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이념에 "미친 놈들"
어제는 나의 이념적 동지이던 사람이 오늘은 나의 이념적 원수가 된 것입니다.

김동길(프리덤 워치)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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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일제 때 중·고등학교를 마치고 시골 국민학교의 교사로 있다가 해방을 맞이하고, 김일성이 등장하는 역사의 장면들을 내 눈으로 지켜보다 “이건 아니다”라는 확신이 들어 38선을 넘어 월남하였습니다. 일제하의 지주도 아니었고 공직자의 집안도 아니었으므로 물론 숙청의 대상은 아니었습니다.
  
  같은 학교에 다니던 친구 중에 집안이 음식점을 경영하여 꽤 잘살던 아이가 있었습니다. 이놈이 꽤 머리가 좋다고 하던 놈인데 공산당의 열성분자들에게 포섭·세뇌되어 열렬한 마르크스주의자로 변신하여 날마다 ‘부르조아 근성’의 자기 부모를 성토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런 놈들이 한 둘이 아니었는데 그들을 ‘소아병 환자’라고 불렀습니다.
  
  “자기를 키워준 부모를 성토하고 매도하다니, 저 놈이 제 정신인가”하는 말들을 사람들이 하던 것을 기억합니다. 내 친구 하나는 나와 비슷한 환경에서 월남하여 연희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했습니다. 6·25사변 중에 함께 피난다니며 공산당이라면 이를 갈던 열렬한 반공주의자였습니다.
  
  이놈이 더 공부하겠다고 미국에 갔습니다. 그러나 그는 사랑에도 실패하고 학업에도 실패하고 막노동밖에 할 수 없는 신세가 되었다고 들었습니다. 미국 가서 내가 저를 만났을 때에는 빌딩 청소나 해서 연명하는 자본주의 국가의 막노동꾼에 지나지 않는 한심한 존재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그 뒤에 미국에 잠입하여 재미동포들 포섭에 열을 올리던 어떤 첩자와 접촉하게 되어 내 친구 자신이 열렬한 당원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자가 자기 또래들이 모인 자리에서, “통일이 되면 (물론 적화통일이겠지요) 김동길은 죽이지는 말고 엄청난 고통을 줘야 해”라고 하였답니다. 그 자리에 있었던 친구 하나가 미국서 전화로 그 말을 전해 주었습니다.
  
  어제는 나의 이념적 동지이던 사람이 오늘은 나의 이념적 원수가 된 것입니다. 함께 피난다니며 공산주의와 인민군을 저주하던 사람이 어쩌면 그렇게 180도 딴 사람이 될 수 있습니까.
  
  또 한 사람 있습니다. 서울서 유명한 큰 교회에 부목사로 시무하던 사람인데 신학을 더 공부하기 위해 미국에 유학 가서 어느 좋은 대학에서 공부를 마치고 학위를 받고 어느 자그마한 교회를 시작했던 38선 넘어온 이북 출신의 훌륭한 목사였습니다. 어떤 계기가 있었는지는 모르나 그가 北의 인민공화국의 창구라는 말이 나돌았습니다.
  
  한번 LA에서 만났을 때 나더러 하는 말이, “김 교수, 장준하도 통일이 급선무라고 했어. 그러니, 적화통일도 좋지 않아.” 하도 어이가 없어서 한참 있다가, “나도 한 마디 합시다. 북진통일은 어떻소.” 내 말에 그는 한 마디도 대꾸를 못했습니다.
  
  ‘미친 놈’이라고 속으로는 생각했지만, 나보다 연장자라 그대로 헤어졌습니다. 신학을 공부한 두 놈 다 죽었습니다. 그들이 죽어서 어딜 갔는지 나는 모릅니다. “미친놈들!”
  
  김동길
  www.kimdonggill.com
  
[ 2010-03-04, 11:06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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