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조폭에게 뇌물 바치며, 평화!
다음은 허구에 바탕을 둔 실화다.

최성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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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은 한말 때 일어난 일이다. 굳이 밝히자면, 허구에 바탕을 둔 실화다. 일제가 조선을 병탄하기 직전이었다니까, 1907년 무렵이 아니었을까 한다. 편의상 당시 직책은 현대식으로 고쳐 썼다. 

 한양의 경찰청장 노모가 수년 간 애걸복걸하여 한양과 제물포 나아가 전국에 거미줄 조직망을 갖고 있다는 조직폭력배 두목 김모를 만나는 데 성공했다. 세상 사람들은 열이면 아홉 그 자가 살인, 방화, 절도, 강도, 강간, 사기, 배신 등 조폭의 전문 분야에 하나같이 절정 고수인 입신의 경지 9단에 이르러 도합 조폭 무술 90단이란 말이 나돌았다. 알려지지 않은 세 분야도 각기 9단이라고 했다.

 많은 사람들이 고발도 하고 고소도 했지만, 왕의 든든한 신임을 등에 업은 한양의 경찰청장 노모는 한사코 조폭 두목 김모를 두둔했다. 일제의 야욕을 분쇄하고자 밤잠도 안 자고 애쓰는 의병장이요, 일제의 자본에 맞서 국가 경제를 지킬 민족자본가로서 호남평야의 만석꾼이자 시대의 흐름을 앞장서는 탁월한 경영 능력으로 조선방직과 조선금광을 빵빵하게 키운 회장님이라며 도리어 고발하고 고소하는 자들을 오랏줄로 꽁꽁 묶어 버렸다. 네놈들은 일제 앞잡이지, 이실직고하라, 다 안다, 하면서 말 고문하고 물 고문하고 불 고문했다.  

 한양의 경찰청장 노모는 임기가 딱히 정해지지 않았지만, 하마터면 1년도 못 채우고 옷을 벗을 뻔했다. 조폭 김모를 너무 노골적으로 두둔하고 보란 듯이 국민의 혈세가 제 돈인 양 마음대로 유용하여 바리바리 그에게 싸 보내는 것을 보다 못한 한양 시민들로부터 분노의 돌팔매질을 당한 것이다. 그 날로 생명이 끝나는가 했더니, 갑자기 어디서 왔는지, 깍두기 머리와 떡 벌어진 어깨와 쭉 찢어진 눈들이 나타나, 돌팔매질하는 시민들을 현란한 무술로 간단하게 제압해 버렸다. 사람들은 수군수군 저건 틀림없이 조폭 김모가 한두 다리 건너서 보낸 백두산과 묘향산의 무술 고수들이라고 입을 삐쭉거렸다. 그에 대해 조폭 김모는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그의 행적은 홍길동보다 은미(隱微)하여 말만 무성했지 실지로 그를 만난 사람은 거의 없었다. 경찰청장 노모는 왕의 비호를 받아 이전보다 더 바리바리 싸 주며 제발 한 번 종로 네거리나 광화문 너른 앞마당에서 만나자고 애걸복걸했다. 선물을 되돌려 주었다는 말은 없었으니, 조폭 김모가 꿀꺽꿀꺽 다 받아 챙긴 모양이다. 그러나 만나 주지는 않았다. 약조도 없었다.

 처음 들을 때는 터무니없는 것 같아도 지나고 나면 정확무비한 '카더라' 소문에 따르면, 실상 조폭 김모의 논밭이라는 것은 강가의 갈대밭에 지나지 않고 그가 일제에 맞설 민족자본이라고 떠벌리는 조선방직과 조선금광도 누적된 적자로 사실상 파산되고 폐광된 지 오래되었다고 했다. 실지로 그의 주 수입은 전국에서 암약하는 수하들의 절도와 강도와 사기와 밀수에 의한 것인데, 이것마저 한말의 조선이 너무 빈한하여 영 재미가 없어지자, 한양의 경찰청장이 공개적으로 또는 은밀히 건네주는 뇌물로 간신히 조직을 유지한다고 했다.

 정성이 너무도 갸륵했는지, 약 5년간의 애걸복걸 끝에 경찰청장 노모는 드디어 김모의 본거지인 종로 네거리에서 요란하게 취타를 울리면서 조폭 김모를 만나게 되었다. 너무도 감격한 경찰청장 노모는 한양의 모든 경찰에게 즉시 '평화 시작 범죄 끝'이라며 수갑과 육모방망이를 버리라고 했다. 일본, 청, 러시아, 미국, 영국 등으로부터의 자주독립을 하늘에 엄숙하게 고하고, 이어 불세출의 장군 김모 의병장과 한반도 영구 평화를 만방에 선언한다고, 비무장의 호위 경찰들을 우르르 데리고 천천히 걸어서 종로 네거리로 나갔다. 마침내 조폭 김모가 세상에 공개적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한양의 시민들은 별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 흘깃흘깃 쳐다보며, 되게 작네, 병색이 완연하네, 다이어트 좀 해야겠네, 하는 정도였다. 경찰과 조폭은 자기들끼리 난리법석이었다. 고을 원님보다 초라한 신세로 전락한 왕도 크게 기뻐하며 평화선언을 기리는 축전을 보냈다.            

 다들 아시다시피 1910년에 조선은 일제에 병탄되었다. 왕이 일개 서민으로 강등되었는데, 한양의 경찰청장과 조선 제일의 조폭 두목이 어떻게 되었으리라는 것은 다들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하거니와, 이상은 허구에 바탕을 둔 실화이다. 애써 오해하지 말기 바란다.

                   (2007. 10. 3.)


 

[ 2007-10-03, 15:23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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