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개방은 선택의 여지가 없을 때만 가능
이명박 정부는 지난 세 정부와 마찬가지로 도대체 개혁개방이 무언지 모른다.

최성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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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의 개혁개방에 대한 생각은 크게 셋으로 갈라지는 듯하다.
 1. 햇볕(심약한 어머니)파: 대가를 바라지 않고 주고 또 주면, 언젠가는 스스로 수구폐쇄의 철갑을 벗는다. '원수도 사랑하라.' 
 2. 바람(엄한 아버지)파: 궁지에 몰아 넣고 당근 하나도 대가를 요구하며 주면, 흰 깃발을 들고 나온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3. 나그네(자상한 할머니)파: 나그네는 강도에게 집을 빼앗기고 북풍한설에 내쫓겼다. 남의 안방을 차지한 강도에게는 세금을 바치고 나그네는 모른 척하면, 강도는 더욱 기고만장해질 뿐이다. 나그네부터 구하라. '늑대를 몰아내고 어린 양떼를 푸른 풀밭으로 인도하라.'
                 
 이상에서 1번은 2번, 3번과 정반대 입장이고 2번과 3번은 사실상 같은 입장이다. 1번은 김영삼 정부 이래 15년간 펼친 정책이었지만,  뇌물 받는 개구멍만 동서 양쪽에 두 개 열었을 뿐 공산당 일당 독재의 성벽과 성문은 더욱 단단해졌고 적반하장의 대량살상 무기는 5천만의 생명을 손가락 하나 까딱하면 언제든지 취할 수 있을 만큼 가공해졌다. 그 사이 중국에서만 하루 1달러로 연명하던 절대빈곤층이 약 4억 명이나 줄어들었다. 그것은 외부로부터 공짜 돈 한 푼도 받은 것 없이 빌린 돈은 이자를 주고 투자한 돈은 과실금을 가져가게 하여 이룩한 연평균 10%의 고도성장 덕분이다(일인당 국민소득 2천불). 지난 10년간 아프리카도 연 평균 6% 경제성장률을 자랑했다. 이제 저 가련한 르완다도 저 화려하던 루이14세 치하의 프랑스보다 잘 산다. 지난 5년 사이에만 전세계적으로 절대빈곤층에서 벗어난 인구가 자그마치 1억3천5백만 명이다(The Economist 2008/1/26). 개혁개방 덕분이다. 

 개혁개방에 대한 문제에 대해 오래 전에 정답이 나왔다. 다만 한국의 친북좌파와 진보우파와 중도좌파와 중도우파만 이 날 이 때까지 받아들이지 않을 따름이다. 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기가 죽기보다 싫고, 자신의 기득권을 절대 놓치기 싫고, 이승만과 박정희와 전두환과 부시가 김일성과 김정일과 스탈린과 모택동보다 더 밉거나 그들 모두 똑같이 밉게 보이기 때문이다. 눈멀고 귀 먼 지도자들이 대한민국의 슬기롭고 어진 국민을 이끌고 있다.

 공산권의 개혁개방은 등소평이 처음 시작했다. 그는 죽음의 계곡에 3번이나 떨어졌다가 한번은 천 년 고목에 걸려서 또 한번은 웅덩이에 빠져서 또 한번은 동굴에 떨어져서 기적적으로 살아나, 그 때마다 기연을 얻어 내공이 한 갑자씩 늘어나 때만 기다리다가, 마왕 모택동이 죽자마자 오뚝이처럼 일어나 어제의 형제들을 불러모아 마왕의 후계자를 권좌에서 쫓아내고,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비장하게! 생사를 걸고! 유일무이한! 생존의 길을 선택했다. 그것은 마왕 때문에 3천만 명이 굶어 죽는 것을 보고 내린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처음에는 바다 건너 누구도 공산주의자 등소평의 말을 믿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조금도 섭섭하게 생각하지 않고 바다 건너로 손을 내밀지 않았다. 거지는 죽기보다 싫었던 것이다. 대신 그는 자립의 길로 나아갔다. 지극히 상식적인 개혁정책을 단행했다. 농민들에게 땅을 돌려 주고, 스스로 생산한 것은 대부분 차지하게 했다. 장사도 허용했다. 90년대 초만 해도 포도송이 두어 개를 내놓고 포도 알을 세 개씩 다섯 개씩 파는 사람들이 북경의 거리에서 보는 것이 진귀한 일이 아니었다.

 개방은 개혁 다음에 오는 일이다. 개혁의 성과를 눈으로 확인해야 바깥 사람들이 믿기 때문이다. 그는 홍콩 건너 마을에서 죽의 장막을 걷어냈지만, 미국이나 일본은 믿지 않았다. 농민들에게 땅을 돌려 주어 기아를 면하게 해 주는 것을 보고 반신반의하던 화교가 먼저 믿어 주었다.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중국의 직접 투자는 화교가 80% 이상 차지했다. 그렇게 15년 이상에 걸쳐 신뢰를 쌓고 조잡하지만 대량으로 물건을 만들어 내기 시작하자, 미국과 한국과 일본이 믿고 대대적으로 몰려 들기 시작했다. 마침내 개방이 본격화된 것이다.  

 7년 후 등소평의 개혁개방 정책을 본 공산주의자 고르바초프도 구미가 동했다. 그는 집권하자마자 등소평의 길을 따르기로 했다(1985). 철저한 공산주의자 고르바초프는 그 길만이 공산주의를 살리는 유일무이한 길임을 알았던 것이다. 이렇게 공산주의의 두 종주국이 변하자, 미국을 물리쳤다고 기고만장하던 베트남도 변하지 않을 수 없었다(1986). 3모작할 수 있는 천혜의 자연환경에서도 쌀을 수입해야 하는 미친 짓을 적화통일 후 9년간 계속하고 나서, 군사만 안 보냈을 뿐 무기와 군량미를 아낌없이 대 주어 양키를 물리치게 해 주었던 하늘같은 두 형님이 변하는 것을 보고, 등소평 형님이 성공하는 것을 8년간 지켜보고, 70대의 베트남 노인 응엔반린도 어쩔 수 없이 감옥에 가뒀던 월남의 시장경제 전문가를 모시고 개혁개방의 길로 나아간 것이다.

 제국주의자 소련의 식민지들도 변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원래 자유민주와 시장경제를 신봉했지만, 소련군과 소련의 앞잡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다 같이 망하는 공산주의를 받아들였던 만큼 소련이 개혁개방의 길로 나아가면서 소련군이 더 이상 위협이 되지 않자, 만세를 부르며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다 같이 잘사는 개혁개방의 길로 나아갔다.

 김정일은 노태우의 북방정책에 의해 개혁개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김영삼이 이념보다 민족을 앞세워 숨통을 터 주었고, 김대중이 텅 빈 공산왕조의 내탕고를 가득 채워 간덩이가 붓게 만들었고, 노무현이 공산왕조의 금성철벽(金城鐵壁)과 아방궁에 대량살상무기와 환락을 묵인하고 보장하여 간이 배 밖에 나오게 만들었다. 이들 세 정부는 김정일 공산왕조가 개혁개방의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하게 만들었다.

 이명박 정부도 오십보백보다. 그들은 지난 세 정부와 마찬가지로 도대체 개혁개방이 무언지 모른다. 15년간을 지켜보고도 모른다. 개혁 다음에 개방이라는 순서조차 모른다(비핵개방3000). 생각은 거의 그대로인 채 뉴라이트로 이름만 살짝 바꿔 국민의 표를 훔쳤을 따름이다. 아니, 그들의 말대로 핵무기가 없는 척하고 개방하는 척만 하면 300달러도 안 되는 소득을 무려 3000달러로 만들어 준다는데, 동서의 두 뇌물용 개구멍을 계속 채워 주겠다는데, 무엇이 아쉬워 모택동 같고 스탈린 같은 김일성의 2세가, 세계최고의 권력과 세계최고의 부를 가진 자가 자신의 권력과 부를 잃는 첩경인 개혁개방의 길로 나아갈까. 이명박 정부는 북한의 개혁개방을 한민족 7천만이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무슨 최 진사댁 셋째 딸이 갑부(300불)와 재벌(3000불)을 놓고 행복한 고민을 하는 것처럼 낭만적으로 생각한다. 걱정 또 걱정이다.                  

       (2008. 2. 9.)

[ 2008-02-09, 15:29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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