 김정일은 이를 무의식중에 느끼고 아무리 미인을 옆에 끼고 자도 밤마다 가위에 눌릴 것이다. 아마 요즘은 기쁨조도 귀찮을지 모른다. 그저 이영애 비디오 보는 걸로 행복해 할지 모른다. 생산력을 단기간에 급증시켜 공급을 획기적으로 늘리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인데, 경제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기 때문에, 보고 배운 것은 그것밖에 없기 때문에 스탈린이나 모택동이나 김일성 식으로 강철 명령과 무쇠 지시만 내려 먹이는 외엔 방법이 없다. 

 그로선 천만다행으로 개혁개방 '쇼'만 하고 미사일과 핵무기를 동해로 서해로 이따금 뻥뻥 쏘면 쌀이 더 나오고 중유가 더 실려 오고 달러가 더 쏟아지도록, 한국이 햇볕정책이라며 적극 도와 주기 때문에, 온몸으로 텍사스 카우보이를 막아 주기 때문에, 김정일은 더욱더 달리는 멸망의 호랑이 등에서 뛰어 내릴 수 없다. 벌거숭이 임금님에게 바른 말을 할 사람도 전혀 없다. 그런 자는 모조리 강제수용소에 쳐 넣거나 교통사고를 위장하여 죽이거나 탄광으로 쫓아 버렸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 파멸에 직면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최후의 수단으로 김정일은 결국 천출장군답게 전쟁을 선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2007. 9. 30.)

 

[ 2007-10-01, 15:59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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