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컨의 확신과 이명박의 '중도실용'
섬터 요새 위기에서 만약 링컨이 우물쭈물했더라면 미국은 최소한 세 나라로 갈라졌을 것이다.

남신우(회원)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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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00년대 초부터 쌓여오던 美 남북의 이념갈등은 1860년에 이르러서는 곪아 터질 수밖에 없었다. 그 해, 링컨이 美대통령에 당선되기 전부터, 남부 노예州 여럿은 美연방에서 이탈하든지, 전쟁도 불사하겠다고 링컨을 향하여 으름짱을 놓았다. 링컨이 대통령으로 취임하기도 전에 美연방을 이탈한 남부 州들은 남캐롤라이나 州 연방요새 섬터 해안에 군사를 배치하고 북부에서 옴짝만 하더라도 섬터 요새를 포격하겠다고 얼러대었다.
  
  북부 연방군의 사령관 스콧 장군은 섬터 요새를 방어하거나 구할 병력이 없다며, 요새를 포기하자고 링컨에게 조언했다. 몇몇 극단적 호전파들을 제외하곤 국무장관을 포함한 거의 모든 각료들도 섬터 요새는 때도 아니고 장소도 아니라며, 섬터 요새에서 철수하자고 주장했다. 그러나 시골변호사 출신 美육해군 통수권자 링컨은 생각이 달랐다. 그리고 실전 전투는 안 했지만, 링컨은 블랙 호크 인디언 전쟁에서 대위로 종군한 경험도 있었다.
  
  링컨의 대책은 모호했던 것 같지만, 확고했다. 섬터 요새를 포기할 수 없다. 우리 쪽에서 싸움을 시작하자는 것이 아니라, 섬터 요새를 지키는 우리 군인들에게 군량미와 군수물자를 보내자! 이건 전쟁하자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 우리 군인들을 먹여살리자는 것이다. 머나먼 南캐롤라이나 州에 위치한 섬터 요새를 향하여 군량미를 실은 연방해군 수송선이 뉴욕 항을 떠났다. 어찌 할 건가? 남부연맹의 반란군 수괴 제퍼슨 데이비스는 링컨만큼 참을성도 없었고, 앞을 보는 눈도 없었다. 뭐? 북부 군함이 남부 바다로 향하여 달려오고 있어? 무조건 까자!
  
  이렇게 해서 1861년 4월12일 새벽 4시 반에 남부 반란군 포대는 포격을 시작했고, 그로 인하여 북부 자유주들은 똘똘 뭉쳐 불같이 들고일어나, 그 후 4년간 60만 명 장정들이 戰死(전사) 病死(병사)하고, 남부가 잿더미로 변하는 처참한 美남북전쟁은 시작되었다. 4년 후, 美남북은 자유주들로 통일 되었고, 美연방은 모든 분야에서 세계 최강국으로 급부상하였다. 링컨은 이렇게 위대했다.
  
  섬터 요새 위기에서 만약 링컨이 우물쭈물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지키지도 못하고 살리지도 못할 작은 요새 하나 지켜서 뭘하나? 그냥 포기하지. 링컨이 그랬더라면 북부 주민들도 링컨을 좇아갔을 것이다. 끔찍한 전쟁만은 피하자! 남부보다 우리가 더 잘 살고, 남부보다 우리가 더 자유스러운데, 그깟 흑인노예들 때문에 전쟁이 웬 말이냐? 그깟 남부 놈들 내버려 두자! 우리만 잘 살면 된다! 그러면 미국은 최소한 세 나라로 갈라졌다. 동북부의 영어권, 중남부의 불어권, 서부의 서반아어권, 언어도 그렇고, 지리도 그렇고, 인종도 그렇고, 미국은 오호십육국(五胡十六國)이나 삼국시대로 곤두박질쳤을 것이다. 그리곤 지난 150년간을 발칸 반도나 지금 아랍국들처럼 서로 잡아먹고 잡아먹히는 유혈전쟁이 계속되었을 것이다.
  
  링컨은 美남북전쟁이 시작되자마자, 美남부연해를 봉쇄(blockade)해 버렸다. 남부 밀수선들은 봉쇄망을 뚫고 피하여 남부로 들락날락했다. 그러면 링컨 해군의 봉쇄망이 소용 없었나? 그렇지가 않았다. 시일이 흐르면서 봉쇄망은 더욱 촘촘해지고, 남부는 영국에 목화를 팔 수도 없고, 영국 프랑스의 총알을 사들일 수도 없게 되었다. 이렇게 링컨은 섬터 요새 위기의 直觀(직관)도 있었고, 남부해안 봉쇄란 장기안목과 끈기도 있었다. 美남북전쟁에서 링컨만한 장군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랜트, 셔먼, 패러거트를 포함하여, 링컨만큼 단기 중기 장기 전략에 통달한 장군은 없었다. 남북전쟁이 끝나갈 무렵, 그랜트 장군이 링컨 대통령에게 물었다: “각하, 이 지겹고 오랜 전쟁에서 단 한 번이라도 우리 쪽이 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까?” 링컨은 한 마디로 답했다. “Never! 한 번도 없었소이다!”
  
  김대중 노무현, 두 역적 사기꾼들이 링컨을 팔아 먹었고, '아침이슬 이명박'에게 링컨을 기대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어찌 저럴 수가 있을까? 대한민국 해군함정이 가라앉고 꽃다운 젊은이들 46명이 전사, 실종됐는데도, “우리 너무 서둘지 말자? 진상 조사는 민간인이 해야 한다? 아니, 딴 나라 사람들 불러서 해야 한다?” 아이구, 하나님 맙소사!
  
  이제 한 주일이나 한 달 지나면 천안함 침몰은 뉴스꺼리도 아닐 것이다. 와글와글, 냄비 끓듯 며칠 왁자지껄하다가, “천안함이 우리 배였던가? 천안함이 가라앉았던가? 사람들이 좀 죽었던가?” 망각의 저주로 사라질 것이다. 2002년 6월, 김대중의 自殺 교전수칙으로 대한민국 해군 참수리 호가 침몰하고 해군장병 6명이 전사했는데, 이제 누가 그들을 기리고 기억하는가?
  
  2010년 4월 7일
  김정일의 대학살 전시회/남신우 씀
  http://nkgenocide.net
  http://nk-projects.blogspot.com
  
  
[ 2010-04-08, 10:21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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