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지도자의 복수심은 역사를 바꾼다
"병사는 적에 대한 적개심으로 전투를 하고 지도자는 이념으로 전쟁을 한다"

고성혁(회원)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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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지도자의 복수심은 역사를 바꾼다.

 

천안함 침몰과 관련하여  최근 이명박 대통령이 눈물을 짜내는 연설을 하였다. 그 연설을 보고 난 느낌은 "아. 천안함침몰에 대한 복수는 글렀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명박 대통령의 연설문속엔 피가 끓어오르는 그 어떤 적개심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적개심을 표출해야 하는 목적 대상물이 명기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말은 "단호한 대처"라고 하지만 그 대상은 전혀 언급되지 않고 있다.  증거가 없어서라고 말하겠지만 그건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미 내부적으로는 북한의 소행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를 바꾼 국가지도자의 복수심.

 

1. 김춘추의 복수심 -

 

신라의 통일전쟁은 김춘추의 복수심에서 출발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기 642년 합천대야성 전투는 김춘추의 복수심이 싹튼 역사의 전환점의 시발점이었다. 대야성 성주(城主)이자  김춘추의 사위인 품석과 딸 고타소랑이 백제 장군 윤충의 공격으로  목숨을 잃었기 때문이다. 

 

합천 대야성.jpg

 

그 과정을 간단하게 설명하면 이렇다.

 

* 백제 무왕의 터전 익산에서  신라의 옆구리 대야성 공략은 필연

 

신라는 관산성 전투이후 확보한  한강수계를 지키기 위해서 전력을 다하고 있었다.  한강물줄기를 거쳐서 중국 당나라로 이어지는 수로는 신라의 생명줄이었다.  이것을 잘 아는 고구려와 백제는 그 라인을 끊기 위해서 끊임없이 한강하류지역의 신라군을 공격하였지만 신라는 잘 방어하였다. 그러자 백제는 눈을 대야성을 돌렸다.  신라의 주력군이 한강쪽에 집중 배치되어 있는 관계로  합천 대야성지역은  신라의 주력군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지역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기 642년 백제장군 윤충은 대야성을 공략하였다. 특히 백제무왕시절 익산은   당시 백제의 행정 경제적 중심이었다. 백제무왕이 익산출신이었기 때문이다.  그 배경에서 의자왕시절에도 익산은 백제의 실질적 중심이었다.  따라서 백제가 익산지역에서 병력을 수습하기는 쉬운 터였고 신라의 옆구리인 합천 대야성을 공략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 김춘추의 복수심 - 사내대장부로서 백제를 멸하지 못하면 어찌 사내대장부라 할 수 있는가?

 

그런데 신라 대야성은 내부적으로 문제가 있었다.  김춘추의 사위 품석은 한마디로 자질이 부족한 인물이었다. 품석은 대야성의 성주라는 지위를 이용해서  부하인 검일의 아내를 탐했던 것이다. 이에 불만을 품은 검일은  백제장군 윤충과  내통하여  대야성의 속사정을 낯낯이 알려주었다.  이에 백제장군 윤충은 대야성을 기습하여 포위하였다.

 

백제군에 포위된  대야성안에선 작전회의가 열렸다.  품석휘하의 죽죽(竹竹)은 항전을 하자고 하였으나 품석은 그의 말을 듣지 않았다. 품석은  부하 서천을 시켜서 백제장군 윤충에게 협상을 제의하였다. 만약 항복하면 목숨은 살려주는 것으로 말이다.  이에  죽죽(竹竹)은 강력히 반발하였다.  이것은 백제의 계략이라고 하면서 만약  성문을 열게 되면 필시 백제는 우리를 죽일 것이라고 항변하였지만 품석은 듣지 않았다.

 

결국 품석은 성문을 열고 항복의 표시로 부하일부를 내보냈다. 그러자 백제는 즉각 신라군을 죽이면서 성문을 뚫고 들어왔다.  그제서야  품석은 자신의 실책을 알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결국 아내 고타소랑을 죽이고 자신도 자결하였다.  품석의 부하장수 죽죽은 결사항전을 하다가 장렬하게 최후를 맞았고 그의 행동은 삼국사기 열전에 실리었다.  반면  백제와 내통했던  검일은 백제로 넘어가게 되는데  나중에 신라가 백제를 멸하고 나서 검일은 신라군에 잡혀서 최후를 맞게 되었다.

 

대야성을 함락한 백제장군 윤충은  김춘추의 사위와 딸의 시신을 찿아서 목을 베고 몸뚱아리를 신라 김춘추에게 보내고 머리는 백제로 가지고 갔다.  사위와 딸의 참수된 시신을 본 김춘추의 충격은 어떠했을지는 상상에 맞긴다.

 

이에 김춘추는 삼국사기 기록에 종일토록 눈도 꿈쩍하지 않고 앞에 사람이 지나가도 모르더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면서  사내대장부로서 백제를 멸하지 못하면 어찌 사내대장부라 할 수 있겠는가 하면서 그후  백제에 대한 복수심은 결국 백제를 멸하는 역사를 만들었다.  결국 국가최고지도자의 복수심은  역사를 바꾼 결과는 낳은 것이다.

 

2. 처칠의 복수심. - 처칠의 연설엔 적이 누구인지 명확히 밝히고 있다.

 

처칠은 너무도 유명하다. 제2차 세계대전 전유럽을 나치 독일 히틀러가 석권한 상태에서도 처칠은 끝내 최후의 승리자가 되었다.  그 원동력도  나치 독일 히틀러에 대한 복수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는 1940년 5월13일  하원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유명한 역사적 연설을 하였다.

 

“내가 여러분에게 바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오직 피와 노고와 눈물과 땀뿐입니다.
 I have nothing to offer but Blood, Toil, Tears and Sweat.”

 

그러면서  히틀러와는 끝까지 싸울 것을 천명하였다.

 

우리는 도버해협에서 싸울 것이고  해안에서도 싸울 것이고  영국 내륙에서도 싸울 것이다.

브리튼 섬을 잃는다 해도 우리는  식민지에서 다시  싸울것이다.

 

나치 독일에 대한 적개심이 뚝뚝묻어나는 연설이었다.  그의 연설엔 분명하게 적이 누구인지 명시되어 있다. 처칠의 연설과 이명박 연설의 차이점이다. 적이 명시되어 있는 연설과  없는 연설의 차이다.

 

3. 호지명의  적개심.

 

호지명의 적개심에 대한 발언은 명언 중 하나이다. 그는  강대국에 맞써 싸워 이긴 비결을 이렇게 말했다.

 

전쟁은 무기로 하는 것이 아니다.

전투는 병사가 하고 전쟁은 지도자가 하는 것이다.

 

병사는 적에 대한 적개심으로 전투를 하고

지도자는 이념으로 전쟁을 한다.

 

참으로 명언이다.  병사는 적에 대한 적개심으로 전투를 하고  지도자는 이념으로 전쟁을 한다는말. 흔히 말한다.  옆의 전우가 총에 맞아 피를 토하면서 고꾸라지면  그걸 보고 적개심으로 물불 안가리고 전투를 한다는 말이 바로 그것이다. 물론 반대로 오줌싸면서 벌벌 떨 수도 있지만.

 

호지명은  전쟁을 이끄는 것은 지도자의 몫이고 그 원동력은 이념이라고 하였다.

그런면에서 보면 이명박 대통령은  전쟁을 할 수 없는 인물이다. 

 

과연 우리 장병이 적에 대한 적개심이 있는지

이명박 대통령이 적에 대한 복수심이 있는지

그 결과 여부에 따라서 우리의 역사는 따라갈 것이다.

[ 2010-04-22, 11:28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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