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會昌 캠프의 主敵 혼동
창당하려면 보수답지 않은 참모들 전원 물러나야.

金成昱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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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창 무소속 후보의 득표율이 15.1%(이명박 48.6%, 정동영 26.2%)에 그쳤다.

 

李후보의 11월7일 출마선언 당시 26%보다 10%이상 떨어졌다.


연합뉴스는 昌캠프의 『불안한 후보론』과 함께『정통보수론(정통보수를 주장한 것)』에서 원인을 찾았다. 그러나 실제 패인(敗因)은 간단했다. 「정통보수」를 선언만 했을 뿐 내용(內容)이 없었다. 「법과 원칙」을 뒷받침할 구체적 공약(公約)이 없었다. 昌캠프의 이념부재(理念不在)가 낳은 당연한 결과였다.


昌캠프는 이명박 후보를 상대로 對北정책을 비판하거나, 左派인맥을 공격하거나, 노선투쟁은 하지 않았다. 오로지 BBK 비난에만 집중했다. 左派후보와 공조하며 주적(主敵)을 잃어버렸고, 박근혜 대표의 지원을 구걸하듯 안달복달했다. 감동(感動)을 주지 못하는 선거운동은 구태의연(舊態依然)했다.


기자의 이메일엔 昌캠프 논평과 성명이 하루에도 십여 건씩 쏟아져 들어왔다. 혹시나 하며 일일이 열어봤지만, 하나같이 「이명박 BBK」에 대한 선정적(煽情的)이고 유치(幼稚)한 비방뿐이었다. 칭얼거리는 어린아이 불평 같았다. 어떤 주장은 화를 치솟게 할 정도로 비열했다. 정동영 캠프에서 온 것인지 구분도 되지 않았다.

 

이명박 후보와 한나라당의 애매한 이념노선을 공격하거나, 청계천에 서해교전 전사자 추모비를 세우겠다거나, 광화문에 애국광장(愛國廣場)을 만들겠다거나, 이승만·박정희 기념관을 세우겠다거나, 『북한에도 자유와 법치가 필요하다』는 식의 對北메시지는 끝내 나오지 않았다.


昌캠프엔 확고한 右翼인사들이 대거 포진했었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은 어디서도 들을 수 없었다. 어느 선에선가 모두 막혀버린 것 같은 느낌이었다. 「2002년 이회창 후보를 촛불집회로 내 몬 참모들이 다시 몰려든 것일까?」 「이곳도 386출신들이 이회창 후보의 눈과 귀를 막고 있는가?」  그런 생각까지 들었다.


이회창 출마는 북한에게「공포심」을 불러일으켰다. △소위 『極右·保守정당 창당의 가능성』과 △『한나라당의 極右·反통일 노선으로의 압박』등이 이유였다. 이런 공포심은 선거 내내 로동신문과 반제민전의 온갖 흉측한 비난과 욕설로 발산돼왔다. 그럼에도 昌캠프는 북한에 대해 제대로 된 공격 한 번하지 못했다.


11월7일 26%의 지지율은 이회창 한 사람이 만들어낸 것이다. 12월19일 15.1%의 지지율은 昌캠프가 떨어뜨려 버린 것이다. 97년, 2002년에 이어 2007년 패배의 주역인 소위 가신그룹은 모든 책임을 지고 전원 물러나야 마땅하다. 그것이 이회창 후보를 중심으로 한 보수정당 창당의 전제조건이다. 

출처 : 프리존
[ 2007-12-20, 02:55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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