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김경준 대질 신문했어야
이를 빠뜨리고 '무혐의'로 처리한 것은 사건의 성격을 희석시키는 ‘정치적 고려’라고 볼 수밖에 없다.

김영일(회원)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 스크랩하기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이 가냘픈 소리를 들어보시오
  
  
  
   지금 정의(正義) 행 열차가 목적지를 향해 달리는 것이 아니고, 엉뚱한 곳에다 열차를 정지시켜놓고 ‘다 왔으니 모든 승객들은 모두 내려달라’고 하면, 앉아서 버틸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내릴 수도 없는 참으로 황당한 입장이 아닐 수 없다.
  
  
  
  
   요즘 세상 돌아가는 권세 깨나 있는 사람들은 북에 대한 일이고, 뭐고 간에 하는 일들이 모두 그 모양이니, 우리 백성들로서는 ‘주권 재민’이라는 말만 머리에 붙인 채 실상은 배주고 뱃속 빌어먹는 격이다.
  
  
  
  
   이 더럽고 탁한 기류 속에 깨끗하고 자기반성에 게을리 하지 않았던 효봉(孝峰) 스님이 간절하게 그립다. 스님은 일찍이 일제 시 고등문관에 합격함으로써 판사 생활을 하셨다. 언젠가 살인범에 사형언도를 내려 그를 죽게 만들었으나, 후에 진범이 나타남으로써 이것이 계기가 되어 그의 인생행로가 완전히 바뀌어버렸다.
  
  
  
  
   그는 오판(誤判)을 했다고 해서 법복을 벗을 이유는 없겠지만 “나의 미욱한 판단으로 우주와 바꿀 수 없는 소중한 한 사람의 생명을 빼앗었으니 이 죄를 어이 할꼬....” 하시면서 법복을 벗어 던지고 처자식(슬하에 따님이 한 분 계셨다)을 뒤로 한 채 가출하여 불가에 입문해서 자신의 오판을 일평생 속죄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러한 살신성인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피의자들에게 전폭적으로 ‘죽일 놈’ 이란 레테르와, 피해자에게 전폭적으로 ‘옳다’는 브랜드를 안겨주는 일을 피하고자 하는 노력들이 보이지 않는 세태에서 법을 빙자한 또 하나의 무서운 폭력을 보는 느낌이다.
  
  
  
   대법원의 청사 앞에는 정의를 다는 저울이 상징적으로 나타나 있다. 그러나 법을 운용하는 검사 나리들이나 판사 나리들이 그러한 상징성을 얼마나 절감하고 있을까? 과학 쪽에 먼저 찾아 온 아인쉬타인의 '상대성 원리‘가 근-현대의 모든 분야에 있어서 중요한 지표(指標)로 확산된 지금의 상황에서 형사 사건이든 민사 사건이든 분쟁의 당사자들을 놓고 법을 운용하는 사람들이 한쪽을 ’악마‘로 낙인을 찍는 한편, 다를 쪽을 흠결이라곤 전혀 없는 ’신‘으로 격상시켰다면, 소가 들어도 웃을 지경이다.
  
  
  
  
   인간은 ‘환경의 동물’이라는 포이에르바하의 잣대로 보더라도 중세도 아닌 지금의 ‘인간의 존재’를 그렇게 알고서야 절대적인 2분법으로 과연 판단할 수 있을 것인가? 이번 세상을 놀라게 한 발표는 우선 ‘법의 잣대’를 얼굴에 내세운 ‘정치적 잣대’라는 의혹을 강하게 풍겨준다.
  
  
  
  
   사회지평이라는 멀리 떨어진 거리를 두고 이 문제를 두고 볼 때 두 사람이 살아 온 환경이란 흠점 투성이의 인간들임에도 두 사람은 하늘과 땅 만큼의 차이를 인정하는 바로 그 시각 자체가 법을 운용할 자격이 없음을 또한 말해주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어떻게 보면, 사법적으로 처리해야 할 그 문제보다 법을 공평정대하게 운용-처리해야 하는 국가 기관의 현재와 앞날이 더 큰 문제가 아닌가 여겨진다. 그 구성원들 가운데는 우두머리를 비롯하여 적잖은 사람들이 삼성의 검은 네트워크(권부를 비롯한 부패 수구 세력의 동맹체?)에 이미 편입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라는 의혹을 심히 받고 있는 상황에서 그 발표의 뚜껑을 열어 보인다는 것이 그 꼴에 그 모양이었다. 참으로 간 큰 발표라고 볼 수밖에 없다.
  
  
  
  
   그 발표의 내용을 두 번 다시 되씹고 싶지 않지만, 법 처리 과정을 잘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서 그 국가기관이 잘못한 몇 가지만 지적하는 데 그치고자 한다. 주로 수사의 방향과 물증과 증인 채택에 국한해서 말하고자 한다.
  
  
  
  
   첫째로 문제의 당사자는 길을 가다가 우연히 만난 사람들도 아니다. 어떠한 이해를 공동적으로 추구하기 위해서 만나고, 그러한 방향에서 공동적으로 노력해 온 사람들이다.
  
  
  
  
   그런데도 이번의 발표를 보면, 두 사람의 사업적 밀착관계가 무엇인지, 어떻게 주가 조작이 이루어졌는지, 그 조작과 공동이해는 어떤 관련이 있는지 등등이 전혀 드러나지 않고 마치 서로 모르는 익명의 두 인간이 부닥뜨린 사건과 같은 인상을 주고 있다. 김 모씨가 미국에서 유수한 모건 스탠리에서 잔뼈가 굵은 펀드 매니저였던 것으로 알려진다. 펀드 매니저란 다분히 기만성이 있는 직종으로 그의 능력 여하에 따라서는 회사가 대박을 구가하기도 쪽박을 차기도 한다.
  
  
  
  
   그런 일류 매니저와 함께 사업을 도모할 때 주식 또는 펀드에 대한 하부 처리 과정은 모씨가 김씨에게 일임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두 사람의 이익을 챙기기 위한 '모의'(?) 또는 '합의'를 알아내는 것이 가장 중요한 수사의 초점이라고 보아진다. 그러자면, 양당사자의 소환과 대질은 필수적이다. 이를 빠뜨리고 '무혐의'로 처리한 것은 사건의 성격을 희석시키는 ‘정치적 고려’라고 볼 수밖에 없다.
  
  
  
  
   지난날 일본에서 미국 항공기 제조회사 ‘록히드 뇌물사건’이 터졌을 때 일본 검찰은 국가 최고 수반인 다나까 총리를 전격적으로 구속 수사하기에 이르렀다. 우리 검찰은 권력이라면, 과천에서부터 알아 기는 식으로 소환-대질 한 번 없이 대담하게도 이 사건을 종결시켜버린 것이다.
  
  
  
   주가 조작 공범 여부는 당사자의 소환 없이 결론을 내리는 것은 아주 위험한 일이다. 검찰이 주로 김씨의 자백에 의존해서 기소를 했기 때문에 ‘강압적인 자백’의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 지금 세인의 관심이다. 김씨의 자백이 임의성(任意性)이 있는지의 여부는 앞으로 사법부에서 가려질 문제가 될 것이다.
  
  
  
  
   둘째로 검찰은 ‘계좌 추적’을 전가의 보도인 것처럼 휘둘렀다. 계좌 추적의 결과를 절대적인 증거주의로 삼았기 때문에 모씨는 쬐고만 흠결도 없는 ‘신’으로 격상되고만 것이다. 가령, 삼성의 ‘차명계좌’로 떠오르는 김 용철 변호사의 계좌를 수백 번 내지 수천 번 조회를 해본들 삼성과 김 변호사 간에 입출금 여부가 드러나겠는가? 차명계좌라는 것은 김 변호사의 양심고백에 의하여 드러난 것일 뿐이다.
  
  
  
  
   마찬가지로 이번에 조회한 계좌의 주인이 진짜 주인인지 차명인인지, 검은 대리인인지의 여부를 따지지 않고 그 명의인들의 액면 그대롱의 계좌를 수만 번 조회해본들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이 아닌가?
  
  
  
  
   세째로 범죄란 TV의 CIS 범죄의 프로를 보더라도 아주 쬐고만 단서에서도 얼마든지 범죄의 큰 가닥을 잡아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러 함에도 검찰은 계좌에만 빠져 허우적거리는 시늉을 취하면서 이 후보가 자신의 개인 사무실에서 김 경준 씨와 사업을 할 당시 직접 “BBK 회장/대표이사”라고 박힌 명함을 오스트리아 전 대사인 이 장춘 씨에게 건네 준 적이 있다.
  
  
  
  
   이 명함은 이 후보가 BBK의 실소유주라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물증이다. 한나라 당에서는 이 회창을 지지하는 ‘수구보수분자’들이 날조한 명함이라고 주장했는데, 검찰은 명함을 주고 받은 사람들을 소환한 적이 없다. 결국 이 후보에게 불리한 물증을 기피했다는 평을 면하기 어렵다.
  
  
  
   이 후보가 지금까지 주장해 온대로 BBK의 실소유주가 아니라면, 대표이사가 아니라면, 이 후보는 무슨 목적으로 이런 명함을 만들었을까? 김 경준 씨의 주가 조작이라는 야바위 판에 선의의 투자자를 끌어들여 똥바가지를 안기기 위한 ‘바람몰이꾼’ 의 공범 역할을 한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이 명함 이외에도 이 후보가 몇년 전에 중앙일보 동아일보 등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BBK 등이 자신의 실소유주임을 밝힌 바가 있다. 그리고 이 후보가 한나라당의 종로구를 책임지고 있을 때 사무장 등의 일을 본 사람들이 '다스'의 MB로부터 월급을 받은 것이 다 드러난데도 이 나라 검찰과 한나라당 만이 애써서 외면하고 있다.
  
  
  
  
   이 하나만 보더라도 두 사람이 공범이었을 가능성을 전적으로 부정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렇다면, 검찰은 엉뚱한 곳에서 땅을 파고난 뒤 결국 “파보니 아무 것도 없었다. 무혐의. 끝. 구경꾼들은 귀가하시오”이라는 얘기와 무엇이 다른가?
  
  
  
  
   넷째로, 이번 계좌 추적의 결과로 ‘도곡동 땅’ 투기의 결과만큼은 발표할 줄 알았지만-바꾸어 말하면, 도곡 동 땅을 판 그 금액이 ‘다스’에 입금된 것이기 때문에 땅 주인이 누구라는 것은 훤히 드러났을 텐데도-그 땅 주인이 누구라는 것을 더러운 검찰은 끝내 입을 다물고 말았다.
  
  
  
  
   다섯째로, 기자들의 전언에 의하면, 증인 채택에 있어서도 김 경준 씨의 증인들이 대체로 외국에 머물고 있다는 것을 구실 삼아 거의 다 모씨를 위한 증인들의 증언만이 수집된 인상이다.
  
  
  
  
   여섯째로, 김 경준 씨가 수천 길 아래로 급전직하한 계기와 배경이 문제이다. 미국에서 김씨는 ‘단독범’이 아니라는 것을 주장하기 위해서 한국행을 택하고, 그 동안 공범관계라는 것을 굽히지 않았다. 그런데 그는 왜 기소 만기일을 얼마 앞두고 “주가 조작에 모 후보가 개입하지 않았으며, 혼자서 다 했다”라고 말을 바꾸었을까?
  
  
  
  
   그리고 또 하나는 김씨가 “한글 이면계약서”의 조작을 시인하는 듯한 말을 왜 하였을까? 인감을 둘러싸고 당시의 검찰 견해(‘금감원’ 등에 제출한 서류상의 인감과 같다는) 와 한나라당의 ‘막도장’과 인감 개인(改印) 후의 도장을 위조 했다는 오락가락 발언 사이에는 어떤 사정이 가로 놓여 있는가? 결국 검찰은 오락가락하는 한나라당의 후자에 힘을 실어 준 배경은 무엇인가?
  
  
  
  
   이렇게 자신의 입장을 번복하는 사정과, 이틀 전에 문제가 돤 김 경준 씨의 “메모 쪽지”와는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인가? 그렇게 관련짓고 싶지 않지만, 만의 하나 ‘감형’을 미끼로 피의자를 회유하거나 협박을 일삼은 결과로 김씨가 자신의 주장을 번복했다고 하면, 법을 앞세운 또 하나의 범법 행위로서 범죄를 소추하는 국가기관으로서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반국가적 범죄가 아닐 수 없다.
  
  
  
  
   거짓과 정의는 언젠가 반드시 드러나게 마련이다.
  
  
  
  
[ 2007-12-07, 01:01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맨위로

댓글 글쓰기 주의사항


맨위로월간조선  |  조선일보  |  통일일보  |  미래한국  |  올인코리아  |  코나스넷  |  리버티헤럴드  |  뉴데일리  |  뉴스파인더  |  뉴포커스
  개인정보취급방침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