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선거를 지켜보는 소감
속더라도 알고 속아야 책임있는 유권자다

許和平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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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년마다 치르는 대통령선거 때만 되면 국민은 혼란스럽고 피곤하다. 1992년 이래 치러진 세 번의 대선결과는 국민다수의 여망과 기대와는 다르게 그들만의 정치적 잔치로 끝나버린 것을 생생하게 기억하기 때문이다. 선거를 거듭할수록 선거풍토가 개선되고 민주정치 수준이 향상되었다기보다 더욱 혼탁스러워지고 퇴보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은 비단 나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때가 되면 유권자 개개인이 믿음과 기대를 가지고 후보에 대한 선택과 지지를 쉽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후보자들의 과거행적과 언행을 기억해내고 그들이 토해내는 미사여구로 포장된 대국민약속들을 접할 때마다 그들에 대한 믿음은 엷어지고 판단은 헷갈리게 된 것이 그간의 사정이다. 각 당이 국민경선이라는 흥행성 이벤트를 통하여 후보를 선택하고 전당대회를 치르는 과정과 그러한 상황전개를 둘러싸고 뒤엉켜 있는 성직자, 정치인, 관료, 언론인, 교수, 예비역 장성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우리들의 마음은 무겁다.
  
   10월 중순, 지난 1년여 년 동안 진행되었던 치열한 당내 경쟁을 통하여 제1야당 후보와 범여권 후보가 결정되었다. 경제문제해결을 제1과제로 내세운 야당후보와 좌파적 가치를 전면에 내세운 범여권 후보가 그들이다. 제1야당을 지지하는 유권자 대부분의 정서는 좌파정권 종식과 경제회생인데 비해, 야당후보는 경제회생을 전제로 하는 경제대통령을 강조할 뿐 좌파정권 종식이라는 용어는 사용하지 않으면서 실용주의의 길을 가겠다고 천명하고 있으나 어떤 가치 구현을 위한 실용주의인가는 설명이 없다.
  
   그래서 적지 않은 유권자들로 하여금 의문을 갖게 하고 있다. 경제CEO론을 내세우는 것은 경제가 모든 것을 우선하고 경제가 잘못 되어서 정치․사회가 잘못되고 있다는 뜻일 수도 있다. 그러나 진실은 그 반대이다. 경제, 사회문제에 우선하는 것은 정치이고 정치가 잘못되어서 경제가 나빠진 것이다. 따라서 정치를 잘해서 경제가 잘 되도록 하겠다고 말해야 하는 것이 올바른 논리다. 이 말은 경제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국가사회 운영과 작동에 있어서 선후(先後)가 있다는 뜻이다. 지난 5년 동안 정치가 잘못되었다면 그 원인이 어디 있는가를 지적해야 한다. 그것이 좌파이념에 근원이 있다고 한다면 이 점을 분명하게 지적해야 한다. 그러나 야당후보는 이 점에 대해서도 함구하거나 피해가고 있다. 범여권 후보가 후보수락연설에서 국민 중 가진 자(haves) 20%가 가지지 못한(have-nots) 80%를 지배하는 자본주의와 정글법칙이 지배하는 시장경제를 반대한다고 선언한 것은 계급갈등을 부추기는 전형적 좌익논리다.
  
  한국은 그러한 사회도 아니고, 현대의 시장경제에서 제국주의시대 정글법칙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그야말로 개인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할 수만 있다면 4,800만 국민을 구렁텅이로 몰아넣고 국가를 파국으로 몰아넣어도 상관없다는 소름끼치는 논리다. 그러면서 그는 상대후보를 향해서 '가치논쟁’을 벌이자고 포문을 열면서도 ‘어떤 가치’인가는 말하지 않고 다만 민족, 평화, 통일이라는 추상적이며 실체가 모호한 수사를 나열하고 있다. 국가를 책임지겠다는 후보들은 자화자찬으로 가득한 자서전을 출간하여 요란한 출판기념 행사는 하면서도 국가경영에 대한 자신의 철학이나 방략(方略)에 대해서는 한권의 책은 고사하고 한권의 팸플릿도 내놓지 않는다. 교수들과 전문가들을 끌어 모으면 해결된다는 식이다. 지적 역량을 소홀히 하는 자는 결코 자신에게 주어진 대임을 성공적으로 수행해내지 못한다.
  
   각 당이 연출해낸 국민경선은 국민을 정치적 문맹자로 취급하는 흥행행위이자 정상적 정당정치를 송두리째 부정하는 후보선출방식이다. 정당후보는 당원이 선출하는 것이 원칙이다. 자유국가에서는 다수당이 존재하고 당마다 이념과 정책이 상이하므로 정당 정체성을 지니지 않은, 당원이 아닌 일반국민이 후보선출에 직접적으로 참여한다는 것은 정당정치를 근본적으로 훼손하는 방식이다. 이 방식의 효시는 지난 대선에서 심각한 열세에 놓여있던 노무현 후보측이 국민적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하여 연출해냈던 한때의 극약처방이었던 점을 생각할 때, 그만두었어야 할 것을 오히려 흥행범위를 확대시켰다고 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그들간에 일어났던 불법동원, 금품살포와 온갖 조작들을 둘러싼 시비들이 모든 것을 설명해주기에 충분하다. 변덕스럽고 책임질 필요가 없는 소수 국민들이 정당후보결정에 결정적 영향을 주는 것이라면 정당정치 자체를 포기해야하지 않을까.
  
   한국 정당정치 수준을 가감 없이 확인할 수 있는 무대는 각 당 전당대회이다. 경선결과를 발표하면 승리자가 등단하여 화려한 수사로 가득 찬 연설을 하고, 지지자들의 환호로 막을 내리는 것이 한국 정당들의 대선후보결정을 위한 전당대회이다. 제대로 된 정당정치환경이라면 전당대회는 그런 것이 아니다. 정당이 그 동안 내걸고 지켜왔던 가치와 원칙을 재확인하고 이에 근거하여 앞으로 국정을 책임지고 실천해나갈 구체적 청사진(platform)을 전 당원과 국민 앞에 제시하는 무대이며, 선출된 후보는 그것을 받아들여 실천해내는데 앞장서겠다는 대국민약속을 다짐하는 정치적 행사이지 단순하게 국민적 관심을 끌어내려는 정치적 흥행 이벤트가 아니다.
  
   금번 선거과정을 통하여 드러나고 있는 또 다른 우려는 언론의 보도행태이다. 과거 언론계의 YS 장학생, DJ 장학생들은 그들이 집권에 성공했을 때 청와대 참모, 장관이 되고 정부 요직에 발탁되어 영화를 누린 사실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현재 주요 신문들이 암묵리에 필사적으로 대선게임에 끼어들고 있음을 아무도 부인할 수 없다. 왜 공개적으로 지지하고 정정당당한 각 지의 입장을 내놓지 않는 것일까. 특히 이념적 입장에서 그러하다면 더더욱 그렇게 해야 하지 않을까. 그들은 가치와 원칙의 문제, 도덕적 지도력과 같은 가장 중요한 잣대를 내팽개치고 좌파정권 종식, 경제제일이라는 일반적 정서에 편승하여 대세론을 확대재생산하면서 자신들이 선호하는 후보들에 대해 맹목에 가까운 지지를 보내고 있다.
  
  사회정의의 목탁임을 자임하는 언론이 지금처럼 몰가치적이고 편파적인 보도를 하는 것은 분명코 정상이 아니다. 그들은 그들이 증오하는 권력자들의 취약점에 대해서는 집요한 추궁을 하면서 자신들이 선호하는 미구의 새로운 권력 후보자들의 약점에 대해서는 눈을 감거나 오히려 비호하려는 듯한 태도로 일관하는 느낌이다. 한국은 이미 정치적 부정부패, 사회적 도덕과 윤리가 총체적 붕괴수준에 와있고, 개인적 이익이 공동체의 가치와 원칙을 압도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을 두고 국가적 병폐라고 한다. 국가적 병폐를 방치해서 키우게 되면 오늘 좌파정권을 종식시킨다 해도 이것은 내일 유령이 되어 다시 찾아오게 되고 종국에 가서는 돈으로 치유할 수 없는 중환자가 되어 모든 것을 상실해버릴 수 있는 재앙을 자초할 수 있다는 것이 인류역사의 한결같은 교훈이다.
  
   지금과 같은 현실에 직면한 국민으로서 우리는 금번 대선의 성격을 어떻게 규정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일까? 금번 선거는 여느 때처럼 여야 정권교체 수준인 보통선거가 아닌 매우 중요하고 특별한 선거이다. 왜 그런가? 이번 선거는 자유라는 깃발아래 인간존엄성과 개인의 개성과 창의성을 바탕으로 하는 보편적 가치로서 자유주의를 지켜내고, 평등이라는 깃발아래 보편적 가치를 부정하는 북한식 반역사적, 반시대적 가치를 거부할 것인지, 아니면 그 반대의 길을 택할 것인지를 결판을 내는 선거이다.
   이번 선거는 지난 10년 동안 세계흐름과 국민다수의 여망에 대해 역행해온 대북통일정책, 안보동맹정책을 정상으로 되돌릴 것인지 아닌지를 결판내는 선거이고, 이념적 분단체제를 영구적으로 극복해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인지를 가늠하는 선거이다.
   이번 선거는 일류국가도달이라는 범국민적 소망을 이뤄낼 수 있는 기반을 구축할 수 있을 것인지의 여부를 판가름 짓는 선거이다. 한국은 산술적 수치 면에서 경제적으로 이미 선진국 문턱에 도달해 있으나 정치(민주주의)적으로는 후진국 수준이고 사회(법의 지배)적으로는 중진국 수준에 머물고 있다. 정치적, 사회적 수준이 선진국 수준에 이르지 못하면 결코 일류국가 수준에 이르지 못한다는 것은 자명하다. 중요함에는 선후가 있다. 경제가 중요한 것은 사실이나 정치는 더 중요하다. 따라서 정치를 먼저 말한 다음 경제를 말해야 하며, 가치와 원칙을 전제하고 이익을 말해야 한다. 현재와 같이 구조적으로 고질화되어버린 정치적 부정부패, 방만한 정부구조와 운영체계, 고비용 저효율 정치체제를 방치하거나 이념적 갈등문제 극복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고서는 경제발전은 불가능하다. 선거일을 두 달도 채 남겨두지 않고 있는 현 시점에서 국민들이 각 당의 후보들로부터 듣는 소리는 지극히 추상적이고 슬로건 수준의 내용들밖에 없다.
  
   유권자는 방관자가 아니라 책임 있는 선택자이다. 책임 있는 선택은 대선 성격에 대해 올바른 이해를 했을 때 가능하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거나 선택의 폭이 아주 제한되어 있다하더라도 알고 속아 넘어가는 것과 모르고 속아 넘어가는 것의 차이는 매우 크다. 알고도 속아 넘어가는 것은 책임 있는 행위이고, 모르고 속아 넘어가는 것은 무책임하고 어리석은 행위이다. 알고 속아 넘어가는 경우에도 상대를 향하여 “우리는 할 수 없이 알고 속아 넘어간다. 그러나 당신은 지금부터라도 우리의 우려를 걷어내고 우리의 여망을 충족시켜줄 수 있게 하라”고 소리쳐야 한다.
  
  許和平(미래한국재단 이사장)
  
  
  * 이 글은 월간《지방자치》2007년 11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 2007-10-30, 12:56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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