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년 동안 동메달 1개 못 따는 북한
공산 독재자가 스포츠를 아무리 광적으로 지원해도, 인민의 먹거리를 선결하지 않는 한 만사가 도루묵이다.

최성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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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의 금메달 총수는 86개인데 반해, 2008년 북경 하계올림픽의 그것은 302개였다. 동계올림픽의 규모가 하계올림픽의 3분의 1 내지 4분의 1 정도인 셈이다. 두 대회 모두 개최국이 종합우승했지만, 겨울 우승국은 금메달이 14개밖에 안 되고 여름 우승국은 금메달이 51개나 된다. 14에 3.5를 곱하면 49니까, 우승국의 금메달 비중은 얼추 비슷하다.

 

 한국은 밴쿠버의 모든 빙판을 휘저으며 금메달 6개, 은메달 6개, 동메달 2개로 일약 겨울 스포츠 5대 강국으로 떠올랐다. 하계올림픽 우승국도 따돌렸다. 13억 인구 대국은 장족의 발전을 이뤘음에도 7위로 금메달 5개, 은메달 2개, 동메달 4개에 머물렀다. 예전에 비하면 몰락했다고 하나, 북경에서 [남쪽 바다들에서 북극까지]를 23번 울렸던 동계올림픽의 영원한 우승후보 얼음과 눈의 나라가 밴쿠버에서는 그 노래를 3번밖에 울리지 못했다. 6자회담의 일원인 일본은 이번에 금메달에 한 번도 입맞춤하지 못했다. 은메달 3개, 동메달 2개, 이것이 저 천혜의 겨울 스포츠 낙원 북해도(홋카이도)의 나라이자 세계 2위 경제대국이 거둔 최종 성적이다.

 

 6자회담의 블랙홀인 북한은? 18년 동안 동메달 한 개 만져보지 못했다. 1964년에 은메달 1개, 1992년에 동메달 1개, 이것이 북한이 동계 올림픽에서 거둔 총 성적표다. 2010년에는 단 두 명의 북한 선수가 참가했는데, 빙속 여자 500m에서 9위, 1000m에서 13위를 기록했다. 반면에 한국은 동계올림픽 역사상 최초로 500m에서 남녀 동반 우승했다. 미국도, 러시아도, 네덜란드도, 노르웨이도, 독일도 기록하지 못한 대기록이다. 북한의 다른 한 선수는 피겨 남자 싱글의 규정 종목에서 25위를 기록하여 자유 종목의 은반 위에는 아예 서 보지도 못했다.

 

 하계올림픽은 기후와 별 관계가 없지만, 동계올림픽은 빙판과 설원의 나라에게 압도적으로 유리하다. 기후로만 따지면 추운 북한이 따뜻한 한국보다 훨씬 유리하다. 한국도 겨울은 있으나, 동계올림픽과는 거리가 멀다. 이번에 금메달을 1개라도 딴 19개 나라 중에서 한국은 겨울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자연조건이 가장 열악하다. 자연환경을 극복할 수 있는 게 인간의 의지요, 돈이다. 빙판이든 설원이든 인공적으로 만들면 된다. 그것이 바로 얼음 운동장이요, 스키장이요, 얼음 굴이다. 한국은 경제여건도 좋아지고 스포츠에 대한 관심도 다양해지면서 1980년 후반부터 아이스 링크를 하나둘 건설했다. 2000년에는 태릉에 국제규격의 얼음 대운동장도 하나 만들어서 1년 중 여름철 보수하는 두 달 외에는 10달간 스피드 스케이팅을 연습할 수 있게 되었다. 예산이 부족하여 적절한 실내온도를 유지하지 못하고 벌벌 떨면서 훈련했지만, 한국의 선수와 지도자는 창의적으로 혹독하게 훈련했다.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선수는 적었지만 일당백 한국은 충분히 연습할 수 있었던 111m 트랙에서 대회마다 새 기술을 선보이며 발군의 실력을 발휘했다. 금방 세계 1위로 도약했다. 쇼트트랙의 세계화는 곧 한국화였다. 마침내 2010년! 메달밭 쇼트트랙에서 이번에는 금메달을 2개밖에 못 땄지만, 5천만 한민족은 빙속에서 3번, 피겨 스케이팅에서 1번 가장 높은 자리에 오른 태극기를 우러러보면서 자신도 모르게 가슴이 뭉클해졌다.

 

 여름 겨울 따지지 않으면, 금메달은 북한이 한국보다 먼저 가져갔다. 1972년 여름 뮌헨 올림픽에서 북한의 사격선수 이호준은 ‘적의 심장을 겨누는 심정’으로 분기탱천하여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국은 1976년 몬트리올에서 양정모가 몽골의 오이도프를 매트에 내다꽂아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최초로 안익태의 [코리아 환상곡] 주제곡을 울려 퍼지게 했다. 그보다 꼭 40년 전에 그랬던 것처럼 배달족의 기자는 선수 가슴의 시뻘건 동그라미를 박박 지울 필요가 없었다. 40년 전 그 날을 생각하며 손기정 이하 4천만이 몇 날 며칠 눈시울을 적셨다.

 

 단순 비교하면 1970년 초반까지는 북한이 스포츠 부문은 한국에 뒤떨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한국에 앞섰다. 1966년에는 북한이 월드컵에서 8강에 들기도 했다. 전설적인 대기록이었다. 당시에 북한은 동네 대회, 군 대회, 도시 대회, 도 대회에 이르기까지 1년 내내 어디서나 축구대회가 개최되어 어린이에서 성인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축구를 즐겼다고 한다. 아시아인의 억센 발에 의해 그 기록이 깨지는 데는 무려 36년이 흘러야 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종합우승은 소련이 차지했다. 금메달 55개, 은메달 31개, 동메달 46개였다. 2위는 인구가 2천만도 안 되던 동독으로 금메달 37개, 은메달 35개, 동메달 30개였다. 세계최대 부국이자 인구 3억의 나라는 3위로 금메달 36개, 은메달 31개, 동메달 27개였다. 4위는 한국으로 금메달 12개, 은메달 10개, 동메달 11개였다. 인구 12억의 공산국가 중국은 11위로 금메달 5개, 은메달 11개, 동메달 12개였다. 서울올림픽에서 국위를 한껏 선양했던 소련과 동독은 그 후 불과 2년, 3년 사이에 나라 자체가 사라졌다. 대신 같은 공산국가였지만 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하여 국가 대표 선수를 살뜰히 돌볼 틈이 없었던 중국은 그들보다 10년 앞서 사상을 해방하고 항구를 개방하여 서서히 신체는 강건해지고 여가는 풍부해졌다. 90년대에 접어들면서 운동선수 뒷바라지하는 게 과히 어렵지 않았다. 옛날 소련이나 동독처럼 체제선전용으로 스포츠에 올인한 것도 아니건만, 불과 20년 후 하계올림픽에서 종합우승의 영광을 차지했다.

 

 소련과 동독의 예에서 보듯이 스포츠가 경제력과 정비례 관계에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도 어느 정도는, 다시 말해서 굶어 죽는 사람은 없어야 스포츠로 국민을 하나로 묶을 수 있다. 가난한 사람도 먹는 것은 최소한 걱정하지 않아야 한다. 80년대 초반 무렵만 해도 중국인은 한 끼 거르는 것은 다반사였다. 그런 상황에서는 인구가 아무리 많아도, 국위선양을 아무리 하고 싶어도 세계의 벽을 감히 넘지 못한다. 어쩌다 불세출의 천재가 한둘 나와서 기적을 보여 줄 따름이다.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북한은 중국과 반대로 시계가 거꾸로 돌아가 1960년대의 중공처럼 인민 거지와 공산 깡패의 세상이 되어 버렸다. 절대권력을 휘두르는 자가 아무리 스포츠로 인민의 뇌를 마비시키고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려 해도 그런 상황에서는 어쩔 수가 없다. 북경올림픽에서 북한이 금메달 2개, 은메달 1개, 동메달 3개 가져간 것은 영국의 한 신문에 따르면 1인당 소득 대비 세계 1위 성적에 해당되었다. 이때 그 신문이 제시한 북한의 1인당 소득은 93달러였다. (정확한 추계였다. 한국은행의 1000달러, 800달러는 아직도 한국이 김대중과 노무현의 마법에서 깨어나지 못했다는 것을 반영한다.)

 

 외화는 단돈 1달러도 일일이 결제하는 김정일이 핵무기와 스포츠에는 아낌없이 퍼붓지만, 주민의 3할이 영양실조인 상황에서는 운동선수를 아무리 우대해도 그 이상은 성적을 거둘 수가 없다. 주민의 기본 체력이 절대적으로 떨어진다. 더군다나 선진 부국 또는 강대국의 잔치인 동계올림픽은 어림도 없다. 장진호에서 입에 단내가 나도록 얼음을 지치고 개마고원에서 손발에 동상이 걸리도록 스키를 타 봐야, 국제대회에서 이름을 떨칠 수가 없다. 한국 선수에겐 일상사가 되어 버린 해외 전지훈련도 북한에선 상상하기 어렵다. 최첨단 과학이 필요한 장비도 스스로 갖출 수가 없다. 평양에서 안색만 바꾸어도 서울서 알아서 기던 때처럼 올림픽 참가비용 일체를 한국으로부터 지원받을 수도 없다. 동계올림픽에서 동메달 하나만 따도 장관급 대우를 받는다는 것은 꿈속에서도 알지만, 북한 선수는 실력도 체력도 터무니없이 모자라 인생역전이 언감생심이다.

 

 아마 고현숙이 한국에 태어났다면, 밴쿠버에서 빙속 500m와 1000m를 동시에 제패할 수 있었을 것이다. 내가 보기에 그의 타고난 능력은 500m 우승의 이상화도, 1000m 우승의 크리스틴 네스빗도 능가하는 듯했다. 북한의 김연아는 아마 중학교에서 기쁨조로 선발되어 방긋방긋 조화(造花)의 웃음을 웃고, 북한의 이상화는 두만강의 얼음을 두근두근 건너 한국 돈 50만 원에 만주 어느 벽촌의 50대 장애자 총각에게 팔려 갔을지도 모른다.

(2010. 2. 28.)

[ 2010-03-02, 17:48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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