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은 6개월만에 짓는 아파트가 아니다
교육은 교육 전문가에게 먼저 물으라.

최성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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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박 정부는 영어몰입 정부가 되려나 보다. 15년간 경제 침체에 시달리고 안보 불안에 떨던 국민이 권력의 새 부대를 주었더니, 이명박 정부는 경제와 안보의 새 술이 아니라 영어의 새 술을 담으려고 한다. 작은 정부를 만든다며 선진국이 부러워 하는 대한민국의 과학기술부와 정보통신부는 한 칼에 폐지하고 6개월 또는 1년 단기 과정으로 2만3천 명 영어 명품 제조업자를 특별 채용하겠다고 한다. 영어회화 하나로 먹고 사는 공무원을 그만큼 늘리겠다는 말이다. 

 그들은 50대, 60대, 386운동권의 특수한 영어 콤플렉스를 일반화하여 요즘도 학생들이 10년 영어공부에 입도 벙긋하지 못하는 줄 알고, 영어만 잘하면 교육 문제가 절로 풀리는 것처럼 권력의 새 부대를 열어제쳐 연일 영어 쓰나미를 일으키고 있다. 아직 갈 길이 멀긴 하지만, 요즘은 초등학생 중에도 외국에 한 번 나가지 않고 영어 잘하는 학생이 드물지 않다. 중고등학생도 상위권 학생들은 이명박 당선자보다 훨씬 유창한 발음으로 톡톡 튀는 영어를 구사하는 학생이 수두룩하다. 대학생이나 대졸 학생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일방적으로 매도되는 3만 영어 교사들도 이미 1930년대에 나온 교수법의 하나인 디렉트 메서드(direct method, 영어로 하는 영어 수업)가 제2국어 곧 second language가 아닌 제1외국어 즉 foreign language일 경우에는 여러 가지 문제점이 많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그렇지, 억지춘향으로 하기로 들면 영어로 수업 못할 사람이 거의 없다. 대부분의 교사는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안 할 뿐이다. 특히 20대 30대 영어 교사들은 그냥 영어가 아니라 거의 대부분 고급영어를 구사한다. 그들 중에는 영어로 농담도 자유자재로 하는 선생님들이 드물지 않다.

 second language와 foreign language도 구별 못하는 인수위가 두 달 동안 위임된 권력의 새 부대에 주막의 포도주를 물 마시듯 마신 돈키호테처럼 스스로 취하여 강남 일부에서 논의되는 영어 괴담을 전국에 연일 톱뉴스로 띄우고 있다. 수능에 영어 청해력 문제가 반영되기 시작하면서 이젠 중간급 학생들도 말은 잘 못하지만 웬만한 건 잘도 알아 듣는다. 그들에게 용기만 불어넣어 주면, "Don't be shy! Don't be afraid to make mistakes! You cannot learn English without making mistakes." 라고 등을 두드려 주면 일상 회화는 그런 대로 한다. 이게 어느 날 갑자기 된 줄 아는가. 외국에 연수 갔다 왔다고, 조기 유학 갔다 온 학생이 많아서 그렇다고 생각하는가. 전국의 3만 영어 교사들 덕분에 80년대 중반 이후 주어진 여건에서 국가 예산을 최대한 아껴 쓰면서 여기까지 온 것이다.

 현황 파악도 제대로 하지 않고 진단도 제대로 하지 않고 단기간에 돈만 퍼부으면 절로 되는 줄 아는가. 교육이 그렇게 쉽다면, 왜 전두환 정부 이래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사교육 박멸에 그렇게 몰입하고도 참담한 실패만 거듭했을까. 영어몰입 정책으로 곧 4조원의 예산을 5년간 퍼부으면 영어 사교육 15조원을 흡수할 수 있다는 것을 어떻게 권력에 도취한  확신이 아니라 교육 소비자가 인정할 현실로 입증할 수 있는가. 지난 역대 정권은 모조리 무능한 악마 정부이고 새 정부만 유능한 천사 정부인가. 그들도 교육에 관한 한 동기는 선했지 악하지 않았다. 단지 진단이 잘못 되었고 방법이 무지막지했을 따름이다. 100년 교육을 5년 안에 뚝딱 해치우려고 서둘렀을 따름이다. 

 영어가 아니라 전반적인 학력 저하가 문제다. 일부 학생은 학력보다 평등과 기회균등의 대원칙에 따라 선발하는 제도 때문에 이제 서울대 신입생 중에도 고교 수학과 영어, 과학 과정을 특별 보충 받아야 하는 학생이 있다는 것은 더 이상 뉴스가 안 될 만큼 심각하게 저하된 학력이 문제다. 논술은커녕 아주 간단한 맞춤법도(대통령 당선자를 비롯하여 인수위의 맞춤법 실력부터 검증하는 게 어떨까) 틀려서 이상야릇한 한글이 비 온 뒤에 잡초가 자라듯이 한 페이지에 가득한 한심한 국어 실력이 문제다. 학생 누구나 진급할 수 있는 제도가 문제다. 전과목 9등급도 출석일수만 채우면 초1에서 고3까지 유급이란 것은 일체 없이 하이 패스(high pass)하고, 연합고사도 없이 아무나 뽑아주고 개성과 특성과 건학(建學) 이념을 일체 무시하고 매년 수만 통의 공문(새 정부가 부러워하는 핀란드는 연간 공문이 4통밖에 안 됨)으로 획일적인 교육을 강요하는 평준화가, 지역이 아파트 값이 곧 학력을 좌우하는 평준화가 더 큰 문제다.

  "자립형 사립고는 허용하되 선발시험은 안 된다. 사교육을 조장할 테니까!"
  천하에서 제일 예리한 창으로 천하에서 제일 단단한 방패를 뚫으라는 말은 바로 이럴 때 쓰는 것이다.

 민족사관고를 보라. 강원도 골짜기에 있다. 서울 강남이 아니다. 그러나 그 학교는 세계가 알아 준다. 수학과 국어와 과학과 사회만이 아니라 그들은 영어도 기가 막히게 잘한다. 천하의 엘빈 토플러가 깜짝 놀랐다. 대한민국의 여자핸드볼 국대(국가대표)처럼 자랑스러운 그 학교에 들어갈 학생이면 조기유학, 그까짓 것 가라고 해도 안 간다. 미국의 명문대에 바로 합격할 수 있는데, 왜 낯설고 물 선 외국으로 갈까. 그 학교의 학생을 상위 내신 2배수 중에서 추첨으로 뽑아 보라. 3년 후에 사라져 버릴 것이다.           

 경제는 경제 전문가에게 먼저 묻고, 안보는 안보 전문가에게 먼저 묻고, 교육은 교육 전문가에게 먼저 묻고, 영어는 영어 전문가에게 먼저 묻고, 인권은 김정일 숭배자가 아니라 북한인권에 입이 아니라 몸과 마음과 돈을 바친 인권 전문가에게 먼저 물으라. 정치권을 기웃거리는 철새 교수나 철새 시민단체, 철새 종교인 등이 전문가라고 생각하는가.


 세종대왕은 조정의 대신이 아니라 과거에 급제한 수재가 아니라 일개 노비인 장영실을 최고의 과학기술자로 우대하여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결합한 물시계 곧 자격루를 만들어 조선의 표준시를 정했고, 이순신 장군은 대장장이 이필종, 노비 안성, 절의 심부름꾼 동지(노비라 뒤의 두 사람은 성도 없음)로 하여금 일본의 조총에 버금가는 조선형 조총을 만들어 임금한테 올려 보냈다. 바로 이들이 사서오경을 읽지 못한 천한 사람들이야말로 전문가였다. 

 권력의 새 부대가 비었다고 마음에 드는 술 위주로 마구 채우지 말라. 그러다 보면 막상 담아야 할 명품 술은 한 병도 못 담는다. 권력의 새 부대는 인수위가 생각하는 것처럼 무한히 크지 않다. 알고 보면 크기가 극히 제한되어 있다. 4천8백만이 저마다 다른 생각으로 지켜보고 있다는 걸 명심 또 명심해야 할 것이다.        (2008. 1. 31.)
 
 
 

 

[ 2008-01-31, 11:00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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