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발 제2차 세계공황의 가능성
제1차 세계공황이 미국의 과잉생산에서 비롯되었다면, 제2차는 미국의 과소비에서 비롯될 것이다.

최성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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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적 경기 침체가 경기 불황으로 치달을 것인가. 레이건은 1980년 카터와의 대선 경쟁에서 '이웃집이 실직하면 경기 침체(recession), 내가 실직하면 불황(depression), 카터가 실직하면 회복(recovery)'이라는 농담으로 사람들의 배꼽을 아프게 만들었다. 레이건의 호언장담대로, 카터가 실직하면서 미국은 경기가 회복되었다.

 

 일치된 견해는 없지만, 대체로 경기 침체는 두 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할 때를 이르고, 불황은 성장률이 마이너스 10%를 하향돌파할 때를 일컫는다. 지금도 두 용어를 섞어 쓰는 수가 많은데, 현재 상황이 세계적 경기 침체라는 데는 의견이 일치한다. 불황이란 말을 쓸 때는 이를 강조하는 의미로 쓴다. 여기서 제2차 세계공황이라는 것은 1929년부터 시작되어 제2차 세계대전의 발발과 더불어 사라진 세계적인 대공황(the Great Depression)과 나란히 설 만한 불경기를 이른다. 

 

 이런 최악의 시나리오를 예상하는 경제학자는 아직 못 보았지만, 내 어리석은 생각에는 가능성이 없지 않다.

 

 그 근거를 밝히기 전에, 개별적인 나라나 지역으로는 1945년 이후에도 미국의 대공황과 같은 상황이 숱하게 많았다는 것을 상기시키고 싶다. 가장 대표적인 지역이 옛 공산권이다. 그들의 대내외 선전선동용 통계가 아니라 실질 경제성장률은 동구 일부 국가를 제외하고는 계속 마이너스 성장했거나 미미하게 성장했다. 수십 년간 그랬다. 1990년 상반기 현재 공산권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로 알려졌던 동독이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1만 불 개인소득은커녕 3천 불도 안 되었다. 한국의 절반도 안 되었다. 통일되기 전 동독에서는 자동차를 한 대 사려면 최소한 20년 전에 주문해야 했다. 출생신고와 동시에 주문하면, 그 아이가 결혼할 때 살 수 있으면 다행이었다. 보통 30년이 걸렸던 것이다. 그나마 품질이 형편없었다. 대한민국의 10년 중고차보다 못했다. 생산성과 효율성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45년 전 모델을 그대로 생산하고 있었던 것이다. 88올림픽의 나라에선 그저 주어도 안 탈 차였다.

 

 다른 나라 기업도 그랬지만, 한국의 대기업이 동독에 진출했을 때 제일 먼저 한 일은 대대적인 새마을 청소였다. 공장의 바닥은 침과 가래를 퉤퉤 밭아서 1세제곱 센티미터 당 미생물 숫자가 10억 마리가 넘었다. 문전옥답과 비슷했는데, 유익한 미생물보다 유해한 미생물이 훨씬 많았다는 점이 달랐다. 벽도 시멘트조차 제대로 발라 있지 않았다. 거기엔 온통 낙서가 난무했고 서독 등지에서 유입된 야시시 사진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결국 모조리 뜯어내야 했다. 기계도 마찬가지였다. 공산권에서는 가장 앞선 것이었다고 하지만, 모조리 고철로 팔아야 했다.

 

 공산주의의 종주국 소련이나 다른 동구권도 말할 나위 없었다. 당시 GDP 통계가 제대로 잡히기 시작한 중국은 일인당 소득이 1천 달러도 안 되었지만, 연안지방만 따지면 그래도 전세계 공산권 중에서 제일 나았다. 공산주의의 계획경제가 싫어요, 자본주의의 시장경제가 좋아요, 라고 한 지 12년이 지난 덕분이었다. 최소한 중국인은 그 때 1년 전 천안문 사태를 경험하긴 했지만, 북경의 거리에서 포도를 송이가 아닌 알갱이로 팔았지만, 식당의 나무 젓가락이 새까맸지만, 화장실은 문도 없이 구멍만 뻥 뚫려 있었지만, 눈들이 다들 샛별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생산성과 효율성의 눈을 떴기 때문이다. 1949년 공산당이 중국을 통일한 이후 1978년까지는 10억 공산노예의 생지옥이었다. 경제로 국한해서 말하면, 30년 대공황이었다. 통계로만 기적적인 성장을 계속했다. 통계와는 정반대로 3천만이 굶어 죽었다! 거기 비하면, 1930년대 미국의 대공황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한국인으로선 알면 억장이 무너지게도, 알아도 여전히 주체사상이 좋아요, 라는 사이코패스가 아닌 한 억장이 무너지게도, 북한은 지금도 핵무기 개발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던 모택동 시대와 비슷하다. 모택동과 김정일의 핵실험은 약 30년 차이 난다. 북한은 60년간 대공황이다!    

 

 공황까지는 아니더라도 아프리카, 중남미, 서남아시아 등의 여러 국가는 공산권이 무너지던 무렵까지 만성적 경기 침체에 시달렸다. 굶어 죽거나 영양실조에 걸린 사람이 수도 없이 많았다. 아프리카와 아시아에선 수돗물의 혜택을 받는 사람이 드물었다. 자연히 질병이 만연했다.

 

 죽은 신 김일성이 통치하는 북한과 살아 있는 신 카스트로가 통치하는 쿠바 외에는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세계경제가 놀랄 정도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해안을 일부 개방한 쿠바는 그러나, 북한에 비하면 낙원이다.) 웬만한 국가는 10년 경제성장률이 그 이전 100년 성장을 능가했다. 10억 인구의 인도도 이 대열에 드디어 끼어 들었다. 

 

 그런데 인류 최초의 전세계 동시 경제성장은 미국의 소비에 크게 의존하고 있었다. 소비는 미덕이다, GDP의 70%는 소비가 차지한다, 그러니 많이 소비할수록 멋쟁이다, 이런 경제공리(公理)에 따라 시장경제의 우두머리 그린스펀도 선문답을 제공하며 소비자에게 아첨했다. 경기가 조금 조정 받는다 싶으면, 그는 즉시 연방기준금리를 내리고 또 내렸다. 과소비를 부추긴 것이다. 과소비란 빚내서 소비하는 것을 말한다. 신용카드는 기본적으로 빚내서 미리 소비하는 것인데, 이것은 다른 신용카드로 돌려 막기가 아닌 한 그 달 그 달 갚을 수만 있다면, 그리고 매달 어느 정도 저축을 한다면, 전혀 문제가 안 된다. 너도 좋고 나도 좋다.

 

 그러나 그것이 고정 수입으로 감당할 수 없을 때, 특히 주택이나 증권에 목돈을 빌려서 탁 털어 넣고 아름다운 미래에 대해 뿌듯해 할 때, 한두 번 재미를 봤을 때, 어느 순간 보이지 않는 손이 경고의 손사래를 칠 때, 그 손짓이 도리어 섹시하게 보일 때, 둑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미 서서히 균열이 가기 시작한 것이다. 둑이 무너지는 건 시간 문제다. 나는 상식의 입장에서 <소비경제와 생산경제>란 잡문에서 10년 전에 이를 경고한 적이 있다. 미국은 소비를 줄여야 하고 일본은 소비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 당시는 이렇게 빨리, 크게 세계적인 경제위기가 올 줄은 몰랐다.

 

 미국의 과소비로 인구 대국 중국과 인도, 선진공업국 일본과 독일, 산유국 사우디와 러시아와 베네수엘라 등이 가장 큰 혜택을 보았다. 그 사이 중국이 독일과 일본에 이어 세계의 공장으로 부상했다. 미국 다음으로 가장 큰 영향을 받을 나라들은 이들 국가가 될 수밖에 없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격으로 아이슬란드같이 축적된 것 없이 단기간에 고공비행한 작은 나라들이 먼저 쓰러지지만, 미국의 묵직한 카운터펀치에 석유 수출국과 대량 생산국은 다리가 풀리고 눈동자가 돌아갈 것이다.

 

 축적된 자본도 기술도 적은 나라들은 간접적인 영향이지만 타격이 더 클 것이다. 위기 상황에서 노약자가 먼저 쓰러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타이타닉호가 바다 속으로 서서히 빠져 들어갈 때 여자와 어린아이와 노인을 먼저 구하는 영화 속 인도주의는 경제 침몰 상황에서는 한 번도 없었다. 대외 의존도가 매우 높고 파당성(派黨性)이 유독 강하고 장기적 안목이 턱없이 부족한 한국도 불구경할 때가 아니다.

 

 제1차 세계대공황은 미국이 세계생산의 40% 이상을 차지할 때, 그에 대한 세계적인 소비가 뒤따르지 않음으로 발생했다. 그것이 해결된 것은 케인즈 덕도 아니도 루스벨트 덕도 아니다. 역설적으로 히틀러와 무솔리니와 히로히토 덕이었다. 그들이 무한 소비 곧 세계대전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이 독재자들은 미국의 공장을 100% 가동해도 오히려 소비가 딸리는 상황을 창출했던 것이다. 하나님의 역사(役事)는 정말 오묘하시다!

 

 이번은 그 때와는 달리, 미국이 세계소비의 20% 정도 차지할 때, 발생한 일이다. 독일과 일본과 중국이 우선적으로 소비해 줘야 해결될 문제다. 그러나 이들 세 나라는 여전히 저축과 생산이 미덕이다. 더군다나 중국은 아직도 개발도상국이다. 소비의 여력이 어림없이 적다는 말이다. 중국의 수출보다 수입이 더 가파르게 줄어드는 것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중국의 깊은 외환 주머니로도 어림없다. 미국의 지난 수십 년 과소비에 해당하는 10조 달러는 있어야 한다.

 

 희망은 1929년의 40%와 2008년의 20%라는 차이다. 생산과 소비이긴 하지만,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미국의 비중이 그만큼 작아졌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 때만큼의 충격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절반의 고통은 올 가능성이 다분하다. 제3차세계대전은 모르지만, 1945년 이후 가장 큰 지역적인 전쟁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그러면 태풍이나 지진 후에 지구환경이 안정되듯이, 세계경제도 안정될 것이다. 단, 포연(砲煙)이 자욱한 나라는 비참하기 이를 데 없을 것이다.
         (2009. 2. 19.)

[ 2009-02-19, 18:14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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