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이 더 잘 아는 바다의 전략적 가치
한국이든 북한이든 삼면의 바다를 장악하는 쪽이 통일의 주역이 될 것이다.

최성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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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죽지세로 낙동강까지 밀고 갔던 인민군이 하루아침에 독안의 쥐 신세로 전락한 것은 바다에만 가면 수영장의 맥주병처럼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북한은 물론이거니와 소련도 중공도 당시에 바다에선 숫제 미국에 상대가 안 되었다. 미국은 오대양을 미국의 호수로 만들었지만, 소련과 중공은 태평양이나 대서양에 비하면 연못 수준인 동해와 서해에도 통통배 군함 하나 띄울 수 없었다. 유럽 같았으면 제2의 덩커크 치욕을 겪었을 게 뻔한, 거의 미치광이 수준이었던 위험천만한 인천상륙작전이 멋들어지게 성공한 것은 일본군이 태평양에서 사라진 후 바다에선 상선이든 군함이든 전 세계의 모든 배가 성조기에 파블로프의 개처럼 조건 반사적으로 경례를 올려붙이거나 천 리 밖에서 꼬리를 말고 숨어 버리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조선이 400년 전에 나라를 빼앗기지 않은 것은 이순신 장군이 바다를 완벽히 장악한 덕분이었다. 이순신 장군은 명나라도 지켜주었다. 이순신 장군의 역할이 얼마나 대단했는지는 원균의 칠천량해전 대패 이후 중국인이 느낀 공황 상태로 간접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1597년 7월 왜적은 양산과 삼랑진을 짓밟고 마침내 경주에 입성하고 한산도에 쳐들어왔다. 삼도수군통제사 원균의 군사가 궤멸되니 결국 한산도를 잃었다. 한산도는 조선의 서해 입구에 있거니와, 오른쪽으로 남원을 방어하면서 전라도의 바깥울타리 역할을 담당한다. 딱 한 번 지키지 못한즉 연해에 어떤 방비도 존재하지 않는다. (북경의 입구인) 천진과 (산동반도의) 등주와 내주가 모두 (왜적이) 돛을 펼치면 (바로) 도달할 수 있다.

 

 七月,倭夺梁山、三浪,遂入庆州侵闲山。统制元均兵溃,遂失闲山。闲山岛在朝鲜西海口,右障南原,为全罗外籓,一失守则沿海无备,天津、登、莱皆可扬帆而至。(明史 朝鮮列傳)

 

 풍신수길의 ‘명나라 정복’ 호언장담이 너무도 가소로운 허풍이 아니라 무시무시한 현실적 위험으로 불쑥 다가온 것이다.

 

 청나라가 산해관을 넘어 명나라의 수도 북경에 이어 중원 전체를 장악하게 된 결정적 계기도 바다를 제패한 데 있다. 누르하치의 후금에는 두 가지 치명적 약점이 있었다. 그것은 단 한 번도 패전을 모르던 누르하치를 한 방에 쓰러뜨린 홍이포라는 가공할 대포가 없다는 것과 수군의 절대 약세였다. 원숭환에 의해 모문룡이 제거되긴 했지만, 압록강 입구의 가도에는 여전히 후금의 배후를 언제든지 짓부술 수 있는 명나라의 수군이 버티고 있었다. 게다가 명나라 수군의 주력부대는 산동반도에 있었다. 누루하치의 전사 후 후금은 이 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치열한 정보심리전 곧 간첩작전을 썼다. 1627년 정묘호란도 일차 문제는 가도(椵島, 皮島라고도 함, 19.2㎢)의 모문룡이었다. 그러나 수군이 약한 후금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조선의 왕은 강화도로 도망가서 후금의 약을 올렸다. 조선의 막강한 수군으로부터 도움을 받으려고 했지만, 조선은 패전 후에도 그 점에서만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명나라 조정의 무능과 청나라의 간첩작전은 주효하여, 마침내 1633년 명나라 수군을 사실상 몽땅 끌고 공유덕(孔有德)과 경중명(耿仲明)이 청나라에 귀순한다. 그들은 홍이포(紅夷砲)까지 가져간다! 그로써 조선과 가도(椵島)의 모문룡 잔당 이어서 명나라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종말을 고하거나 완전히 무릎을 꿇는다.

 

 곧 죽어도 단단히 망조가 든 명나라에 충성을 다 바치던 조선은 공유덕의 수군이 의미하는 바를 알고 날랜 수군으로 그를 공격했는데, 당연히 그것은 청나라에 대한 일종의 선전포고였다. 물실호기(勿失好機) 청나라가 이를 놓칠 리 없었다. 청나라는 명나라를 도모하기 전에 배후를 안전하게 만들기 위해, 1636년 휘파람을 불면서 소풍 오듯 청 태종이 친히 조선으로 쳐들어온다. 인조는 혼비백산 남한산성으로 도망가고 세자는 강화도로 피신한다. 그러나 하늘같이 믿었던 강화도가 공유덕이 이끈 수군에 기왓장 깨지듯이 순식간에 무너진다. 강화도 앞바다엔 바람에 휘날리는 꽃잎처럼, 서리 맞은 단풍처럼 분분히 떨어진 처녀와 아낙네의 옷자락과 꽃신과 댕기가 무심한 파도에 이리저리 휩쓸렸다.

 

 바보 임금 인조는 한민족 4천 년 역사상 가장 치욕적인 항복의 의식을 엄숙하게 치르지 않을 수 없었다. 1637년 돌아가는 길에 청나라는 패전한 조선 수군의 적극적인 도움을 받아, 목의 가시였던 가도에 쳐들어가 반독립국이자 조선의 청천강 이북을 사실상 수십 년간 지배했던 명나라 도적떼를 소탕했다. 이 때 공유덕은 이순신 장군이 탔던 명품 전함(戰艦) 조선의 판옥선에 올라타서 큰북을 둥둥 울렸다. 저승의 이순신 장군이 통곡했다.

 

 최신 무기에다 초원에 이어 바다까지 장악한 청나라에게 명나라는 폭풍 속의 가랑잎처럼 흩날렸다.

 

 아시아에서 근대화에 가장 빨리 눈을 뜬 일본이 동아시아에 게다 소리와 게이샤의 간드러진 웃음소리가 가득 차게 만들 때도 마찬가지였다. 1894년 청일전쟁에서 이겨 황해를 제패하고, 1904년 러일전쟁에서 이겨 동해와 남해를 장악하자, 조선과 대만과 요동은 절로 그들의 손아귀에 들어갔다. 그것은 함포 몇 방으로 영국과 프랑스가 홍콩에서 상해와 천진을 거쳐 북경까지 중국의 연안 지역을 우습게 장악하던 수법과 유사했다.

 

 민족반역자 아비와 민족학살자 아들이 6.25에서 3가지 큰 교훈을 얻었다.

첫째는 사상전에서 이겨야 한다는 것,

둘째는 바다를 장악해야 한다는 것,

셋째는 땅굴로 한미 동맹을 무력화시켜야 된다는 것이다.

 

 리지웨이의 대반격으로 유엔군은 중공군을 다시 38선 근방으로 후퇴시켰지만, 그 후로는 끝없는 소모전이 이어졌다. 바다도 장악했고 무기도 월등했지만, 더 이상 북진하지 못한 것은 중공군의 두더지 작전 때문이었다. 아무리 대포를 쏘고 아무리 전투기로 폭격해도 중공군이 산 뒤쪽에 파놓은 땅굴은 끄떡도 없었다. 중공군과 인민군은 그 곳에서 코를 골며 밤잠도 자고 낮잠도 잤다. 이 기술은 후에 월맹군과 베트콩에게 흘러들어가 인도지나반도에서 아주 요긴하게 쓰였다. 미국한테 이겼다! 북한의 주요 시설은 난공불락의 지하요새로 구축되었다. 특히 민족학살자의 지하궁전은 핵무기에도 견딜 수 있고 최악의 경우에는 한달음에 중국으로 피신할 수 있다. 휴전선 이남이라고 가만둘 리 없다. 사상전에서 스스로 무너진 한국은 군이 제 입으로 존재함이 틀림없다고 발표한 25개는 지금쯤 몽땅 발견되었어야 하지만, 1990년 제4땅굴 이후는 아예 찾을 생각조차 않는다. 연천땅굴 같은 경우엔 그냥 절개해 보면 사실여부가 백일하에 밝혀지게 되었는데, 대통령이 나서서 자연동굴이라며 일방적으로 막아 버렸다. 자칭 민주화 이후에는 반공은 곧 군사독재와 동일시되면서, 사상전에서 완패하면서! 땅굴은 민간인들이 보상금 타 먹으려고 발광하는 짓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사상전에서 완패하면서 한국은 제주해협도 민족화해의 아름다운 이름으로 북한에 그냥 내주었다. 2001년 6월부터 무해통항권이란 이름으로 당시 어용 매체의 열렬한 지지를 받아 사실상 100% 군함인 북한의 상선이 600km를 단축하여 남해를 제 집 드나들듯이 드나든다. 남은 것은 동해와 서해다. 이곳은 북한 잠수함과 잠수정의 놀이터이다. 미국의 최신식 장비도 바다 속 물체는 거의 잡지 못한다. 특히 원시적일수록 못 잡는다. 함포전에서는 2002년처럼 군 근처에도 안 간 대통령이 친절하게 교전수칙을 정해 주지 않는 한, 북한군은 국군이나 미군에 상대가 안 된다.

 

 2010년 3월 26일 두 달 동안 해안포를 남발하던 북한은 드디어 천 배 만 배 보복한다더니, 누구도 예상 못할 방법이 있다더니, 절대 빈말 안 한다더니 그 실력을 감쪽같이 증명했다. 군통수권자의 대변인은 벙커에서 잠수정 추적 불능을 증거 없음으로 말을 바꿔 극구 변호해 주고 예단을 차단해 준다. 설령 이번 제4차 서해교전이, 북한의 짓이 아니라 귀신의 짓이었다고 하더라도, 10%에서 50%밖에 안 되는 잠수정 탐지 능력으로 미루어 앞으로 물증 없이 북한식 U보트 작전이 펼쳐지면, 동해와 서해는 북한의 호수가 될 것이다. 이미 되어 있을 것이다. 게다가 남해엔 제주해협이란 바다의 고속도로가 있다.

 

 거미줄 땅굴과 삼면의 바다가 제2의 6.25에서 동시에 이용될 것이다. 사상전에서 완패한 한국은 사흘 내지 이레 정도는 물증 없다며, 과학적이고 이성적으로 국내적인 관점만이 아니라 세계적인 관점에서 당당하고 의연하고 성숙하게 대처하자며, 전군과 전 경찰에게 열중쉬어를 명령할 것이다. 모든 통신과 전기가 두절된 상황에서 한국은 일방적으로 유린될 것이다. 한국은 그 후에야 민주와 민중을 구별하고, 통일과 민족을 구별하고, 정통성과 친일파를 구별할 줄 아는 새 지도자를 만나 불사조처럼 일어날 것이다.

 

 스스로 한 나라와 한 민족의 운명을 결정하는 바다를 갖다 바치는데, 어떻게 민족학살자가 아니 받아먹겠는가. 귀신 잡던 46명이 귀신 곡하게 한 방에 쓰러져 한국에선 방송에서조차 일체 열흘 이상 가무가 끊겼는데, 입만 벙긋하면 한국의 열렬 동조자와 함께 민족을 울부짖더니, 눈물 한 방울은커녕 북한의 요인들을 모두 모아놓고 희희낙락 혁명 가극과 수령님 기림노래를 들으며 일제히 박장대소할 수 있을까. 그건 전승 축하 공연이 아니었을까. 최소의 노력으로 삼면의 바다를 제패한 것을 기념하는 갈라 쇼가 아니었을까. (2010. 4. 6.)

[ 2010-04-06, 21:26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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