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백만 영령들이시여
강요된 단식으로 파리 떼처럼 쓰러진 3백만 영령들이시여

최성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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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령들이시여,

지상낙원에서

한 주검과 한 배불뚝이만의 지상낙원에서

강요된 단식으로 파리 떼처럼 쓰러진 영령들이시여,

물고기처럼 물만 마시고 지렁이처럼 흙만 퍼먹다가

영영, 엉엉, 픽픽, 엉엉,

파리 떼처럼 쓰러진 3백만 영령들이시여,

두고 온 영실 가족들이 눈에 밟혀

두고 온 영실 동무들이 눈에 밟혀

차마 훌쩍 떠나지 못하는 저 어둠의 땅에서

영령들이시여, 3백만 영령들이시여,

돼지도 말라서 날씬하고

소도 개도 뼈만 앙상한 저 불모의 땅에서

곡식도 초목도 죄다 누렇게 말라비틀어지고

텃새도 철새도 어디론가 다 날아간 땅에서 

영령들이시여, 3백만 영령들이시여, 

달동네의 쪽방도 수령의 동상처럼 환한 이리로 오셔서

하얀 쌀밥이 장군봉의 만년설처럼 흔한 이리로 오셔서

우리의 뒤늦은 정성을 흠향(歆饗)하소서


영령들이시여, 3백만 영령들이시여,

온몸을 옥죄는 공포의 사슬을 끊고 

영혼을 짓부수는 기아의 덫을 걷고

한 주검과 한 배불뚝이만의 지상낙원을 떠나

천만 생령과 천만 영실 동무의 생지옥을 떠나

영령들이시여, 3백만 영령들이시여,

안전원이든 보위원이든 당세포든 혁명소조든

저 악귀들은 이제 그대들에게 범접할 수 없으니

바히 두려워 말고 한달음에 이리로 날아 오소서 

이밥에 소고기국에 비단옷에 기와집에

두 배불뚝이의 60년 거짓 약속에 그만 속으시고

영령들이시여, 3백만 순백의 영령들이시여,

여기 별천지를 잠시 돌아보시고

10년 단말마의 허기를 면하소서

15년 단말마의 허기를 면하소서

새까만 수수깡  옛 몸을 눈물로 그만 어루만지고

풀과 나물, 강낭속과 깡치, 헝겊조각과 파철(破鐵)의

산더미 봇짐과 보따리에 그만 눈물지으시고

여기 별천지로 오셔서

식탁 아래 버린 음식이

생지옥의 군당비서 식탁 위에 쌓인 음식보다 푸짐한

여기 별천지로 오셔서

우리의 뒤늦은 정성을 흠향하소서

 

영령들이시여, 3백만 영령들이시여,

우리의 참담하고 부끄러운 마음을 용서하소서

어둠의 땅에선 강냉이도 감사하지만

여기 별천지에선 소갈비도 타박하고 

어둠의 땅에선 헌 자전거도 자랑이지만

여기 별천지에선 새 자가용도 불만이고   

어둠의 땅에선 이웃 나들이도 성분과 고임이지만

여기 별천지에선 해외여행도 자유와 평등이고

어둠의 땅에선 공개총살도 일상사지만

여기 별천지에선 중고생의 더벅머리도 인권이고

3백만 동포의 생죽음과 2천만 형제의 노예생활에는

눈을 감고 귀를 막고, 혹

어둠의 땅에서 내리치는 지옥사자의 채찍에 힘이 빠질까

하얀 쌀과 번쩍 금은보화를 바리바리 올려 보내는데

영령들이시여, 3백만 영령들이시여,

여기 모인 우리는

3백만 생죽음을 친부모형제의 생죽음같이 슬퍼하는 우리는

2천만 노예생활을 친부모형제의 노예생활같이 아파하는 우리는

이렇게 무수히 오가는 행복에 겨운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어

오늘도 헛되이 목만 쉬어 가니

영령들이시여, 3백만 영령들이시여,

우리의 이 참담하고 부끄러운 마음을 헤아려 주소서  

 

영령들이시여, 3백만 영령들이시여,

어둠의 땅에서

2천만의 생지옥에서 훌훌 이리로 오셔서

뒤늦은 우리의 작은 정성을 흠향하시고

이 별천지에서도 떠나시어

어둠의 장막에 갇힌 이 땅에서도 떠나시어

분노도 잊고 안타까움도 접고

길 잃은 강아지조차 배고픔을 모르는 곳으로 가소서

영령들이시여, 3백만 영령들이시여,

혹 다시 오신다면

어둠의 저 땅에

가느다란 새벽빛이 비칠 때에 오소서

어둠의 장막에 갇힌 이 땅에도

휘황찬란 네온사인과 야시시 사이키 조명이 아니라 

가느다란 새벽빛이 비칠 때에 오소서

우리의 뒤범벅 피와 땀과 눈물 위로

가느다란 새벽빛이 비칠 때에 오소서

 

영령들이시여, 3백만 영령들이시여,

혹 다시 오신다면

번개와 천둥으로 오소서

남과 북 어둠의 무리들에게 

번개와 천둥으로 오소서

우리의 뒤범벅 피와 땀과 눈물을 

깨끗이 씻어 주는 천사로 오소서

그 날에

3백만 그대 생떼죽음을 헛되지 않게 하려고

외롭게 발버둥치는 우리를 지켜 주소서

영령들이시여, 3백만 영령들이시여,

그 날을 약속하며

이제 편안한 데로 가소서

길 잃은 강아지조차 배고픔을 모르는 곳으로 가소서

그 날이 올 때까지

잠시나마 편안한 데서 쉬소서

 

하나님, 이 3백만 순백의 영혼을 어여삐 여기소서

하나님, 이 3백만 형제의 영혼을 불쌍히 여기소서

아멘          

 (2007. 12. 13.)

*영실: 영양실조
 강낭속: 옥수수 이삭에서 알을 훑어 낸 나머지 부분
 깡치: 찌꺼기
 파철: 고철
 고임: 뇌물
*바히: (옛 말) 전혀

[ 2007-12-13, 21:37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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