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병(病)
설마! 지금은 자치 민주의 황금시대라네. 설마! 지금은 참여 민주의 태평성대라네.

최성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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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인의 고질병 설마병이 크게 발작하여 나라의 으뜸 큰 보배를, 육백 년 영원의 자랑을 다섯 시간 수유의 화마(火魔)님에게 크게 공양하여 가장 아름다운 선과 가장 싱싱한 생명과 가장 고귀한 조상의 얼은 사탄님의 콧구멍을 벌름거리게 하는 진한 향으로 피워 올리고, 참 잘난 후손들이 실컷 구경하라고 갈가리 찢어지고 얼키설키 쌓인 처참한 시체만, 시커먼 물 위에 둥둥 뜬 시커먼 탄소 덩어리만 남겼다. 

 --바다건너 난쟁이들이 드디어 저네들끼리의 백년 싸움을 마치고 백년에 걸쳐 죽고 사는 실전(實戰)으로 갈고 닦은 칼 솜씨를 뽐내며 천하제일 검객의 열 칼도 버러지 같은 오합지졸 한 명이 능히 물고를 낼 수 있는 화승총 수만 자루로 무장하고 새까맣게 바다를 메우며 쳐들어온답니다.
 설마!

 설마병이 병인 줄도 모르고 임금 이하 만조백관이 백성의 기름과 피를 짜내어 마련한 푸짐한 술상을 받아놓고 야들야들 기생의 폭신폭신 다리를 베고 누워 사월의 향기로운 봄바람에 귀 기울이고 열 나흗날 휘영청 밝은 달빛에 눈 지긋이 감고 놀다가(吟風弄月), 저 난쟁이들이 단 한 번 몸도 못 풀고 나귀 타고 과거 보러 오는 선비보다 빠르게 탄금대를 건넜다고 하자, 허겁지겁 다 도망가고 임금과 후궁과 궁녀와 정승 등 그저 백여 명이 화살 한 번 쏠 생각도 못하고 밤을 틈타 몰래 도망갔다는 소문이 도는 순간 머리가 확 돌아 버린 무지렁이들이 제일 먼저 한 일은 노비문서를 잔뜩 쌓아 놓은 장예원(掌隸院)과 설마병 환자들의 꽃대궐을 불태운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도 감히 조상의 얼이 깃들인 아름답고 장엄한 숭례문에는 부싯돌 하나 키는 자가 없었다. 싸움밖에 모르는 왜구들도 하늘나라에나 있을 법한 숭례문(崇禮門)을 보는 순간 숨이 턱 막히어 정신을 잃었다.

 --여진 오랑캐가 큰 나라를 이루어 전하가 자기네 두목을 형님이라 부르지 않으면 대조선을 아작내러 온답니다.
 설마!

 오체투지하여 바위에 머리를 찧으며 항복하는 의리와 사대의 조선 임금을 높은 단에서 지긋이 내려다보던 여진의 왕도 눈 한 번 깜박이지 않고 오연히 버티고 선 숭례문은 감히 고개를 쳐들고 바라보지 못했다. 홀로 성문 위에서 거문고 타던 제갈량이 얼핏 스쳤으리라. 

 --소련 앞잡이가 소련의 최신식 무기를 들고 한 해 전만 해도 중공군에 속했던 조선족 5만을 앞세우고 38선에 가득 집결하고 있습니다. 동족 죽이기를 살찐 돼지 죽이듯 하는 자들이 낮에는 날마다 평화를 외치고 밤만 되면 살금살금 탱크를 나뭇잎으로 위장하고 내려와 38선 북쪽 십리를 가득 채웠습니다.
 설마!

 어른도 모르고 부모도 모르고 형도 모르고 스승도 모르고 이웃도 모르고 민족도 모르고 오로지 소련공산당과 조선노동당밖에 모르는 자들도 거룩한 숭례문 아래선 옷깃을 여밀 줄 알았다. 밤이 좋은 토요일을 맞이하여 영내가 텅 빌 만큼 군인들이 우르르 휴가 가고 우르르 외박 나가고 우르르 댄스 파티에 가서 몸을 비비꼬다가 멀리서 비몽사몽 들려오는 대포소리에 혼비백산하여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호랑이를 맨손으로 때려잡던 무송이라도 되는 듯 호기롭게 북진통일을 외치던 위정자들이 버선발로 도망가면서 한강다리를 뚝 끊는 바람에 독 안의 든 사람 쥐 떼를 사냥하던 머리에 뿔난 도깨비보다 무서운 빨갱이들도 육백 년 조상의 얼이 깃들인 숭고한 숭례문은 감히 손댈 생각을 못했다.

 --개방하면 위험합니다.
 설마! 지금은 자치 민주의 황금시대라네.
--경비가 허술하면 위험합니다.
 설마! 지금은 참여 민주의 태평성대라네.
     (2008. 2. 12.)

 

[ 2008-02-12, 22:46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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