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났던 북한 서해교전 참전자들의 이야기

장진성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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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에 올라갔다 내려온 당일 저녁 함장은 우리함에 비상소집 영을 내렸어요, 그 날만은 함장이 기름을 가득 채우고 무기와 함선점검 및 탄약도 최대한 실으라고 지시하였습니다.
  나는 신동아 06년 7월호에 “연평해전, 서해교전은 김정일 지시”라는 내용의 글을 기고하였다. 당시 신동아는 김정일 지시로 통전부가 기획하고 해군사령부가 추진한 서해교전과 연평해전을 특종으로 소개했다.


김정일은 연평해전이 우리가 진 전쟁이었다면 02년 서해교전은 이긴 전쟁이라고 극찬하며 NLL이야말로 남북경협으로 돈을 벌면서도 한편 남북갈등을 계속적으로 유발시킬 수 있는 새로운 전선, 전략지역이라고 하였다.


나는 재북 당시 통전부에서 근무하면서 교전 결과 보고서 작성을 위해 교전 참전자들을 방문한 적이 있다. 교전보안을 위해 조선인민군11호병원 특별병동에 입원한 해병들은 외부와 일체 차단돼 있었다. 그들의 나이는 대체로 19살부터(북한은 의무병역제로서 중학교를 졸업하는 16~17세부터 남자는 10년, 여자는 7년 군사복무하게 돼 있다.) 27살까지였다.


나는 우선 싸움을 해본 소감부터 물었다. 재미있는 것은 나이가 많을수록 한국경비함의 위력에 겁을 먹었는지 침묵을 지키는데 나이 어린 해병들은 살아 돌아온 안도감과 용감성의 과시로 쉼 없이 지껄였다. 그러나 그들의 대답마저도 듣는 우리의 가슴을 서늘하게 했다.


“우선 군함의 차이를 느꼈어요, 그 애들 경비함은 속도도 빨랐고 모든 무기가 자동화 돼 있어서 명중률이 높았어요. 현대무기의 위력과 우월성을 실감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비밀보안인 북한 측 도발 의도도 털어놓았다.


“평양에 올라갔다 내려온 당일 저녁 함장은 우리함에 비상소집 영을 내렸어요, 원래 기름사정 때문에 근무 나갈 때에는 절반만 채우는 게 원칙입니다. 우리 해군엔 구소련 구축함 두 대가 있습니다. 구축함이라고 하지만 사실 그 애들 경비함 수준이거든요,


그러나 우리에겐 그 함선이 최고이기 때문에 동해와 서해에서 각각 한 대씩 운영되죠, 기름이 없어서 절반만 채우고 나가기 때문에 그 애들처럼 경계지역을 순찰하지 못하고 세워놓고 있다가 돌아오곤 합니다.”


그들의 말에 의하면 북한 해군의 사정은 참으로 딱했다. 함선이 언제나 바다위에 떠 있기 때문에 조개류나 각종 해류들이 함체에 붙어있기 마련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정기적으로 도색제를 발라주어야 한다. 그래야 함선의 속도가 보장되는데 그 도색제마저도 5년만에 처음 받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날만은 함장이 기름을 가득 채우고 무기와 함선점검 및 탄약도 최대한 실으라고 지시하였습니다. 함선 점검 중 함장은 보조 조타가 고장 난 것을 발견하고 기관장에게 시간이 없다며 당장 수리하라고 지시하였습니다. 보조 조타란 기본 조타가 고장 났을 경우 수동적으로 함선을 조종하게 돼 있는 장치예요,


우리는 곧 싸움이 있을 것이라 짐작했습니다. 그 날을 대비해 며칠 전 함장 지시로 우리는 경비함 앞에 레일도 용접해 붙였거든요, 그 애들 함선이 우리 함선보다 강이 더 좋기 때문에 충돌시 우리 함선을 보호하기 위해서이고 또한 그 레일만 붙이면 그 애들 함선에 구멍을 낼 수 있다고 타산했거든요”


우리는 그 부분에 대해 더 듣기를 거부하였다. 그 이유는 통전부 서해교전 기획안을 미리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해군사령관의 특별지시를 받고 자기의 직속상관인 8전대장도 모르게 함장이 평양에서 돌아온 이후 단독 명령한 부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해병들은 이번엔 자기들의 영웅담에 대해 장황하게 이야기했다. “영화에서 보면 전투 중 대화를 나누는데 그것은 거짓말이에요, 포음이 울리고 나면 그때부터 귀에서는 멍한 소리밖에 안 들려요, 그래서 우리는 옆 사람을 찾을 때 총으로 철갑모를 때린 이후 모든 전투상황을 손으로 주고받으며 싸웠습니다.


먼저 함장이 죽었고 대신 그 자리를 지켜 함선 보위부 지도원이 전투지휘를 했습니다. 함장은 세 개의 파편을 맞아 죽었는데 그가 보조 조타를 수리하도록 지시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아마 수장됐을 겁니다. 기본 조타가 고장 났기 때문에 우리 함선은 한 자리에서 빙빙 돌았고 그것이 신기했는지 적들 함선에서 구경을 하더군요, 우리는 마침내 보조 조타로 조종하며 겨우 살아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훗날 3개의 파편에 맞아 죽은 함장 이야기는 조선인민군 협주단의 실화극으로 재현되어 김정일 앞에서 공연되었다. “아버지의 유산”이라는 제목의 그 실화극은 사랑하는 세 명의 딸에게 아버지가 남긴 유산이란 각 각 파편 하나씩, 즉 복수심이라는 것이다. 김정일은 그 공연을 보고나서 눈물을 흘리며 반드시 복수하라고 함께 관람한 군인들을 격려하였다.


나는 끝으로 교전 참가자로서 무엇을 가장 원하는 것인가 물어보았다. 지금껏 침묵을 지키던 나이 든 군인이 말했다. “솜옷을 원합니다. 그 애들은 모두가 방탄복을 착용했고 전투상황에 돌입하면 갑판 밑으로 사라지는데 우리는 오히려 갑판 위로 올라가 적들의 과녁대상이 되거든요. 가장 무서운 것이 파렬탄입니다.


우리의 머리위에서 터지는 폭탄인데 쇳덩이들이 순간에 우박처럼 쏟아지죠, 지금 여기에 입원중인 한 병사는 몸에 그 파편이 230개나 박혀있습니다. 솜옷만 있어도 파편이 덜 박힐 것 같습니다.”


그 보고가 올라간 이후 즉시 함선의 방탄 부분을 해결할 데 대한 김정일 지시가 떨어졌다. 그런데 그 지시는 관철되지 못했다. 북한 경비함의 위력은 탱크포에 있다. 파도로 배가 흔들려도 목표를 정확히 조준할 수 있고 화력도 대단해서 북한함선의 장점으로 돼 있다.


국방연구소와 제2경제 기술자들은 함선의 방탄 부분에 대해 토론을 거듭했지만 함선의 무게 와 속도 때문에 대신 탱크포를 내려야 함으로 취소됐다. 방탄 대신 화력을 더 추가하는 방향으로 단점을 보완했다. 러시아에서 1960년대에 들여온 발칸포인데 1분에 1500발이 발사되기 때문에 적 경비함의 화력을 능가한다고 김정일에게 보고됐다.


그리고 방탄복 대신 목화솜옷도 해결되었다. 아마 이제 다시 서해교전이 재발된다면 그때는 북한 해병들이 목화솜옷을 착용하고 나올 것이다. 나는 서해교전 참전자들에 대한 남북간의 우대차이에서 실망했다. 북한은 함장과 보위지도원에게 공화국최고 훈장인 영웅칭호를 수여하고 유물들을 전쟁기념관에 전시하도록 하였으며 다른 해병들에게는 국기훈장 1급과 함께 김정일 명의로 아파트와 가전제품들을 선물했다.


지금도 서해교전 참전자들은 북한의 영웅으로, 군인들의 귀감으로 선전되고 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기간 북한은 육지에서는 남북경협으로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는 한편 남북갈등 지역을 바다로 옮겨 평화협박전략으로 일관했다. 북한은 지금도 미국을 상대로 북핵정치를 하고 있고 남한에는 NLL정치를 하고 있다. 서해교전은 북한의 강경전략 수단으로서 반드시 재발할 것으로 추측된다.

[ 2009-02-16, 13:10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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