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 체증의 법칙
자극은 점점 둔감해지는 경향이 있지만, 스트레스는 점점 심각해지는 경향이 있다.

최성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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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는 변화무쌍하고 복잡다단하다.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고 내일 다르다. 오전 다르고 오후 다르고 저녁 다르다. 세계가 하나로 연결되면서 자폐증 환자인 북한 같은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이제는 다름이 공간보다는 시간에 더 영향을 받는다. 미국의 10대나 한국의 10대나 중국의 10대나 청소년은 옷차림도 취향도 생각도 거의 비슷하다. 한 세대는 더 이상 30년이 아니다. 10년, 아니 5년, 아니 3년이면 세대차가 생긴다. 자연히 사람도 제각각이다. 취향도 어찌나 다양한지 아무리 죽이 잘 맞던 친구도 몇 년 못 만나면 대화가 순간순간 어긋난다. 전에는 이심전심 거의 동시에 제의하여 밤새도록 같은 오락을 즐겼는데, 이제는 이것저것 서로 열심히 추천해 보지만 막상 1시간 정도 함께 즐길 오락거리도 마땅찮다. 대화가 필요 없는 영화관에 가더라도 매표소 앞에서 한참 망설인다. 복합상영관의 수십 편 포스터를 차례차례 훑어보며 옛 사람들이 내외하듯 서로 눈치를 살핀다. 몇 년 못 본 사이에 관심과 취향이 바뀌어서 함께 즐길 내용을 찾기가 쉽지 않다.

 

 가족이 모여도 공통의 화제를 찾기 어렵고 공통의 유희 대상을 찾기 어렵다. 입맛도 어찌나 다양한지 외식 한 번 하려고 해도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 딸, 아들 제각각이다. 전혀 다른 가족문화에서 자란 사위나 며느리가 끼면 더욱 복잡해진다. 제 주장이 강한 신세대에게 끌려 피자집에 끌려가서 시대의 유행과 세계의 입맛에 적응하려고 애쓰는 구세대의 모습은 서글프다. 애처롭다. 불쌍하다. 그나마 여자인 엄마와 할머니는 변화에 비교적 잘 적응하는 편이지만, 전통 발효 음식에 인이 박힌 아빠와 할아버지는 끈적거리는 치즈를 사나이의 굵은 울대 근육으로 ‘밥’ 배에 우겨넣고 시큼한 소스를 손가락 끝으로 ‘된장’ 입에 밀어 넣으며 광고모델의 활짝 웃음 연기를 하느라 고역을 치른다. 가족의 평화를 위해, 왕따 당하지 않기 위해! 돌이든 결혼이든 회갑이든 잔치는 무슨 잔치든 뷔페로 벌여놓고 입맛대로 골라 먹게 하는 잔치 문화가 널리 퍼진 것도 충분히 이해된다.

 

 명절에 가족끼리 다 함께 노래방 한 번 가기 힘들고 왁자하니 윷놀이 한 번 하기 어렵다. 노래방에 가더라도 유행가도 어찌나 장르가 다양한지 제각기 온 몸으로 부르는 노래가 본인에게만 즐거울 뿐 서로에게 소음이요 공해요 고문이다. 남녀노소 없이 두루 즐길 수 있는 윷놀이는 아예 입 밖에 내는 사람이 없다. 애들은 바로 컴퓨터 앞으로 달려가거나 휴대폰이나 PMP을 꺼내어 혼자서 논다. 큰 맘 먹고 신사임당 초상화를 한 닢 주려고 아무리 불러도 한 아이가 유독 대답이 없어서 자세히 보면, 이어폰을 꽂고 초점 없는 눈으로 천장을 쳐다보며 고개를 까딱까딱하고 있다. 남자 어른들은 고스톱 치거나 꼬박꼬박 졸거나, 컴퓨터를 차지하지 못한 뿔난 아이가 리모컨으로 화면을 휙휙 바꾸는 TV를 멀거니 바라보고, 여자 어른들은 우르르 달려들어 설거지를 금방 마치고 행주치마에 손을 닦으며 잠시 목소리와 웃음소리를 가장하여 왁자지껄 수다를 떠는 듯하다가 은밀히 각자의 구세주 신랑에게 신호를 보낸다. 후딱 헤어지는 게 상책이다. 명절 휴가가 1주일이 되더라도 교통이 골고루 분산되지 않고 바로 당일에 전국의 모든 도로가 거대한 주차장으로 변하는 소이(所以)가 바로 여기에 있다.

 

 광속의 사회 변화가 객관적으로 가장 잘 드러나는 데는 직업 전선이 아닐까 한다. 농업시대 1만 년 동안 직업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 90%를 차지하던 농업 인구가 산업시대에 접어들면서 20~30%로 떨어지더니, 정보시대를 맞이하여 이제 10% 이내로 곤두박질쳐서 서구에서는 1% 내외로 떨어졌다. 일본은 4%이고 한국은 아직 7%나 된다. 중국이 세계2위 경제대국으로 올라섰다고 세계가 놀라지만, 사회구조로 볼 때 갈 길이 구만리의 구만리다. 농업 인구가 아직도 60%가 훌쩍 넘기 때문이다. 산업 국가의 최대 농업 인구를 30%로 잡더라도, 중국은 30년 이내에 최소한 잠재실업자 4억 명을 먹여 살릴 일자리를 창출해야 한다. 머잖아 중국과 인구가 역전될 인도도 치고 올라오는데, 과연 그게 가능할까. 하여간 이름도 모를 직업이 수시로 생겨나고 눈에도 손에도 익숙하던 직업이 시시각각 사라진다. 졸지에 직업 자체가 사라져 실업자가 된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새 일을 배워야 한다. 이게 어디 보통 스트레스일까.

 

 유치원은 빼고라도 초등학교에서 대학까지 16년 동안 공부해서 사회에 나오면 이미 전공이 낡아 빠져, 12년 공부는 나무아미타불 그냥 교양 공부로 생각하고 직업 교육은 새로이 받아야 할 경우가 허다하다. 4년제 대학교 나와서 2년제 대학에 가는 것이 이제 더 이상 뉴스가 아니다. 12년 공부 자체가 엄청난 스트레스였는데, 온갖 스펙을 쌓으며 대학을 나와도 이런저런 방법으로 새로이 직업 교육을 받아야 한다. 설령 취직되더라도 연수가 필수 코스다. 말단 사원에서 최고경영자까지 연수 안 받는 사람이 없다. 회사에 적절한 연수 프로그램이 없으면 스스로 알아서 공부해야 한다. 좋게 말해 평생교육 시대다. 이게 다 스트레스의 원인이다.

 

 나이가 어릴수록 세포분열과 신진대사가 활발하여 주변의 변화가 심할수록 즐겁다. 그래서 애들은 잠시도 가만있지 못한다. 5분도 못 참는다. 공부하든 놀든 뭔가에 몰두하지 않으면 5분도 심심하기 짝이 없다. 눈이 휙휙 돌아가는 세상도 어린이의 눈에는 너무 변화가 적다. 그들에게 세상은, 부모는, 선생님은 답답하기만 하다. 어린이의 한 달은 청소년의 한 해이고 청소년의 한 해는 어른의 5년이고 어른의 5년은 노인의 10년이다. 10살 어린이가

20살 청년이 되기까지 세월은 속이 탈 정도로 더디 지나가지만, 세포분열과 신진대사가 더딘 60세 노인이 80세가 되기까지 세월은 가슴이 벌렁거릴 정도로 후딱 지나간다. 노인일수록 세월이 빠르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나이가 적을수록 변화를 좋아하지만, 나이가 많을수록 변화를 싫어하는 것은 생리학상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어린이에게는 신나는 자극으로 작용하여 도파민과 세로토닌을 대량 유발하는 것도 어른에게는 답답한 스트레스의 원천이 되어 코르티솔을 왕창 분비한다. 독수리 타법으로 겨우 전자우편을 손자에게 보냈는데, 어느새 휴대폰 문자가 나온다. 더듬더듬 겨우 문자 메시지 주고받기를 배웠다고 의기양양했더니, 손자는 어느새 버디버디라는 번개 메시지를 날리며 저들끼리 쫑알거리고, 배울 엄두도 못 내고 그걸 훔쳐보는 사이에 손자는 트위터라는 것으로 재잘거리며 미국 대통령의 메시지도 내리받는다.

 

 요즘은 변화를 좋아하는 어린이도 스트레스가 심하다. 정신적 육체적 성장에 맞지 않는 공부와 활동이 강요되는 경우가 흔하기 때문이다. 지천에 깔린 유혹과 사방에서 내리누르는 의무 사이에서 자극 못지않게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이다. 자극은 금방 익숙해져서 둔감해지기 때문에 점점 강해지는 경향이 있다. 폭력과 욕설과 섹스는 자극 중 가장 강렬하다. 자극 체감의 법칙(the law of diminishing stimulus)에 따라 전 세계적으로 폭력과 욕설과 섹스의 선정성이 판을 치게 되어, 이제 어린이들도 몰래 19세 동그라미 영화를 TV로 보고도 어른보다 더 덤덤하다. TV에 키스 장면이 나오면 부모가 눈을 가리며 애들을 쳐다보는데, 정작 애들은 시시하다는 듯 태연하기만 하다. 반면에 자극의 홍수와 유혹의 해일 속에 공부, 특별활동, 봉사활동, 독서, 논술 등 학생들의 의무는 쌓여만 간다.

 

 점점 더 강해지는 자극과 점점 높이 쌓이는 의무, 그 사이가 벌어질수록 스트레스 체증의 법칙(the law of gradually increasing stress)에 따라 스트레스가 점점 커지고 수천 년 수만 년 수억 년 쌓이는 퇴적층처럼 평생토록 차곡차곡 쌓여만 간다. 이처럼 스트레스는 퇴적층과 흡사하다. 가만두면 다져지고 얇아져 돌처럼 단단해질 뿐 사라지지 않는다. 지각 변동으로 퇴적층이 뒤집어져 암석 지층이 켜켜이 드러나듯이, 의도적으로 또는 어떤 외부 요인으로 스트레스는 저 아랫것도 뒤집어서 생각의 밖으로, 입의 밖으로, 세상의 밖으로 때때로 드러내어 흘러 버리고 태워 버리고 날려 버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언젠가 크게 화산처럼 폭발하는 수가 있다. 나라 사이엔 전쟁이 터지고, 사회 사이엔 폭동이 발생하고, 개인 사이엔 칼부림, 결별, 이혼 등이 찾아온다. 한 개인 안에서는 정신분열증으로 나타나거나 화병으로 발전한다.

     (2010. 9. 24.)

 

[ 2010-09-24, 20:43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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