첩보전의 명수 신라 거칠부 장군
[고성혁의 역사추적] 관산성 전투 6회

고성혁(회원)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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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흔히 신라의 장군하면  김유신장군 이사부장군 다음으로는  장군이 아닌 화랑들, 예로들면 화랑 관창, 사다함,  그리고 김유신장군의 아들  원술랑정도가 언뜻 떠오르고 만다.  그래서 거칠부장군도 있다라고 하면 고개를 갸우뚱 거릴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거칠부는 우리가 고등하교때 배운 국사책엔  진흥왕때 왕명을 받고 처음으로 국사(國史)를 편찬한 인물로만 그려져 있으리라 짐작된다. 그러나 거칠부는 호히려 군사적 식견이 매우 앞섰던 장군임이 군사적 관점에서 살펴보면 여실히 증명된다. 특히  고구려에 대한 정보전문가로서 신라가 죽령 이북의 고구려 땅을 차지하고  백제와 고구려의 공방속에서 지금의 충청북도와 한강하류를 연결하는 군사적 요충지를 차지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수행했던 장군이었다. 

 

그런 거칠부의 활약을 대변이라도 하듯이  삼국사기 열전편을 보면  김유신, 을지문덕 다음으로 거칠부가 소개되고 있다.   지금부터 거칠부에 대해서  군사적 관점에서 그의 행적을 살펴보고  관산성 전투에서의 그의 역할이 어떤 것이었는지 분석해 보자.

 

◈ 거칠부라는 이름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삼국사기 열전 거칠부(居柒夫)전 첫머리는 이렇게 시작한다.

 [或云<荒宗>.]姓金氏, <奈勿王>五世孫, 祖<仍宿>角干, 父<勿力>伊 , <居柒夫>少跅 弛有遠志.


거칠부[혹은 황종이라고도 한다.]의 성은 김씨로써 내물왕의 5세손이고, 조부는 잉숙 각간이요, 아버지는 물력 이찬이었다. 거칠부는 젊었을 때 건들거리며 방종하기도 하였지만 한편으로는 원대한 뜻도 품고 있었다.

 

거칠부(居柒夫)에 대한 첫 설명에  혹은 이렇게도 전한다고 하면서  말한 내용은  성은 김씨요 이름은 황종(荒宗)이라는 내용인데  쉽게 말해서 좌충우돌형의 거친놈이란 뜻이다.  그 당시만 해도 신라인의 이름은 지금 우리들처럼  김아무개씩의 중국식 이름을 사용치 않았슴을 알려주는 부분이다.  즉 사람의 특성을 이름으로 불렀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아마 거칠부는 이름 그대로 거칠다는 것을 한자로 음이 비슷하게 거칠부(居柒夫)라 적은 것이다.  이것을 뜻글자인 한자로 표현하면 응당  황종(荒宗)이 되겠다. 

 

그 다음 내용도 보면 거칠부가 어렸을때의 모습을 표현하는 모습에    少跅이라고 적고 있는데  척(跅)이라는 한자 뜻은  헤이하다, 방종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지금으로 본다면 사춘기때까지는 좀 말썽부리고 제멋대로 행동하였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좋게 말한다면  기존의 가치관에 얾메이지 않고  틀을 깨는 모습이라고 할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떻든 이런 거칠부의 모습은 훗날  정세를 다각도로 종합적으로 분석하는 힘을 키워주는 발판이 되었다고 유추해 볼 수도 있는데  삼국사기 열전의 기록을 보면  그 내용을 보다 선명하게 그려볼 수 있다.  이렇게 거친부분이 있다보니 좀 엉뚱한 부분도 거칠부에게는 있었든지 삼국사기 열전 거칠부편엔 그의 이름소개 다음에 바로 이런 내용으로 전개되는데 현대적 감각으로 풀어보면 이렇게 된다. 

 

이해를 돕기 위해서 드라마화 시겨 보았다.

 좌충우돌 거칠부  승려로 변신하다.  

 

거칠부 : (곰곰히 생각해 보면서 혼잣말로 중얼거려 본다) 아. 젠장.  하긴 내가 언제까지 이렇게 살거야?  내가봐도 한심스럽긴 해.  왕손인 주제에 맨날 이렇게 사고나 치고  사람들이 나보고 거친놈이라고 하는데 그러만도 하지 뭐.  한데  이거  좀 확 달라진 다른 모습을 보여 줘야겠는데 뭐 좋은 방법 없을까?  신라안에선 해 볼 건 다 해봐서  따분하기도 하고  아 답답해 죽겠네.

 

 (그때 마침  절에서 종의 소리가 들리면서  스님들의 불경소리가 고즈넉하게 거칠부의 귓가에 메아리 친다 )

 

거칠부 : (순간 느낌이 온 표정으로)  앗싸. 바로 이거야.  요즘 좀 배운티 내려면  불경하나쯤은 읊어야  명함이라도 내밀지.  그럼 나도 이 참에 머리깍고 이미지좀 개선시켜 볼까? 또 하나 더 있지.  흐흐흐  중이 되면  사방을 맘대로 돌아 다닐 수 있잖아.  신라 장안은 너무 좀았는데 잘 됐다. 

 

거칠부는 그 생각이 들자 바로 머릴 깍고 중이 된다. 그리고 사방을 유람하여 다니다가 언뜻 생각난 것이 고구려까지도 맘대로 들락날락 할 수 있음을 깨닫았다.

 

거칠부 : 신라 왕손으로서  뭔가 나라에 이득되는 일 하나정도는 하려고 그랬는데  이번에 고구려에 가서  고구려 사정좀 알고 와야겠다.  머리 깍기를 잘 했는데. 하하.  그러면 가까운데로 먼저 가볼까? (그 길로  거칠부는  고구려 땅인 죽령을 넘어서게 된다)

 

거칠부 : (저자거리에서 사람들 틈에 끼어서 기웃기웃하며 사람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듣는다)


시장사람1 : 자네 그 이야기 들었는가?
시장사람2 : 무슨 말 말인가?
시장사람1 : 고승인 혜량법사가 이번에  법당을 하나 열었다는데 그 설법이 그렇게
            좋다는 얘기 말이야.
시장사람2 : 그걸 이제 알았어? 설법 뿐만 아니라  사람을 보면  한 눈에 알아본다네 그려.
시장사람3 : 아 그 이야기   나도 들었구먼.  소문이 아주 자자하던데.
시장사람1 : 그렇게 유명한가 보지? 도대체 어느정도길레 그런단 말이여?
시장사람2 : 그러니까  말이여. 처음 보는 사람이라도  얼굴 한번 딱 보면 그 사람 과거는 물론이고  미래까지  다 맞쳐준다는 구먼.
시장사람1 : 아니 그정도야?  앞날까지 알려준다고?
시장사람3 : 그러니까 고승이지  달리 고승이라 하겠는가? 이사람아.

 

거칠부 (시장사람들이 나누는 말을 듣다가 슬쩍 끼어든다.)
       말씀좀 엽줍겠소이다.  그 법사가 혜량법사라 하였소이까?


시장사람2 : (거칠부를 힐끗 보다가) 그렀소만? (아래위를 흟어보면서)  그런데 보아하니
           스님같은데   그 고승 혜량법사를 몰랐단 말이요?


거칠부 : (약간 당황하듯 머뭇하다가)  아.  저도 객지에서 혜량법사의 높으신 말씀을 듣고자 이렇게 찿아온 것입니다.   혹시  그 법당 가는 길좀 알려 줄 수 있겠소이까?
시장사람 3 (시장사람2를 쳐다보며) 아니 이사람아. 뭘 그리 아래위를 훓으면서 타박하듯이 말하는가 말이여?  법사님 소문을 듣고 찿와 왔다 하지 않는가?
거칠부 약간 몸 둘바를 몰라하는 표정을 짓는다.
시장사람 1 : (거칠부의 모습을 보면서 안스러운듯 길을 일러준다) 스님  너무 상념치 마시죠. 이사람들이 시장바닥에서 굴러먹다 보니  좀 그렇다 생각하시고  ...  (손짓을 하면서 말한다) 그 법당은 저 고개를 넘으면 바로  보일겁니다.
거칠부 : (합장하면서) 고맙습니다.  그럼 이만..

 

마침내 혜량법사와 대면하게 되는 거칠부

 

혜량법사 : (거칠부를 지긋하게 보면서 나즉히 말한다) 사미(沙彌)는 어디서 왔는고?
거칠부 : (주위를 한번 슬쩍 훓어 보고 조용히 답한다) 저는 신라사람이옵니다.
혜량법사 : (시선을 바닥으로 한 체 고개를 약간 끄덕이면서 짐작하고 있었다는 듯이 )
          알겠느니라.   물러가 있거라.

저녁 공양을 마치고  혜량법사는 거칠부를 조용하게 다시 부른다. 법당안에는 불상앞에서 하늘 거리는 촛불 2개만이 어둠을 밝히고 있다.  거칠부는 부처님 앞에서 가부좌를 틀고 명상에 잠겨있는 혜량법사 뒤에  조용히 꿇어 앉는다.

혜량법사 : (거칠부가 왔음을 알고서도 잠시동안 명상을 지속한다)
거칠부   : (혜량법사 뒤에서 숨을 죽인체  조용히 기다리고 있다)
혜량법사 : (잠자리에 들시간을 알리는 범종 소리가 들리자 혜량법사는 그때서야 돌아 앉으면서 거칠부를 한동안 말없이 보다가 무겁게 입을 연다)
           신라에서 왔다고 했지?
거칠부 : (조용하면서도  단호한 어조로 말한다) 그러하옵니다. 법사님.
헤량법사 : (고개를 두어번 끄덕인다 )  내가 지금까지 겪어본 사람이 숫하게 많거늘  오늘 그대를 보아하니  정녕 보통사람은 아닌것이 분명한데 여기에 온 뜻은 다른데 있지 않더냐?
거칠부 : (  자세를 고쳐 앉으며 고개를 숙이고 정중하게 말한다 )
          법사님  저는 구석진 곳에서 태어나 자라는 바람에  법사님의 높으신 덕망과 명성을 듣고 여기까지 멀다 않고 찿아 왔사옵니다. 부디 저를 물리치지 마시고  저의 무지몽매함을 일깨워 주시기를 간절히 바랄 따름이옵니다. 법사님.

혜량법사 : (잠시 뜸을 들이다가) 고개를 들어 보거라.
거칠부 : 고개를 들고 혜량법사를 쳐다본다.
혜량법사 : (촛불에 비치는 거칠부의 눈을 보면서 말한다) 무얼 속이려 드느냐.  이 늙은 중놈의 눈에도 훤히 보이거늘. 아무리 이 나라가 좁다하더라도 그대같은 사람을 알아보는 사람조차 없다고 보느냐? 
거칠부 : 고개를 떨구고 아무말이 없다.
혜량법사 : (거칠부의 손을 지긋히 잡으면서) 내 그대를 책망하려는 것이 아니니라.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은 그대가 잡힐까봐 걱정되어서 몰래 알려주는 것이니  그대 나라 신라로 빨리 돌아가는 것이 좋겠구나.
거칠부 : (조용히) 알겠사옵니다.  ( 그러면서 자리에서 일어나서 나가려 한다)
혜량법사 : (나가려는 거칠부를 다시 불러서 앉힌다)
        나를 보려고 여기까지 온 사람에게  매정하게 그냥 돌려보내는 것도 부처님의 도리가 아닌바   내가 자네의 관상을 좀 보아주겠네.
거칠부 혜량법사를 쳐다본다
혜량법사 : 제비턱에 매의 눈이로구나.  그대는 장차 반드시 훌륭한 장수가 될 상이야. 
거칠부 : 그러하옵니까?  지금까지 사고만 쳐서  속죄하고자 머리를 깍았을 따름이옵니다만.
혜량법사.  (고개를 가로 저으며 미소를 지으면서) 허허. 그런게냐? 아무튼 그대는 분명히 훌륭한 장수가 될게다. 이번엔 내 부탁하나 들어 주겠는가?
거칠부 :(깜짝 놀라며) 무엇이옵니까  법사님?
혜량법사 만약 그대가 나중에 장수가 되어서 군사를 이끌고 여길 다시 오더라도 말일세 그때는 나를 헤치지 말아 주겟는가?
거칠부 : (눈을 크게 뜨면서) 그렇게만 된다면 이르다 뿐이겟습니까? 제가 법사님을 해하다니요.  절대로 그럴일은 없을 것이옵니다. 하늘에 해를 두고 맹세할 수 있사옵니다. 법사님.

혜량법사 : (눈을 지긋이 감으며) 그래 이만 돌아가 보거라.  아미타불.
거칠부 : (공손히 합장을 하면서  법당을 빠져 나온다)   

 거칠부가 승려가 된  속내는?

 

이 내용이 삼국사기 열전 거칠부편에 나오는 내용을 극화한 것인데  여기서  유추할 수 있는 군사적 것은  거칠부가  죽령을 넘어 고구려 이곳저곳을 승려 복장으로 다니면서 고구려 변방의 사정을 그 누구보다 잘 알게 되었다는 점이다.  삼국시대엔  승려신분이라는 것은 승려이외에  첩자로서의 기능을 겸하는 경우가 많았다.  역사서에 기술된 대표적인 승려첩자로는  고구려 장수왕의 명을 받고 배제로 넘어와서  개로왕으로 하여금 실정을 하게끔 유도하였던 도림이 대표적이다.  잠시 언급한다면  승려첩자 도림은  백제개로왕이 바둑을 즐겨한다는 것을 알고 바둑으로 개로왕에 접근하여 개로왕과 백제신하들간에 이간질을 하고 백제의 기밀을 장수왕에게 알려준 것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백제개로왕이  고구려 장수왕의 공격을 받고  아차산밑에서 참수당할 때  고구려첩자 승려 도림의 꾐에 빠진 것을 한탄하였다는 이야기가 있듯이  거칠부의 이런 기록 역시 거칠부의 고구려에 대한 정탐활동임을 말하는 것임은 분명하다.   이런 거칠부의 대담한 활동은 어렸을 적  성격과도 연관성이 있을 것이라고 말해도 그렇게 큰 무리는 없을 듯하다.

 

거칠부의 고구려에 대한 정탐활동은 신라가 고구려를 공략하는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고 판단할 충분한 근거가 된다.  삼국사기엔  고구려땅에서 혜량법사와의 만남 이후의  거칠부 행적을 이렇게 이어나가고 있다.

 

거칠부는 드디어 신라로 돌아와 승려 생활을 그만두고 벼슬에 종사해, 관품이 대아찬에 이르렀다.  진흥왕 6년 을축년(545)에 왕명을 받들어 여러 문사들을 모아 국사를 편찬하였으며 관품이 파진찬으로 올랐다.


이 기록이  국사책에 신라 역사서 최초기록한 거칠부의 국사로 알려지게 되는 부분인데 이내용의 이면에는  거칠부가 승려생활을 통해서 그만큼 글을 많이 접하게 됨으로써 국사를 편찬하는 장(長)에 임명되는 밑거름이 되었다는 것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그 다음 기록은  고구려땅 , 현재의 죽령이북으로 신라가 영토를 확장하는데  거칠부가 주도적 역할을 하고 알려주고 있다.  그 기록은 이렇다.

 

진흥왕 12년(551) 왕이  거칠부를 비롯해서 대각찬 구진, 각찬 비대, 잡찬 탐지, 잡찬 비서파진찬 노부, 파진찬 서력부, 대아찬 비차부, 아찬 미진부 등  8명의 장군에게 명해 백제와 함께고구려를 침공하게 아혔다.  백제사람들이 먼저 평양을 쳐부수자 거칠부 등이 승세를 타고 죽령 바깥쪽 고현 안쪽의 10개군을 빼앗았다.


==> 이 기록이 신라 진흥왕과 백제 성왕이 손잡고 고구려를 협공하는 내용인데  백제의 숙원인 옛 한성백제의 옛땅인 한강유역은 백제가 공략하고  소백산맥 너머 죽령이북땅인 한강상류지역은 신라가 공략한 것을 말한다.  이때  신라군을 이끈 장군이 거칠부임을 밝히고 있다.  

  

 

**-계속 **-

[ 2010-04-23, 09:47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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