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인권은 피눈물이다!
60세의 나이에 20대의 군인들에게 무자비한 구타를 당하고 병신이 되어 저세상에 간 나의 아버지.

한가희(자유북한방송)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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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아버지는 고향이 중국이었다. 중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고국을 찾아 1960년대 북한으로 나왔다. 지금도 중국에는 아버지의 친척들이 생존해 계신다. 북한에 나온 아버지는 두만강 유역인 함경북도 회령시에 뿌리를 내렸다. 그곳에서 결혼하고 5남매를 낳아 키우시며 평생을 살아오셨다.
  
  아버지는 마음이 어진 분이었다. 그 세대 사람들 대부분이 그러하듯 아버지도 체제에 대한 순종이 몸에 밴 사람이었다. 지금도 나는 때때로 이런 생각을 해본다. 그 당시 사람들의 순종의 이유에는 체제에 대한 믿음도 없지 않았을 것이라고.
  
  그러나 김정일 독재정권은 마음이 어질고 체제에 대한 순종이 몸에 밴 고지식한 나의 아버지도 비참하게 죽였다. 2002년 아버지는 굶주림에 시달리는 온가족을 보다 못해 중국에 있는 친척들의 도움을 받아볼 생각을 하게 됐다. 그러나 여권을 뗀다는 것도 힘이 없고 가난한 아버지에게는 하늘의 별 따기였다.
  
  마침내 아버지는 몰래 도강을 해서 중국의 친척에게 다녀올 생각을 하게 됐다. 그러나 추운 1월 몰래 도강을 하던 아버지는 북한국경경비대에 잡혔다. 당시 아버지 나이는 60세. 아버지는 20대의 국경경비대 군인들에게 혹독하게 맞았다. 군인들은 늙은 아버지의 옷을 모두 벗기고 손은 머리 위로 올리게 한 다음 가죽벨트로 사정없이 후려쳤다. 여러 명이 아버지의 곁에 둘러서서. 마치 장난치듯.
  
  매를 맞던 아버지는 너무 분해 이렇게 말했다. “너희들에게는 부모도 없냐?” 그러자 군인들 중에서 소대장이라는 놈이 이렇게 지껄였다. “영감, 우리에게는 너 같은 배신자 부모가 없다” 아버지는 굶주림에 허덕이는 가족들을 위해 중국의 친척들에게서 도움을 받으려는 것이 전부였지만 그것이 군인들에게는 배신으로 불리워지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그날 죽도록 맞았다. 여러 명의 군인들이 달려들어 구둣발로 내차고 들이차고. 나중에 아버지는 정신을 잃고 쓰려졌다. 그러자 군인들은 쓰러진 아버지에게 찬물을 부었다. 두만강의 1월은 영하 30도를 오르내리는 강추위가 계속되는 곳이다. 죽도록 두들겨 패고 찬물까지 부어놓은 군인들은 아버지를 옷을 모두 벗겨 온밤 밖에 세워두었다. 그것은 분명 얼어 죽으라는 것이었지만 아버지는 죽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군인들은 너무 맞아 얼굴형체도 알아볼 수 없는, 온몸에 동상을 입은 아버지를 대대부로 이송했다. 대대부에서 대대장은 이렇게 말했다. “영감, 좋은 제나라를 버리고 남의 나라로 가더니 꼴좋게 됐군.” 대대장은 아버지가 풋낯이나 아는 사람이었다. 전에 대대장의 부탁으로 중국인들의 통역을 해주기도 했다. 그런 아버지를 ‘꼴좋게’만들려고 지독하게 때리고 온밤 밖에 세워두어 동상을 입혀놨을까. 대대부에서는 아버지를 집으로 보냈다.
  
  아버지를 집으로 보냈다는 것은 아버지에게 죄가 없다는 것을 여실히 증명해 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버지를 산송장으로 만들어놓은 군인들은 아무런 책망도 듣지 않았다. 아마 칭찬을 받았을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북한의 인권실태이다.
  
  이렇게 집에 돌아온 아버지는 분노와 아픔, 동상에 시달리며 고통 속에 몸부림쳤다. 그런 아버지를 보며 우리 가족은 눈물로 날을 보냈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이틀 후 병원에 입원한 아버지는 동상을 입은 두 다리를 잘라야 한다는 선고를 받았다. 우리 가족은 땅을 치며 통곡했다.
  
  수술도 간단하지 않았다. 병원에서는 마취제부터 시작하여 모든 약을 본인이 다 준비해 가지고 오라고 했다. 약을 어디서 사는지도 모르는 어머니가 의사한데 물어보자 돈만 준비해오면 약 파는 집은 알려준다고 했다. 헌데 그 많은 돈을 어디서 마련한단 말인가?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집을 헐값에 팔아 돈을 장만하였다 이렇게 아버지는 두 다리를 잃었다. 그 후 우리 가족은 집이 없어 작은 오두막 같은 창고에서 살았다. 아버지는 울분과 육체적 고통에 시달리다가 지난 2005년 여름에 세상을 떠났다.
  
  60세의 나이에 20대의 군인들에게 무자비한 구타를 당하고 병신이 되어 저세상에 간 아버지. 그러면 아버지에게 승냥이처럼 무자비한 횡포를 감행한 군인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나는 그들도 김정일 독재집단의 인권유린 피해자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인간의 넋을 김정일에게 빼앗긴 피해자들이다.
  
  북한에서 인권유린의 핵심은 김정일 독재정권의 반인민적 정책이다. 한줌도 안 되는 지배계층의 이익을 위해 수천만을 희생시키는 김정일 무리를 제거해버리는 것만이 비참한 북한 인권을 개선하는 길이다.
  
  나는 지금 북한인권이라는 이야기를 하면 눈물부터 흘린다. 분해서 울고 가슴 아파서 울면서 외친다. 북한 인권은 피눈물이라고. 그리고 인권은 인간과 인간이 지켜야 할 기초적인 인간의 도덕이라고도 말한다.
  
  탈북자 한가희
  
  
  
  
  
  
  
  
[ 2010-07-15, 22:37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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