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10원으로 칼을 사다!
나의 脫北스토리(5)/"우리 한국 못가, 너무 사정을 모르고 왔어, 잡히면 너나 나나 살 수 있을 것 같아?"

장진성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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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우린 백 원을 들고 시장 한 끝 매장으로 갔다. 술병을 들고 매만지기도 했지만 무겁게 내려놓고 말았다. 대신 백 원을 50원으로 바꿨다. 교회에서 도망칠 때 공안보다 친구 등을 놓치면 어쩌나 했던 불안이 더 컸기 때문이었다.

 50원은 내가, 다른 50원은 친구 손에 쥐어주었다. 불가피한 사정으로 헤어지면 어디서 만나고, 만나도 사전에 자기의 안전신호는 무엇으로 보여줄지 구체적으로 약속했다. 가장 최선은 절대로 헤어지지 않는 것이어서 교회에서 도망칠 때 상황을 되새기며 뛸 때는 골목마다 무조건 오른쪽으로만 가야 한다는 것까지 약속했다. 유사시 연락처라며 그때 외웠던 신광용의 핸드폰 번호를 나는 아직까지도 잊지 않고 있다.

 우리는 그때부터 교회를 포기하고 한국 기업들을 찾아가기로 했다. 기업인을 직접 만나 우리의 간절한 소원을 아뢰고 그래도 통하지 않을 경우 그 회사가 한국에 보내는 컨테이너에 숨어가자고 계획했다. 그러자면 항구로 가야 했다. 가는 길을 물어보기 위해 신광용에게 전화를 했더니 차라리 연길에서 기업들을 찾아보라고 하였다. 연길은 정말 싫었다. 싫어도 백 원밖에 없는 처지에서 다른 방법 또한 없었다. 우리는 먼저 백 원으로 비누 한 장을 샀다. 배고픈 것은 우리 속사정일 뿐 살자면 남들에게 보여지는 겉모양부터 다듬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잠은 반드시 우물이나 공동수도, 혹은 시냇물이 있는 외진 농촌에서 잤고. 아침이면 시내로 걸어 들어와 한글 간판 기업들을 찾아다녔다. 물론 신광용이가 사 준 선글라스를 똑같이 끼고 말이다. 누구든 연길로 가보면 알겠지만 거의 한글이다. 정작 회사를 찾아들어가 보면 한국 상품만 있지 사람은 없었다. 한국의 대표적 기업들인 SAMSUNG이나 現代, LG를 찾아 이틀 동안 헤맨 적도 있었다. 그렇게 4일이 지나는 동안 내 돈은 물론 친구 돈도 거의 바닥이 났다. 그날도 온 하루 굶주림을 참다나니 빈혈이 났다. 만두가게 앞에서 나는 친구에게 사정했다.

 “죽을 땐 죽더라도 오늘 네 그 마지막 십 원 쓰자”

 “무슨 십 원?”

 “너 십 원 남았잖아. 없는 척 하지 말고 좀 먹자”

 “정말 없는데?”

 처음엔 장난치는 줄만 알았는데 친구가 화까지 내며 모든 주머니를 털어 보이기에 나는 한 구석으로 이끌고 가 그동안 먹고 썼던 돈을 일전도 빠짐없이 계산했다. 두 번 세 번 계산해 봐도 틀림없이 십 원이 남았다.

 “너 이래도 발뺌할 거야? 너 지금 나한데 십 원을 숨기려고 하는 거야? 왜 그러는데? 너 혹시 나 몰래 먹은 게 있어? 그랬어?”

 내 듣기에도 나의 목소리는 크게 들렸다. 그러자 내 시선을 피해 불안하게 여기저기를 둘러보던 친구가 버럭 고함치는 것이 아닌가.

 “그래 나 돈 썼다. 너 몰래 칼을 샀다!”

 그러면서 허리춤에서 정말 손칼 하나를 꺼내 바닥에 내동이쳤다.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한 끼도 달래기 힘든 우리 형편에 굳이 칼이 무슨 소용 있는가? 아니 친구에게 왜 나 몰래 칼이 필요했단 말인가? 고개를 쳐드는 친구의 눈에 눈물이 고이는 것이 보였다.

 “우리 한국 못 가, 너무 사정을 모르고 왔어. 한국 사람만 만나면 다 될 줄 알았는데 아니잖아! 우린 지금 꽃제비야. 이러다 잡힐 건 뻔해, 잡히면 너나 나나 살 수 있을 것 같아? 3대멸족이라고! 그래서 차라리 잡힐 바엔. 죽으려고 샀다! 왜?”

 바닥에 있는 그의 칼을 보니 내가 죽고 싶었다. 그동안 나의 유일한 위안이고 의지였던 친구가 이런 결심까지 품고 있었다는 사실 앞에 온 몸이 물먹은 솜처럼 잦아들었다. 돈 한 푼 없는 것보다 희망마저 잃는다는 것이 가장 두려운 상실감이었다. 나의 침묵에서 무엇을 보았는지 친구가 사정하기 시작했다.

 “이러지 말고 우리 큰 아버지 집으로 가보자. 다른 방법 없잖아. 어차피 매한가지야, 이러다 죽든, 거기 갔다가 죽든”

 나는 그때야 친구의 머릿속에 아직도 친척집 미련이 남아있고, 그것이 그를 그토록 나약하게 만드는 원인임을 알았다. 나는 그가 새겨들으라고 마디마다 또박또박 말했다.

 “너도 들었잖아. 너 같은 친척이 없다잖아”

 “사촌형도 공안 때문에 당황했을 거야, 살인자가 아니라는 것을 직접 설명하면 다 이해해, 광용이도 말했지? 우리가 아무 것도 모르고 이 짓하는 것보다 그 사람이 나서면 한국 가는 것은 문제도 아니라고. 가보자,”

 나는 당장 그를 설득하기엔 역부족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하루 이틀 시간을 두고 마음을 돌려보기로 했다. 아니 친구로서 이해해주리라 믿으며 농촌에 나가 일단 집을 잡고 생각해보자고 했다.

백 원이 있을 땐 어디든 괜찮았지만 무일푼 처지에선 우선 안정적인 숙식장소를 확보하는 것이 다음 일을 추진할 수 있는 선결조건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날이 점점 어두워져서인지, 아니면 사내가 둘이라 위압감을 느껴서인지 어느 집이나 냉정하게 거절했다. 친구가 한숨 끝에 제안했다.

 “우린 둘이잖아. 그러니 부담되기도 하고 한편 무섭기도 할거야, 그러니 각자 집을 구하고 아침마다 이 나무 밑에서 만나자”

 “만약 못 구하면?”

 “그래도 내일 만나자, 혹시나 둘 중 한 명이 집을 못 구할 수도 있으니 낼 아침 나올 때 먹을 것을 가지고 오기!”

 우린 이렇게 헤어졌다. 친구는 약속한 나무의 마을에서, 나는 고개 넘어 이웃 마을로 갔다. 손 흔드는 친구가 안심되지 않았지만 웃는 얼굴이 나를 끝내 가게 만들었다. 두만강을 넘은 후 처음으로 혼자 걷는 길이어선지 그동안의 일들을 정리해 볼 여유가 있었다. 한국 갈 수 있는 방법이 정말 없을까? 지금껏 만났던 사람들과 사건들에서 잘 못한 것은 무엇이고 앞으로 활용할 경험가치는 무엇인가? 아니, 우선 무슨 말로 친구를 설득할 수 있을까? 광용이와 짜고 확 겁을 줘볼까? 

 어느새 날은 어두워졌고 역시나 찾아간 마을에서도 나는 냉대를 받았다. 그 마을은 이상하게도 개들까지도 어찌나 사나웠던지 도저히 편치 않았다. 친구에게 칼이 마침 있으니 만약 함께 동행 했다면 한 마리 잡아먹었겠는데…이 생각에 친구가 갑자기 그리워졌고 그래서 나무마을로 발걸음이 돌아섰다. 그런데 친구는 다행히도 고마운 인정들을 만났는지 나타나지 않았고 결국 나는 나무를 벗 삼아 홀로 보냈다. 아침이 되자 친구가 가져 올 고기만두 생각에 신바람 났다. 그러나 해가 중천에 떠오르도록 친구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 밤에도, 또 다음날 아침도…

 나는 꼬박 이틀을 굶은 채 그냥 나무를 지켰다. 3일째 되는 날, 필히 친구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광용에게 당장 전화를 해봐야겠다는 판단에 마을을 돌며 집 문들을 두드렸지만 그 소원마저도 쉽지 않았다. 정녕 방법이 없을까? 사람이란 애간장 탈 때에는 저절로 눈물이 나는 것 같다. 뿌옇게 김이 서리는 선글라스를 벗고 흰 눈 위에 주저앉았는데 그 때 옆을 지나던 한 할머니가 멍해있는 나에게 한마디 던졌다.

 “조선에서 왔으면 여기 있지 마. 3일 전에도 공안이 이 마을을 다 뒤졌어”

 이틀을 굶어서인지 아니면 친구의 행처를 전혀 알길 없는 허탈함 때문인지 할머니가 하신 그 말의 의미를 모두 깨닫기까지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던 것 같다. 이곳을 떠야 한다! 그런데 어디로? 나는 일어서며 정신을 가다듬기 위해 혀를 깨물어 보았다. 그랬더니 아픔과 함께 순간 뇌리를 치는 곳이 있었다. 우리에게 세숫물과 함께 밥까지 주셨던 그 노인의 집이 떠올랐다. 나는 다시 용정리까지 걸어갔고 근심했던 것과 달리 쉽게 중학교 교사를 했다는 그 노인의 집을 찾을 수 있었다.

 “친구는 어디 갔소?”

 “연길교회에서 전화로 공안을 부르기에 도망치다가 헤어졌습니다.”

 나는 거짓말 했다. 노인이 소개해준 곳에서 봉변을 당했으니 책임지라는 식이었다. 방으로 들어서기 바쁘게 그 집 전화로 광용을 찾았다. 신호음이 울리는 동안 광용의 첫 음성은 과연 어떨까? 혹시 친구가 받았으면…하고 기원했다.

 “지금 어디요?”

 광용의 거친 질문에 나는 흠칫했다.

 “나 지금 용정리인데 혹시 친구가 전화 안 왔었어요?”

 “안 오긴 왜 안와, 이틀 전에 전화 왔었어요.”

 나는 안도의 숨을 크게 내쉬었다. 그리고 밖에 펴놓은 옥수수를 돌보고 있는 노인의 동정을 살피며 헤어지게 된 경위를 소곤소곤 말했다. 광용의 말에 의하면 급히 만나자고 해서 나갔는데 친구 주제가 말이 아니더라는 것이다. 손전등들이 무리로 마을 입구로 들어서는 모습을 보고 황급히 뛰다나니 산을 넘게 되었고 길을 잃고 헤매던 중 이리저리 온 곳이 연길이었다는 곳이다. 그런데 문제는 친구가 친척집을 찾아가겠다고 고집했다는 것이다. 내가 전화 오면 자기가 친척을 데리고 올 때까지 기다리도록 잘 설득하라며 만약 잡히면 그때 도망치라 했다는 것이다.

 “안 된다고 했지요?”

 “어떻게 그렇게 해요? 그 사람 혼자라도 갈 기세던데, 그러다 잡히면 나도 끝나겠는데,”

 일단 친구를 집에 숨겨두고 광용이는 다른 사람을 내세워 친구의 작은 삼촌이라는 사람을 만났다는 것이다. 핏줄이 가까워서인지 작은 삼촌은 자기 조카가 절대 살인할 사람이 아니라며 무척 만나고 싶어했다는 것이다. 그 사실을 알리려 집에 전화하니 친구가 목욕하고 밖에 나갔다는 것이다.

 그때부터 몇 시간 연락이 두절돼 자기도 지금 바늘방석에 앉은 것만 같다는 게 광용의 마지막 설명이었다. 나는 그동안의 방랑생활에서 자신감이 생겨 잠시 경솔해진 것이니 곧 들어올 것이라며 안심시켰다.  그러나 노인의 집에서 잡일을 해주며 3일을 기다렸지만 친구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그 3일 동안 나는 한 번도 심장이 조용히 뛴 적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광용의 다급한 전화가 왔다.

 “금방 창용삼촌 아주머니한데서 전화가 왔는데 친구가 잡힌 것 같아요! 공안이 와서 탈북자들한데 돈을 얼마 받았냐며 창용 아저씨를 싣고 갔대요. 나도 집을 옮길 테니 당신도 빨리 그 곳을 떠요.”

 나는 드디어 올 것이 오고야 말았구나! 하는 당혹감에 두 무릎이 떨렸다. 붙잡히면 죽을 것이라는 충만했던 각오도 그 순간에는 허무하게 무너졌다. 더불어 나도 이제 곧 공안에서 덮칠 것만 같은 착각이 내 몸 안으로부터 세차게 요동쳤다.

(내일 계속)

[ 2009-12-01, 13:02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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