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과 방법을 혼동하면, 배가 산으로
대화의 창에 못질을 하면, 기자실 대못 빼고 전봇대 뺀다고 더 나은 방법이 나올 리 없다.

최성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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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

 이 속담은 대개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적만 달성하면 된다'는 뜻으로 새긴다. 그런데 사람들은 '수단방법이 다소 불법적이고 비도덕적이더라도 괜찮다'는 목적 만능주의 내지 목표 지상주의를 비아냥거리기 위해 쓰기도 한다. 그러나 이 속담의 함의는 한국 문화에서 심원한 철학을 담고 있다. 그것은 바로 목적과 방법을 동일시하여 곧 본말을 전도시켜 방법을 절대시하지 말라는 것이다. 말기암 단계의 명분주의에 대한 실용주의적 메스가 숨겨져 있다.

 예를 들면, 조선의 대표적 명분이었던 동방예의지국으로서의 '예의'가 있다. 임진왜란 때 이런 일이 있었다. 중국과 일본의 속닥속닥 강화에 의해 왜군이 1593년 4월 12일에 한양을 떠나 아무런 공격도 받지 않고 룰루랄라 남해안 지역으로 철수했지만, 선조는 천 리 밖에서 무조건 공격 명령만 내릴 뿐 혹시 죽을까 겁이 나서 부들부들 떨다가 약 6개월이 지난 10월 1일에야 월산대군의 집으로 들어간다. 그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종묘에 제사지내는 일이었다. 여기까진 괜찮다. 제사 지낸 후 선조가 신하들에게 묻는다.

 "곡을 하고 났으니 이제 무슨 빛깔의 옷을 입을까, 요?"
 여기서 갑론을박하다가 지금 입고 있는 빨간 색보다는 슬픔을 나타내는 검은 색 옷을 입는 게 예의가 맞다는 대신들의 말에 선조가 고개를 끄덕인다. (선조실록 1593/10/1)

 얘기는 계속된다. 선조가 며칠 후 크게 노하여 교시를 내린다.  
 "난리 통에 서울의 백성으로서 죽은 사람이 수없이 많았으므로 도성 안에서 살아남은 백성들은 반드시 반 이상이 상복을 입었을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런데 정작 서울에 들어오는 날 보니, 도성 안에 백성들이 가득 찼으나 상복을 입은 사람은 없었다. ... 예조로 하여금 각부에 지시하여 예절상 마땅히 상복을 입어야 함에도 입지 않은 사람들에 대해서는 그 마을 안에서 일일이 조사하게 하여 모두 상복을 입게 할지어다." (선조실록 1593/10/9)

 봄에 뿌릴 종자도 다투어 빼앗아 먹고 길거리에 뒹구는 사람의 시체도 뼈만 남기고 싹싹 발라먹고 산 사람도 심심찮게 잡아먹는 판에, 국가 최고의 위정자로서 책임을 통감하고 백성들에게 백배사죄한 후 어떻게 민심을 수습하고 어떻게 백성을 구제할 것인가, 그것부터 생각해야 마땅함에도 하루 한 끼 죽도 먹지 못하는 백성들에게 '상복 안 입었다고 윤리와 규율(倫紀)이 무너지고 오랑캐 풍속에 물들었다'고 암군(暗君) 선조는 질책하고 있다. 이렇게 선조는 화살 한 번 안 쏘고 한양을 버리고 빗속에 질질 짜며 도망가다가 백성들에게 돌팔매질 당한 것도 까맣게 잊고 전혀 앞뒤를 구분 못하고 있다.  

 예의는 굳이 맹자의 말을 인용할 것도 없이 의식이 족(足)한 연후에 찾는 것이다. 의식(衣食)은커녕 삶보다 죽음에 더 가까이 다가간 사람들에게 상복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선조는 말세를 개탄해 마지않는다. 그에 대해 조정 대신들은 또 무어라고 얘기했는지 아무 기록이 없다. 아마 즉시 거행하겠나이다, 망극하옵니다, 이 따위로 대답하고 한 동안 난리법석을 떨었을 것이다. 그렇게 하면 족보에 실을 벼슬이 더 높아졌을 것이니까.

 우선 당장 행정력을 복원하여 백성들을 살리고 농사 준비를 시키고 군대를 양성하여 전쟁에서 승리해야 하는데, 모내기하는 아낙네들의 저고리가 짧다니 종아리가 다 드러난다니 옷에 진흙이 묻었니, 하며 논둑에 앉아 담뱃대를 길게 빼물고 연방 말세라고 혀를 차는 양반과 같은 짓이 예의를 바로잡는 숭고한 일이라고 곧 인간의 지고지순한 목적을 달성하는 거룩한 일이라고, 따지고 보면 전쟁의 원흉이라고 할 자들이 자신들은 살 만해지자 다 죽어 가는 백성에게 예의의 채찍을 사정없이 휘두르고 있다. 예의는 법률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복잡한 이해관계를 조정하여 문명사회를 만드는 한 방법일 따름인데, 문명사회는커녕 원시인간사회 아니 동물집단도 불가능한 상황에서 이 구름 잡는 방법을 유일무이한 목적으로 혼동하고 있다. 방법을 절대시하고 이에 토를 달거나 따르지 않는 자는 짐승 취급하고 있다.

 조상의 유전자 때문일까, 한국은 특히 한국의 지식층과 권력층은 아직도 이런 문화풍토 내지 의식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현재는 6공화국 제5기가 결정된 상태인데, 요즘 인수위를 보면 올바른 정책도 많지만, 6공화국 제2기 이래 4정권과 별반 달라 보이지 않는다. 민주와 평등과 통일이 1987년 이래 가장 목적이요 목표였는데, 이미 그것은 6공화국 제1기에서 대부분 성취되었다. 오히려 그 뒤로는 퇴보했다. 목적과 목표가 아니라, 각 정부마다 자신들이 내세우는 방법이 곧 선악의 잣대가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무수한 민주 개혁과 무수한 평등 개혁과 무수한 통일 정책이 쏟아졌음에도 갈등만 심화시켰고 불확실성만 증가시켰지, 현실은 나아지기는커녕 점점 나빠지기만 했다.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그들이 내세우는 새 정책이야말로 지고지순의 방법이라며 이에 반대하는 자들은 모조리 콩도 없는 콩밥을 먹어야 할 자들로, 당장 검은 상복을 입어야 할 대상으로 매도되었다. 그것 외에도 이런 방법도 있고 저런 수단도 있습니다, 라고 하면 바로 수구세력이니, 시대착오적인 매카시 무리니, 반 개혁 세력이니 반 통일 세력이니, 반 민족 세력이니, 사대주의자들이니, 하면서 저주의 독침과 비난의 독화살을 쏘아댔다.

 작은 정부, 경제 성장, 선진 교육, 환경 보호, 물류 개선, 관광자원 개발, 양성 평등, 노사 협조, 지역 균형개발, 자유평화통일 달성 등은 목적이요 목표다. 그러나 그것을 실현하는 수단과 방법은 무수히 많다. 그리고 그 수단과 방법을 찾는 데는 천재만이 아니라 보통 사람과 바보도 참여할 수 있도록 대화의 창을 열어 놓으면 열어 놓을수록 점점 더 좋은 방법이 나오고 그렇게 하는 과정에서 합의를 이루기도 쉽다. 인수위라는 지극히 좁은 당선자 우호 집단과 예스걸 예스보이만으로는 한국적 현실에 맞는 방법을 찾기가 대단히 힘들다. 더군다나 수많은 방법 중에 하나를 자랑스럽게 내놓다가 여론의 역풍을 만나면 노발대발하면서 오해해서 그렇다며 일방적인 훈시 한 마디로 대화의 창에 못질을 하면, 기자실 대못 빼고 전봇대 하나 뺀다고 더 나은 방법이 나올 리 없다. 모름지기 권력은 겸손할수록 높이 올라가고 지혜의 창은 열수록 더 넓어지는 법이다. 인수위의 맹성을 촉구한다.
                (2008. 1. 29.)     
     

 

 

 

 

[ 2008-01-29, 13:21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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