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빨간 넥타이, 오늘은 VIP 메모
제2차 서해교전 때는 대통령이 빨간 넥타이 매고 축구 구경 가더니, 제4차 서해교전 때는 대통령이 중도실용 벙커에 앉아 VIP 메모로 국방장관을 꾸짖는다.

최성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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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사는 고도의 전문 분야이다. 군사는 첨단의 첨단 분야이다. 최고의 과학과 최신의 기술과 첨단의 정보가 최우선적으로 군사 분야에 적용된다. 민간 분야에 조금이라도 뒤떨어지면, 그 군대는 오합지졸로 전락한다. 군사에 관한 한, 문외한은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한다. 초근목피도 없어서 못 먹고, 강 건너 개가 먹다 버린 것도 없어서 못 먹는 북한에서 어떻게 전 세계에서 10여개 국가밖에 보유하지 못한 핵무기를 개발할 수 있을까. 상식적으로는 가능성이 0%로 수렴되지만, 고도의 전문 분야인 군사에선 능히 가능하다. 우두머리가 강철 의지를 갖고, 한국에서 다소곳이 바리바리 올려 보낸 햇볕 예산을 최우선적으로 투입하고, 최고의 과학기술 전문가를 투입하면 능히 가능하다.

 

 굶주리는 사람이 가장 많았던 중공, 인도, 파키스탄이 핵무기를 개발할 수 있었던 것도 그들이 군사 분야에 보통 국가보다 훨씬 높은 우선순위를 두었기 때문이다. 60년 병영 집단에서 음향 탐지기에 잘 잡히지 않는 잠수정을 개발하고 스텔스 어뢰 몇 방 확보하는 것쯤이야 식은 죽 먹기다. 쥐도 새도 모르게 작전 짜는 것도, 귀신도 속이고 작전을 실행하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다. 보안이 허술하기 짝이 없는 한국의 통신망을 이용해서, 스스로 영구 평화의 햇볕에 취한 세계10위권 경제강국의 일개 초계함 행적을 추적하는 일쯤이야 그들에겐 애인 만나러 가면서 휘파람 불기처럼 쉬우면서 신나는 일이다.

 

 김영삼 대통령 당선자 시절에 인수위원장을 맡았던 정원식 전 총리가 후에 사석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고 한다.

“(인수위원장으로 일하다 보니까) 다른 분야는 어떤 것이든 들여다보면 대충 알겠는데, 군사 분야는 가장 기초적인 용어부터 너무나 생소하여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전혀 감이 안 잡히더라.”

 

 

 제4차 서해교전 후에 의문에 의문이 꼬리를 무는 일이 청와대를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다. 촛불 시위로부터 시작하여 내내 청와대와 대립각을 세우던 방송과 그 자매지들이 이번에는 청와대와 윙크하고 손 키스하면서 살갑게 지내는 것도 큰 의문 중 하나다. 그들은 예단하지 말라는 장막을 전 국민에게 단단히 치고는 자기들만 거기에서 신드바드의 마신(魔神)처럼 빠져나와 처음부터 독점적 예단으로 일관했다.

“북한에 특이동향 없습니다. 북한은 관련이 없는 듯합니다.”

“맞습니다. 물증을 찾아야 합니다. 우리 군대가 수상합니다.”

 

 천안함이 총 한 방 못 쏴 보고 단숨에 두 동강 난 백령도 근처에선 햇볕 정부에서 2번, 비핵개방3000 정부에서 1번 이미 북한이 최근 10여년 사이에 3번이나 도발했었다. 군사 문외한이라도 거기서 거대한 초계함이 순식간에 두 동강 나서 가라앉았다면 최우선적으로 북한을 의심해야 한다. 가능성이 99%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청와대와 친여 매체는 99% 가능성은 보고 받은 지 불과 한 시간 만에 제쳐 두고 1%의 가능성에 한사코 매달렸다. 암초설, 내부폭발설, 피로파괴설, 오격(誤擊)설이 난무했다.

 

 북한은 햇볕 달러로 핵무기와 미사일을 개발하여 심심하면 실험하고 걸핏하면 발사할 뿐만 아니라 이미 서해 5도 근해에서 3번이나 도발했고 최근 두 달 동안 그 바다를 향해 해안포를 가동하여 한국의 전함과 어선이 얼씬도 못하게 했는데, 두 번의 폭발음이 있었고 공중에 몸이 붕 떴다는 증언도 천안함 생존자의 입에서 반사적으로 나왔지만, 청와대는 ‘쉿!’하며 몇 달이 걸릴지 몇 년이 걸릴지 모를 바닷속 물증 찾기에 매달렸다. 북한이 어뢰나 기뢰를 중국이나 러시아나 일본에서 구입했다면, 중국이나 러시아나 일본이 공격한 것인가?

 

 놀랍게도 안보에 관한 최고의결기관인 안보장관회의에는 대통령과 국무총리와 국정원장을 비롯하여 14명 중 11명이 군 면제자이다. 일반인이, 더군다나 군대 근처에도 가 본 적이 없는 11명이 (아마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보고 라인에서 소외된 육군대장 출신 주무 장관에게 대 국민 발표용 오락가락 모범 답안을 4번에 걸쳐 알려 준다는 것은 정상 국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총 한 번 안 잡아 보고 돈이나 명예나 권력이 아니라 군 복무라면, 안보라면, 애국이라면, 손을 내저으며 자신은 닭 잡을 힘도 없다며 천 리 만 리 숨던 사람들이, 스스로 받아 적으며 개념도 안 잡힌 질문을 조심스럽게 제기해야 할 사람들이 도리어 주무장관이자 최고 전문가에게 정치적 발언을 받아 적게 만든다는 것은 정상 국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혼비백산 도망가는 것밖에 몰랐던 조선의 왕들이 일선의 훌륭한 장수에게 병법을 논하며 질타하고 패전 장수의 아첨만 믿고 불세출의 명장을 하옥시키거나 심지어 전후 사정을 알아보지도 않고 막 승전한 장수를 이상한 보고(報告)만 믿고 단숨에 처형하던 장면이 떠오른다.

 

 2010년 3월 26일 북한에 특이 상황이 있었다. 북한의 기지에서 잠수정과 잠수함 4척이 사라졌다가 2척이 나타나지 않은 것이다. 외부 폭발의 물증으로 지진파와 음파가 거의 동시에 관측되어 이것도 가장 먼저 청와대에 보고되었다. 그럼에도 이런 모든 것을 감추고 ‘특이 상황 없다’며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조사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특이 상황은 한국에도 많았다. 천안함 침몰과 거의 동시에 제2함대 사령부와 국방장관(비상시 군 최고 책임자인 함참의장이 아닌 것도 괴이한 일이지만)의 긴밀한 협조 하에 해군만이 아니라 공군도 비상경계 태세에 들어갔다. 속초함도 작전에 투입되었고 대잠 헬기인 링스도 동원되었다. 전투기도 떴다. 레이더가 가리키는 대로 130발의 대포도 쏘았다. 국방부 장관은 그것이 새떼를 향한 오발이었다고 해명했다. 아마 VIP 지침이었을 것이다. 국방부 장관이란 군사 전문가의 입을 빌어 전혀 말도 되지 않는 거짓말을 진실로 호도했다. 구축함(DD-91)의 사격통제관(FCO)으로 근무한 어떤 미국 거주 동포가 이렇게 말했다.

 

 "소위 말하는 수평 레이다(PPI scope)로는 최초 접촉 당시 미상(未詳)물체를 오인할 수 있다. 그러나 함포 사격 자체는 PPI 레이다에 의한 정보에 의해 이루어지지 않는다. 유도탄이나 미사일을 제외한 함포는 사격통제레이더(Fire control radar)에 의한 사격이 이루어진다(소총, 중기, 20mm, 40mm까지는 제외). Fire control radar scope은 일반 대함, 대공 radar의 PPI scope와 전혀 다르고 scope(화면) 자체가 마치 요즈음 TV에 자주 나온 지진파 영상의 반 아래가 잘려 나간 반 상단 부분의 plus로 target이 표시된다. 심지어 탄두포착점(range)의 short 혹은 over시 해면에 떨어지는 물기둥까지 plus로 나타난다."

 

 과연 첨단의 첨단 분야답게 군사 전문용어가 속출하여 자세한 내용은 알 수가 없지만, 핵심은 새떼를 향한 대포발사는 원천적으로 있을 수 없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사전문가인 국방부장관의 입으로 해명한 것이라서 이 중요한 문제는 그냥 넘어간다. 이것만 확실히 밝혀져도 조류가 어지러이 바뀌는 바다의 개펄 속에서 어뢰 또는 기뢰의 파편을 찾을 필요도 없다.

 

 시스템이 무너지면 백만 대군도 1개 테러 조직에 농락당하는(모택동이 장개석을 대륙에서 쫓아낸 것도, 베트콩이 미군을 몰아낸 것도 알고 보면 시스템의 승리였음) 안보 분야도 다른 정부 부처와 마찬가지로 시스템이 무너졌다. 대통령과 대통령의 실세가 차관이나 수석 또는 위원장의 자리에 앉아 대통령의 호불호(好不好)에 대한 정보를 독점하고 대통령 입맛에 맞는 정책을 좌지우지하면서 불도저처럼 밀어붙이다가 성공하면 공을 독차지하고 실패하면 장관 또는 실무자에게 책임을 전가한다. 장관과 차관의 의견이 다르면 차관을 따라가야 한다. 장관과 제3자인 위원장의 의견이 다르면 장관이 옷을 벗어야 한다. 이렇게 시스템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고는 도리어 군 멸시 20년의 악몽 속에서도 이를 악물고 강군을 유지해 온 자랑스런 국군을 대대적으로 개혁하겠다고 자신들에게 날아온 화살을 권력의 방패로 막아내고 엉뚱한 데로 돌린다.

 

 2010년 제4차 서해교전은 2002년 제2차 서해교전과 흡사하다. 그것은 각각 제3차, 제1차 서해교전에 대한 복수전이다. 2002년에는 대통령이 ‘신중하게 대처하라’는 한 마디 말만 남기고 빨간 넥타이를 매고 이웃 나라로 축구 구경 가더니, 2010년에는 군통수권자가 중도실용 벙커에 들어가서 VIP 메모로 국방장관의 원론적인 발언도 깜짝 놀라 바로잡는다. 요컨대 북한은 명명백백한 물증이 나올 때까지 절대 의심하지 말라는 것이다.

 

 북에서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 서해도발로 선창하면, 남에서는 제주해협 자유 항해, 한미연합사령부 해체, 군비축소, 군 개혁, 군 복무 단축으로 화답한다. 이 모든 것은 제2의 육이오, 제2의 월남화를 위한 포석이요 양탄자다. 1200톤 천안함이 경계경보 한 번 못 울리고 어뢰 한 방에 두 동강 나듯이 1년 총생산 1조 달러 규모 세계 10위권 경제 강국도 김정일이 손가락 한 번 까딱하면 경계경보 한 번 발하지 못하고 침몰할 것이다.

 

 군 면제 11명의 최고 권력자면 애국자도 가장 많고 전문가도 가장 많은 70만 대군도 호위병처럼 종처럼 부릴 수 있고, 30조 원 예산의 안보 부서도 해군 중위 출신의 차관 1명이면 첨단 무기를 하나도 구입하지 못하도록 예산을 대폭 깎아 어즈버 태평세월에 대비하여 구닥다리 무기나 매만지며 월급이나 타 먹게 할 수 있는 나라가, 군사를 최우선하는 반란 집단에게 어느 날 갑자기 거대한 폭발음을 내면서 넘어가지 않으면, 후세의 역사가가 보기엔 불가사의하게 여겨질 것이다.

    (2010. 4. 21.)

[ 2010-04-21, 22:27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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