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전선의 GP는 자명고, 서해의 NLL은 자명각
오늘날로 말하면, 자명고와 자명각은 조기경보체제에 해당한다.

최성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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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本紀는 중국과 동등한 황제국의 역사라는 뜻) 대무신왕(大武神王) 편을 보면, 저 유명한 호동왕자와 낙랑공주 이야기가 나온다. 대무신왕은 고구려의 제3대 왕으로 유리왕의 셋째 아들이다. AD 18년에서 44년까지 재위했다. 호동은 유난히 잘생겨서(容顔美麗) 왕이 귀염둥이란 뜻으로 호동(好童)이라 불렀다고 한다. 대무신왕의 태자 해우(解憂)는, 후에 호동을 모함하여 자살하게 만든 원비(元妃/ 正妃의 뜻인 듯)의 소생이다. 해우는 부왕이 죽은 후 너무 어려서 삼촌인 민중왕(閔中王)이 즉위하고 그 다음에 왕으로 등극한다. 그가 바로 모본왕(慕本王)인데, 중국의 화북과 산서 지방까지 폭풍처럼 쳐들어가 그 용맹을 중원에 널리 떨쳤지만 포악한 왕으로 신하에게 암살 당한다. 이상에서 미루어 보면 호동은 태자 해우보다 나이는 한참 많은 형이었만, 대무신왕의 서자 출신임을 짐작할 수 있다. 대무신왕이 왕자 시절에 사귄, 신분은 낮지만 절세의 미모를 지닌 여인이 낳은 사생아 같다. 

 대무신왕은 고구려 역사상 본격적으로 정복전쟁을 펼친다. 먼저 그 당시 주변에서 가장 강력한 왕국이었던 부여에 쳐들어가 대소왕을 살해했지만, 강력한 반격에 허가 찔려 천신만고  끝에 간신히 귀국한다. 이 때 그는 자신의 잘못을 솔직히 고백하여 부족연맹체였던 상황에서 다른 부족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다. 아마 다른 부족들도 부여의 침략을 받을까 봐 위기의식을 느꼈을 것이다. 그로부터 5년 후 즉위 9년 차(AD 26)에 대무신왕은 개마국을 멸망시킨다. 이 소식을 듣고 불과 2개월 만에 혼비백산한 인근의 구다국왕이 자진해서 나라를 대무신왕에게 바친다. 호사다마(好事多魔)라, 즉위 11년(AD 28)에는 한(漢)의 요동태수로부터 침략을 받아 국가 존망의 위기에 처한다. 다행히 송옥구와 을두지를 비롯한 어질고 현명한 신하들의 도움을 받아 무사히 위기를 넘긴다.

 대무신왕 즉위 15년(AD 32)에 호동왕자와 낙랑공주의 아름답고 슬픈 사랑 이야기가 나온다. 한나라의 침략을 받은 이후 대무신왕은 정치적인 인물로 한 단계 성숙한다. 힘만 앞세우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달은 것 같다. 그 해 3월 그는 왕권을 강화하여 무도한 세 명의 귀족을 내쫓아 서민으로 강등시킨다. 아마 그들이 차지했던 땅과 백성은 대무신왕이 직접 통치했을 것이다. 한 달 후인 4월에 호동이 옥저에 놀러갔다가 마침 거기서 마주친 낙랑국(한사군의 낙랑과는 무관하며 낙랑은 고구려 근처의 한 지명이었던 것 같음)의 왕 최리의 마음에 쏙 들어 일사천리로 낙랑공주와 결혼한다. 삼국사기에 일설에 의하면, 대무신왕이 의도적으로 그렇게 했다는 말도 있는 걸 보아, 노련해진 대무신왕이 동북아 최고의 미남인 아들을 내세워 미남계를 쓴 것 같다. 정략결혼은 낙랑국왕도 마찬가지로 이용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외모만 척 보고도 호동을 북국 신왕(神王)의 아들로 알아 보았다고 했다.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는 말이다. 이 때 신왕은 황제의 뜻으로 쓰인 것 같다. 작은 나라의 왕으로서 머잖아 대무신왕이 칼을 빼 들면 살아남지 못할 것을 알고 미리 손을 써서 인척 관계를 맺었던 것이다.

 강대국 고구려와 약소국 낙랑의 두 왕이 펼치는 두뇌 싸움이 볼 만하다. 대무신왕이 섣불리 군사를 동원하지 못한 것은 낙랑의 자명고(自鳴鼓)와 자명각(自鳴角) 때문이었다. 낙랑에는 적이 침략하면 절로 울리는 북과 나팔이 있었다고 한다(樂浪有鼓角 若有敵兵則自鳴). 선인들의 멋진 상징이요 비유다. 오늘날로 말하면, 자명고와 자명각은 조기경보체제에 해당한다. 국경과 왕궁에 대한 경비체제가 완벽하여 침략을 받으면 즉각 그 사실을 처음에는 자명각으로 두 번째는 자명고로 알려 비상체제에 돌입한다는 말이다. 각(角)은 나팔로 약 8km까지 비상사태를 알릴 수 있다. 이것은 국경지역에 배치되었을 것이다. 고(鼓)는 북으로 약 1km까지는 소리를 전달할 수 있다. 이것은 왕궁의 외곽 초소에 비상 대기시켜 놓았을 것이다. 낙랑의 자명고와 자명각은 성능이 유난히 좋았을 것이다. 나라는 작지만 낙랑은 유서 깊은 문명국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자명고와 자명각은 각각 최소한 4개는 되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적은 어느 방향에서 쳐들어올지 모르기 때문에 동서남북에 최소한 한 개씩은 설치했어야만 완벽한 조기경보체제를 갖출 수 있었을 테니까. 또한 오늘날 스위스처럼 나라는 작으나 낙랑은 누구도 함부로 넘보지 못할 군사동원체제를 갖추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국격(國格)이 달라 호동왕자와 낙랑공주가 대등한 입장에서 정식으로 혼인관계를 맺지는 못했지만, 그 혼인을 계기로 대무신왕과 낙랑국왕 최리 사이에는 머리에 쥐가 나도록 말싸움을 벌인다. 두 나라의 왕자와 공주가 결혼한 마당에 무슨 침략이 있겠는가, 쓸데없는 냉전적 사고를 버려라, 평화는 서로 믿는 마음에 달려 있다, 우리는 침략할 생각이 눈곱만치도 없다, 이건 비밀인데 전쟁을 여러 번 치르느라고 우리는 국력이 고갈되었다, 사실 우리는 먹고살기에 급급하다, 너희가 부럽다, '우리는 이제 한 가족!' 사이좋게 지내자--이런 대무신왕의 대대적인 평화공세가 잘도 먹히기 시작한다. 사랑에 눈이 멀었다기보다 전쟁으로는 도저히 상대가 안 된다는 것도 알고 자기가 적극 도와 주면 이제 시아버지가 된 고구려의 대왕이 아버지의 나라로부터 조공을 받는 식으로 낙랑을 유지시켜 줄 줄 알고 낙랑공주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다. 이윽고 낙랑국에도 평화 무드가 조성된다.

 낙랑공주가 자명고의 가죽을 찢고 자명각의 주둥이를 부수었다(割鼓面角口)라고 한 부분은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하나는 낙랑공주가 고구려에서 보낸 자객을 몰래 들여보내 자명고와 자명각을 지키는 사람들을 살해하고 그들이 자명고와 자명각을 파괴하는 것을 눈감아 주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아름다운 낙랑공주의 세 치 혀에 놀아난 조기경보 담당자가 대국 고구려에서 크게 성공할 요량으로 자명고와 자명각을 부수어 울릉도 호박엿과 바꿔 먹었다는 것이다. 하여튼 자객을 먼저 들여보낸 후 뒤따라온 고구려군이 조기경보체제가 무너졌다는 말을 듣자마자 낙랑을 급습하자, 힘도 한 번 못 쓰고 독 안에 든 쥐 신세가 된 낙랑왕은 폭삭 속았음을 알고 어쩌면 호동왕자가 훗날 고구려의 황제로 등극하면 그 뒤를 이을 씨를 잉태했을지도 모르는 금지옥엽 낙랑공주를 자신의 손으로 살해한 후 바로 항복한다.

 호동왕자는 낙랑국 정복의 일등 공신이 된다. 황후 소생의 어린 태자를 밀어내고 그가 태자로 새로 옹립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다. 이에 원비는 호동이 자신에게 흑심을 품고 있다고 대무신왕에게 베갯머리 송사를 한다. 이로 미루어 원비는 호동과 나이 차이가 별로 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대무신왕은 모함하지 말라고 찔찔 짜는 원비를 도리어 나무란다. 후에 이 소식을 듣고 호동왕자는 장렬하게 스스로의 목숨을 끊는다. 피비린내 나는 왕위 계승전을 피하기 위해, 부왕과 명목상 어머니에게 폐를 끼치기 싫다는 이유를 대면서 호동왕자는 저승의 낙랑공주를 만나러 간다. 삼국사기의 편자 김부식은 그릇이 작다는 이유로 이런 호동을 나무란다. 당당히 나팔을 울리고 북을 두드리며 기치창검을 번득이며 낙랑을 정복한 것이 아님에도 떠오르는 태양 고구려에서 영웅으로 떠받들어지는 것이 대장부 호동은 부끄러웠는지도 모른다. 정략결혼의 대상이었으되 사랑하는 낙랑공주가 살았다면, 대무신왕의 귀염둥이는 후일을 도모하여 자살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로부터 5년 후(AD 37) 삼국사기에는 아주 짤막한 기사가 실려 있다. 왕습낙랑 멸지(王襲樂浪 滅之), 대무신왕이 낙랑을 습격해서 영원히 지상에서 쓸어 버렸다는 말이다. 아마 AD 32년에 항복한 최리는 민심을 고려하여 명목상 낙랑왕으로 세워 두었던 듯하다. 그리고는 치밀한 공작으로 껍데기 왕국으로 만든 다음, 왕의 호위병 몇 명밖에 없는 낙랑에 불시에 쳐들어가 닭 목을 비틀 듯 쉽게 허수아비 왕을 죽여 버렸다는 말이다. 아마 대무신왕은 이 낙랑도 왕의 직할지로 삼았을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오늘, 출전만 하면 주최측의 농간에 의해 대상(大賞)을 받기로 내정되어 있는 웅변대회에 나가는 어린애처럼 상기된 표정으로 군사분계선을 걸어서 넘어가서 북으로부터 크게 환영을 받은 후 다시 차에 올라 평양에 도착했다. 평화, 평화, 평화! 제목도 평화, 주제도 평화, 결론도 평화다. 웅변 원고를 미리 심사라도 받듯, 주제를 온 나라에 온 세계에 소문 내고, 평화의 선물도 큼직한 걸로 두 개 준비해 갔다. 그것은 바로 비무장지대를 평화지대로 만들기 위해 군사분계선 양쪽의 GP(Guard Post) 곧 전방 초소를 남북이 함께 철수하자고 제안하겠다는 것과, 서해의 NLL(the Northern Limited Line) 곧 북방한계선을 남쪽으로 확 끌어내리고 그 해역을 '평화의 바다'로 선언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스스로 자명고에 해당하는 GP와 자명각에 해당하는 NLL을 버리고 평화를 소리 높여 외치겠다는 말이다. 그러면 천상에서 수천 마리의 비둘기가 내려와 평화를 축복이라도 한다는 듯이 사명감에 불타 있다.

 불과 반세기 전에 미군이 철수하자마자 남침하여 동족을 학살한 전범의 아들이 제2대 유일신으로 군림하는 세계최대 거지의 땅에서 인구비율 세계최대 군대를 보유하고도 그것도 모자라 핵무기 보유도 핵실험을 통해 물증을 제시하는 식으로 군사 최우선 정책을 쓰는 데도, 이미 지난 10년 사이 NLL를 넘어 두 번이나 남침하고 한 번은 서해의 자명각이 잘 울리나 거짓 통화로 시험해서 짭짤한 재미를 보고 이제 노골적으로 NLL를 새로 긋자고 부탁하는 그의 속내가 너무도 빤히 들여다보이는 데도 그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못하고, 단 한 번도 약속을 지킨 적인 없는 자와 어깨동무하고 아리랑을 부르며 눈물을 글썽이며 비장하게 선언만 하면 절로 천상의 평화가 오는 듯, 지금껏 한국이 누린 50년 '분단'평화는 '통일'전쟁보다 못하다는 건지, 사랑에 눈먼 낙랑공주가 평화무드를 앞장서서 조성하여 나라도 잃고 목숨도 잃고 끝내 아버지와 사랑하는 낭군도 잃었듯이, 노무현 대통령은 설마 동성애자도 아닐 텐데 아무리 봐도 불룩한 배 외에는 볼품없는 김정일에 대한 연모의 정이 얼마나 깊은지 만고에 길이 남을 비극적인 신화를 만들려고 노심초사한다.

 낙랑공주처럼 자명고와 자명각을 부수고 전쟁의 양탄자를 깔아 주느라 정신이 없다. 방송은 자진해서 자명고와 자명각을 부수는 평화 쇼를 생중계하며 온갖 미사여구로 평화 무드를 조작한다. 노 대통령이나 방송 3사의 사장이나 전쟁이 뭔지 천둥벌거숭이보다 모른다. 

 대무신왕의 고구려는 당시 중국과 버성길 만큼 강하고 부유한 나라였다. 임금은 스스로 잘못을 고백할 줄도 알았다. 용기만 뛰어난 게 아니라 지략도 남달랐다. 어질고 현명한 신하들의 말을 기쁘게 들을 줄도 알았다. 기자실에 대못질하기는커녕 있는 기자실도 너무 작다고 크게 넓혔다. 동북아의 대세가 고구려에 있었다. 북한은 아니다, 전혀 아니다. 단연코 아니다! 이산가족과 탈북자의 편지만 그저 우표 한 장만 붙여서 새처럼 자유롭게 남북을 마음대로 오가게 되어도 1주일 안에 모든 거짓이 들통날 정도로 형편없는 저주의 땅이 북한이다. 한 마디로 군사력만 강한 생지옥이다. 이에 맞서 20세기 후반 세계최고의 기적, 대한민국은 조기경보체제를 한층 강화해야 마땅한데, 낙랑의 자명고와 자명각보다 월등한 휴전선의 GP와 서해의 NLL를 무력화시키겠다고 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만고에 아름다운 이름을 남기는 게 아니라 천추에 부끄러운 이름을 남길 게 뻔한 일에 '평화' 도장을 꽉 찍어 버리겠다고 한다. 후임 대통령이 누가 되든 어쩔 수 없을 거라고 장담하면서!

  어떻게 이룬 세계 10대 경제강국인데, 어떻게 이룬 개도국 최고의 자유민주 국가인데, 이제라도 4천8백만이 한 목소리로 '북한인권과 자유민주와 시장경제'를 외치면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2천만을 끌어안을 수 있는데, 도대체 무슨 심보인지, 낙랑공주가 자명고를 찢듯이 부잣집 아들의 새 가방을 면도칼로 북! 그어 버리던 그 심보를 아직도 버리지 못했는지, 이제 잠시 뜸만 들이면 되는 밥을 밥솥째 흙 마당에 엎어버리듯이 다름 아닌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역사의 도도한 대세를 뒤집고 있다.        

                     (2007. 10. 2.)

 

 

[ 2007-10-02, 19:42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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