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의 전략적 노림수와 전격전 - 한강을 확보하다
[고성혁의 역사추적] 관산성 전투 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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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전략적 노림수와 전격전 - 한강을 확보하다

 

그 다음의 가정으로는 고구려의 내정을 꿰뚫고 있는 신라 거칠부의 전격전을 들 수 있겠습니다. 거칠부와 고구려 승려 혜량법사와의 관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신라 거칠부는 정보에 매우 정통하였다고 볼 수 있는데 그런 정확한 정보를 이용해서 과감한 전략을 펼쳤다고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 정보라는 것은 고구려 내정의 혼란으로 인한 신라 백제 접경지역에 대한 고구려군의 작전불능이라는 것인데 이를 바탕으로 해서 과감한 전격전을 펼쳤다고 추정하는 것입니다.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이해를 돕기위해 극화해 보았습니다.

 

장면 : 신라조정의 국정회의 (참석자 진흥왕의 모후, 진흥왕, 병부령 이사부, 거칠부 장군등 여러 신하)

 

진흥왕 12년 봄 정월 신라는 일대 변화를 맞게 된다. 진흥왕이 서기 540년 7살이라는 어린나이에 왕위에 오르게 되자 법흥왕의 딸이자 진흥왕의 모후(母候)인 김씨부인이 섭정을 하였는데 서기 551년 진흥왕 12년에 비로서 친정체제로 바뀌는 그런 해이다. 이때 신라는 새로운 출발을 의미하는 개국(開國) 이라는 연호를 선포했다고 삼국사기엔 전한다. 바로 그런자리다.

 

진흥왕 모후 : 이제 왕이 어느덧 자라서 성년이 되었소. 이제 섭정을 그만두고 왕이 친히 다스릴 것이오. 그러니 경들은 왕을 보필하여 새로운 나라를 만들어 주기 바라오.

 

진흥왕 : 고맙소. 그간 병부령 이사부를 비롯해서 거칠부 장군등 여러 대신들이 잘 보필해 주어서 과인이 지금 이 자리에 있다고 보오. 앞으로 더 강한 신라를 만들기 위해서 여러 대신들이

더 많이 힘을 보태주기 바라오.

 

대신들 모두 : 경하드리옵니다. 대왕마마.

 

진흥왕 : 무릇 제왕은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뜻에서 연호를 썻다 하오. 그래서 과인도 연호를 발표하고자 하오 우리의 연호는 새로운 나라를 연다는 의미에서 개국(開國)이라 할 것이오.

 

병부령 이사부 : 대왕마마. 앞으로 개국이라는 연호가 사방에 퍼져 나가도록 하겠사옵니다.

 

진흥왕 : 고맙소이다. 병부령 이사부장군은 아직도 할 일이 많이 있으니 잘 도와주기 바라오

 

백제와 고구려가 놓고 싸우던 도살성과 금현성을 우리 신라가 차지하였는데 그쪽 소식은 어떻소?

 

거칠부 : 신 거칠부가 아뢰옵니다.  백제는 한성 옛땅을 찿는 것이 더 큰 목적이기에 그쪽에 더 신경을 쓰느라고 변방의  도살성과 금현성을 동맹인 우리 신라가 대신 지키고 있다고 믿고 있사옵니다.

 

진흥왕 : 백제가 그렇게 믿고 있다니 다행이구려. 그러면 고구려는 어찌하고 있소?

 

거칠부 : 고구려는 지금 내우외환에 빠져 있는지라 제대로 된 군사작전을 할 수가 없사옵니다.

 

진흥왕 내우외환이라니 좀 더 자세히 말해 보시오

 

거칠부 : 신이 고구려 승려 혜량법사를 통해서 알아본 바로는 돌궐이 고구려의 신성과 백암성을

공격하는 바람에 고구려의 주력군은 모두 그쪽으로 이동하였다고 하옵니다. 심지어는 한수유역과 우리와 대적하고 있는 중원의 고구려 병력도 그쪽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하옵니다.

 

진흥왕 : 그래서 이번에 우리가 큰 피해 없이 도살성과 금현성을 둘다 차지한 이유가 거기에 다는 말씀이오?

거칠부 : 맞사옵니다.

진흥왕 그렇다면 내우(內遇)는 무엇이오?

 

거칠부 : 얼마전에 고구려 조정내에서 한바탕 대란이 있었다 하옵니다..

진흥왕 : 뭐라고요? 대란이라니요

 

거칠부 말씀 드리겠사옵니다. 안원왕이 죽자 왕위를 둘러싸고 안원왕의 사돈간에 군사를 동원하여 거의 2천명이 죽었다 하옵니다.

 

해설 : 이 이야기는 삼국사기엔 전하지 않고 일본서기에 백제본기를 인용하면서 전하고 있는 내용이다. 백제본기라 함은 삼국사기의 백제본기가 아니고 백제가 나당연합군에 망하면서 왜로 건너간 백제의 관료들이 그 당시까지 적은 백제의 역사서를 말한다. 따라서 이 부분은 그만큼 신빙성이 높다 할 수 있다. 서기 551년인 왜왕 흠명천황 7년조의 기록은 이렇다.

 

고구려가 크게 어지러워서 무릇 싸우다 죽은 자가 2천며명이었다. 안원왕에게는 세 부인이 있었는데 대부인(大婦人)은 아들이 없고, 중부인(中婦人)과 소부인(小婦人)에게는 가각 소생이 있었다.

 

중부인(中婦人)측 세력을 추군(秋群)이라 하였고 소부인(小婦人)측 세력을 세군(細群)이라 하는데 안원왕 재위 15년에 병이들어 눕자, 후계를 둘러싸고 두 외척세력인 추군(秋群)과 세군사이에 한바탕 왕위계승전을 벌인 것이다. 추군(秋群)과 세군(細群)은 양 세력은 군사가지 동원하여 3일간에 걸친 격렬한 유혈충돌을 벌였는데 그 와중에 안원왕은 죽고, 중부인(中婦人)세력인 추군(秋群)이 승리하였다. 그 중부인 소생이 안원왕의 뒤를 이은 왕이 양원왕이며 8살의 어린 나이로 즉위하게 되었다.

 

거칠부 : 그래서 소부인인 세군(細群)측에 섰던 고구려의 정치세력은 거의 숙청 되었다 합니다. 그 영향이 우리 신라와 마주보고 있는 고구려군에게도 미쳐서 지휘계통이 거의 무너진 상태라고 고구려 혜량법사가 저에게 귀띰 해 주었사옵니다.

 

진흥왕 : 그렇다면 지금은 어떻소?

 

거칠부 : 나이 어린 왕이 즉위하는 바람에 외척세력이 국정을 잡고 있는데 지방세력은 조정에 대해서  불만이 많다 하옵니다.

 

진흥왕 : 그렇다면 우리 신라와 접경을 이루고 있는 고구려군은 지금 어떻소?

 

거칠부 : 지난번 왕위계승 다툼에 동원되느라고 빠져 나간 후엔 아직 병력이 보충되지 않은 상태이옵니다. 

 

진흥왕 그렇다면 이보다 더 좋은 기회는 없겠구려?

거칠부 : 맞사옵니다.

 

진흥왕 : 그렇다면 죽령과 계립령 밖의 고구려땅을 빨리 공략토록 하시오.

거칠부 알겠사옵니다. 즉시 이행토록 하겠사옵니다.

 

이사부 : 대왕마마 신 병부령 이사부 아뢰옵니다.

진흥왕 오 그래요 병부령 이사부. 말씀해 보시오.

 

이사부 : 우리 신라가 그야말로 나라를 새로 열고 보다 넒은 세상으로 나가기 위해선 죽령밖 고구려땅에 만족해선 아니되옵니다.

진흥왕 : 좋은 방도라도 있다는 말씀이오이까?

 

이사부 : 모름지기 나라가 발전하기 위해선 선진문물을 빨리 받아들여야 하온데 그동안 우리 신라는  백제와 고구려를 통해야 했기 때문에 많은 제약이 있었사옵니다.

 

진흥왕 : 선진문물이라니 무얼 말하는 거이오?

 

이사부 : 백제나 고구려가 강성한데에는 중국과 통교하면서 선진문물을 빨리 접한 것이 하나의 이유이옵니다. 그리고 중국을 넘어서 서역까지도 가야하는데 우리는 백제나 고구려가 막아서면

 어찌할 방법이 없었사옵니다. 그런데 이번에 좋은 기회가 찿아왔사옵니다. 게다가 현재는 우리가 백제와 손을 잡고 고구려에 대항하고 있사옵니다만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를 일입니다. 따라서 백제와 고구려를 견제하기 위해서라도 보다 강한 중국쪽 나라들하고 손을 잡아야 할 필요가 있사옵니다.

 

진흥왕 : 과연 연륜이 높은 병부령 이사부의 말씀 답소이다. 그런데 어떡하면 된단 말이오

 

이사부 : 관건은 한강하류지역인 한성땅을 차지하는 것이옵니다.

 

진흥왕 : (진흥왕은 물론이고 배석한 모든 중신들이 다들 깜짝 놀라며 술렁인다.) 방금 뭐라 하였소? 한성땅을 차지한다 하였소? 그 한성땅으로 말한다면 옛날 백제가 고구려에게 잃었던 땅이고 고구려도 정예병이 배치된 그런 곳인데 우리 신라가 어떻게 양국에 맞서서 그 땅을 차지한단 말이오? 그러다가 역공이라도 받으면 어찌되는지는 경이 더 잘 알것 아니오이까?

 

이사부 : 지금 아찬 김무력 장군이 백제 성왕의 지휘 아래 한성땅 공략에 참가하고 있사옵니다. 우리가 도살성과 금현성 모두를 백제와 고구려로부터 차지한 것처럼 때를 기다렸다가 공략하면 가능성이 충분히 있사옵니다. 아찬 김무력에게 백제를 돕는 척만 하고 병력손실을 최소화 하도록 하고 있다가 백제 고구려 양군이 모두 지치게 되면 그 틈을 타서 작전을 하게끔 할 생각이옵니다

 

거칠부 : 대왕마마 신 거칠부도 병부령 이사부장군과 같은 생각이옵니다. 지금 고구려는 북방 돌궐을 막느라 이곳 남방경계엔 한계가 있사옵니다. 따라서 백제가 기를쓰고 고구려를 공격하게 되면 고구려는 병력보충이 안되기 때문에 힘이 달릴 것이옵니다. 그런데 백제 역시 웅진에서 사비로 천도하면서 웅진지역 귀족들의 불만이 높다 하옵니다. 게다가 백제의 귀족들은 한성옛땅 회복에 그다지 관심이 없다 하옵니다. 옛날 한성 출신 귀족들은 몇 번의 정변으로 이미 권력중심에서 제외된지 오래이옵니다. 따라서 현재 백제의 중심귀족세력들은 한성땅에 탈환에 대해서 관심이 없다합니다. 오히려 자신들 휘하의 병력이 장기적으로 차출되는 것에 상당한 불만을 가지고 있다하니 백제역시 고구려와 장기전으로 가게 되면 문제가 많을 것이옵니다. 그러면 고구려와 백제가 둘다 지쳐있을때 우리 신라가 공략하면 이 보다 더 좋은 기회는 없을 것이옵니다.

 

진흥왕 : 경들이 그렇게 말을 하니 그런가 보다 하겠지만 뒷일도 생각해 보고 하는 말이오? 그리고 한성땅을 차지하더라도 백제가 중간에 가로 막고 있는데 군량미나 군마등 물자는 어떻게 조달할 생각이오?

 

이사부 : 그 부분은 그리 걱정 하지 않아도 될 듯 하옵니다. 한수(漢水)가 시작하는 죽령땅과 한수의 중간에 해당하는 지역 그리고 하류까지 모두 차지하게 되면 한강의 물에 배를 띄워서 물자를 수송하면 육로보다 더 안전하고 빠를 것으로 사료되옵니다. 그리고 대왕마마. 신 한가지 청이 있사옵니다.

 

진흥왕 : 무엇이오?

이사부 : 고구려에 전갈을 하나 보내 주시옵서서.

진흥왕 : 무슨 전갈 말이오?

 

이사부 하늘이 고구려를 굽어 살피기 때문에 우리 신라는 고구려와 대적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말씀하시고 현재는 백제의 위세에 눌려 어쩔 수 없이 백제편에 있지만 하늘이 보살피는 고구려를 항상 생각하고 있다는 내용을 보내주시옵서서. 그러면 필시 고구려는 그 뜻을 헤아릴 듯 하옵니다. 왜냐하면 거칠부 장군이 말했듯이 지금 고구려는 북방 돌궐을 상대하기에도 벅찬 마당에 우리 신라가 그런 뜻을 내비치면 좋아 할 것이옵니다.

 

진흥왕 : 그런데 어떻게 전갈을 보낸단 말이오.

 

거칠부 : 대왕마마. 제가 고구려에 대해선 정보망을 가지고 있사옵니다. 혜량법사에게 대왕마마의 뜻을 전하면 혜량법사가 고구려 조정에 연이 닿아 있는 다른 법사를 통해서 전달이 가능하옵니다. 일이 잘 성사되면 나중에 혜량법사에게 큰 상을 하나 내려 주시기 바라옵니다.

 

진흥왕 그러면 그렇게 하도록 하오.

 

해설 : 이 부분에 대한 삼국유사의 언급이 바로 진흥왕이 이렇게 말한 부분으로 표현된다.

 

신라 진흥왕이 말하기를,

『국가의 존망은 하늘에 달려 있다. 하늘이 고구려를 미워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어찌 그것을 바랄 수 있으랴

 

이상의 가상 극화에 대한 삼국사기 진흥왕조 12년과 14년의 해당기록은 이렇다.

 

진흥왕 12년(서기 551년)

 

봄 정월, 연호를 개국(開國)으로 바꾸었다.

3월, 왕이 거칠부 등에게 명하여 고구려를 공격하게 하고, 이를 기회로 열 곳의 군을 빼앗았다.

 

(열전 거칠부전)

진흥왕 12년 신미에 왕이 거칠부와 구진 대각찬, 비태 각찬, 탐지 잡찬, 비서 잡찬, 노부 파진찬, 서력부 파진찬, 비차부 대아찬, 미진부 아찬 등 여덟 장군으로 하여금 백제와 협력하여 고구려를 공격하도록 명령하였다.

 

백제인들이 먼저 평양을 격파하고, 거칠부 등은 승세를 몰아 죽령 이북 고현 이내의 10개 군을 빼앗았다. 이 때 혜량 법사가 무리를 이끌고 길가에 나와 있었다. 거칠부가 말에서 내려 군례로써 읍배하고 앞으로 나아가 말하였다.

 

"옛날 유학할 때 법사님의 은혜를 입어 성명을 보전하였는데, 오늘 우연히 만나게 되니 무엇으로 은혜를 갚아야할 지 모르겠습니다." 법사가 대답하였다. "지금 우리 나라는 정사가 어지러워 멸망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너의 나라로 데려가 주기를 바란다." 이에 거칠부가 그를 말에 태워 함께 돌아 와서 왕에게 배알시키니, 왕이 그를 승통으로 삼고 처음으로 백좌강회를 열고 팔관법을 실시하였다.

 

진흥왕 14년(서기 553년)

가을 7월, 백제의 동북 변경을 빼앗아 신주를 설치하였다. 아찬 무력을 그 곳의 군주로 임명하였다.

 

이런 상황을 토대로 하여 관산성 직전 550년부터 553년까지의 고구려 백제 신라의 대치구도 및 상황을 그림으로 표현하면 다음 그림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로써 신라가 한수땅에 신주를 설치하고 한반도에는 새로운 격동의 장을 잉태하게 된다. 눈물을 머금고 옛고토를 스스로 버릴 수 밖에 없었던 백제 성왕은 어떤 생각을 하였을지는 과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바로 이시점에서 백제성왕의 머릿속엔 어떤 구상이 그려지고 있었을까? 아마도 한성땅으로 이어지는 신라군의 맥을 끊음으로서 신주땅의 신라군은 고사시키고 신라군의 주력에 결정적 타격을 주는 응징전을 구상하였을 것이다. 신라에 대한 괘씸죄, 그것이 바로 관산성 전투의 시작이 된다.

 

< 계속 >

[ 2010-04-26, 09:41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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