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점은 10점되고 10점은 1점되는 등급제
지금이라도 늦지 않다. 원점수와 표준점수와 백분율과 등급을 모두 공개하라.

최성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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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시행을 앞둔 수능등급제는 기존의 100등급을 9등급으로 강제 배분한 제도이다. 수시모집에서는 이전에도 등급제가 적용되었으나 수험생이 이의를 제기하는 경우가 없었다. 내신과 면접과 논술 등에 의해 조건부로 합격한 수험생은 수능에서 일정 등급 이상만 나오면 되었으니까, 대학이든 수험생이든 불만이 없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정시 모집은 그렇지 않다. 여기선 수능 성적의 비중이 거의 절대적이다. 정시에도 논술과 면접과 내신이 있지만, 전국의 학생이 학교나 성별, 지역 등에 관계없이 똑같은 조건에서 치른 가장 객관적이고 공정한 시험에서 거둔 성적은 신뢰성이 높을 수밖에 없고, 대학은 당연히 이것을 가장 많이 반영하고 싶어한다. 논술, 면접, 내신 등은 주관성이 강하거나 학교 차이가 너무 나서 수시가 아닌 정시까지 온통 이를 기준으로 뽑으면, 우수한 학생을 선발하기가 대단히 어렵다. 대학은 정부의 강요로 어쩔 수 없이 수시 비중을 높였는데, 그런 학생들 중에는 서울대에서도 도저히 강의를 따라갈 수 없는 학생이 비일비재하다. 이런 학생들을 상대로 대학에서는 1년 더 고등학교 과정을 가르쳐야 한다. 그래도 비몽사몽 헤매는 학생들이 있다.  

 수능 9등급제는 쉽게 말해서 수능의 비중을 강제로 대폭 줄여서 정시 모집도 수시 모집처럼 바꾸라는 말이다. 그러면 성적 좋은 학생과 성적 좋지 않은 학생이 대학에 골고루 섞이게 되어 대학의 서열이 유명무실하게 되어 대학이 사실상 평준화될 것이라는 발상이다. 그러면 경쟁도 약화될 것이고 지식 위주의 교육에서 탈피하여 인간의 다양한 능력을 개발하게 될 것이고 덤으로 사교육비도 확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전형적인 탁상공론이다.

 대학으로선 어림도 없는 말이다. 피나는 노력을 해서 뛰어난 성적을 받은 학생도 도저히 승복할 수 없는 제도다. 왜 100점 맞은 학생이 89점 맞은 학생과 동급으로 취급되어야 하고, 왜 전국에서 상위 40.1%에 드는 학생이 60%에 든 학생과 도매급으로 넘겨져야 하는가. 교육에 관한 한 스탈린처럼 독재스러운 '무소불위부'에 항의 한 마디 못하는 대학은 머리를 싸매고 지난 3년간 고민했다. 대한민국 최고의 두뇌들이 이 문제 때문에, 학문 연구는 내팽개치고 평등 코드에 찌들은 자들이 소주를 양주로 바꿔 마시며 밀실에서 만들어 권력으로 밀어붙인 경천동지의 입시제도 때문에 지난 3년간 두문불출했다. 

 그렇게 해서 나온 것이 등급제이긴 하지만 여전히 수능의 비중은 높이고 천차만별인 내신의 비중은 줄이는 것이다. 상위 등급은 차이가 적게 만들고 하위 등급은 차이가 크게 하는 등 교육부가 강제로 정한 내신 비중은 형식적으로는 지키되 내용상으로는 줄이고, 원점수도 표준점수도 백분율도 나와 있지 않아 과연 어느 수험생이 얼마나 뛰어난지 알 수 없지만 아쉬운 대로 등급으로 표시된 수능은 차등을 더 많이 주는 것이다. 그래도 안심이 안 되어, 교육부가 장려한 비본고사형 통합논술도 강화한다. 이렇게 엉뚱한 곳에 머리를 안 쓰고 교수들이 학문 연구에 매진했다면, 세계적인 논문이 쏟아져 나와 세계 유수의 학술지를 화려하게 장식했을 것이다.

 대부분의 학생과 교사와 학부모와 교수가 3년 전부터 예상한 대로 학습부담은 학습부담대로 마의 버뮤다 트라이앵글처럼 오리무중 늘어났고, 걱정은 걱정대로 히말라야 산맥의 만년설처럼 덕지덕지 쌓였고, 사교육비는 사교육비대로 무지막지하게 늘어나는 국가부채처럼 펑펑 늘어났다. 아예 한국을 탈출하는 학생도 지진을 감지하고 우르르 달아나는 짐승들처럼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누구도 만족하지 못하는 입시제도 때문에, 노력의 결정체이자 대학에서의 수학능력(修學能力)인 성적이 아닌 등급 곧 경계선에서 수만, 때로는 수십만 학생이 울고 웃는 운(運)에 의해 인생이 결정되는 것 때문에 과히 민심이 폭발 직전이다. 이러고도 이를 주도한 전성은이라는 자는 9등급제와 자신과는 관계없다고 발뺌한다. 뻔뻔한 게 아니라 대한민국의 교육을 더 망가뜨리지 못한 것이 천추의 한이 되어서 그러한 모양이다. 그는 애당초 3등급을 주장했던 것이다! 그래서 논리상 9등급제와는 관계가 없다. 최소한의 양심도 없는 인간이다. 

 이번에 비교적 문제를 잘 낸 언어 영역에서는 89점이면 1등급이 될 모양이다. 그러면 100점 맞은 탁월한 학생과 89점을 얻은 학생이 같다. 11점 차이가 1점은커녕 0.1점 차이도 안 된다. 상위권에서 이 정도 차이 나려면 언어영역에서는 책도 엄청 읽어야 하고 문제도 엄청 풀어야 하고, 스스로 사고하고 정리하는 것도 엄청 많이 해야 한다. 이런 학생은 솔직히 웬만한 교사보다 뛰어나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이 무용지물이다. 88점은 또 어떠한가. 89점과 불과 1점밖에 차이나지 않지만, 그것은 하늘과 땅이다. 대학에서 보통 한 등급에 3점에서 5점 차이를 두니까, 이것 하나로 인생이 결정될 수가 있다. 평생 꿈꾸던 대학, 또는 기어코 하고 싶던 학문을 못하고 성적에 맞춰 아무 데나 가야 할 수도 있다. 아인슈타인 같은 천재가 1점 차이로 적성을 못 살릴 수도 있다.

 만약 운이 나빠 이런 과목이 두 과목이라면, 단 2점 차이로 10점 차이로 벌어질 수 있다. 원점수나 표준점수나 백분율로는 1점은 1점, 1%는 1%일 따름이다. 이 차이는 누구나 인정한다. 학생도 학부모도 교사도 교수도 이에 대해서는 이의가 없다. 그런데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이 점수와 백분율에 의한 제도를 입시의 마녀라고 매도하며 고귀한 사람을 점수로 줄 세운다며 근본적으로 잘못되었다고 강변하며, 인간적이고 넉넉한 등급제를 밀어붙이는 평등중독 권력기관이 스스로 민주를 독점하고 참칭하는 노무현 정부의 교육혁신위요, 교육부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다. 원점수와 표준점수와 백분율과 등급을 모두 공개하라. 그리고 그 반영은 대학에게 전적으로 맡기라. 코드가 같은 극소수 외에는 누구도 승복 못하는 불공정하고 획일적인 규칙을 강요하지 마라. 대학은 최고의 지성인이 모여 있는 곳이다. 그들은 우수한 학생을 뽑을 권리가 있고 그럴 능력도 있다. 지금이라도 수능점수가 제대로 공개되면, 다시 입시 기준을 마련하는 것은 너무도 간단하다. 비중만 조절하면 되니까! 이제까지 해 온 경험도 풍부하니까! 원서는 대체로 12월말까지 내니까, 그 때까지 입시요강을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늦게라도 고치는 것이 잘못된 것을 고수하는 것보다 백 번 낫다.

                      (2007. 11. 26.)

 

[ 2007-11-26, 22:10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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