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를 업고 가는 이와 나라에 업혀 가는 자
제왕학 강좌: 그런데도 불구하고 국회에서는 현장지휘에 총책임을 지고 있는 국방부장관을 출석시켜 잡아놓고 지엽적(枝葉的)인 말의 꼬리를 잡아 책임을 묻는 그런 자세는 유가족을 위시하여 전국의 장병 가족 및 재향군인과 군을 사랑하는 국민들의 빈축(嚬蹙)을 사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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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主題 405호: 나라를 업고 가는 이와 나라에 업혀 가는 자
  
   전국시대(戰國時代) 7인의 영웅이 서로 패권(覇權)다툼을 했다하여 이를 칠웅쟁패(七雄爭覇)라고 한다. 그 일곱 나라는 제, 초, 연, 한, 조, 위, 진,(齊 楚 燕 韓 趙 魏 秦)이다. 齊나라 등 6개국이 종당에는 秦나라에 의하여 모두 병탄(倂呑)되었지만 병탄되기 이전에는 서로의 패기(覇氣) 다툼이 치열했다.
  
   진시황(秦始皇)에 의한 통일이전의 일이거니와 秦나라 왕은 楚나라를 정벌하기 위하여 지략이 뛰어난 사신(使臣)을 친교사절단인 것처럼 위장해서 楚나라의 국력을 살펴보도록 했다. 그 때 秦나라 사신은 秦나라 왕에게 귀국 복명하기를, 楚나라에는 현신(賢臣)이 많다. 그 현신들은 모두가 楚나라를 자기 등에 업고 가는 훌륭한 신하들이었다고 보고했다.
  
   나라에 업혀서 살아가는 신하들이 많은 秦으로서는 선제공격(先制攻擊)을 한다 해도 전혀 승산(勝算)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 秦나라 왕은 도전할 것을 포기했다는 데서 유래한 말이 “나라를 업고 가는 이와 나라에 업혀가는 자”라는 뉴앙스의 정언(政諺)으로 나오게 된 것이다.
  
   우리는 2010년 3월 26일 원인을 알 수 없는 무엇인가에 피격(被擊) 당하여 천안함(天安艦)의 함체(艦体)가 두 동강나는 참상을 겪었다. 정계에 몸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을 포함하여 언론 기타 일부 사회단체의 사람들은 그 원인규명을 요구하면서도 일반적인 어조는 정부 특히 군 당국에 대하여 무책임하다는 뉴앙스를 풍기는 듯한 분위기에 젖어있다.
  
   국민개병주의(國民皆兵主義)국가의 국민이라면 누구에게 책임을 묻고, 누구에게 직각 사퇴(辭退)하라는 말을 토(吐)해내기에 앞서 애함(愛艦)과 함께 침몰한 해군장병 구출에 작은 지혜라도 보태기 위한 협조를 먼저 하는 것이 마땅히 보여주어야 할 순서다.
  
   만약 이것도 저것도 아니라면 침묵을 지키면서 전사자에게는 명복을 빌고, 실종자에게는 무사귀환을 기도하며, 전상자에게는 조속 쾌유를 기원하는 정중한 모습을 지니면서 군 당국의 작전활동의 결과를 기다려야 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국회에서는 현장지휘에 총책임을 지고 있는 국방부장관을 출석시켜 잡아놓고 지엽적(枝葉的)인 말의 꼬리를 잡아 책임을 묻는 그런 자세는 유가족을 위시하여 전국의 장병 가족 및 재향군인과 군을 사랑하는 국민들의 빈축(嚬蹙)을 사기에 충분했다. 더욱이 10일이 지난 이후에도 언론보도에서는 구사일생으로 생환한 입원가료 중인 장병들을 게속 피해자(被害者)라고 보도하고 있다.
  
   참으로 듣기에 민망하기 그지없다. 천자문(千字文)에도 나오는 구절이거니와 충즉진면(忠則盡命)이라 했다. 즉 나라를 위해서는 목숨도 바친다는 뜻이다. 국군묘지에 잠들어 있는 그 많은 호국영령(護國英靈)은 모두가 나라 위해 몸 바친 전사자(戰死者)들이다. 결코 피해자가 아니다. 마찬가지로 천안함 침몰사건으로 인하여 목숨을 바친 장병들은 엄밀이 말해서 전사자이며 호국영령이다. 피해자가 아니다.
  
   그리고 구사일생으로 생환한 입원가료(入院加療) 중인 장병도 결코 피해자가 아니다. 국토방위임무수행 중 부상을 입은 전상자(戰傷者)들이다. 제발 피해자 개념과 전사자 전상자 개념을 혼동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특히 전사자 유가족과 전상자 가족들을 일컬어 피해자 가족이니 피해자 유족이니 하는 표현은 고귀한 전사자와 전상자들의 명예를 평가절하(評價切下)하는 오류(誤謬)를 범하는 일임을 유념해야 한다. 유가족들이 구출작업(救出作業) 일주일이 지나자 인양작업(引揚作業)의 개념으로 전환할 것을 군 당국에 요청한 그 고귀한 정신을 높이 평가할 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유족들이 군인의 가족으로서 이미 각오한 바가 있다는 위국충절(爲國忠節)의 잠재적인 의사의 표현이었기 때문이다.
  
   필자가 백마고지(白馬高地)전투에 투입되어 있었을 때였다. 참으로 치열한 전투가 계속되는 상황속에서 어느 전우(戰友)와도 내일을 약속할 수 없는 극한상항의 날날 이었다. 그런 와중에 우리 연대장 L-대령이 북괴군에 의하여 잠옷차림에 납치되어 갔다.
  우리 부대원들은 실망을 금할 길이 없었다. 지휘관을 잃은 자병들의 심정은 당해보지 아니하고서는 짐작조차 할 수 없다.
  
   그 사실이 다음 날 일간시문에 보도 되었다. 그 보도기사에는 L-대령 부인과의 인터뷰 기사도 함께 실려 있었다. 부인의 말은 단 한 마디뿐 이었다.
  “군인의 아내로서 이미 각오는 하고 있었다” 많은 자병들이 눈시울 적셨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 때부터 고향으로 부모형제에게 편지를 쓸 때면 “군인의 가족으로서는 미리 각오를 하셔야 합니다”라는 문구를 많이 사용했던 기억을 더듬으면서, 천안함 장병 가족 여러분에게 고개 숙여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의 현실을 되돌아보았을 때, 우리 내각(內閣) 각료 중에서 대통령을 업고 달리는 이와, 대통령에게 업혀서 지내고 있는 이들의 비율이 어떠하지 챙겨볼 때가 아닐까 한다. 국회의원 중 국회를 업고 가는 의원과, 국회에 업혀서 살아가는 의원의 비율은 어떠한지 의원들 스스로가 평가해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각종 사회단체 중 사회를 업고 달리는 단체와, 사회에 업혀서 기생(寄生)하는 단체의 비율은 어떠한지 다각적인 면에서 평가받기 위한 이성(理性)을 스스로 찾아주었으면 한다.
  
   秦나라 사절의 방문을 받고 楚나라의 왕은 걱정스러웠다. 왜냐하면 楚나라의 값진 보배를 구경시켜달라는 요구를 받았기 때문이었다.(秦欲觀楚之寶器).
  
  그 때 소해휼(昭奚恤)이라는 신하를 불러서 의견을 들어 보았다. 소해휼(昭奚恤) 대답하기를, 우리 나라의 득실과 장단점을 파악해서 정벌을 도모하기 위한 저의가 숨겨져 있으며 보물구경을 온 것이 아닙니다(此欲觀吾國之得失而圖之 不在寶器).
  
   소해휼은 중신 중에서 학덕과 신념이 뚜렷한 인물들(令尹子西, 太宗子敖, 葉公子高, 司馬子反)과 함께 秦의 사절을 영접하며 그 한사람 한사라식 소개했다.
  
   첫째, 백성을 잘 다스리고(理百姓) 모든 창고를 실하게 경영하며(實倉廩) 백성들로 하여금 각자 능력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다스림을 잘하는 영윤자서(令尹子西)가 여기에 있고(使民各得其所 令尹子西 在此),
  
   둘째, 대외사절로서의 직분을 잘 수행하고(奉珪璧) 이웃 나라 제후들과 서로 서운한 일이 없도록 기뿜의 외교활동에 능하며(使諸侯 解忿怨之難 交兩國之歡), 서로의 전쟁우려를 없애주는 태종자오(使無兵革之憂 太宗子敖 在此)가 여기에 있으며,
  
   셋째, 나라를 튼튼히 지키고(守封疆) 국방을 잘 경비하며(謹境界) 이웃나라를 침범하지 않고(不侵隣國) 이웃나라 또한 초나라를 침범할 기세를 보이지 않도록 국가안보전략을 잘 수행하는(隣國亦不見侵 葉公子高 在此) 엽공자고가 여기에 있고,
  
   넷째, 군사를 잘 거느리고(理使旅) 병기를 잘 관리하며(整兵槍) 적이 침공해오면 직접 격려의 북을 치며 백만대군을 동원하고 지휘하여(以當疆敵 提枹鼓 以動百萬之衆) 불길이든 칼날이든 두려워하지 않고 만번 죽는 한이 있더라도 그 일생의 어려움을 돌보지 않고 나서서 용전감투하는 사마자반이 여기에 있으며(所使皆趣湯火 蹈白刃 出萬死 不顧一生之難 司馬子反 在此),
  
   다섯째, 초패왕의 옛 기상을 생각하며 치란지간의 그 유풍을 본받아 호국치민에 헌신하고 있는 소해휼이 여기에 있소이다(懷覇王之餘議 攝治亂之遺風 昭奚恤 在此)
  
   소해휼은 이와 같이 나라 위해 큰 몫을 분담하고 있는 어진 신하들을 일일이 소개하고 우리나라의 보배는 보기(寶器)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신에게 있다(不在寶器 在於賢臣)고 말하면서 감상할만하다고 하는 주옥 따위는 우리의 소중한 보배가 아니라고 했다(珠玉玩好之物 非吾國所寶之重者).
  
   秦의 사절단들은 氣가 꺾인 나머지 돌아가서 秦王에게 告하기를 楚나라를 도모한다는 것은 不可하다(楚多賢臣 未可謀也)고 했다.
  그래서 秦나라에서는 초나라 정벌 계획을 취소했다(遂不伐楚). 반면 楚나라로서는 賢臣을 상대적으로 많이 등용하고 있다는 것으로서 戰爭을 사전에 제압할 수 있었다는 자부심을 더욱 키워가게 되었다.
  
   우리에게 그런 自信이 있는지? 없는지? 냉정히 돌이켜볼 때가 아닌가 싶다.
  우리의 현실은 천안함 사건도 그렇거니와 안보우선적(安保優先的)인 입장을 취해야 할 것이다. 요즈음 인터넷에 자주 뜨는 기사중 우리 내각에는 병력미필자수가 많다고 한다. 사실이 아니기를 바라지만 안보분야의 전문인력 대거 등용은 초미지사(焦眉之事)가 아닌가 싶다.
  
   왜냐하면 대내적으로는 이념갈등으로 인하여 국민들이 사관(史觀)을 바로 세워가기에 혼동스러워 하고 있으며, 對北관계에 있어서는 핵문제를 비롯하여 거의 2년 주기로 서해안에 도발해오는 북한의 도전을 받고 있는가하면, 관광문제를 비상식적인 논리로 압박해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 밖에도 북한이 중국과의 밀착외교를 통하여 가호면(假虎面)을 쓰고 과세(誇勢)하는 태도의 전환이라든지, 일본인들의 독도영유권을 정치적으로 혹은 교육차원에서 무리수를 제기하는 이 마당에 우리에게는 소해휼(昭奚恤)과 같은 현신이 각 분야의 현능(賢能)을 네세워 긴박한 정세의 전환추세에 대응할 수 있는 인물을 충분히 포진시키고 있는지 국민 앞에 자랑삼아서라도 한번 알려주었으면 한다.
  
  
[ 2010-04-10, 23:15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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