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송가(戰頌歌)
공산주의 선동과 폭력에 휘둘리며 보낸 어린 시절이 잊혀 지지 않는다.

순담(회원)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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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족상잔으로 참혹했던 6.25전쟁 발발 60주년이 되는 해다. 지난 10년간의 좌편향정권은 교육문화에 이념의 색칠을 하고 자유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훼손시키려는 조직들을 탄생시켜 6.25의 진실을 왜곡시켜왔었다. 특히 북한이 핵무기를 갖도록 도와준 노련한 지도자와 깽판부리기를 즐겨했던 이가 박아 놓은 대못들은 정권이 바뀐 지금도 요소요소에서 국익을 저해하고 있다.
  
   반세기가 넘도록 세월이 웬만큼 흘렀는데도 공산주의 선동과 폭력에 휘둘리며 보낸 어린 시절이 잊혀 지지 않는다. 60대를 훨씬 넘기면서 나이 탓이려니 하지만, 밤이면 그 때 겪었던 극한상황들과 전쟁영화에서 본 장면들이 아련하게 떠오르기도 하지만 때로는 격렬하게 겹쳐져서 전신을 누르는 통에 밤잠을 설치다가 6.25전쟁으로 생긴 “전송가(戰頌歌)를 떠올리게 됐다.
  
   나는 일본에서 태어나 태평양 전쟁의 막바지에 미B-29기의 공습을 겪으면서 유아시절을 보내다 일본의 패전으로 광복을 맞아 귀국한 후에 일이다. 하필이면 과도기의 틈을 탄 좌익분자들이 설쳐대는 지역에서 유년기를 보내게 되었는지, 1946년 봄부터 빨치산들이 활동하는 것을 쉽게 보게 되었다. 6.25를 당연하게 받아드리는 곳에서 북한식 소년단 교육을 받고 빨치산의 무용담에 고무되어 그들이 명령하는 대로 매포를 전달하러 다녔다.
  
   러시아語로 메모라는 뜻의 비밀문서‘매포’를 허리춤에 감추고 ♪매포를 전달하고 쓸러진 동무……라는 빨치산 노래를 부르면서 위험을 무릅쓰고 국군과 전투경찰 진지를 넘나들면서 빨치산 부대를 찾아다녔다. 낙동강 전투에서 퇴패하던 인민군일부와 남부지역에서 아지트를 잃은 빨치산들이 지리산으로 몰릴 때다. 군경의 대규모 토벌작전으로 빨치산부대들이 타격을 받아 감시가 소홀해진 틈에 우리가족은 그들 지역을 간신히 벗어나게 되었다.
  
   그 후 부산에서 중학교에 다니던 50년대 중반이었다. 적 대공포에 맞아 낙하산으로 탈출한 미군조종사를 추적하는 인민군들과 미군을 구해주는 한국인 농부를 그린 ‘포화속의 십자가’라는 흑백 한국영화를 광복동 자유관에서 보게 되었다. 그리고 부산역전 앞 국제극장에서 전쟁휴먼스토리의 ‘전송가(Battle Hymn)를 학교단체로 관람하게 되었다.
  
   ‘전송가’는 죠지 스티븐슨(Geoorge Stevens)감독이 워너-부러더스(Warner Bros Pictures)에서 만든 대작 자이안트(Giant)와 같이 1956년 한국에서 상영되었다. 때는 북한 깊숙이 진격한 미군들이 중공군의 역습에 밀려 후퇴하면서 흥남부두로 밀려드는 피난민들이 산더미처럼 미군선박에 실려 철수했을 때다. 한국정부의 어려움을 안 조종사 딘 헤스가 팀버레이크 미제5공군 부사령관에게 건의하여 서울에 있는 3000여명의 전쟁고아들을 수송기로 제주도와 군산 목포로 실어 날랐던 딘 헤스가 쓴 자서전을 영화화 한 것이다.
  
  ‘전송가’는 할리우드의 더글라스 서크( Dougle Sirk)감독이 당시의 기록으로는 한국전쟁을 소재로 한 최초의 미국영화로 한국 사람이 제일 많이 등장한 영화다. 광활한 텍사스를 무대로 한 자이안트에서 세기의 여우 엘리자베스테일러, 단명한 천재배우 제임스딘과 출연하여 그해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던 훤칠한 미남배우 록 허드슨(Rock Hudson)이 주연으로 딘 헤스(예비역 대령)역이었다. 그리고 한국고아의 보모 황은순 선생 역으로 인도출신 여우 안나 캬슈피와 한국할아버지 역으로 안창호 선생님의 장남 필립 안이 열연하여 한국전선을 배경으로 아리조나에서 촬영된 영화다.
  
  ‘전송가’의 원작 저작료와 영화 수익금 전액은 한국전쟁고아들을 위해 사용되어지도록 했었다는 데, 영화가 흥행에 재미를 보지 못한 듯, DVD로 제작된 것도 찾아 볼 수 없어 아쉬움이 더한다. 하지만 ‘전송가’는 전쟁은 적과 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평화를 위해 싸우면서 민간 피난민과 어린아이들은 우선적으로 보호되어야 하는 것을 대변해 주었다. 이 영화가 보여준 숭고한 박애정신을 떠올리면서 6.25를 북침으로 빨치산을 선호하는 좌파전교조선생들의 배은망덕과 비교육적인 반국가 행위가 근절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4,50년대에 공산주의 감상에 빠져 활동했던 빨치산들과 추종세력들이 역사의 흐름 속에 겨울 낙엽처럼 소멸되었던 사실을 깨달았으면 싶어 이 글을 올린다.
  
  
  
   2010년 3월 6일 (순담) 최 건 차 목사
  
[ 2010-03-25, 14:54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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